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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봉화 만산고택, 그 공간 속 자취

한옥에는 켜켜이 쌓여온 삶이 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역사적 자취가 현재 삶을 이어가는 생활 공간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피어난다. 여느 고택이든 그러하겠지만 봉화의 만산고택은 특히나 목련꽃처럼 숭고한 정신과 자연 공간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고택의 은은한 아름다움은 한옥 구조를 이루는 나무 자재의 유려한 곡선과 다양한 지붕 모양에서도, 퍼즐처럼 맞물린 이음새에서도, 담장을 기준으로 나눠진 독립 공간에서도, 건물마다 걸린 오래된 현판에서도, 마당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만산 선생과 그 후손들의 삶에서도 고택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면을 발견할 수 있다.만산고택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산세가 깊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자태를 만날 수 있다. 집은 주인의 성품이 녹아난다고 했던가. 만산고택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은은한 목련꽃 향기처럼 선비정신이 음전하게 배어난다. 이 고택은 만산 강용(晩山 姜鎔·1846~1934) 선생이 1878년에 지었다. 그는 을사늑약(1905) 당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이 고택에서 여생을 마무리했는데, ‘언제 다시 태양을 볼꼬?/죽음에 당하여 눈물이 턱을 타고 흐른다./하찮은 신하라서 갚을 길이 없으니/이 사무친 한을 뉘라서 알리요?’에서 알 수 있듯이 운명을 앞둔 순간에도 나라에 대한 걱정과 망국의 원통함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후 그의 후손들 또한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고 투쟁하면서 이 고택에서 삶을 온전히 이어왔다.고택의 공간은 크게 사랑채, 안채, 별당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공간들은 까치발 높이의 토담으로 분리되어 독립성을 유지한다. 사랑채 공간은 예로부터 외부에서 찾아온 빈객을 위한 화합의 공간이다. 11칸 대문채를 포함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마당에 2칸 규모의 아담한 서실이, 정면 기단 위에 5칸 규모의 사랑채가 보인다. 고풍스러운 자태로 빈객을 맞이하는 만산고택의 사랑채는 역사를 되돌아보기에도 꽤 괜찮은 장소다. 네 면에 모두 기와가 얹어진 우진각 지붕의 서실에는 영친왕 이은이 8세에 쓴 ‘한묵청연’(翰墨淸緣, 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 현판이 걸려 있고, 팔작지붕의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만산(晩山)’ 현판 사본이 걸려 있다. 두 현판을 통해 당시 만산 선생과 왕실의 돈독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만산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합쳐져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 그 뒤로 작은 마루방과 중방·골방이 ‘―’자형으로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으며, 그 뒤편으로 ‘ ’자형 안채와 연결되어 정면 5칸 측면 8칸의 실질적인 생활 공간을 완성한다. 안채 공간은 사랑채 좌우로 완연한 담장을 두어 독립된 공간임을 명확하게 규정한다. 한옥 특유의 반개방형 구조상 안채로 통하는 문은 여러 곳이 있지만 정해진 대문은 측면에 있어 대문에서 바로 노출되지 않는다. 안채 대문은 곧장 4칸 규모의 안채 마당으로 이어져 있으며,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큰 방과 작은 방들·대청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만 안채 마당은 사랑채 지붕이 높아 햇볕이 제한적으로 들어 좀 더 폐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뒷마당이 안채의 양쪽과 후면에 넓게 형성되어 있어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별당은 사랑채의 오른편 담장 너머에 넓고 독립된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다. 담장의 작은 문을 통과하여 별당 공간에 발을 디디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이 홀로 고고하게 서 있다. 별당은 대청과 온돌방·골방이 있고 무엇보다 넓은 마당이 건물을 휘둘러 감싸고 있어 자연 공간에 융화된 것처럼 보인다. 세월을 머금은 아름드리 춘양목 기둥과 손때 묻은 대청마루 그리고 듬직한 대들보가 조용하고 온화하게 ‘칠류헌(七柳軒)’이라 적힌 현판을 품고 있다. 빛바랜 세월을 머금은 이 현판은 구한말 위창 오세창(韋滄 吳世昌·1864~1953) 선생의 친필 편액으로 당시 국운을 걱정하던 만산 선생과 접빈객으로 드나들던 문사들의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다만 별당 칠류헌의 지붕은 완벽함이 주는 어색함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본래 한옥의 지붕은 착시현상을 배려하여 안허리곡과 앙곡이라는 곡선 기법을 적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붕은 유려한 곡선과 두드러진 꼭지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칠류헌의 지붕은 앙곡 기법만 적용되어 처마선이 시각적으로 잘못되어 보인다. 마치 고고한 선비의 기질과 인간다운 성품이 함께 피어오르는 것 같지 않은가. 숭고한 역사적 자취와 삶을 이어온 생활이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지붕 하나에서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만산고택은 겨우내 침묵하다 봄에 피어나는 은은한 목련꽃과 같다. 알면 보이는 한옥의 구조가 그러하고, 망국의 서러움을 품은 채 운명한 만산 선생의 남겨진 마음이 그러하다. 지금은 마당 곳곳에 아담하게 가꾸어진 야생화들과 나무들, 햇볕에 따끈하게 달아오르는 장독대에서 현재 고택을 살아가는 4대손 부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전통문화 체험’이란 주제로 맞이하는 여러 빈객 또한 고택의 은은하게 이어지는 삶에 자취를 남긴다. 145년의 만산고택에는 역사도 생활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2-27

