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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얼마 전 성추행으로 사퇴한 정당 대표의 지역구민들과 참담한 심정으로 대화하던 중 왜 그랬을까 질문했다가 오해를 받았다. 가해자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가해자를 변호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몇 년 전 읽은 칼럼이 생각났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는 제목의 그 칼럼은 2011년에 나온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다루고 있다. 케빈은 화살로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체육관에 가두고 화살을 쏘아 죽였다.시간이 지난 후 케빈의 엄마는 감옥에 있는 케빈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다. 그 칼럼에서는 이런 질문이 피해자를 영원히 피해자로 남게 한다면서 왜 그랬느냐고 묻지 말라고 한다. 악의 이유를 질문하는 것은 피해자의 자아존중감을 파괴하는 진짜 악이란다. 이유를 밝히면 잠시 피해자의 상처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그 이유는 대단히 복합적이기도 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책임을 줄여줄 수도 있으며, 왜 하필 나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이유가 복합적이라고 해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이유를 밝힌다고 해서 피해자의 자아존중감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이유를 밝히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1999년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에릭과 딜런은 선생님 한 명과 학생 12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년 후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쓴다. 딜런이 왜 그랬는지 알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이다.자식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쉽게 부모 탓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너무나 많고 복합적이어서 우리의 이성으로 정확하게 다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알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충분한 이유라고 볼 수도 없다. 케빈의 엄마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끄러운 공사장에 데리고 갔다고 해서 케빈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두 가지로 원인을 밝히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딜런의 엄마도 딜런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변화를 눈치챘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는 딜런이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우울증이 그 사건의 원인도 아니다. 우울증에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지만, 그 모든 이유를 합쳐도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조건 중 하나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결코 가해자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가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악마라고 규정하는 것은 쉽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딜런의 엄마는 자녀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강의를 하면서 많은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2021-03-15

이성과 광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누구나 억울한 일을 겪으면 ‘선이란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단테 역시 정쟁에 휘말려 1302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1321년 열병에 걸려 객지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1307년부터 쓰기 시작한 ‘신곡’에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단테의 생각이 담겨있다. 지옥에 교황과 황제도 있는 것을 보면, 살아있을 때 명예가 천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풍자로도 읽을 수 있다. 두 연인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지옥에 있는데, 쿠니차라는 여인은 천국에 있다는 이야기는 선한 삶에 대해 생각거리를 준다.‘지옥편’ 5곡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사랑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주제가 될 만큼 유명하다. 이들은 사실 사기 결혼의 희생자였다. 두 집안은 성의 영주였는데 앙숙이다가 자식을 볼모로 협정을 맺으려 한다. 파올로의 아버지는 큰아들 조반니가 추남에 절름발이에다 폭력적이어서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하자 프란체스카에게 둘째아들 파올로를 보여주고 승낙을 받은 후 조반니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조반니에게 살해당하고 지옥에 온다.쿠니차 이야기는 ‘천국편’ 9곡에 나온다. 열 겹으로 된 하늘 중 쿠니차는 세 번째 하늘 금성천에 올라가 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넷이고 애인도 둘 있을 만큼 애욕이 넘쳤는데 천국에 있다. 단테는 음욕을 죄로 보기 때문에 이런 설정은 당혹스럽다. 실제로 쿠니차가 천국에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그러나 그 이유를 작품 안에서 짐작해볼 여지는 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갈레오토’라는 연애소설을 같이 읽다가 자신들도 모르게 육욕에 빠져들었고 지옥에 와서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들을 그린 여러 그림에서도 두 연인은 밀착되어 한 몸처럼 붙어 있다. 반면, 쿠니차는 자신의 음욕을 후회하고 선한 생활을 하다가 죽는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자유의지로 선을 선택한 것이다. 단테에게 자유의지는 이성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고,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그러나 이성에 따르는 선택은 언제나 선일까? 영화 ‘인페르노’에 나오는 조르비스트는 맬서스의 인구론에 근거하여 인구 증가가 지구 위기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구를 3분의 1로 줄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면서 자신은 인류의 구원자라고 자부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조르비스트는 ‘신곡’의 ‘지옥편’을 그림으로 그린 보티첼리의 ‘지옥도’를 이용한다.이런 조르비스트의 행동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처럼 자유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서로에게 빠져든 것과는 다르다. 자기 나름대로 사실을 분석하고 이론에 입각하여 지구 구하기라는 선 실천 의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광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옥편’에 이런 죄는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래도 책을 사놓은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1-03-01

