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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시정부 100주년… ‘분열’을 끝내자

윤희정 문화부장1920~3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의 선조들은 하나로 뭉쳐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었다. 각자의 생각과 이념에 따라 중국 대륙에서 따로 활동하던 독립군 상당수는 100여 년 전 대한민국임시정부(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중심으로 ‘일제 타도’라는 한 깃발 아래 한마음 한뜻을 모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이념전쟁’ 중이다. 진보-보수로 나뉘어 태극기-촛불 집회로 국민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20세기 전반기 한민족은 35년에 걸친 긴 일제식민지지배와 3년 동안의 미 군정 시기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스스로 운명을 헤쳐나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임시정부는 그 대표적인 역사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민족의 대표기구이자 독립운동 중심기관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일제가 패망하는 1945년 8월까지 27년여 동안 부여된 책임과 소임을 수행했다. 임시정부의 민족국가 수립 방안은 1919년 4월 11일 제정된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에 담겨 있다. 임시헌장 제1조에 제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는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바뀌는 역사적인 대전환이었다. 독립쟁취 이후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는 대원칙이 천명된 것이었다.일제 강점기 경북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내외에서 일제에 맞서 독립투쟁을 펼쳤다. 독립 열망의 뜨거운 중심에 경북의 민초들이 있었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따르면 임시정부에 참여한 경북인이 120명이 넘는다. 이들이 대한민국 탄생과 정부수립에 크게 기여했음은 자명하다.김동삼·남형우는 첫 임시의정원 회의(1919년 4월10∼11일)부터 함께했다. 같은 해 9월17일까지 열린 제2∼6회 의정원 회의에도 김동삼·김응섭, 김창숙, 김정묵, 손진형 등이 참여했다. 경북인은 임시정부 국내 연락 행정망인 연통제·교통국과 연계해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임시정부 자금지원 활동을 했다. 임시정부 활동이 약화한 시기에는 김동삼이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활약했고, 안동 임청각 주인 이상룡 형제들은 전 재산을 처분한 뒤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군관학교 건립 자금을 충당했다. 이상룡은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으로 임시정부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1940년 긴 장정 끝에 중경에 도착한 임시정부는 좌우세력을 한데 묶어 통합정부를 꾸렸다. 이 시기 권준, 김상덕, 류림 등이 정부와 의정원에서 활약했다. 3·1 만세운동 때는 경북 여성들도 큰 역할을 했다. 남자현, 김락, 임봉선, 김정희, 윤악이, 신분금 등이 3·1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발한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국민이 석 달간 담배를 끊어 모은 돈으로 일본에 진 국채 1천300만 원을 갚고 독립을 이룩하자는 운동이었다. 여성들은 한 끼에 한 숟가락씩 쌀을 모아 빚을 갚았다. 여러 독립운동가가 나고 자란 대구는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렸다. 시민들은 대구의 독립운동가로 이상정, 이육사, 이시영 등을 많이 떠올린다. 이들 외에도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대구 곳곳에 존재한다.선조들이 술선수범한 불굴의 저항정신과 의리, 혼을 오롯이 제대로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자유와 행복 그리고 풍요로움이 가득한, 지속 가능한 나라를 자자손손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갈린 좌-우파 대결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계기로 첨예한 이념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극심한 이념 분쟁과 반목이 혼재하는 나라가 이렇게 계속돼선 안 된다. 진정한 광복과 부끄럽지 않은 독립을 추구해야 할 때다.

2019-04-14

대구·경북을 노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총선을 1년여 앞두고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대구·경북으로 몰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김현권 의원과 자유한국당 강효상·김규환·임이자 의원 등이 주인공이다.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의 잇따른 대구·경북행을 보노라면 무주공산인 지역구 쟁탈전이라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국회는 철저히 지역구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여야 가릴 것 없이 비례대표 출신 국회의원은 항상 재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원했고 여야 각 당은 당내 가장 험지를 이들에게 배당하고 정치력과 생존력을 시험해 왔다. 이같은 혹독한 경쟁을 통해 국회의원의 지역구 관리의 어려움과 당원 및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후 지역민의 선택을 받아 다선으로 가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물론 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여당의 무덤인 경북지역인데다 한국당 경북도당 위원장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북지역 유일한 민주당 단체장이 당선된 지역을 택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꼭 험지라고 우기기는 좀 그렇다. 결국, 자신이 터전으로 생각했던 상주보다는 당선 안정권에 가까운 구미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당 강효상 의원도 3선의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이 버티는 지역구에서 표밭갈이를 하고 있어 험지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국당 당세가 강한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험지로 분류될 지역은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다.한국당 김규환 의원이 노리는 지역구 역시 4선에다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버티고 있다. 과거 당협위원장이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등 당으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에 대구에서 가장 선거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도 이같은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을 터이고 과거 근무한 기업이 있다는 점과 무시못할 한국당 지지세를 볼 때 험지라고 보기엔 설득력이 약하다.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경기도 안산과 상주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당 지지세가 높은 경북지역을 선택했으니 이 역시 당선 안정권을 먼저 고려한 선택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일 경북이 당 지지세가 높지 않은 험지였다면 오히려 경기도에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최근 대구·경북행을 선택한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른바 ‘서울TK’로 통하는 인사들이다. 출신만 대구·경북이지 서울에서 활동해온 사람들이다.대구·경북지역은 그동안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어김없이 이른바 서울TK 출신 인사들이 낙향해 지역 발전과 경제회복에 앞장서겠다는 포효를 관례처럼 들어왔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대구·경북 지역을 선호하는 것도 이같은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지역민의 대구·경북출신 서울인사들에 대한 호감도는 그동안 여러차례 선거를 통해 지역보다는 자신이 터전인 이른바 서울과 수도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정서상 차이로 인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더이상 지역을 거론하면서 표를 달라는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웅변하는 예고편인 셈이다.이같은 분위기임에도 정치권에서 지역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에게 ‘고향 앞으로’를 부추기는 최근의 모습은 서울TK 인사를 위한 또다른 출정식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다른 지역 의원들에 비해 조금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대구·경북 시도민의 서울 TK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상황에서 오는 총선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성지가 될지를 지켜보자.

2019-04-09

문 정부 인사 검증 제대로 했나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지난주 친한 선배 사무실을 들러 TV를 켜고 인사청문회를 보려고 하니 그 형님이 대뜸 “짜증나게 그딴거는 뭐할려고 보냐. 이번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 등 구린 냄새 풀풀 풍기는 인물들 뿐이다. 사람이 그렇게도 없냐”고 혀를 찼다.나라를 이끌어갈 정책결정자를 뽑는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이런 이유는 뭘까? 이는 보수나 진보나 정권을 잡고 나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미국은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에 상원 본회의에서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의 인준이 거부된 경우는 6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 인사 참모들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후보자를 압축해 보고 대통령이 승인하면 국세청과 연방수사국(FBI) 등이 청문회에 앞서 3~4개월간 신상을 검증한다.후보자는 물론 부모, 배우자의 부모, 형제의 전과 기록, 납세기록 등 과거 자료와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후보자에 대해 싸그리 파헤친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들여다보면 후보자 면면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각종 불·탈법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이렇게도 허술한 것인지, 아니면 인사검증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인지 의심도 든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문성혁 해양수산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 대부분의 후보들은 위장전입, 병역기피,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등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7대 인사배제원칙에 걸린다.집값을 잡아야 할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 잠실 아파트와 경기 분당 아파트, 세종시 펜트하우스로 20억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의혹이 나왔다. 장관 지명에 이르러서는 월세 인생으로 급회전하는 꼼수를 부렸다.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이 고급외제차에 월세 240만 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등 ‘황제유학’ 생활을 하고 외유성 출장 등 각종 의혹에 모르쇠로 버티자 여당측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해외 소득신고를 누락시키고 남편과 아들 관련 자료는 개인정보보호 등 이유로 못 낸다고 하는 등 청문회 자료제출을 거부한데 이어 2013년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과 식사했다며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신고해놓고, 당시 지역구 주민과 먹었던 점 등 의혹이 불거졌다.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은 ‘우발적 사건’이다.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은 통과 의례였다”라며 이념과 대북관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등 7명의 장관 후보자 대부분이 결격사유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발표 24일 만인 지난달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조 후보는 거짓말을 해서 확인을 못했고, 최 후보는 국민 눈 높이에 맞지 않아 사퇴했다며 부실 인사 검증 문책 여론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줬다. 오히려 국민 눈높이에 맞춰 ‘7대 인사 배제 기준’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1기 내각과 마찬가지로 인사를 강행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인사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팽배해질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7대 인사배제원칙을 지키지 못한 청와대 인사라인은 이번 인사청문회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내 편에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9-04-02