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심한 가뭄으로 재배하고 있던 작물이 말라 죽게 됐을 때, 농부는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부터 이 생명에 물을 주고 온갖 정성을 다한다. 시장에 나가서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나중 문제이고 우선 이 식물을 살려야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다른 계산을 하지 않는다.농어촌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오는 3월 8일은 이들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날이다.농·수·축협 및 산림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하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지난 2015년 1회를 기점으로 이번이 세 번째 선거다.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 최초로 금품 제공 혐의가 있는 입후보예정자를 고발했고 준법선거 릴레이 캠페인, 정월대보름 부럼깨기 행사 등을 통해서 돈선거 척결과 정책선거 실현에 중점을 두고 관리해오고 있다.선거관리위원회가 조합장선거를 위탁받은 이후로 기부행위에 대한 조치 건수가 점점 줄어들고는 있으나, 아직도 금품·향응 제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공직선거에 비해 적은 조합원 수, 혈연·지연·학연으로 깊게 형성된 유대관계, 금품제공에 대한 무감각 관행 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답변들이다.이유를 알고 있고 치유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데는 어떤 다른 원인이 있지 않을까?3월 8일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유권자, 조합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이다.먼저, 후보자는 내다 팔 정책이 있는가를 자문해 봐야겠다.자그마한 국숫집도 추구하는 맛이 있어야 하고 재료 값이 올랐다고 해서 이 맛을 포기하면 안되며 손해를 보더라도 추구하는 맛을 고집할 때 진정한 맛집이 된다.후보자는 조합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조합원을 설득하는 비전이 없을 때, 후보자는 다른 흥행 요소인 상대방 비방, 허위사실 공표, 금전유포의 유혹을 받게 된다.둘째, 유권자인 조합원은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독일의 한 시민이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내가 낸 지하철요금이 정부로 들어간 뒤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쓰입니다. 지하철이 국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생각하는데 누가 요금을 내지 않겠어요”라고 시민의 조건은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라고 언급했다.협동조합은 자주와 연대, 공개와 배려를 기치로 하는 자율적 조직이고 당연히 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하지만, 조합원 스스로 자신이 주인이라기보다 손님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금품을 살포하는 후보자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다.주인이라면 돈선거로 내 집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당연히 내쫓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조합은 이른 새벽에 아무 조건 없이 생명을 살리려는 조합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농·수·축협의 설치 근거법을 보면 이들 조합은 각 조합원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해당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각 조합원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즉, 사업체적 성격과 공동체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조합의 사업체적 성격이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조합원은 여전히 위로받고 싶고 경제외적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조합이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추구하고 이 분위기가 확산할 때 비로소 조합원은 내가 속한 사회가 경제적 이득 외에 ‘삶의 질을 추구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이런 안정감은 돈선거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돈선거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정책선거이다.3월 8일 유권자는 후보자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조합의 비전을 이끌고 실천할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조합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이번 선거가 조합원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정책으로 경쟁한 아름다운 선거로 기억되고 4년 뒤에 있을 차기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좋은 선례를 남겨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3-02-27