자화상들 그리십시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4년 전 이맘때 연필로 인물화 그리기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른 수강생들은 배우자, 자녀, 손자, 아니면 친구를 그리는데, 나는 주야장천 내 얼굴만 그렸다. 문득 그때가 떠오르면서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자화상의 비밀’의 저자 로라 커밍에 의하면, 초상화든 자화상이든 인물화는 역사적으로 하위 장르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자화상은 초상화보다 더 하위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화가가 자기 모습을 그릴 때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대로 그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릴 때 대담하게 변칙을 했기 때문에 실제 모습과 많이 달라서, 그의 실제 모습은 다른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린 초상화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남이 그려준 초상화라고 해서 사실대로 그려진다는 보장은 없다. 조정래의 ‘어느 솔거의 죽음’이라는 중편 소설에서는 성주가 어느 화가에게 자기 초상화를 의뢰했다가 화가가 성주의 비열한 내면까지 표현하자 그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후원자나 권력가 같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기를 그린 자화상보다는 다른 사람을 그린 초상화가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은 많다.그렇기에 로라 커밍이 자화상의 가치를 강조하는 지점은 사실 여부가 아니다. 자화상은 다른 종류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무리 못 그린 자화상이라도 이미지로 전환되기 이전의 인물과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자화상에서는 쉴 새 없이 바뀌는 변덕스러움, 하루하루 경험에 따라 수없이 바뀌는 인물의 성격과 같은 심층적인 진실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그린 초상화에서는 표현될 수 없는 진실이 표현되어 있다.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린다고 해서 명예를 얻거나 돈을 만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화상은 대부분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나 감사, 사랑 등 내밀한 표현 욕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화가들의 표현 욕구는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가 무엇을 표현했는가 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고 보니, 4년 전 내가 그렇게 자화상을 그려댄 것은 세상과 어떤 모습으로 소통할까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남의 자서전을 대필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진욱은 자서전 대필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스스로 쓰는 진솔한 자서전만이 영혼과 성찰을 담고 있다면서 결국 모든 대필 의뢰를 거절한다. 물론 자화상처럼 자서전도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자서전으로 우리는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해한다.70이 넘어 처음 배운 한글로 삐뚤빼뚤 쓴 편지 한 장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훌륭한 자서전이 되듯이 나를 전혀 닮지 않은 서툰 자화상도 세상과 소통하는 멋진 통로가 된다. 그러니 우리 신축년에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세상과 만나기 위해 ‘자화상들 그리십시다.’

2021-02-15

물아일체는 없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평화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에서는 ‘물아일체’라고 하여 내가 대상에 몰입하여 나를 잊어서 나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진 경지를 진정한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인들은 자연의 풍광 속에 흠뻑 빠져 자신을 잊은 경지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런 경지는 잠깐 동안의 흥취일 뿐 언제나 몸은 여기에 있고 자연은 저기에 있을 뿐이다.대상과 내가 구분된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준 화가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이다. 파리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반복해서 수십 점 그렸다.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던 세잔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과가 있는 정물을 그릴 때도 사과 배치에 몇 시간씩 걸리고, 붓질 한 번 하고 몇 시간씩 관찰하느라 그 사과가 썩을 만큼 시간이 오랜 시간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을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그런 세잔이 ‘나 자신은 생트 빅투아르산의 의식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나는 생트 빅투아르 산이다’라고 해석하고 산과 합일되기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물아일체 사상의 흔적일 것이다. 그렇게 자의적으로 ‘의식’이라는 단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세잔의 사과’는 현대 여섯 사상가들이 세잔을 해석한 책이다. 그저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 이나 ‘사과가 있는 정물’ 정도의 그림만 알고 있다가 세잔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분석과 그의 작품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보니, 세잔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는 눈이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 든다.이 책에 메를로 퐁티가 빠질 수 없는데, 그는 세잔의 그림을 탐색하며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 역시 “풍경이 내 안에서 그 자체를 생각하고, 나는 그것의 의식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위 세잔의 말을 부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메를로 퐁티의 이 말을 참고하여 세잔의 말을 해석하면, ‘외부 세계는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나는 생트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의식으로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 자신은 생트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의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세잔이라는 존재는 생트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의식 현상이라는 말이다. 세잔은 산과의 합일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생트 빅투아르 산의 본질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이렇게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세잔은 인간은 의식이라는 현상으로 존재하며 그렇기에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라고 답하는 듯하다. 그렇게 완성된 산은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는 존재로 저 멀리에 우뚝 서 있다.처음에는 털끝 하나만큼 빗나가도 나중에는 천리만큼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무엇이 정답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잔에게서 그 단서를 조금이라도 얻고 싶다면 단어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칠 일은 아니다.

2021-02-01

성장의 의미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성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성장하기 위해 누구나 노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노력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우리는 현실이 고통스럽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성장을 꿈꾼다. 만족을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귀를 소망한다. 그러나 성공이 성장은 아니라서 이것을 갖는다고 내적인 만족까지 따라온다는 보장은 없다.며칠 전 펼친 대담집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뉴욕 소네트’라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온 후에 출간된 것이어서 다큐멘터리의 뒷이야기와 못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시모어 번스타인은 1927년생으로 미국의 피아니스트이다. 이런 작품이 연이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그의 삶이 성장의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 에단 호크의 제안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나이는 88세였고, 인터뷰를 할 때 나이는 90세였다. 그의 삶이 남긴 흔적은 그가 추구한 성장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번스타인은 개인적 자아와 음악적 자아의 통합을 성장이라고 한다. 번스타인에게는 음악이었지만,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분야는 달라질 것이다. 어떤 재능이든 예술이다. 개인적 자아와 예술적 자아의 통합이란, ‘어떤 것에 열정이나 관심을 최대한 펼칠 때 인간의 영적 세계, 감성적 세계, 지성적 세계, 육체적 세계가 함께 발달하는’ 것이라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총명하고 재능이 많다고 해서 그의 예술적 자아가 개인적 자아와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일그러지고 괴팍한 예술가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우주의 전부라면서 자기 안에 매몰되는 자아 과잉도 성장의 목적지는 아니다.감성과 지성뿐 아니라 육체의 발달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번스타인은 자기가 관심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자신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육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대가와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재능을 존중하고 보호하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는 템포를 스스로 고르라고 한다. 번스타인은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운동도 신경 쓴다. 그것이 통합이다.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공부에 재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논문을 쓰려고 발버둥칠수록 인격파탄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좌절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감성과 지성과 육체의 발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재능을 어떻게 펼쳐야 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많은 이들이 번스타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해보겠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다. 성장의 의미와 목적을 바르게 알기만 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누구에게나 통합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관심 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그 활동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가면서 표현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은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2021-01-18