로봇과 잉여인간

이창훈 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로봇산업육성 전략보고회’가 열린 대구 달성군 현대로보틱스에서 로봇을 이용한 작업을 시연했다. 문 대통령은 모니터를 통해 음료를 주문하면 직접 만들어 주는 바리스타 로봇이 만든 커피를 직접 맛보더니 맛이 좋다며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큰 관심을 표시했다.우리나라는 제조업 종사자 1만명 당 로봇 활용 대수가 710대로 세계 평균 85대에 비해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등 로봇강국이다. 향후 제조로봇은 2018년 32만대에서 2023년 70만대로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획기적으로 증가된다. 지금도 웬만한 제조공장, 특히 자동차 분야의 경우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이 인류의 역사를 그만큼 풍요롭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러한 산업의 발전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로봇이 사회 전분야로 확산되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즉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만큼, 인간은 설 자리를 뺏긴다. 남아도는, 필요없는 인간이라는 잉여인간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현실에 존재하는 필요인간과 경쟁이 불가피한 생존게임이 곧바로 눈앞에 닥쳐온 만큼 이에대한 대비 또한 필요해 보인다.최근 스웨덴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됐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뒤따를 전망이다. 스웨덴에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초유의 일자리가 생긴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정반대로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 휴대폰 게임을 하든, 잠을 자든, 사무실을 벗어나도 상관없다. 휴가도 보장되고 종신직이다. 단 하나의 조건은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이 위협받는 시대, ‘잉여 인간 실험’이 나왔다.스웨덴 정부는 2026년 완공되는 남서부 도시 구텐베르크 코슈배겐역(驛)에서 이런 조건으로 일할 직원 1명을 뽑을 예정이다. 완공 1년 전인 2025년 전 세계 사람 중에서 공모를 받아 선발할 예정이다. 이 사람은 출근해서 사무실 스위치를 올려 승강장의 형광등이 깜박이도록 하는 것으로 자신의 출근 사실을 알리면 된다. 저녁이 되면 사무실 스위치를 내려 다시 한 번 승강장 형광등을 깜빡이게 한 뒤 퇴근하면 된다.‘영원한 고용’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코슈배겐역 디자인 공모에 뽑힌 이들의 아이디어다. 디자이너는 자신들이 설계한 역사(驛舍)에 ‘잉여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을 주요 콘셉트로 공모작을 내 당선됐다. 공모전 상금 700만코로나(약 8억4천만원)로 재단을 만들어, 잉여 근로자 한 사람의 월급 2천320달러(약 264만원)를 지급할 계획이다. 120년 정도 후 돈이 다 떨어지면 이 프로젝트는 마무리된다.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왜 시작됐을까. 이들은 “대규모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 모두가 생산성의 측면에서 쓸모없어질 것이란 위협이 임박했다”며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경제 성장과 진보라는 현대성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썼다.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본다. 현재 빠르게 산업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 듣도보도 못한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의 발전으로 산업판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그리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산업화의 발달과 함께 대량해고와 실업으로 인간의 삶 또한 파괴되는 것을 무수히 봐오지 않았던가. 급속한 산업화의 시대에 인간의 휴머니즘도 동시에 감안하는 균형잡힌 발달을 기대하면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 인간이 잉여인간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9-03-26

뉴질랜드 청년은 여행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홍성식 특집기획부장5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 다친 사람 중에도 중상자가 적지 않다니 희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의 ‘엇나간 순혈주의’와 ‘이주민에 대한 편견’ 탓이다.스물여덟 살 뉴질랜드 청년 브렌턴 태런트는 인종과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댔다. 평화로운 마을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성당에서였다. 피와 살점이 튀고 비명이 울렸다. 그 장면이 SNS로 생중계됐다.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비극에 세계가 통탄하고 있다.그럼에도 태런트는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변호사까지 해임하고 스스로 제 행위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다퉈보겠다며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진정한 성인은 세상 어떤 곳도 고향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진술은 타의에 의해 강제된 고통과 수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낭만적 세계 해석’이 아닐까. 다수의 인간에게 고향이란 돌아가고 싶은 이상향에 다름없다.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향에서의 삶을 포기한다. 무엇 때문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엔 먹고살기 힘들어서다.익숙한 이웃과 소통 가능한 언어 곁을 떠나 다른 나라, 낯선 공간에서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삶을 이어가는 ‘이민자’는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그들의 종교가 비단 이슬람교만은 아니다. 불교도와 기독교도, 힌두교도 또한 뉴질랜드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그 나라 원주민과 섞여 살아가는 게 2019년 오늘. 그렇기에 ‘더불어 사는 다문화주의’란 지역을 불문하는 21세기의 미덕이 되고 있다.죄 없는 이민자들에게 총구를 겨눈 태런트가 북한과 터키, 파키스탄과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는 내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가 한국을 지목해 “단일민족 국가는 다문화를 배격함으로써 지배적 국가로 성장했다”고 말했단다.그 조악한 견강부회(牽5F37附會)에 끌탕이 나온다. 결혼과 구직, 학업과 사업 등의 이유를 가지고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이 이미 200만 명에 가깝다. 이들은 한국인과 똑같이 납세 의무를 지키고 있고, 한국인과 결혼이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앞으로 국방의 의무까지 이행할 게 분명하다.한국인이 꺼려하는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이주민 수십만 명까지 언급할 것도 없다. 한국은 이제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단일민족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그는 이 사실을 몰랐다.비단 태런트의 테러가 발생한 뉴질랜드만이 아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민자 혐오 범죄’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복지와 인권 보호가 최고라는 서유럽. 목숨을 위협하는 정치적 박해와 허리가 꺾어지는 가난을 피해 거기로 옮겨온 이주민들. 저임금으로 일하며 차별까지 받았던 아프리카와 중동 이주민의 일상이 위협받는 건 심각한 문제다.이주민들이 오로지 자신의 뜻만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국가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것일까? 과거 유럽이 식민통치의 편의성과 이윤 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제3세계에서 행한 민족분열책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이주의 이유 중 하나는 아닐까?여행은 삶의 스승이다. 여행을 좋아했다는 태런트가 위고의 진술을 뒤집어 “기쁨과 고통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면 지구 위 모든 나라가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 딱하다. 인종과 종교, 태어난 국가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증오하는 청맹과니의 총질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모두에게 위험한 별이 될 것이다.