예천군, 누구나 살고 싶은 활력 넘치는 농촌 조성

김학동 예천군수 예천군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고 농촌지역의 경쟁력 확보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먼저 2023년 전체 예산의 22.7%에 달하는 1천467억 원을 투입해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펼친다. 자연재해와 불의의 사고로부터 안정적인 영농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농업인 맞춤형 3대 보험(농작물재해, 농업인안전, 농기계) 가입을 지원하고 농민수당도 지급한다.지보면 매창리 일대에 200억 원 규모의 곤충양잠산업단지와 100억 원이 투입되는 임대형 수직농장 등 디지털 혁신농업타운을 조성하고, 한우특화센터 건립과 축산환경개선을 통한 한우브랜드화 사업도 적극 추진한다.농산물가공지원센터를 통한 시제품 개발과 가공 기술지원은 물론 시설원예 현대화로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농축산물 명품화 및 유통 활성화에 힘쓰고, 미래농업을 이끌어 갈 청년 농부 육성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갈 방침이다.2000년대 이후 농촌정책은 마을 단위 개발이 주를 이뤘는데, 장기적 안목과 지자체의 성장역량을 고려하지 않아 난개발이나 단발성 사업에 그치는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이를 보완하고 지방분권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농촌협약’이다. 이는 시·군이 주도해서 농촌생활권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해당 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상호 협력하여 농촌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제도이다.지난해 예천군은 ‘농촌협약’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430억 원 사업비를 확보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우선 예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에 180억 원, 효자면·용문면·용궁면·풍양면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에 15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지역의 생활SOC 조성 및 경관개선, 생활 서비스 공급망 확충하고, 희망택시 및 농촌버스 지원, 귀농귀촌사업 등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농촌지역 주민들의 취약한 주거환경과 생활 기반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20억 원의 규모의 ‘취약지역 여건 개조사업’ 공모를 올해 초에 추가로 신청했다. 아울러 농촌지역 유해시설 정비 등 정주 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최대 150억 원 사업비의 ‘농촌공간정비사업’ 계획 수립에도 착수했다.면 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사업비 160억 원이 투입되는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은 감천면·보문면·개포면이 올해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천면은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생활 여건이 열악한 농촌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은 66억 원을 들여 올해는 용문면 선2리, 개포면 금리를 2024년에는 예천읍 갈구2리, 2025년에는 지보면 마산리를 순차적으로 완료해 갈 계획이다.‘마을만들기 사업’은 10개 마을에 총사업비 50억 원 예산으로 추진되는데, 지난해 선정된 4개 마을을 대상으로 마을회관 리모델링, 주민쉼터 조성, 마을안길 정비 등을 추진할 계획이며, 올해 선정된 6개 마을은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후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농업 생산기반 정비사업’은 58개 지구에 총사업비 9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기계화 경작로 포장, 배수로 정비 등 영농편의 제공과 재해 예방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된다.이외에도 농업용수 개발 및 용수로 정비를 통해 영농기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가소득 증대에 도움을 줄 계획이다.특히 458억 원 전액 국비가 투입되는 ‘풍양지구 농촌용수이용체계 재편사업’은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양수장 신설 및 기존 수리시설 연계 네트워크화를 통해 지역의 고질적인 가뭄 해결과 용수 이용체계 개선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자치분권 강화라는 국정 기조 속에 변화하는 농촌정책의 핵심은 주민참여 확대를 통한 민관협치 강화이다. 예천군은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읍·면에서 주도적으로 의제 선정 및 계획 수립을 하도록 하고, 추진과정에도 숙의 기반 주민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방침이다.김학동 예천군수는 “농촌 정주여건 개선, 농업생산 기반시설 확충 및 공동체 활성화 사업으로 주민들이 지역에 애착과 자긍심을 가지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농촌지역을 누구나 살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켜 더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예천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3-02-26