내가 케이크를 자른다면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며칠 전 여고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희야, 항상 네 글 잘 보고 있어. 글 읽을 때마다 이런 걸 공짜로 읽어도 되나 항상 생각해. 나는 선반에 있는 약을 꺼내서 손님에게 전해주기만 해도 돈을 받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그냥 나눠주니까 불공평한 것 같아. 내가 책값 보내고 싶은데 꼭 받아줘.” 하면서 책값이라고 할 수 없는 큰돈을 보내왔다.그 후 불공평이라는 말이 자꾸 맴돌다가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렸다’는 말이 떠올랐다. 중국 고전 ‘회남자’에 나오는 말이다. 문자가 생기면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늘이 곡식을 내려주었다는 말이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계급 차이는 있었겠지만, 문자 시대 이후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문자를 쓰지 않고 새끼줄을 꼬아 의사소통하는 시대’를 이상사회로 보았다.문명이 발달하면서 단순히 문자를 아는 것만으로 지배층이 될 수는 없고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기술을 습득할수록 기득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등장해서 분야에 따라서는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있어도 어려운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분배 문제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사서삼경만 외워도 행세할 수 있는 전근대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은 과하게 특혜를 누렸고, 현대 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의 기준은 어떻게 정할까?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이익의 원천을 평가해야 할 텐데 과연 이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에서 생산력을 산출하는 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 세 가지라고 한다. 여기서 토지와 자본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는데 노동은 평가가 요동을 친다. 어떤 노동은 엄청난 보상을 받고 어떤 노동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같은 노동이라도 시대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때로는 동일한 사람이 그 능력으로 강의를 하면 보상이 높고 글을 쓰면 보상이 낮다. 중앙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꽤 유명한 작가 역시 글만 써서는 생활할 수 없다며 코로나19로 강의가 끊겨 살기가 곤란하다고 고충을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강의는 같은 말을 무수히 반복해도 상관없지만, 글은 절대로 같은 내용을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렇다.‘내가 케이크를 자른다면’은 공정한 분배를 탐색하는 그림책 제목이다. 만약 내게 케이크를 자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나는 조용히 그 칼을 내려놓을 것이다. 공정하게 자를 자신도 없고, 어느 한 사람에게 케이크를 자르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작가 조승연은 인문적 교양이란 감성비를 높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사람답게 사는 데 가성비만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감성비를 높여주는 활동에 대한 보상은 지나치게 탄력적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의 책임을 사회에만 미룰 수는 없다. 감성비 높이는 활동에 보상받는 방법을 당사자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2021-01-04

나만의 지도 만들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날씨는 차지만 산책 겸 30분을 걸어서 작은 서점에 갔다. 책이 많지 않다며 민망해하는 주인에게 책이 많으면 고르기 힘들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고 서가를 둘러 보다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사진 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수필집 ‘여행하는 나무’이다. 이 작가의 ‘또 하나의 시간을 간직한 삶’이라는 짧은 글에 알래스카 고래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44년이라는 짧은 삶의 후반기 20여 년을 알래스카에 거주하면서 그곳의 자연과 야생동물과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다고 한다. 어떻게 알래스카를 선택했을까 궁금했는데, 서문에 그의 인생 철학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이 있다.북극권에서는 자라지 않는 등피나무를 북극해에서 발견하고 작가는 그 나무가 자기만의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향해 뻗어오르던 등피나무가 껍질이 다 벗겨지고 뿌리마저 흉물스럽게 드러난 채 북극까지 떠 내려와서는 작은 티티새에게는 휴식을 주고 북극여우에게는 영역을 표시하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음을 발견한다. 작가 역시 알래스카에서 15년간 생활하면서 자신만의 알래스카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면서 사람도 나무처럼 자신의 지도를 그리며 여행하고 있음을 깨닫는다.자신의 지도 그리기는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어느 교수는 터어키의 테키르다 어디에서 학회가 열리는지 몰라 그 작은 도시를 택시 타고 헤매면서 자신만의 테키르다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나도 20여 년 전 북경에서 일행과 길이 어긋나 종이 지도 한 장에 의지하여 목적지를 혼자 찾아간 적이 있다. 길가 음식점에 들어가 짜장면도 먹고, 공중 화장실도 필담으로 물어서 가고, 시내버스를 타기도 했다. 마롄따오에서는 크게 바가지 쓰지 않고 역시 필담으로 차와 다기까지 샀다. 그 덕분에 나만의 노선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그렇다고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꼭 길을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선택으로도 자신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가 뜻하지 않게 이 책도 발견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으니 오늘 오후 나만의 지도를 그린 셈이다.요즘은 대부분 집콕이지만, 여행객이 많은 시절, 낯선 곳에 여행을 가게 되면 미리 검색하여 모든 노선을 완벽하게 짜놓고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가보면 모두 한국 사람이다. 다들 그렇게 같은 정보로 같은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나의 개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인생도 그렇게 안전한 코스를 정해 놓고 싶지만, 인생에 그런 코스가 있을 리 없다. 큰애 역시 붙박이 삶을 최고로 생각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석 달 후에 또 출국하여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힘들겠지만 자신의 지도 한 부분을 그려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역시 나만의 지도 그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야릇한 의욕이 저 아래 뱃속에서 내장지방을 뚫고 살짝 올라온다.