2019-03-19

집단 따돌림 범죄

정철화 편집부국장새학기가 시작됐다. 학교마다 학교폭력 문제로 바짝 긴장하는 시기이다. 특히 집단따돌림(왕따)은 피해 학생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해 정부가 나서 예방대책을 강구한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구와 경북이 처해 있는 현실이 왕따당하는 학생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학교내 짱(?)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패거리들에게 돈과 옷, 신발 등을 빼앗기는 일은 다반사고 실컷 두들겨 맞고 다니는 왕따 학생과 흡사하다. 대구와 경북은 보수정당의 심장 역할을 해오고 있다. 보수의 적통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을 지탱해주는 근거지이다.한국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참패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권력은 독식하는 속성이 있다. 차지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더욱 혹독해지고 더욱이 권력에 도전하는 정적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응징하는 속성이 있다.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 한국당은 최대의 정적이고, 근거지인 대구 경북 또한 응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국가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면 정부부처와 정부투자기관, 정부 출자기관의 인사권과 국가주요 정책 결정 및 예산권 등의 전리품을 얻는다. 정부와 여당은 전리품 배분권이란 권력의 칼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를 수 있다. 문제는 그 칼끝이 유독 대구 경북지역을 표적으로 겨누고 있는 것같아 우려스럽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 인사가 단행됐지만 문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됐던 1기 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대구 경북지역 출신 인사들은 왕따였다.예산 배분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이미 올해 국비예산 편성에서 대구 경북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전년대비 삭감예산의 수모를 당했다.지난달 발표한 정부 예타면제 사업 선정에서도 경북도가 1순위로 요청했던 동해안고속도로(영일만대교건설) 건설 사업은 역시나 없었다. 대신 2순위였던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사업이 단선전철화사업으로 대폭 축소된 사업비 4천억원을 반영한 것이 고작이었다. 다른 광역단체들에게는 평균 2조원대의 사업이 선정된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수준이다.경북의 중요한 경제동력이 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은 탈원전정책으로 무력화됐고, 국내 최대 원전력발전소가 집중된 경북에 당연히 건설될 것으로 여겨졌던 원전해체연구소의 경주 유치도 불투명해졌다. 울산과 부산 접경지역에 건설하겠다는 정부방침이 섰다는 소문이다. 또한 사업안이 확정되다시피해 있는 통합대구공항 이전도 불안하다.부산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통해 통합대구공항 이전사업을 백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4대강 사업도 표적이 되고 있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경북내륙권 주민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는 낙동강 보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대구 경북은 이처럼 학교 짱과 그 무리들에게 두들겨 맞고 다니지만, 말리거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더욱이 보호자인 자유한국당은 가해자를 찾아가 항의하고 다시는 때리지 못하도록 대응을 해야하지만 그럴만한 힘이 없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힘있는 보호자 덕분에 놀림을 당할 지언정 최소한 돈을 뺏기고 두들겨 맞지는 않았다. 힘없는 보호자 밑에 사는 대구 경북의 왕따 수모는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정부의 집권여당의 노골적인 대구 경북 왕따시키기 행태도 정의롭지 못하다.가진 힘을 과시하며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뒷골목 불량배들이나 하는 비겁한 행동이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군자의 덕목이라고 했다.

2019-03-12

포항스틸러스, 시민구단으로 거듭나야

나영조 편집국 부국장“포항스틸러스는 시민구단이 아니다”스틸러스 경기가 열리는 포항스틸야드를 자주 찾는 열성팬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지가 꽤 됐다. 축구인이기도 한 필자가 지나가는 소리로 흘려듣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스틸러스 구단의 현실을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1에는 포항스틸러스 등 모두 12개팀이 참가하고 있다. 스틸러스는 오랫동안 명문구단으로 평가받아 왔다. 언제부터인가 성적도 그렇지만 구단 운영행태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급기야 포항시민들이 포항스틸러스를 외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스틸야드를 찾은 관중 수가 2016년 14만5천937명, 2017년 15만9천100명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4만668명으로 줄었다. “그럴수도 있지”라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포항구단을 아끼는 한 축구인은 “포스코 저들만의 잔치에 들러리를 서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말에서 내막을 엿볼 수 있다.“포항스틸러스는 시민구단이 아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전의 포항스틸러스는 완벽한 시민구단이었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눈물도 포항시민들과 함께 한 것으로 기억된다. 포스코 출신 사장과 시민대표 단장이 포항시민들과 한마음이 돼 명문구단을 탄생시켰다.지금의 포항스틸러스는 분명 포스코 기업구단이다. 포항시민들이 왜 스틸러스를 외면하는지, 스틸러스가 시민들을 어떻게 무시하는지 세세하게 늘어놓기는 그렇지만 구단 운영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팬들의 가장 큰 불만이 최근 떨어진 성적보다도 팬들을 외면하는 구단운영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따가운 지적은 ‘축구를 모르는 축구단 책임자’란 소리다.포항스틸러스가 기업축구단을 계속 고집한다면 포항시민들이 애정을 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기업이익만 고려해 구단을 운영한다면 창단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포항스틸러스의 존재 이유는 포항시민들과 함께 함에 있다. 시민들에게 활력과 희망을 안겨주는 에너지원이 돼야 한다. 기업윤리면에서 봐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되고, 사회 환원의 기본을 실행해야 한다. 유소년 축구단 지원도 점차 줄여오다가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 지역민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친목을 도모한지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권위의식에 젖어있는 스틸러스의 나홀로 행보는 팀의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2013년 이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이 없다. 올 시즌 개막전 패배도 불통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포항스틸러스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구단 책임자들의 축구관이 문제라고 지역의 체육원로들은 지적한다. 포스코에서 간부로 잘 지내다가 보은으로 받은 스틸러스 대표, 단장이 문제라는 소리다. 이 자리를 폼 좀 잡고 거쳐가는 자리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포항인의 자긍심을 고취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인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포츠를 통해 포항시민 화합을 이끌어 내고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낮은 자세로 헌신해야 한다.근원을 캐고 들어가면 포스코 부사장 출신 사장이 부임한 이후부터 스틸러스는 기업축구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역화합이라는 구호만 외쳤지 시민은 안중에 없는 포스코축구단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구단의 전력 쇠퇴와 시민들의 외면이었다. 현 집행부를 두고 ‘평상시 조기축구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축구인들이 수군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구단운영과 관련한 책임의 다른 한 축은 포항시에도 있다. 네임스폰서로 구단에 연 9억 원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면 구단이 시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민들을 무시하는 팀에 거액의 예산만 지원하고 관중석 메운다고 인원 동원하고, 입장권을 배당하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구단의 사장이나 단장 자리에는 시민들의 대표성이 있는 사람을 앉혀, 진정 시민을 위하고 포항을 사랑하는 시민구단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포항시의 역할로 보인다. 스틸러스에겐 성적도 지역화합도 모두가 중요하다. 포항스틸러스 구단의 환골탈태를 기대해본다.