철길, 그 아름다운 간격

철길 숲을 걷는다. 한때 사람이 떠나고 돌아오던 철길은 숱한 전설을 남기고 길게 누웠다. 오후의 햇살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나비 몇 한가히 날아다닌다. 철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나비처럼 가벼워 보인다.이길 어디쯤에서 남편을 만났다. 이십 대의 남편과 나는 넓은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다. 홀로 가는 길보다 둘이 가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함께라면 이루어 내고 둘이라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우리는 삶의 종착역까지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손을 잡고 나란히 출발했다. 남편으로 아내로 충실히 가정을 이끌어갔다. 자신의 역할에서 마주쳐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나가 토라지면 하나가 다가와 다독거렸다. 모든 것이 나란할 것 같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보잘것없는 티가 크게 보이기도 했다.이 낯설지 않은 차이는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났다. 나는 성격이 급해 매사에 부뚜막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었다. 외출할 때, 나는 필요한 물건을 후다닥 챙기고 현관에서 매번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뒤에 따라오면서 가스레인지를 점검하고 화장실 문을 다시 열어 소등을 확인했다. 나는 빨리 가자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남편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신발의 끈을 느슨하게 늘어놓거나 겨울 부츠의 지퍼를 열어놓고 기다렸다.아이 교육에서도 생각은 달랐다.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어떤 과외를 하는지 무슨 학원에서 공부하는지 안테나를 쭉 뽑아 레이더를 작동시킨다. 이곳저곳의 정보를 얻으려고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그 덕에 상담을 예약하고 아이들에게 너희는 이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며 경쟁 속으로 내몰았다. 남편은 이런 나를 매번 나무라며 혼자서 할 수 있게 기다려 주라고 핀잔을 줬다. 과도한 경쟁이 아이들을 망친다고 혀를 찼다. 자꾸 부딪치다 보니 서로를 튕겨 마음도 조금씩 멀어졌다. 자주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남의 집 남편 대하듯 거리를 두었다.어느 날,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은 집을 나갔다. 저녁 무렵에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약봉지가 가득하였다. 멀쩡한 사람이 난데없는 약봉지라니, 남편은 병원에서 받아 온 약봉지를 건넸다. 무심히 약봉지를 들여다보니 식후에 먹어야 하는 약이 수두룩하다.남편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남편은 가정을 이끌어가는 기관차였다. 혼자 숨 가빴을 남편의 폐, 울화를 감당했을 간, 노동에 짓눌렸을 척추, 생의 하중을 떠받쳤을 무릎, 이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펌프질했을 심장, 남편은 몸이 아파도 혼자 속앓이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할 것 같아 표현하지 않았다.오늘은 한 사람을 위한 저녁을 준비한다. 부엌에서 나는 도마와 칼의 장단도 오랜만에 정박이다. 남편의 숟가락에 반찬 하나를 올리며 당신을 위한 거라며 먹어 보라고 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얼굴은 이미 해사하다. 이것저것 반찬을 권하자 전부를 받아먹는다. 몸에 좋은 건 같이 먹자며 남편이 내 숟가락에도 같은 반찬을 올려준다. 이순혜 수필가 부부의 길은 동행을 약속한 순간부터 소실점까지 가는 여정이다. 살다가 더러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헤매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숨 가쁜 언덕을 넘고 세월의 다리를 건너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때로는 삐걱거리기도 하고 어떤 길에서는 덜커덕거리기도 했지만 서로 밀고 당기며 오늘까지 동행했다.부부는 평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열차와 같다. 그 열차의 철로가 뙤약볕에 느슨하게 늘어지거나, 눈보라에 얼어붙어 다가가기 힘든 일이 생기기도 한다. 평행인 철로는 하나가 궤도에서 벗어나면 한쪽이 바투 당겨야 한다.어느덧 공원에 저녁이 내려앉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에서 남편이 느릿하게 걸어온다. 잠시 기다렸다가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 맞잡은 손이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간격을 유지한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철길을 나란히 걷는다.