2020-12-21

스트레스에 대한 단상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몇 년 전 몸에 이상을 느껴 몇 가지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결과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내 생활의 중심을 스트레스 관리에 두었지만, 그것을 혼자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우리가 흔히 스트레스라고 부르는 것은 외부 요인에 대한 개체의 반응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 요인은 스트레서라고 한다. 스트레스 관리가 어려운 것은 스트레서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최근 읽은 ‘나의 슬기로운 감정생활’이라는 책에서는 스트레스가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감정이 문제라고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도파민이나 세레토닌, 옥시토신, 엔돌핀 같은 행복 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긍정적 반응을 선택하라고 조언해준다.그러나 도파민이나 세레토닌, 옥시토신,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나오는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라고 해서 우리가 보통 말하는 부정적 스트레스와는 상황이 다르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 갈고닦은 실력을 뽐낼 연주회를 앞둔 연주자, 기록을 깨고 싶은 암벽 등반가 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이다. 반면에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는 직장인,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해야 하는 수험생, 시댁과의 갈등에 힘들어 하는 며느리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디스트레스 상황이다. 이런 디스트레스 상황에서 긍정적 감정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같은 상황이라도 유스트레스로 느끼는 사람이 있고, 디스트레스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도 디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로 전환시키기는 어렵다. 그래도 여러 이완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낮출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쉽지는 않다. 이미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개체는 스트레스를 조절할 힘을 상실한 지 오래됐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가장 좋은 방법은 심각한 디스트레스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는 않다. 원시시대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야생동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죽음은 아니다. 사회적인 죽음 역시 생물학적인 죽음만큼 두렵다. 그렇게 사회적인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결국 몸에 이상을 느낀 후에야 알게 된다. 이미 몸에 이상이 온 후에는 산책하기, 명상하기, 잠 잘자기, 영양가 있는 음식 먹기 등 여러 스트레스 해소책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이다. 몸의 힘도, 마음의 힘도 소진되었을 가능성이 많다.여기까지 읽으면서 독자 여러분의 스트레스가 가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과도한 스트레스로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자주 점검해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몸에 이상을 느낄 정도로 진행이 되었다면, 이런 자가 치유서를 읽느라 애쓰지 말고, 당장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2020-11-23

실격 당한 사람들의 존엄을 위한 변론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인간 실격’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자격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만, 사회로부터 인간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기에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에서 실격당한 사람은 장애인이다. 그 자신도 장애인이어서 그런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그의 변론은 폐부를 찌른다. 그의 사유의 깊이는 그의 고통에 비례했음이 분명하다.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있었다고 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장애인의 삶이 손해라고 생각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삶은 아니라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장애인도 자기 삶의 저자이다. 상처받지 않은 척 노련하게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연기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일치시키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혐오하지 않고 수용하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사진 찍듯이 한순간에 포착되는 매력은 떨어지지만, 초상화를 그리듯이 천천히 바라보면 장애인도 아름답다. 장애인을 존중하기 위해 괴물 같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이런 변론을 읽다 보니, 어렸을 때 뚱뚱하다고 놀림 받던 일이 생각난다. 장애인의 상황이 더 안 좋기는 하지만, 외모 차별, 능력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상 체중인 적이 없는 나의 신체는 어린 시절에는 놀림거리였고, 커서는 매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중증 장애인과 나의 신체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한 일이기는 하지만, 신체 때문에 놀림 한 번 받지 않은 독자들보다는 조금 더 이 변론에 공감할 수 있다.그러나 저자의 변론은 어느 정도 성찰하는 힘을 가진 일부의 장애인에게만 해당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가 없는 장애인들도 많다. 어떤 상황에서도 수용하기로 선택하기에는 버거운 장애를 가진 사람, 아무리 천천히 초상화를 그리려고 해도 보기가 저자 자신도 부담스러웠던 남윤광 같은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그런 중증의 장애인들은 존엄하지 않은가? 이들을 위한 변론이 필요하다. 그 변론은 사진 찍듯이 한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섬세한 손길로 초상화를 천천히 그려주기를 바라기 힘들기 때문이다.그들을 위해 장애인들도 행복과 고통을 느낄 줄 안다는 것으로 변론하고 싶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부여돼 있다. 어떤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진 사람도 좋거나 싫은 감정은 느낀다.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장애인은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똑같이 울고 웃는 존재이다. 감정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이 존엄하다.

2020-11-09

정상과 병리 사이

유영희작가​​​​​​​·인문글쓰기 강사매스컴에서 듣던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가 어느샌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도 가족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조차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서 우왕좌왕한다.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라는 책에 유난히 관심이 갔다. 이 책은 가족이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실을 잘못 보는 환자와 논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현실을 왜곡해서 본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건 A가 아니야, B야. 아무리 설명을 하고 납득을 시키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때로는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큰 병을 앓다 보면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5년 전 돌아가신 엄마는 파킨슨씨 병을 앓으면서 환청이 있으셨다. 내 신발에 도청장치가 있어, 사람들이 나와서 나한테 소리를 질러, 누가 죽었대 등등.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책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설득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심하게 흥분했을 때는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좋고, 그 망상이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개입하지 말고 가볍게 흘려듣거나 슬며시 화제를 바꾸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쟁하지 말고 대신 그 밑에 깔린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한다.그런데 이런 조언은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하는 사람들도 비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실증적인 증거를 들이대도 수용하지 않는다. 책의 조언을 적용하면, 이때 그런 생각과 논쟁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 생각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설득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때로는 비논리적인 사고로 남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감정이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때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 상담사가 아무리 나의 성취한 부분을 말해주어도 부정하거나 폄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 때 상담사가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반박하려 하지 말고, 그 생각 뒤에 숨은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인정했을 때 오는 후폭풍, 예를 들어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오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대목 역시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대목이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말이 있다. 그럴 때 논리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반박하기보다 부끄러움이라는 속감정을 이해해주는 것이 그 사람과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이다. 정상과 병리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2020-10-26