2019-03-07

3월은 희망을 품는 계절

윤희정 문화부장“고모, 나 목요일에 개학이야!” 며칠 전 고등학생이 된 조카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예쁜 곰돌이가 하트를 발산하며 360도 회전하며 춤추는 이모티콘과 함께였다. 봄이 제법 몸으로 체감되는 때다. 아직‘겨울바람의 꼬리’가 남아 있지만 오는 봄을 무엇으로도 막을 수는 없다. 봄 안에서 그 어떤 사회 경제적 어려움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우리의 일상적 삶 안에서 구동되는 자연의 원리, 희망의 싹이 튼다.봄은 겨우내 숨을 죽였던 생명 활동이 다시 시작되는 때다. 작은 야생초들이 땅 속에서 의연히 솟아오르고, 채소의 씨앗들은 뿌려지는 손길을 따라 헛기침 인기척을 하면서 올라오고, 나무들의 푸른 싹들도 줄기의 곳곳에서 보물찾기의 주인공처럼 뜸을 들이면서도 어느새 초록의 형체를 드러낸다. 누가 명하지 않아도,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올라오는 싹들, 우리의 희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많은 시인들이 봄을 밝음·탄생·생명·이상·기쁨 등의 긍정적이며 희망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작품 가운데서도 봄은 밝고 경쾌하거나 혹은 이상향을 대변하는 긍정과 희망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 일반적이다.희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미래, 당장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삶은 맹목적이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에 회자되는‘삼포 세대’란 여러 가지 이유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젊은이의 현실을 함축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인,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노년 세대 모두 꿈과 희망을 갖기 어려운 세상이다. 독일의 사상가인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다”라고 했다. 희망이 인간 고유의 원초적 생명력이라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블로흐의 ‘희망철학’의 출발은 근본적인 질문 3가지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시대를 살아왔고,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주의 쳇바퀴의 노예가 되기 위해 혼란, 불안 그리고 공포를 느끼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산업예비군으로 무장돼 있다. 이 시대의 노동자는 자본주의 하의 노동이라는 울타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유토피아를 꿈꾸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자는 개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희망을 찾는 작업은 개와 같은 삶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개는 자기 자신의 현존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비참하게 인식되고, 파악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의 귀에 익숙해진 청년실업, 저성장,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사회안전망,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정치 개혁 등 중대 현안들은 밝은 미래로 나아갈 앞길을 가로막은 장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월이다. ‘지역과 나라, 세계의’다채로운 동산에서 피어나고 있는 ‘희망의 싹’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다. 그 싹의 생명력이 우리 각자의 시선과 마음속에서 한순간이라도 희망으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뚜렷한 이유 한 가지만 있어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라고 하지 않았던가.“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란 유명한 싯귀가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얼어붙었던 흙속에서 새움이 트는 것을 보면, 인간세상에 절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닿게 된다. 처칠경의 유명한 연설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현실이 어렵다 해도 노인층이 겪어온 세월보다 더 어려운 역경이 있었겠는가? 못 먹어서 부황이 들고, 봄이 오면 얼굴에 허옇게 봄버섯 피는 소년시대를 거쳐온 어르신세대를 보면서 용기를 얻을 일이다. 세상에 극복 못할 역경은 없다.

2019-03-05

한국당은 어디로 가는가?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자유한국당의 극우화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지역별 합동연설회 이후 좌우를 불문하고 보이는 반응이다. 전당대회 일정이 발표되기 이전 상승세를 탔던 한국당 지지세가 합동연설회 이후 다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바로 중도를 표방하는 이들이 돌아선 데 있다.합동연설회마다 보수의 기본정신인 염치와 체면을 망각한 채 잔칫상을 엎을 기세로 뒤흔들어 버린 일부 인사들의 막말 잔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이들은 한국당 대표격인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서도 ‘나가라’와 글로 옮길 수 없는 욕설 등의 야유와 막말을 퍼부었다. 이런 몇몇 인사들의 행위에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막말 인사들 가운데엔 판사를 역임한 변호사도 있고 대학교수, 유명병원 병원장, 장성급 군 전역자, 목사 등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하지만, 염치와 체면을 모르고 거리낌 없이 내지르는 말과 행동에 당은 어떠한 제지나 자제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한국당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새 당 대표가 행동으로 옮길 수있는 운신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아 보인다.극우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까지도 모두 포용하고 가는 방법과 이들를 철저히 배제하는 행보 등 두가지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 주목된다. 우선 보수의 기본 정신을 잊어버린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은 탄핵정국 이전의 카테고리에 갇히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여당과 다른 야당은 일제히 도로 친박당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공격의 고삐를 바짝 당길 것이다.이럴 경우 내년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으로부터 우파가 설자리는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조는 지역별 합동연설회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대구·경북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극우 성향의 프레임에 중도층 인사들이 갇혀 있기를 싫어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이런 상황으로 흐르면 집권여당은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미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민주당 인사가 자신의 지역구를 대구로 바꿔 출마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가속도를 내면 여당의 전국 정당화를 위한 동진정책에도 상당히 힘을 보탤 것이라는 것이 지역 정가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유일한 미답의 땅으로 남아있는 경북지역이 더 이상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존재하기도 힘들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 것이라는 전망을 그래서 나온다. 한국당 경북도당이 젊은 혁신위원장을 선임한 것도 이같은 배경을 의식한 불가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다음은 이들을 배제하는 방법이 남는다.이렇게 되면 그나마 총선과 대선에서 멀어져간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기회가 주어지고 각종 선거에서 비빌 언덕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그동안 여당의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제1야당인 한국당에 조금씩 마음을 열던 중도층 국민들이 우파에게 조금 더 다가설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출구일 것이다. 새로운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느냐에 따라 앞으로 남은 총선과 대선의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역대 선거에서 당선의 키를 잡고 있는 이들은 좌우 진영의 충성스런 지지자가 아니라 바로 중도를 표방하는 말없는 다수다. 이들이 표로써 심판해온 역대 선거를 통해 한국당은 당의 진로를 택해야 할 것이다.

2019-02-26

동남권신공항 재검증 유감

이곤영대구본부장‘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말을 조심해서 하라는 뜻이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으며, 그 말이 잘못 전달돼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지역을 방문해 동남권신공항의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며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울산 등 5개 시도가 10년이 넘는 갈등 끝에 합의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동남권신공항이 자칫 백지화되고 또다시 영남권이 분열될 위기에 빠지게 된 셈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동남권신공항과 관련해 “부산·울산·경남의 타당성 검증 결과를 놓고 5개 광역자치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아지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 생각이 다르면 총리실에서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논의하느라 사업이 표류하거나 지나치게 늦어져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2016년 6월 최종 결정된 김해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문 대통령의 재검증 발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은 김해신공항 확장 결정을 재검토하라는 뜻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그동안 주장해온 가덕도신공항 건설 재추진에 더욱 힘을 모으고 있다.문 대통령의 발언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된 대구·경북은 “이미 동남권 신공항은 5개 시도가 합의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국가정책을 왜 대통령이 뒤집느냐. 이미 결정나 추진되고 있는 일로 재론할 사안이 아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도가 떨어지는 부산·경남지역을 배려하려는 속내가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당장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즉각 공동입장문을 발표하며 반발했다. 양 시·도지사는 14일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김해공항 확장과 대구공항 통합이전으로 이미 결정나 추진되고 있는 일로 재론할 사안이 아니다며 문 대통령의 동남권신공항 재검토 발언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동남권신공항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12월 공식 검토를 지시한 후 10여년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뜨거운 감자’였다. 경제성 부족으로 무산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 우여곡절을 겪으며 5개 지자체 합의끝에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안으로 결론이 났다.이런 상황에 대통령이 나서서 김해신공항을 재검증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다. 국책사업으로 결정 후에도 부울경에서 김해공항 확장을 반대하는 분위기속에 문 대통의 발언은 더 큰 갈등의 불씨를 만드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올 상반기 김해신공항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안을 확정·고시하고 하반기 설계에 들어가 2021년 착공하고 2026년 완공해 개항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국토부의 김해신공항 사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당장 동남권 신공항사업 자체가 상당 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특히, 총리가 결정권한의 주체로 승격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총리가 정무적 판단으로 김해신공항 사업을 철회하면 동남권신공항 사업은 입지 사전 타당성부터 예비타당성 조사와 후보지 선정 등 모든 절차를 새로 거쳐야 하는 등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10년 갈등을 넘어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낸 사업을 무시하고 또다시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결론을 내고 추진하고 있는 국책 사업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오락가락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 정부는 하루빨리 입장을 정리해 불필요한 논란을 조속히 매듭짓기를 바란다.