2023-02-26

껍질을 벗어야 나비가 난다

김진국 고문 요정 정치가 한창이던 시절 잘 나가던 마담은 한눈에 손님의 신상을 꿰뚫어 봤다. 범죄자는 경찰을 알아봐야 단속을 피한다. 보통 사람도 첫인상으로 다른 사람의 직업을 짐작한다. “저 사람은 군인 같다”라거나 “교사 같다”라는 말을 한다.사람이 날 때부터 그 직업을 갖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오랜 직업적 연륜이 독특한 집단적 성향을 만든다고 믿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기자의 특성으로만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 의심하고, 확인하려 한다. 사실 확인이 직업적 의무다. 말하는 대로 받아쓰다가는 이용당하기에 십상이다. 혹은 구악(舊惡) 기자의 나쁜 추억을 직업적 특성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지 하루 만에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취소했다. 윤 대통령이 24일 임명장을 줬지만, 정 본부장의 임기는 26일부터다.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임명을 취소한 것이다. 정 전 본부장은 아들의 ‘학폭’과 관련해 논란이 커져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정 전 본부장은 20년 이상 검사로 일했다. 특수분야에서 많이 근무했고, 중앙지검 형사부장도 역임했다. 경력상으로 보면 수사 능력이 충분해 보인다.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로 대폭 이양한 뒤 두 조직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찰 수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아들 문제와 관련한 그의 처신을 보면 ‘구악 기자’를 보는 듯한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정 전 본부장은 아들의 ‘학폭’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을 외면하고, 아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철저히 이용했다고 한다. 법전문가로서 온갖 제도를 동원했다고 한다. 학폭 문제를 드물게 대법원까지 끌고 가 패소할 때까지 해결을 미루었다. ‘법대로’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보통 아버지라면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공인의 자세는 아니다. 그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인권감독관이었다.하루 만에 뒤집을 인사를 걸러내지 못한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정말 걱정스럽다. 원인은 분명하다. 인사 검증 과정에 경찰이 가족의 학폭 관련 내용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찰이 이런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제시했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을 반대한 윤석열 검찰총장 꼴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아도 윤 대통령의 주장이 강하고, 그 앞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인사와 검증을 검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의 인사기획관, 인사비서관, 법률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모두 검사 출신이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맡아온 인사 검증도 지난해 6월부터 법무부에 신설한 인사정보관리단이 맡고 있다. 정 본부장 인사를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취소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실수가 발생한 원인을 바로 잡지 않으면 언제든 반복할 수 있다.윤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TV 드라마에 나온 강화도령 철종이 떠오른다. 강화도 유배 시절 알던 친구와 친형, 두 사람을 데리고 세도정치에 맞선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다. 윤 대통령은 검사를 너무 많이 기용한다. 다른 자리에는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을 밀어 넣느라 무리한다는 인상을 준다. 윤 대통령은 강화도령과 다르다. 세도정치에 숨도 못 쉬는 허수아비 왕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인재를 다 데려다 쓸 수 있는 대통령이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라고 했다. 공신을 쓰더라도 그럴만하다는 공감은 얻어야 하지않나. 후보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까지 그렇게 약속했다.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이면 어이없는 착각과 정책 실패를 할 수 있다. ‘집단사고의 오류’다. 우리보다 나은 집단은 없다는 오만, 우리가 정의라는 과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성이 이런 오류로 이끈다. 검사는 인재들이다. 현 정부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적폐 척결이고, 윤 대통령이 박수받는 부분도 그것이다. 그렇지만 과유불급이다. 나비도 과거의 껍질을 벗어야 날 수 있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2-26