역지사지는 불가능하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오래전 이야기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됐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면 서로 미소로 인사하던 초등학교 동창이 언제부터인지 내가 인사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 후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자기는 열심히 웃어줬는데, 내가 외면해서 자기도 인사를 안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엄청 과장되게 인사하게 됐다. 이런 에피소드는 사람마다 차고 넘칠 것이다. 내 딴에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도 엉뚱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이런 어긋남은 아무리 전문적인 수련을 한 상담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다.실존심리치료 전문가 어빈 얄롬은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라는 책에서 내담자 마리를 치료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백하고 있다. 마리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우울증에 걸려 얄롬을 찾아왔는데 3년이 넘는 치료에도 큰 진전이 없었다. 결국 자문 치료자의 최면 치료 도움을 받기로 하고 마리가 최면 치료를 받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았다. 마리는 최면에 들어있는 동안 미소를 두 번 지었는데, 하나는 자문 치료자가 마리에게 그녀의 턱 통증에 대해 구강외과 의사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을 때이다. 두 번째는 마리에게 금연을 권하면서 개를 키운다고 상상하라고 하면서 그 개에게 독이 든 음식을 주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돌보라고 했을 때이다.얄롬은 마리와 구강외과 의사의 불편한 관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마리가 이전에 애완견을 안락사시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의 웃음은 자문 치료자의 조언이 마리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였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리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자문 치료자는 마리가 자신의 조언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면에서 깨어난 후 마리의 대답은 얄롬의 확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처음 미소는 구강외과 의사와의 불편한 관계를 그가 몰랐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고, 두 번째 미소는, 얄롬이 자기 개를 안락사시키라고 했기 때문에 얄롬이 불편할까 봐 개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결국 두 심리치료 전문가는 당사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미소의 의미를 해석한 셈이다. 그러니 플로베르가 키우던 앵무새까지 조사해도 플로베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줄리언 반스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네가 나라면 웃을 수 있느냐며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호소하기 위해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상대방에게 내 사정을 다 보여주어도 완전한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모든 교류가 무의미하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만 알아도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를 걱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성장할 수 있다.

2020-10-12

인생의 쇠사슬을 내려놓는 법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만든 쇠사슬을 걸치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 ‘노스바스의 추억’의 주인공 도널드 설리반의 말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설리라고 불린다.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런 사연이 사람들이 걸치고 살아가는 인생의 쇠사슬일 것이다.설리는 아들이 돌이 되기 전에 집을 나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 트라우마로 아버지 노릇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설리에게도 추수감사절은 매년 돌아온다. 팁탑 건설회사 사장 칼은 추수감사절에도 설리에게 일을 시킨다. 설리가 일당을 두 배로 달라고 하자 추수감사절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라며 칼은 설리의 요구를 무시한다. 슬프게도 칼의 말처럼 명절은 정상적인 사람들, 정상적인 직업과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현실이다.영화가 만들어진 지 25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 사정은 변함이 없다. 정규직이 아니거나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모욕의 시간이다. 부모나 배우자, 자녀 등 가족 구성원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명절은 외로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설리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베릴 여사는 재산은 있지만 그녀만의 인생의 쇠사슬이 있다. 선생님의 아들은 엄마의 재산에만 관심을 두었고, 결국 업자에게 속아 사기를 크게 당하고 마을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직업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가족의 모습도 다양해지고 있다. 누구나 정규직을 가질 수도 없고 모든 가정이 정상 가족일 수도 없다. 어쩌면 정상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를 정상이냐 아니냐로 구분하기보다는 그들이 짊어진 쇠사슬 무게가 더 중요하다.설리는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에는 무책임하고 무능했지만, 지능이 모자란 러브를 끝까지 챙기며 영원한 친구임을 약속하고, 치매 노인을 돕는 등 이웃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담임선생님 역시 설리의 트라우마 치유에 도움을 주고 마침내 설리는 자신이 짊어진 인생의 쇠사슬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것을 왜 선택하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팁탑 사장 칼은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 그의 아내 토비가 설리에게 칼이 왜 그렇게 바람을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설리는 자신이 하는 절반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삶이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뿐이다.해마다 명절이 돌아올 때면 혼자 지낼 누군가가 생각난다. 그 사람 역시 자기 인생의 쇠사슬을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웃에게는 무한정 친절했던 설리처럼, 끝까지 제자를 믿었던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연민과 사랑을 품고 있다면 그 쇠사슬의 무게는 가벼워질 것이다.

2020-09-28

코로나 시대에 행복해지는 법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코로나가 발생한 지 8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끝나리라는 희망을 갖기가 어렵다. 전염력이 강한 데다 그야말로 글로벌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피할 곳도 없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일수록 행복 찾기는 더욱 절실하다. 여기저기서 심리적 적응을 위해 자구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심리적 자구책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한국인의 행복지수와 관련해서 장기 연구가 있다고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 팀은 2017년부터 매일 한국인의 행복도를 설문지로 조사하고 있는데, 올해도 이 연구가 계속되어 1월부터 6월까지 60만 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특히 이 조사를 통해 코로나 확진자 수 변화와 설문참가자들의 행복도 사이에 상관관계를 성별, 나이, 경제 수준, 성격 등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여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여자들의 행복도가 언제나 남자보다 낮고, 두 번째는 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의 행복도가 경제 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낮았다. 마지막으로 나이 든 사람들의 행복도가 젊은이보다 높았다.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 여성의 행복도가 낮은 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결과지만, 50대 이상의 행복도가 젊은이보다 높고 변화폭이 적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다. 연구 팀이 분석하기로는, 나이가 들면 반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쁜 일에 대한 충격도 그만큼 적은 데다가 나이 든 사람들은 평소에도 거리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격리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나 그에 따른 우울감이 적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참고할 것은 행복의 의미다. 행복에는 삶의 만족도, 긍정적 정서, 삶에 대한 의미 경험 등의 요소가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만족도나 긍정 정서는 하락했지만, 삶에 대한 의미 경험은 상승했다고 한다. 부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는 중에도 삶에 대한 성찰력은 높아졌다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성찰력이 젊은이보다 높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나이 든 사람의 행복도가 높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결과가 있다고 해서 나이 든 사람의 행복 찾기 방식을 모델로 삼기는 어렵다. 이것은 나이듦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데다, 무엇보다 외부 변화에 반응력이 낮은 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기 어렵고, 평소 대인 관계에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행복도가 낮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자영업의 휴업이 잇따르고 고용도 불안정하니 한창 일할 젊은이들의 행복도가 낮고, 특히나 여성들은 언제나 낮다. 이 결과를 보면,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물리적 조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말을 줄이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거나, 내 방도 여행하고 몸과 마음을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행복을 찾을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들의 현명한 대처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2020-09-14

