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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의 한국 역사

등록일 2018-11-28 20:46 게재일 2018-11-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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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화편집부국장
▲ 정철화 편집부국장

러시아와 본격적인 교류협력시대의 새장을 여는 ‘제1차 한-러 지방협력 포럼’이 이달초 포항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17개 광역 지자체와 러시아 극동지역 9개 주정부간에 이뤄진 국제회의였다. 포럼 결과는 양국간 경제·통상, 교육·과학, 인적·문화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내년 포럼은 연해주의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안해 성사된 국제행사로 대한민국의 경북도와 포항시, 러시아의 연해주와 블라디브스토크가 향후 한·러교류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번 포럼을 보며 지난해 10월 방문했던 연해주의 기억이 새롭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시, 하산군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연해주는 러시아어로 프리모르스키이다. ‘바다와 접해있다’는 뜻으로 우리에게는 한자로 풀어쓴 연해주(沿海州)가 더 친숙하다. 한반도의 두만강과 접경지역으로 한민족 역사와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진 곳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연해주는 행정수도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12개 시, 24개 군, 인구 204만여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구는 61만3천여명이다. 경북도, 포항시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느낌이다.

연해주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하산군 연추리(크리스키노)가 떠오른다. 포시예트만 북쪽 언저리에 자리잡은 작은 농촌마을로 한쪽에 안중근의사 단지 동맹비가 세워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 단체인 ‘동의회’회원 11명과 함께 1909년 2월 7일 연추리에서 왼손 무명지를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혈서로 쓰고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등을 암살하기로 하늘에 맹세했다. 이것이 단지동맹이다. 안중근이 그해 10월 26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며 대일 무장항쟁의 불씨를 지핀 곳이다.

단지동맹비에서 동북쪽 20여km 거리에 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에 최초로 정착했던 지신허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900년대 인구가 1천600명을 넘을 정도로 번성했으나 1937년 스탈린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 조치를 당하며 역사속에 사라졌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마을이 폐쇄돼 출입이 금지돼 있고 마을입구에 지난 2004년 가수 서태지의 기부로 만들어진 ‘지신허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포시예트만을 끼고 발해의 염주성터가 있다. 단지동맹비에서 바다쪽으로 난 습지를 4km 정도만 걸어가면 만난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고 발해시대의 성벽과 성문·옹성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연추리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시 등 연해주 곳곳에서 애국지사들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됐고 많은 독립운동 역사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모토로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독립운동가 김가진 선생의 며느리로 상해임시정부의 안주인 역할을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는 ‘장강일기’에서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고 썼다. 연해주에 버려져 있는 한국의 역사 현장을 복원하고 국민들에게 이국땅 연해주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포항 영일만항은 북방물류중심항만으로 개발됐다. 현재 영일만항에는 7만5천t급 크루즈와 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국제여객선부두가 조성 중이다. 영일만항과 포항여객선부두가 하루빨리 완공돼 많은 국민들이 연해주에 녹아 있는 한국 역사의 현장을 쉽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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