2019-02-19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야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경북도가 최근 대형 국책사업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면서 경북민 뿐아니라 최고 수장인 이철우 도지사의 심적 고민이 커 보인다. 경북도는 최근 예타면제 사업에서 당초안보다 크게 뒤진 동해중부선 단선철도안 4천억원 확보에 그쳤다. 물론 김천~거제노선인 남부내륙철도안에 경북구간이 30% 이상 포함됐다지만, 경북으로서는 실망스럽다. 그마저 경북구간 35㎞에는 신설 역사가 한 곳도 없는 용역보고서가 드러나면서 이게 과연 경북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소리가 무성하다. 과거 김관용 지사 시절부터 공을 들여온 원자력해체연구센터도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아직 공식발표는 안됐지만 부산·울산지역으로 거의 굳어지는 분위기라 경북에서는 눈 위에 서리까지 맞은 모양새다. 지금 경북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마냥 슬퍼하거나 분노할 수 없는 다급한 실정이다. 훨씬 더 중요한 국책사업결정이 목전에 닥쳤기 때문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것이 SK하이닉스의 구미 투자유치다. SK하이닉스는 향후 120조원을 들여 반도체특화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으로 유치만 된다면 경북형일자리가 성공을 거두는 것 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유치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경북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현재 도백의 위치를 보면 ‘노력해도 결과가 뒤따라 주지않는 뻘속에 갇힌 형국’이다. 다가오는 사업들이 녹록지 않아, 이리저리해도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그러나 이런때 일수록 평정심을 갖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SK하이닉스 투자유치는 죽어가는 구미경제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 이를 유치하기 위해 감정을 앞세우는 동정론은 피해야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대기업인 만큼 사회적 책무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냉혹한 기업논리를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하이닉스가 구미에 오는 것이 보다 유리하다는 유인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 미국은 거의 무상이나 다름없는 부지를 대여한 것을 비롯, 현대차가 투자하는 비용 정도를 현지에서 투자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또 통합공항도 있다. 가능한한 빨리 부지라도 선정해 불필요한 소모성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프로젝트로 지역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 사업 면면이 경북의 100년을 만들 거대 프로젝트지만 한번 손에 넣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비난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경북도는 이러한 비난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대형프로젝트를 감내할 ‘컨트롤 타워’ 조직도 만드는 등 보다 이성적인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적임자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인재풀을 만들고 삼고초려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경북도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지는 않는지도 되짚어 봐야 한다. 최근 정부 여당의 한 실세는 사석에서 “현재 경북도는 대형국책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는 등 최악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사가 그냥 양반으로 있으면 안 된다. 청와대 앞에서 삭발시위라도 하든지 아니면 도의원들과 함께 상경투쟁을 하는 등 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번 곱씹어 봄직하다. 또 지사는 우선순위가 낮은 것은 실무자들에게 과감히 이양하고, 보다 큰 문제에 올인하는 선택과 집중도 필요해 보인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 소소한 일에 신경쓰면 큰 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지금 당장은 외롭고 힘들지만 인내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한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기해년 경북도의 건승을 기원한다.

2019-02-12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명절을

홍성식특집기획부장다시 설날이 코앞이다. 이젠 세뱃돈을 받는 게 아니라 줘야 할 처지고, 설빔을 얻어 입을 나이도 지났지만 오래 보지 못한 피붙이를 만나는 명절은 즐겁다. 이 ‘즐거움’이 남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할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러나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설과 추석을 포함한 명절에 느끼는 즐거움이란 대부분 남자들만의 것이었다.시장에서 고른 생선을 굽고, 밥을 안치고, 산적을 꿰고, 국과 나물을 준비하는 부엌일은 모조리 할머니와 어머니, 여동생과 누이의 몫이 됐다. 전날 저녁부터 설 아침까지 며느리들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탕국 간이 짜거나, 데친 나물이 시아버지의 입맛에 맞지 않을 때면 떨어질 시어머니의 불호령에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그때 남자들은 뭘 했을까. 주방을 바삐 오가는 여자들의 발걸음을 본체만체 전복구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TV 뉴스를 들으며 “정치가 엉망이니” “경제가 걱정이니” 따위의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설 제사가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 풍경. 여자들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밀려드는 설거지와 수차례 거듭되는 손님상 차리기. 그 시간 남자들은 느긋하게 음복술을 마시며 취기에 젖어가고. 명절에 사용될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도 “여자들은 제사상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으라”는 말에 부엌에 쪼그리고 있던 어머니와 숙모들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다.남자들이 식사를 마친 뒤 식은 밥과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허기를 끄던 여자들. 한 세대 전 여성들에게 설이란 대체 뭐였을까. 허리가 부러지도록 고생하는 날? 남자 수발드는 것으로 일관하는 날?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건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며 불합리한 관행이다.귀족과 농노, 압제자와 민중 사이에 존재했던 지배와 무조건적 복종이라는 시스템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엄존했던 시대. 그것이 여실하게 드러났던 지난날 명절 풍경. 우리는 그 시간을 아프게 지나오며 새로운 시대를 모색했다.평등이란 귀한 가치다. 성별의 차이가 평등을 무너뜨리는 이유가 돼선 곤란하다. “명절 준비는 누구의 몫이다”라는 낡은 레토릭으로 굴종을 강요할 권리는 남성에게도 없고 여성에게도 없다. 평등과 공정이란 가치의 구현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남녀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위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수고스러움을 나누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 또한 평등한 세상,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의 디딤돌로 역할하지 않을까.봉건 군주건, 조선 양반이건, 독재권력이건 지배자의 필요에 의해 불합리하게 유지돼 온 억압의 구조와 부당한 질서에 대한 거부 없인 역사 발전도 없다.인류가 긴 투쟁을 통해 쟁취해가고 있는 ‘남녀평등의 역사’도 마찬가지가 아닐지.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변화 속에서 발전한다. 200년 전을 살았던 독일 철학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이젠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여필종부(女必從夫)를 대놓고 말하는 이들이 드물다. 앞으론 더 적어질 게 분명하다. 이것은 ‘발전하는 역사’인 동시에 재론의 여지없이 바람직한 일.이런 상상을 해본다. 남동생이 누나와 함께 부침개를 굽고, 여동생과 오빠가 사이좋게 밥상을 차리며, 아버지와 숙부가 서툴지만 소매를 걷고 설거지를 하는 명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든 할머니와 어머니의 환한 웃음이 마당과 마루 가득 넘치는 명절.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남녀를 불문하고.

2019-01-29

새해 복 많이 나누세요

정철화편집부국장2019년 새해가 밝았다. 황금돼지띠 새해 설날도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새해를 맞아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은 단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복을 비는 문화는 우리 생활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복덩이로 태어나고 명복(冥福)으로 생을 마감한다. 모든 인사말은 축복(祝福)과 만복(萬福)을 기원하는 것으로 맺는다. 그래서 우리는 정초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덕담이 관용어처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한다.복에 대한 개념은 개인적으로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이래, 동서고금을 통해 수(壽=무병장수), 부(富=재산), 귀(貴=명예)에 대한 염원이 대체로 많은 편이고, 이 가운데서도 富(재산, 돈)를 최고로 꼽는다. ‘부자되세요’나 ‘대박나세요’란 인사말이 자주 사용되는 것과도 통한다.복이 돈이라는 조건하에서 경제학의 게임이론(Game Theory)으로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의미를 풀이해 봤다. 게임이론은 헝가리 태생의 미국의 수학자 폰 노이만이 1944년에 발표한 이론이다.이 게임이론은 모든 게임에는 경쟁상대가 있고 경기자는 경쟁상대가 취하는 전략을 감안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며 이를 통해 성과가 각기 달리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게임이론은 게임을 적대적 경쟁관계의 영합 게임(zero-sum game)으로 설명했다. 상대가 취하는 전략과는 관계없이 결과 값이 0이 된다는 것. 즉 내가 100원을 얻으면 상대방은 100원을 잃게 돼 두 사람의 결과 값의 합은 0이 된다는 이론이다.게임이론에 근거하면 복의 총량이 정해진 상태에서 어떤 개인이 복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누군가는 그만큼의 복을 빼앗겼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와 같은 적대적 경쟁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항상 힘없는 약자들의 복을 빼앗아가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 항상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을 뿐이다. 이 게임의 결과는 무조건의 항복이 있어야 비로소 끝이 난다.상대를 무조건 굴복시키고 말겠다며 여야간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권력갈등은 마치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을 연상시킨다. 새해 들어 체육지도자의 선수폭행, 국회의원의 직위를 이용한 부동산투기 의혹, 기초의원의 가이드 폭행 물의 등도 불거졌다. 재벌기업의 하청업체 갑질, 기업체를 비롯한 조직의 상사가 부하직원에 벌이는 갑질횡포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각종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출세지상주의 등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게임이론은 적대적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방이 모두 이익을 얻는 비영합게임(nonzero-sum game)도 있다. 상대방이 취하는 전략에 따라 각 경기자가 받는 결과 값이 0보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 게임이다. 이 경우 각자가 가져가는 결과 값을 최대한 키우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과점시장 내에서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노사분규과정에서 타협이 이뤄지는 경우이다.‘복 많이 받으세요’를 비영합게임으로 풀면 ‘복 많이 나누세요’가 된다. 각자가 가진 복의 일정량을 자신보다 좀 더 못 가진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가진 자들이 아래 단계에 복을 나눠주는 것으로 맨바닥에 있는 힘없는 약자들에게 복이 자연스럽게 나눠진다.우리의 전통 기복사상은 복 받을 짓을 해야 복이 들어온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애초의 덕담은 ‘복을 많이 지으세요’였다. 이것이 현대산업사회의 치열한 경쟁이 입혀지면서 ‘복 많이 받으세요’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이 좀더 양보하고, 베풀고 보듬어주는 것이 복을 짓는 일이고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경기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2019-01-22