내 방 여행을 꿈꾸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한 달 전쯤 금, 토, 일에 걸쳐 48시간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48시간의 중간쯤인 토요일 오후, 집을 나섰다. 이웃 동네에 있는 카페 겸 작은 책방으로 향했다.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책방은 대형 서점에 비해 책 종류는 많지 않지만 대형 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책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에세이였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다. 18세기 중반에 태어난 작가는 법으로 금지한 결투를 했다가 42일간 가택 연금형을 받았는데, 그 기간에 자기 방을 여행하기로 한다. 작가는 내 방 여행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며 그래서 부자들도 환호할 만한 여행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문장도 재치있고 흐름도 경쾌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 몇 년간 수천 권을 처분하고 나니 책 사는 것에 매우 신중해졌는데, 이 책은 덥석 샀다.내 방 여행은 여행길을 미리 정해놓지 않아도 된다면서 작가는 상념을 좇아간다. 탁자에서 벽에 걸린 그림으로, 문 쪽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가 침대로 간다.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흉상도 관찰 대상이다. 눈길이 가는 그림을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그 물건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기도 한다. 때로는 인간은 영혼과 동물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라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두 요소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한다.이 책을 읽노라니 내 방을 여행하고 싶어졌다. 지난주부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작은 책방 나들이마저도 꺼려지는 있는 지금은 절반은 가택 연금 상태다. 넷플릭스라는 흥미진진한 오락거리도 있지만 내 방 여행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내 방을 둘러본다. 내 방에도 그림이 걸려있다. 명화는 아니고 8년 전에 직접 그린 유화다. 책상에는 멋진 조각상 대신 버리려다 고쳐서 쓰는 오래된 노트북이 충전을 기다리고 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한 칸씩 탐색해갈 수도 있겠다. 서가를 여행하는 것은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던 메스트르의 말처럼, 책에는 정말 무수한 사연이 있다.내친김에 내 마음 여행도 좋겠다. 내 마음 어딘가에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이 엎드려 있을 것이다. 내 몸 여행도 좋겠다.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냄새 맡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나 시간이 드는 일이다.혼자 있으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흥밋거리를 찾아 밖을 헤맨다. 괜한 상념에 두렵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방도 여행하고, 내 마음도 여행하고, 내 몸도 여행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몰라보게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없다면,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도 좋겠다. 48시간, 24시간이 어려우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아니 하루 15분이라도 내 방과 몸과 마음을 여행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뜻밖의 재미를 발견하게 될 것만 같다.

2020-08-31

외로울 때는 시 쓰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며칠 전 대학원 은사님께서 시집을 보내오셨다. 세 번째 시집이다. 3년 전 첫 시집을 받았을 때는 참 낯설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한평생을 학술 논문만 쓰신 분이 갑자기 시집이라니, 평소 이미지와 조화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앞뒤 표지를 훑어보고 나서 첫 장을 들추니, ‘매화 한 그루’라는 시가 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매화를 찬양하는 시겠거니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난초 한 촉 간수 못하는 / 손길로야 널 어찌 / 보듬겠냐마는 // 벌 나비 올 때까지만이라도 / 나 네 곁에 있어 주면 / 어떨까’얼핏 보면 매화 옆에 있고 싶은 것이 매화를 위한 것인 듯하지만, 사실은 매화가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후기를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인과 고독은 동의어처럼 보인다.’정년 퇴임하신 지 20여 년이 지난 데다 몇 년 전 상처하시고 자제들은 모두 분가하였으니 아무리 철학으로 중무장했다 한들 외로움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셨나 보다.‘반가사유상’에서 ‘윤회의 굴레 벗고 / 해탈의 경지로 / 비상하기까지 // 밤하늘의 적막 속 / 외로움 삼키고 빛 뿜는 / 샛별만이 단짝일 듯’이라며 부처님조차도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니 말이다.시를 읽다 보니,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그리움에 힘들어하시다 93세에 생애 처음으로 ‘思婦曲’(아내를 그리는 노래)이라는 시를 쓰셨다.‘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더라도 /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산 것보다 좋다 // 그것은 / 발로 밟아도 지워지지 않는 공룡 발자국 같은 /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 누군가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며 사는 것도 좋다 // 당신이 떠나기 20일 전 나를 불러 당신이 먼저 죽소 / 그 한 마디는 내 심금을 울렸소.’라시며 어머니를 그리워하셨다.시와는 인연이 먼 나 역시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저절로 시가 써졌다. 천성이 무뚝뚝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데다 외롭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사랑한다는 말에는 더더욱 오글거리는 성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인간의 조건 앞에서 말문이 터졌나 보다.그 당시 한시를 배우며 이런 시를 썼다. ‘送君’(당신을 보내고)이다. ‘歲晩愁雲滿江城 (세만수운만강성) 세밑에 구름 같은 근심은 강성에 가득한데 // 送君塵外夢難成 (송군진외몽난성) 당신을 다른 세상에 보낸 후 꿈에서도 만날 수 없네.’은사님 시집을 읽다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 선배는 현직 교수인데다 워커홀릭 기질이 다분하여 엄청 바쁜 줄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선생님 시집을 받았는데 같이 만날까요? 선배는 흔쾌히 약속을 잡는다. 시집 받은 지 세 시간 만에 세 사람이 몇 년만에 만나게 되었다.시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니 외로울 땐 시를 쓰자.