청년들에게 삶을 허하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실업계 10대 여고생 소희의 자살을 조명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면서 절망한다. 고교생 신분으로 콜센터에 현장 실습하러 간 소희가 마주한 현실은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것이었다. 악의적인 고객들의 악담과 폭언, 희롱과 협박을 끝까지 참으면서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소희. 실적을 초과하는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팀장의 약속은 허언이 되는데, 그것은 학교가 회사와 실습생을 상대로 체결한 이중 계약서가 원인이다.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실업계 고교생들의 자살과 사고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20∼30대 청년들도 마주해야 하는 죽음 역시 익숙한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2022년 1월부터 실행된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기업들과 전경련이 극구 반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2023년 1월 26일 기준 229건에 이르는 처벌법 적용 사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에 불과했다.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죽음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협력기구(OECD)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한국은 23.6명을 기록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수치는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통계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인의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10대 사망의 43.7%, 20대 사망의 56.8%, 30대 사망의 40.6%가 자살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창한 젊음과 화사한 미래기획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는 10대부터 20∼30대 청년들이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삶을 접고 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젊은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이른바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문제, 우울감, 사회적인 소외와 고독 같은 빤한 원인만 들먹일 뿐 묘안은 없다. 더욱이 자살을 대비하는 예산은 연간 417억 수준으로 일본의 6조7천억에 비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기야 홀로 죽고 난 연후에 발견되는 연간 고독사 전국 통계조차 온전히 잡지 못하는 죽음의 후진국이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나라에서 삶의 의미가 얼마나 진지하게 수용될 것인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사정이 이럴진대 정부와 언론이 날마다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합창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극도로 낮은 출산율 때문에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며 하루가 멀다 않고 떠들어대는 인구문제가 더는 새롭지도 않다.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이 된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청년 세대가 자살과 사고로 줄지어 죽어 나가는데, 무슨 출산율 타령인가?! 주객전도(主客顚倒)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 아닌가?!우리 곁에 있는 생명은 뒷전이고, 아직 오지 않은 생명만을 간절히 희구하는 희화적(戱畵的)인 장타령(場打令)을 되풀이하는 희한한 나라의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삶을 허하라!

2023-02-26

新人들에게 ‘진입장벽’ 높은 조합장 선거법

지난주(23일) 공식선거운동에 들어간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선거법이 현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불공정 논란이 일고 있다. 신인 후보들에겐 선거법이 마치 진입장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전국 1천300여 곳의 농협·수협·축협·산림조합장을 뽑는 제3회 동시 조합장 선거는 다음달 8일 치러진다. 경북도내에서는 178개 선거구에서 조합장 선거가 치러지는데 단독 입후보 선거구 42곳을 제외하고, 모두 136곳에서 340명의 후보가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대구는 26개 선거구(2곳 단독입후보)에서 6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현재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신인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동시조합장 선거법은 벽보 및 공보, 어깨띠 이용, 전화·문자메시지, 공공장소에서 명함 배부 등으로 선거운동을 제한하고 있다. 토론회는 일체 허용하지 않으며, SNS선거운동도 금지하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현역 조합장에 비해 신인들은 손발을 묶어 놓은 것과 다름없다. 이러니 선거에 첫 출마한 후보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조합원만 골라 명함을 줘야 하는데, 누가 조합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려고 해도 조합원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다”며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동시조합장 선거는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 이어 ‘제4의 선거’로 불릴 정도로 선거전이 치열하다. 선거가 과열되는 이유는 조합장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조합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당선되면 4년 임기 동안 업무추진비와 억대의 연봉에다 직원들의 인사권까지 좌지우지한다.조합장 선거가 지난 2015년부터 중앙선관위에 위탁된 이유는 선거가 너무 혼탁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위탁선거법이 신인들의 진출을 사실상 차단하는 장벽이 될 정도로 규제가 심해선 안된다. 적어도 후보자들이 조합의 발전 방향과 과제 등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합동 연설회 또는 정책토론회)는 만들어줘야 한다. 조합장을 수십 년간 한사람이 독식하는 지역이 많아져서야 되겠나.