가 볼 곳은 많은데 묵을 곳 부족한 칠곡, 대책 없나

김재욱 경북부칠곡군민을 위한 행사가 구미에서 열려 논란이 되고 있다.칠곡교육지원청이 매년 연초에 개최하는 ‘교육 계획 설명회’가 지난 17일 엉뚱하게도 구미시 호텔금오산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것.행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장소는 문제가 됐다. 칠곡군에 시설이 충분한데도 2년 연속 다른 지역에서 행사를 열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왜 칠곡이 아닌 구미의 호텔에서 교육계획 설명회를 가졌을까.칠곡교육지원청은 칠곡군민회관, 교육문화회관, 호국평화기념관 등의 시설을 물색했으나 마땅한 장소 섭외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군민회관의 경우 내부 공사 중이어서 대관 자체가 안되는 상황이었고, 750석 규모의 교육문화회관은 행사 인원이 총 143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행사에는 부적합했다고 주장했다.호국평화기념관의 경우 한차례 연수회를 가져본 결과 순심 베네딕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기에는 음향시설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칠곡교육지원청은 “교육 계획 설명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지역에서 교육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신 학교, 교사, 학부모들에게 표창패와 감사패를 전하는 행사였기에 학생들의 다양한 공연도 마련돼 있어 구미의 호텔에서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그러면서 “다음부터는 행사를 축소해 교육지원청 관내(칠곡)에서 개최하겠다”고 강조했다.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어떤 것이 진짜 문제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지역경제를 생각해 될 수 있으면 그 지역에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행사 취지에 맞는 시설이 없음에도 무조건 지역에서 행사를 치르라고 요구하기도 무리이다.인구 12만명인 도시에 번듯한 호텔 하나 없는 것도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다.군정을 이끄는 군수는 호텔 유치에 부정적이다.백선기 칠곡군수는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지역에 호텔을 유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어려운 경기에 칠곡군에 호텔을 유치한다는 것은 힘들다.대구와 구미에서도 호텔 운영이 힘든 상황인 것으로 안다”며 “지역의 각종 컨벤션 기능을 살려 다양한 행사가 운영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백선기 군수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칠곡군은 그동안 ‘체류형 관광자원’을 만든다며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칠곡보 오토캠핑장, 송정자연휴양림 등 자연친화적인 숙박시설을 지었고 한티억새마을 등을 조성중이다.그럼에도 지난해 낙동강세계평화축전을 방문한 인사들은 칠곡에서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해 대구의 호텔에서 숙박을 해야만 했다. 칠곡군은 충분한 관광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다만 숙박할 곳이 없음을 칠곡교육지원청이 넌지시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칠곡/kimjw@kbmaeil.com

2019-01-21

포항문화도시 개발의 방향

윤희정문화부장지난 연말 포항 문화계는 뜻밖의 선물같은 소식으로 송년 분위기가 한껏 더 고무됐다. 정부가 5년 동안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추진할 법정 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1차 예비도시 선정 심사에서 포항시가 최종 선정된 것이다. 말 그대로‘법정’자가 붙은 만큼 정부로부터 최대 200억원이라는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기반으로 명실공히 문화도시의 공식인증 마크가 붙는 셈이다. 물론 1년간의 예비사업을 거쳐 본 지정을 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이다.포항시는 그동안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의 변신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시 측은 이번 문화도시 예비지정은 그간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과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등을 통해 포항만의 특성화된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시민문화기획가 발굴 등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기초 인프라 구축을 해 온 한편, 행정·민간·예술가·시민을 문화로 연결한 문화협치의 결과라고 밝히고 있다. 또 출범한지 만 2년밖에 안된 포항문화재단의 가파른 성장세와 공격적인 사업운영의 값진 성과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혹자는 포항이 ‘문화도시’라는데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 역시 그러한 의견에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가 뭘까?21세기에 강조되고 있는 문화적 패러다임에는 과거와 근본적으로 변별되는 요소가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생존을 위한 직접적인 생산활동이었고, 문화는 그 바깥에서 향유되고 소비되는 부차적인 영역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이제 문화는 모든 사회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새로운 발전을 주도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다. 문화적 창의성이 개인과 국가 및 지역사회의 가치의 중심이 되는 문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 20여 년이 지나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문화의 진흥과 주민의 문화수요에 적극 대응하고자 다양한 문화전략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각종 연구결과 이러한 문화전략들은 기껏해야 행사차원에 머무르고 자치단체장의 선호와 의지에 기반하고 있을 뿐 자치단체 사회전반에 대한 파급효과 면을 볼 때 아직은 그 효과와 전반적인 문화수준 향상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문화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궁긍적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문화 전반에 대한 다각적인 방면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 전제돼야 함은 부인할 수 없다.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포항시의 활성화 사업이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문화도 좋지만, 관광상품 개발같은 돈버는 문화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몇 가지를 짚어보자. 우선 포항은 죽도시장을 중심으로 해산물 음식문화가 어디보다 우수하다. 청정동해에서 생산되는 각종 생선과 다양한 해초가 풍성하다. 맛과 가격에서 어디 비할데가 없고 우수하므로 해외 홍보에 힘써야 한다. 권역별 대표관광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특화된 볼거리, 먹을거리, 체험거리를 연계한 상품개발을 통해 관광객들의 자발적인 방문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통 문화의 도시 경주와 한 문화권에 있다는 점을 묵과할 수 없다. 30분 거리의 경주 역사문화와 연계하면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세계관광시대에 관광문화 진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밖에도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와 같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관광 산업이 연계된 이벤트가 될 문화콘텐츠를 개발,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문화의 시대이자 그야말로 문화가 대세인, 게다가 ‘문화도시 지정’을 코 앞에 앞둔 이 시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오랫동안 정성을 들인 포항문화도시 준비와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 다시 한 번 포항시 문화 관광 정책의 내부를 좀 더 치밀하게 바라보며 현실을 점검하고, 다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2019-01-15