2020-08-17

걱정 마세요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혈압약을 받기 위해 동네 의원에 한 달에 한 번 가기 시작한 지 반 년이 다 되어가던 때 이야기다.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가 이번 주는 원장님이 부재중이라며 대진 의사가 진료한다고 한다. 원장님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어쩌나 잠시 망설이며 서 있노라니 막 진료를 마치고 나온 아주머니가 한마디 한다. “엄청 좋아요. 저는 어제도 오고 오늘도 왔어요. 원장님보다 좋아요. 아이구, 참,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며 입을 가린다. 원장님은 남자 의사인데 평소 설명이 짧은 편이라 비교가 된 모양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는 웃으며, “딸 같으신가 봐요.” 둘러대 준다.진료실에 들어가 앉는다. 혈압을 잰다. 120/75 괜찮다. 망설이다 말을 꺼낸다. “2주 전에 지어간 수면제가 첫날부터 몸이 따갑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4일 만에 끊었어요.” 그러자 의사가 말한다.“어떤 증상이라도 약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도 불면증이 있을 때 여러 약을 처방받았는데 다 안 듣고 지금 따가웠다는 그 약이 제게 잘 들었어요. 안 들으면 다른 약으로 바꾸거나 분량을 반 알로 줄여볼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내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그 말을 듣자 갑자기 무언가가 가슴에서 물컹 솟아오른다. 사실 이 말 하기가 망설여졌던 이유는 원장님이 처방을 잘못해줬다는 불만을 다른 의사에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듣다 보니, 그 약이 안 들으면 내게 맞는 약은 없는 건가 하는 불안이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개처럼 두 가지 깨달음이 온다. 그 하나는, 생각은 기저에 있는 실제 감정을 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 수준에서는 의사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이었지만, 감정은 건강이 많이 나빠졌을 때 약들이 듣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번잡한 생각의 노예가 되어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감정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자.다른 발견은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라도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런데도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은 좁은 시야에 갇혀 한 가지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좁게 생각하는 것을 터널 비전이라고 한다. 대부분 과거의 틀에 지배당할 때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다. 과거 경험이나 사고 틀을 인식할 수 있다면 해결 방법 찾기가 쉬워진다. 이렇게 딸 같은 대진 의사의 한 마디에 여러 가지 통찰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이런 인사를 건네고 싶다. 걱정 마세요. 방법은 많아요.후일담, 대진 의사 에피소드를 자주 가는 한의원의 원장님에게 말했다. “남자 의사들 어떡해요? 여의사가 더 능력 있나 봐요.” “아니에요. 남자 의사들의 무뚝뚝함과 지시적 표현을 카리스마 있다고 안심하며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이코, 또 걸렸구나, 내 경험을 전부로 생각하다니, 발견과 성장에는 끝이 없다.

2020-08-03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당나라 때 문인 한유는 율량 현위로 떠나는 지인 맹동야를 전송하는 글 ‘송맹동야서’에서 ‘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고 했다. 이 글에서 한유는 초목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쇠나 돌은 두드리면 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 원래의 평정한 상태가 깨졌기 때문이라면서, 사람이 말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것도 마음이 평정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올해 여름은 유난히 소리를 내고 싶을 정도로 흔들리는 일이 많다. 큰 사건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이다. 김종철 선생님은 삶의 기준을 찾지 못해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 분이다. 1991년 어느 날 신문에서 김종철 선생님이 쓴 칼럼을 보고 녹색평론을 구독하면서 이웃과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만들고 한살림 생협 활동까지 시작했다.박원순 서울시장은 개인적 인연은 없으나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숙제를 안겨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죽음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죽음을 둘러싸고 사회 구성원들의 거친 소리에 마음이 더 흔들린다.자연물은 흔들리는 대로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는 그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때로는 애써 소리 내지 않기도 한다. 김종철 선생님의 죽음에는 지금 나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는 감정의 과잉 때문에 소리 내기가 어렵다. 평정을 잃고 내는 소리가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SNS에 쓰는 글들은 즉흥적이어서 특히 그렇다. 발끈해서 쓴 내 글 역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지우기도 한다.한유는 음악이란 마음이 답답할 때 소리 잘 내는 재료로 내는 소리이며, 아름다운 문장이란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미학적 의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정성, 도덕성, 책임감, 시의성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내 글이 고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소리를 낼 바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 좋겠다. 문제는,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장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인기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한유 역시 아름다운 글은 인기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하면서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싫어하는 문장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순환론에 빠진다. 선하다는 기준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똑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수백 수천 년 이어지는 고전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다.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 그러나 사람은 평정을 잃었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마음을 심하게 흔드는 큰일일수록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다. 아름다운 소리만이 평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7-20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가벼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최근 어느 시민 단체에서 구청의 부조리를 비판한 성명서를 보며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났다. 며칠 전에는 양심을 찾으라고 모 재벌 총수를 비판하는 어느 종교 단체의 성명서가 훈장님 훈계처럼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그러면서도 이런 분개는 비겁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몰려온다. 그러노라니 문득 김수영의 시가 떠오른다. 김수영은 그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에는 아무 말 못하고 기름덩어리 갈비탕에만 분개하는 자신이 옹졸하다며 작디작은 자신을 자책했다.구청의 부조리나 재벌의 편법에 얼마나 분개했나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지금의 분노는 김수영이 옹졸하다고 했던 그 감정과 비슷하다. 큰일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것을 비판하는 성명서는 오만한 훈계라며 분개하다니, 옹졸하고 비겁하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름덩어리 갈비에 분개하는 것은 왜 떳떳한지 못한지, 성명서를 비판하는 것은 왜 정당하지 못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은 그저 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데로 생각이 미친다.화와 분노는 다르다. 틱 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에서 강조했듯이 화는 조절해야 할 감정인데 비해, ‘분노하라’,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분노는 일으켜야 할 감정이다. 화는 정당하지 못하고 미숙한 감정이고, 분노는 정당하고 성숙한 감정이다. 성명서를 보며 일어나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화라서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그런데 문제는 김수영의 옹졸한 분개나 요즘 일어나는 감정이 화인지 분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도 부당하지만 기름덩어리 갈비탕을 주는 음식점 주인도 옳지는 않다. 구청이나 재벌에게 문제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시민 단체나 종교 단체도 잘못할 수 있다.그렇다면 화와 분노를 잘못한 대상이 작으냐 크냐로 구분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노는 적절한 감정이고 화는 부적절한 감정이라면, 잘못한 대상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느냐로 옹졸한지 아닌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표현했느냐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중용’에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절도에 맞게 표현되는 것이 조화”라는 말이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 자체는 잘잘못이 없다. 절도에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권력의 부당함에 분개하더라도 적절함을 넘어서면 좋은 비판이 되기 어렵다. 작은 일에 분개하더라도 적절하게 분개한다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김수영은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는 일이 작다고 한탄했지만, 그런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작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는 분노해야 할 일이다. 분노의 대상이 크냐 작으냐보다 그 분노가 적절한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적절하게 분노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떳떳하고 용기 있는 일이다.

