▲ 장규열한동대 교수처음엔 어리둥절했었겠지. 엄마의 치맛폭에서 늘 행복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이끌려 나가 따뜻했던 엄마의 손을 놓으며 헤어져야 하는 일은. 아빠는 기특하게 보았을까, 엄마는 부서질까 싶었을까. 겨우 혼자 걸었을까 하는데 무엇인가 배우러 보내야 하는 심정은. 유치원(幼稚園). 글자의 뜻마저 ‘어리고 또 어린 아이들의 동산.’ 그 곳에 아이들을 보낸다.친구들 사귀기, 어울려 놀기, 싸우지 않기, 때리면 안 돼, 깨끗이 치우기, 내 것과 남의 것 가리기, 밥먹기 전에 손 씻기, 화장실 물 내리기,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인사하기, 안녕, 헤어지기, 쓰다듬기, 또 만나기, 낮잠자기, 책읽기, 노래하기, 춤추기, 그림그리기, 일기쓰기, 병아리, 잠자리, 다람쥐, 금붕어, 어 근데 다 죽더라, 웃기, 울기, 기쁨과 슬픔, 허전함과 외로움, 반가움과 놀라움, 길조심, 차조심, 사람조심. 너무나 많다. 그 때쯤 경험하고 배우고 익혔을 일들이. 그래서 누군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했을까. 그 제목 책을 쓴 로버트 풀검(Robert Fulgum)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사실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운다’고 했다. 또 그는 ‘온갖 지혜는 대학원 도서관 안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유치원 모래성 위에서 익힌다’고 했다. 아슬아슬하면서도 물가에 보내는 심정으로 아이 손을 놓아주는 까닭도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유치원에서 사고가 났다. 이렇게 깊고 넓게 멍들었을 줄이야! ‘정부가 도와주느라 지원해 준 것인데, 우리 마음대로 쓰면 어떠냐’ 라든지 ‘공립도 아니고 사립인데 왠 간섭이냐’라는 반응은 엄마아빠들이 듣기엔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우리의 걱정은 ‘돈이 어디에 쓰였을까’도 있지만, 그보다 ‘돈을 그렇게 멋대로 쓰는 정신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었을까’인 것이다. 질문에도 답변에도 ‘아이들’이 없다.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지 돈을 벌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고민과 대책에도 ‘관리와 통제’가 강조되고 있을 뿐 ‘교육과 가르침’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인가 경리담당인가. 온통 관심과 이목이 ‘돈’에 몰려 있는 것이다.교육에 있어 대학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닥이 유아교육이다. 교육은 대상이 어릴수록 그 책임이 무겁다. 태어나서 다섯 살쯤에 이르기까지 인성의 기본 틀은 모두 다 자란다. 아이들은 들은 대로 배우지 않고 본 대로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돈에 휘둘리느라 진심으로 가르치지 못하는 선생님을 아이들이 혹 눈치채지 않았을까. 어른들의 저 못난 악다구니와 아귀다툼의 심사가 혹 한 자락이라도 아이들에게 옮지 않았을까 부모들은 두렵고 무섭다. 아이들을 믿고 맡길 유치원 교육의 참모습을 혹 오늘의 유치원들이 망각하지나 않았을까 걱정인 것이다.문제를 해결하려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걱정으로 돌아가고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치원은 무엇 때문에 거기 있어야 하는지, 선생님은 무얼 하러 거기 계시는지 그것만 다시 잡아올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엄마아빠들의 마음을 다시 살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밤새워 준비하고 종일토록 수고하는 선생님들에게 힘이 솟아야 한다. 불거진 문제를 분명히 짚은 다음, 사사로운 계산은 제발 내려놓았으면 한다. 교육을 위하여 아이들을 위하여. 엄마아빠들도 생각을 모아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필요할 모든 것을 배워 올 유치원에서 바로 그런 가르침이 일어나는지 잘 살펴야 한다. 잘하고 계시는 유치원들에 불필요한 피해가 없기를 바라고, 유아교육을 맡은 모든 분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짐을 분명히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어릴 적 다녔던 유치원이 다시 그립다. 성당 부설 유치원의 ‘난초반’ 이수녀 선생님은 혹 아직 살아 계실까,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선생님이 보고 싶은 아침이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유아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18-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