대구 재건축, 지역업체 하기에 달렸다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새해다.2019년 대구지역의 최대 화두는 이구동성으로 어려운 경제회복을 꼽는다.각종 조사마다 내년도 경기를 불투명하게 보는 결과가 잇따르는 것에도 이같은 사실이 잘 나타나 있고 다양한 극복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대구 경제회복을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부동산이다. 2019년 대구지역에는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신규공급에 들어가는 서구 8천665가구(26.9%)를 비롯해서 중구 4천495가구(13.9%), 동구 4천491가구(13.9%), 수성구 3천476가구(10.8%), 남구 3천275가구(10.2%), 북구 3천39가구(9.5%), 달서구 2천444가구(7.6%), 달성군 2천307가구(7.2%) 등 모두 31개 단지에 모두 3만2천192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특히 도심권 재건축·재개발 비중의 경우에는 24개 단지에 모두 2만4천184가구로 전체 분양의 75.1%를 차지할 정도로 물량이 상당하다. 대구 지역도 이제는 이른바 나대지에 아파트를 짓을 공간은 달성군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소진된 상태라는 점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대구시는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지역 업체 수주 활성화를 위해 지역건설업체 참여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20%까지 더해주고 설계에도 지역업체에 가점을 3% 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대구의 도시정비사업장에서 지역건설업체 및 설계자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총 23%의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이는 △대전 17% △부산 15% △광주 10% △울산 5% 등과 비교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서울과 인천은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대구시가 이같은 지원에 나선 데는 지난해 초 지역 건설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기존 5%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던 ‘지역 업체 참여비율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최대 15%까지 확대했지만, 지역 내 정비사업장 입찰에서 6개 사업장 중, 단 한 건도 지역 업체가 수주하지 못하며 외지 업체의 독식현상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대구시의 강력한 인센티브 지원책이 등장한 데는 대구 남구 봉덕·대덕지구의 수주전에서 15%의 인센티브를 강점으로 한 지역기업과 타 기업간의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지만, 조합원간의 갈등에 따라 법정문제로 비화됐다. 이들 두 기업이 주춤하는 사이에 전국 규모의 대기업이 봉덕·대덕지구 수주를 위해 물밑 작업이 한창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대구시의 인센티브 정책을 무색케 한 것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동안 분양시장은 대기업이 수주를 하더라도 나머지 2∼3차 사업은 대부분 지역기업에 맡기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 몇년 전부터는 아예 자신들의 협력업체들을 대거 데리고 진출하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방치하다가는 분양시장 활황에도 지역기업이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지역 경제 성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것을 대구시가 늦게나마 간파한 것으로 판단된다.지역 기업도 대구시가 마련해 준 수주전 승리의 방정식만을 믿고 좌시하기보다는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지역에 기여하는 방향을 잡아야 할 때이다.자칫 지역 기업간의 이전투구 양상으로 수주전이 전개된다면 다시 대기업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벌써부터 이같은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상황이기에 지역기업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방안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역 업체간 담합 성격의 수주전을 펼칠 경우 지난해 외지기업이 독식하는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올해 부동산 분양시장의 3분의 2 이상이 재개발·재건축이기에 지역 기업을 위한 장은 마련돼 있다. 대구시도 지역기업을 도울 강력한 드라이브 지원책을 내놔 관청으로서 할 도리는 다 한 상태이다. 이제 지역 기업들이 답할 차례다.

2019-01-01

대구통합공항 이전, 이젠 정부가 나설 차례

▲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초대 황제인 양무제는 수많은 경서를 찍어내고 사찰을 보시했으며 스스로도 가사를 입어 스님들과 늘 공부를 해 불심천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달마대사와 만나 “나는 불사도 많이하고 사찰도 세우고 경서도 많이 발간했는데 내 공덕은 어찌되오?”고 물었다. 이에 달마대사는 “공덕이랄게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양무제는 “그럼 공덕이 아니면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고 달마대사는 “하나의 과보일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말은 들은 양무제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자 달마대사는 “폐하 만약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려주신다면 제가 여기 남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양무제는 말을 못하고 달마대사는 떠나버렸다. 지금 대구통합공항 이전사업을 두고 하는 국방부의 행태가 딱 이 꼴이다. 대구시는 대구통합공항 이전 사업비를 ‘기부대 양여원칙’에 따라 5조7천700억원을 제시했으나 국방부는 7조2천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며 군공항 이전 사업비 재산정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게 없는데 사업비를 정하자고 강짜를 부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구통합공항 이전은 지난 3월 통합이전 후보지로 경북 군위군 우보면 일대와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일대 2곳으로 압축하고도 최종 후보지 선정과 기본 및 실시설계 등 향후 일정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공전하고 있는 것이다. 공항 이전 작업이 장기 표류하면서 대구지역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업 원점 재검토’, ‘민간공항 존치’ 등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기부대 양여 방식’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국방부와 대구시가 사업비 재산정을 두고 다투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선문답과 같다. 활주로 크기 및 면적, 주변 비행안전구역 면적, 정비창, 계류장 등 국방부에서 원하는 시설 규모가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부지도 정하지 않았고 실시설계도 이루어지지 않는 등 해보지도 않고 미리 답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이 공전되자 지역에서는 국방부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갑질을 부린다는 비판도 흘러나오고 있다.엄밀하게 말하면 군공항은 정부시설이다. 당연히 군부대 이전은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사업이다. 그동안 군부대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수십년간 소음과 고도제한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군부대 이전을 요구했으나 대답없는 메아리였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는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도심 내 군부대 이전을 적극 추진했고, 국가가 대답없는 메아리로 일관하자 할 수 없이 ‘기부대 양여’방식이라도 추진하려는 것이다. ‘기부대 양여’ 방식은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불리한 불공정 방안이다. 이렇다 보니 국방부는 대구통합공항 이전사업에 한 푼도 들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손 안대고 코를 풀려고 하는 것이다.사업비 재산정을 빌미로 사업이 공전하자 지난 12일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부도지사가 국방부 장관과 비공개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권 시장은 대구공항 통합이전은 대구·경북민의 염원인만큼 최종 후보지를 연내 선정하도록 절차를 조속히 밟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정경두 장관은 “법 절차에 따라 관련 부처와 협의하는 등 이전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대구통합공항 이전 부지 연내 선정이 사실상 무산됐지만 사업비 재산정을 두고 공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장관의 긍적적인 답변으로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에 최종 후보지가 결정되는 등 군공항 이전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최종 후보지가 선정되고 실시설계가 나오면 결국 사업비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하고 있는 군공항 이전사업, 국가 사업을 전적으로 지자체에게만 맡길 일은 아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설 차례다.

2018-12-19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첫 인사

▲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중국 춘추전국시대 얘기다.후일 시황제(始皇帝)가 된 진나라 왕 영정은 기원전 260년 조나라와 전국시대 최대의 전쟁인 장평의 전투를 벌여 조나라 병사 40만명을 죽이거나 생매장하는 등 주변 국가에 공포의 대상이 됐다. 이후 2년 뒤 진나라는 다시 조나라에 쳐들어가 서울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는 필사적으로 방어해 양군의 공방은 9개월이나 계속되면서 조나라는 멸망직전에 이르렀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지자 조나라는 멸망을 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초나라와 힘을 합해 공동대응하는 방법을 강구했으나 당시 여러 나라들이 진나라를 무서워해 동맹맺기를 주저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조나라 재상인 평원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동맹을 구걸하기 위해 초나라로 가게됐다.평원군 조승은 일행으로 식객 3천명 중 지용을 겸비한 자 20명을 데려가기로 했으나 마지막 한 명을 선발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식객 중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 천거했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이란 고사는 여기서 생겨났다. 하지만 평원군은 식객이 된지 3년이 됐지만 ㅂ‘모수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공도 세운게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모수는 “지금까지 주머니에 넣어질 기회가 없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기회를 달라”며 매달려 다른 일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상단에 참여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도 이곳에서 나왔다.이때쯤에는 초나라도 진나라 백기 장군에게 서울 언과 영을 빼앗기고 동쪽으로 천도해 있었다. 조나라의 동맹제의에 진나라의 노여움을 겁내 동맹성사가 결렬되는 분위기였다. 이때 모수가 회담장에 급히 들어갔다. 그는 초나라 임금 앞에서 “옛날 은나라 탕왕은 사방70리, 주나라의 문왕은 사방 백리의 땅을 가지고 왕노릇을 하고 천하의 제후들을 복종시켰다. 이는 병력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천하의 움직임을 살펴 알고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초나라는 사방 5천리의 땅과 백만대군을 갖고도 진나라에 쩔쩔매고 있다”며 조나라와 동맹의 이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목숨을 건 모수의 설득에 초나라 왕은 조나라와 동맹을 맺고 진나라에 대항, 조나라는 멸망을 면하게 된다.귀국한 평원군은 이번 공을 자신의 공이 아닌 모수의 공으로 돌리고 모수를 최고 상객으로 대우한다. 이후 평원군은 “지금까지 수천명을 평가해 사람보는 눈은 틀림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모수의 일로 해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모수의 세치 혀는 백만대군보다도 강했다”며 “다시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옛날 중국역사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인사가 어렵다는 점을 예로 들려했을 뿐이다.바야흐로 인사시즌이 도래했다. 경북도의 경우 이철우 지사가 당선된 이후 실질적인 첫 인사인만큼 많은 공직자들과 언론 등이 관심을 갖고 있다. 공직자는 뭐니해도 그동안 자신이 열과 성을 바친 결과물을 인사에서 받아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북도 인사는 사실상 ‘비인기’(비서실, 인사·기획부서 출신)인사였다. 일반 사업부서 등은 뒤처진 게 사실로 인사에서도 어느 정도의 양극화가 고착됐다.이 지사는 취임 후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실국장 인사는 자신이 하고 나머지는 실·국장이 천거하는 인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과연 이러한 일들이 잘 지켜질지 지켜볼 일이다. 행정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인사분야다. 한 사람의 우대자가 나오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겨나는 등 오죽하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이철우 지사의 인사에 공무원들의 관심이 과도하다 할 정도다. 이번 인사는 ‘낭중지추’의 과감한 발탁과 사라져야 할 사람의 퇴출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18-12-12