2020-07-06

에브리맨으로 살아가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요즘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대통령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연예인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주목받는 사람들이니, 예나 이제나 특별해지고 싶은 소망은 변함없는 듯하다. 오죽하면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까지 있을까.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도 사그라진다. 이제 흔해빠진 평범한 삶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작가 필립 로스는 그의 소설 ‘에브리맨’에서 그런 흔해빠진 인물을 그려낸다.‘에브리맨’의 주인공 그웬은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나이 들어서는 병원에 자주 다니는 남자다. 그러나 세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생활을 책임져야 해서 직장에 다니며 꿈을 미룬다. 생애 마지막 7년 동안은 매년 병원에 입원하다가 결국 수술실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무슨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그웬의 삶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다. 이런 상황과 감정들은 누구나 겪을 법한 것들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이런 삶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것, 흔해빠진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흔해빠진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고 각인된다고 한다.그웬은 세 여자와 이혼하면서 가족들에게 상처는 많이 주었지만, 이혼 후 양육비는 꼬박꼬박 보낸다. 늙어서는 딸 낸시의 쌍둥이를 돌봐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기 집 근처로 이사 오기를 바라는 소심한 사람이다. 은퇴 후 그토록 원하던 이젤 앞에 섰을 때는 눈물을 흘릴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많다. 주 1회 그림 교실을 열어 같이 늙어가는 이웃과 교류한다. 이런 일들은 정말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평범한 일들이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냥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죽음 역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웬은 큰 수술을 앞두고 가족 공동무덤에 찾아가 무덤 파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남자는 무덤 파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침대를 놓아도 될 만큼 평평하게 해야 하고,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멋있어 보여야 한단다. 그웬은 나이 든 사람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이 말이 그웬에게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자책하고 실망한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위인전을 읽으며 모름지기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겨야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가끔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열정이 있고, 선택이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라는 말이 있다. 부귀영화만이 삶의 의미는 아니다. 평범함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만들고 확인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0-06-22

선택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앞자리에 6자를 달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때 무엇을 선택하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고3 가을에 문과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대학원 때 전공을 바꾼 것, 논문 쓰기보다 생협 활동에 더 열을 올린 일들이 꼬리를 문다.되돌아보면, 그 전환들은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조건에 떠밀려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결정과 선택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의 주인공 니모도 자신의 지난날이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영화의 설정은 매우 특이하다. 니모는 6개의 시간 차원으로 이루어진 평행 우주를 경험한다. 평행우주는 니모가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한 우주에서는 엄마를 따라가고, 다른 우주에서는 아빠 곁에 남는다. 각각의 우주마다 결혼하는 여자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러나 니모가 자신을 ‘노바디’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우주에서도 행복하지는 않다. 니모는 사고로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꿈에서 깨는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간다. 그런 이동은 니모의 삶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영화는 상당히 극적인 설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결정이 선택이 아닐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믿음의 배신’에서 저자 마이클 맥과이어는 메뉴를 고르고 여행지를 선택하고 자유의지로 선택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기억이나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극을 고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니모가 안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그동안 니모는 사고나 꿈 깨기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이동했지만, 2092년 117세의 니모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세포재생술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니모는 부모님이 이혼하던 9살로 다시 돌아가서 엄마와 아빠의 요구를 거부하고 제3의 길로 달려간다. 니모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죽음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렇다고 이후 펼쳐질 니모의 삶이 장밋빛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니모가 지난 여러 번의 삶보다 행복할 가능성은 더 많다. 무엇보다 니모는 자신을 더 이상 ‘노바디’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은 확실하다.한 연구에 의하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감정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왜’를 질문하라고 한다. ‘왜’를 질문하다 보면,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 안의 비합리적 믿음을 발견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3 가을이 다시 떠오른다. 왜 문과여야 하는지 조금 더 질문했더라면 그것이 결정인지 선택인지 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찾아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싶지 않다면, ‘왜’라는 질문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202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