‘난민’과 ‘연민’ 사이에서

▲ 홍성식 특집기획부장태어나고 싶은 국가와 키워줄 부모를 스스로 선택해 세상에 오는 인간은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힘없는 나라의 국민’ 혹은, ‘가난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날 이들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해지는 게 국적과 신분이다. 단순히 운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제비뽑기’ 같은 게 때론 인간의 생을 판가름 한다. 사람의 행과 불행 역시 여기서 시작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최근 예멘에서 한국으로 유입된 난민(難民·정치와 종교 혹은, 인종적 차별과 편견을 이유로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여성을 하등한 존재로 보는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예멘 남성들이 한국에 정착할 경우 성폭력 등의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번졌고, 이는 “예멘 난민의 망명을 받아주면 안 된다”는 목소리로 변해갔다.60여 년 전부터 왕당파와 공화파의 갈등으로 시작된 예멘 내전은 아직까지도 종교적 판이성과 경제적 문제 등으로 그 이유를 달리 하며 진행 중이다.이 죽음과 고통의 역사 속에서 지배층이 선택한 정치 시스템이나 이슬람 내부의 계파 갈등과는 무관함에도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게 예멘의 평범한 국민들.이들 중 소수가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과 꿈은 항상 넘기 힘든 벽을 마주해야 했다. 수난과 아픔 속을 살아온 사람들을 안아줄 국가와 국민은 많지 않았다. “저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다” “낯선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악독한 범죄자가 섞여 있으면 어쩔 것인가”라는 게 난민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이유들.이런 난민 거부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고, 거기에 철조망까지 둘러 온두라스를 포함한 남아메리카 난민이 미국에 들어오는 걸 막겠다고 선언했다.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하며. 일상 전체가 마약과 살인, 폭력과 납치 등 강력범죄의 위험 속에 처해 있는 중남미 몇몇 국가들.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킬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죄 없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남부여대(男負女戴) 걸어서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뉴스가 신문과 방송의 국제면을 도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까지 생겼으니 바로 ‘캐러밴’. 한국인과 미국 사람들이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비슷하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나와 가족이 살기도 팍팍한데, 생면부지 멀리서 온 당신들까지 도울 형편이 되지 못 한다”는 것. 야속하게 들리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도 할 수 없다. 사실 이런 게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고.몇 해 전 이란을 여행했을 때다. 이스파한 이맘광장(Meidan Emam)에서 싸구려 초콜릿을 파는 행상 여럿과 만났다. 가난한 관광객이 그들 모두에게 초콜릿을 사줄 수는 없는 노릇. 그때 행상 중 하나가 서툰 영어로 말했다. “저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난민입니다. 우리 중 가장 가난하니 저 사람의 것을 사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졌다. 그때 떠올린 단어가 연민(憐憫)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더 많다.‘한 점의 연민도 없이 고통에 처한 난민’을 대하는 요즘 세태를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다.이란의 수도 테헤란. 그 도시 관공서 벽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형제다’라는 문구를 읽었다. 남의 입장에 서서 타자를 동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건 지구 위 생물 중 인간뿐이다. 난민 문제 역시 그런 전제 아래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이건 미국이건.

2018-12-05

연해주의 한국 역사

▲ 정철화 편집부국장러시아와 본격적인 교류협력시대의 새장을 여는 ‘제1차 한-러 지방협력 포럼’이 이달초 포항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17개 광역 지자체와 러시아 극동지역 9개 주정부간에 이뤄진 국제회의였다. 포럼 결과는 양국간 경제·통상, 교육·과학, 인적·문화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내년 포럼은 연해주의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안해 성사된 국제행사로 대한민국의 경북도와 포항시, 러시아의 연해주와 블라디브스토크가 향후 한·러교류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번 포럼을 보며 지난해 10월 방문했던 연해주의 기억이 새롭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시, 하산군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연해주는 러시아어로 프리모르스키이다. ‘바다와 접해있다’는 뜻으로 우리에게는 한자로 풀어쓴 연해주(沿海州)가 더 친숙하다. 한반도의 두만강과 접경지역으로 한민족 역사와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진 곳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연해주는 행정수도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12개 시, 24개 군, 인구 204만여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구는 61만3천여명이다. 경북도, 포항시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느낌이다.연해주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하산군 연추리(크리스키노)가 떠오른다. 포시예트만 북쪽 언저리에 자리잡은 작은 농촌마을로 한쪽에 안중근의사 단지 동맹비가 세워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 단체인 ‘동의회’회원 11명과 함께 1909년 2월 7일 연추리에서 왼손 무명지를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혈서로 쓰고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등을 암살하기로 하늘에 맹세했다. 이것이 단지동맹이다. 안중근이 그해 10월 26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며 대일 무장항쟁의 불씨를 지핀 곳이다.단지동맹비에서 동북쪽 20여km 거리에 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에 최초로 정착했던 지신허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900년대 인구가 1천600명을 넘을 정도로 번성했으나 1937년 스탈린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 조치를 당하며 역사속에 사라졌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마을이 폐쇄돼 출입이 금지돼 있고 마을입구에 지난 2004년 가수 서태지의 기부로 만들어진 ‘지신허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포시예트만을 끼고 발해의 염주성터가 있다. 단지동맹비에서 바다쪽으로 난 습지를 4km 정도만 걸어가면 만난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고 발해시대의 성벽과 성문·옹성 흔적을 찾을 수 있다.연추리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시 등 연해주 곳곳에서 애국지사들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됐고 많은 독립운동 역사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문재인 정부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모토로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독립운동가 김가진 선생의 며느리로 상해임시정부의 안주인 역할을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는 ‘장강일기’에서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고 썼다. 연해주에 버려져 있는 한국의 역사 현장을 복원하고 국민들에게 이국땅 연해주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포항 영일만항은 북방물류중심항만으로 개발됐다. 현재 영일만항에는 7만5천t급 크루즈와 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국제여객선부두가 조성 중이다. 영일만항과 포항여객선부두가 하루빨리 완공돼 많은 국민들이 연해주에 녹아 있는 한국 역사의 현장을 쉽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8-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