2023-02-26

삼겹살데이

우정구 논설위원 특정 날짜에 맞춰 의미를 부여하는 ‘데이 마케팅’은 소비자가 특정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다. 국내서는 1990년 빼빼로데이(11월 11일)가 처음 등장한 이후 밸런타인데이(2월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 블랙데이(4월 14일) 등 수 많은 날이 마케팅용으로 쏟아져 나왔다.3자가 겹치는 3월 3일이 삼겹살데이로 불리는 것도 그 중 하나다. 2002년 경기도 모 축협에서 구제역으로 힘든 축산농가를 위해 돼지고기 소비 촉진과 양돈산업 진작을 위해 낸 아이디어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이런 데이 마케팅은 처음에는 상술의 한 단면으로 비판도 있었으나 행사에 의미가 가미되고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문화로 정착한 측면도 있다. 또 삼겹살데이처럼 국내 양돈산업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착한 의도가 있는 행사는 행사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삼겹살데이를 시작한 지도 벌써 20년이 됐다.돼지고기 삼겹살은 갈비뼈를 떼어낸 부분에서 복부까지의 넓고 납작한 모양의 부위다. 살과 지방이 3번 겹쳐 있어 삼겹살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선 외식, 회식자리의 선호도 1순위 음식이다.지방이 많다는 이유로 일부 기피도 하나 소고기보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권장하는 이도 많다. 2018년 영국 BBC는 돼지비계가 과학자가 선정한 세계 100대 수퍼푸드 중 8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돼지고기 비계에는 올리브유에 함유된 비타민B와 오메가3가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했다.때마침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 미나리가 청도와 경산, 팔공산 등지에서 본격 출시되고 있다.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풍부해 혈액순환에 좋다는 미나리와 삼겹살로 건강을 챙겨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26

IMF보다 더 심각하다는 대구 부동산시장

대구지역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2008년 IMF때 보다 더 심각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이다. 대구상의가 지역업체를 상대로 실시한 ‘미분양 아파트 증가에 따른 영향 및 업계 애로사항 조사’에서 지역업계는 “이미 미분양 증가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으며 자금 사정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히고 지금의 미분양 사태는 IMF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답했다.외환위기에 내몰린 대한민국이 IMF에 긴급구제 금융을 신청할 당시 우리나라 집값은 최고 3분의 1수준까지 폭락했다. 지금 대구의 미분양 사태에 대해 관련업계가 느끼는 분위기는 IMF 당시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대구지역의 미분양 물량은 현재 1만3천세대를 넘었다. 전국 미분양 물량의 19.7% 수준이다. IMF 당시 대구지역 미분양 물량이 전국의 12.9%였던 것보다 더 높다. 지난해 대구지역의 평균 청약률은 0.5대 1이었다. 아파트를 분양받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경매 낙찰률도 27.5%로 역대 최저치다.부동산 매매가 거의 성사되지 않는 등 부동산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는 상태다. 건설사의 부도 우려와 금융권 부실 증가도 걱정이다. 건설업은 내수산업을 진작하는 대표업종이다.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빠르다는 말이다.대구시도 지역 아파트 경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신규 주택건설사업 계획의 승인을 주택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보류했다. 공급물량 조정을 통해 미분양분 소진을 유도할 계획이나 고육지책이다. 실효적 성과는 기대키 어렵다.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가 나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IMF 당시 정부는 지방 미분양대책을 발표,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다양한 후속 조치로 미분양 물량이 빠르게 줄어든 사례가 있다.지역업계도 미분양분 매입과 경영안정자금 지원 등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긴급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집값이 급격하게 올라가서도 안 되지만 개인의 자산이 급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IMF때 보다 심각하다는 지역업계의 위기감에 대해 정부가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2023-02-26

독서율 높이는 법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올해 EBS에서는 우리나라가 문해력 등 사회적 소통 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독서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역사를 바꾼 책’을 선정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독서율이란, 15세 이상 중에서 일반도서를 일 년간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이다. 교과서, 학습 참고서, 수험서나 잡지와 만화는 제외되지만, 단행본으로 발행된 것이라면 그림책이든 동화든 소설이든 상관없다. 웹소설도 도서에 포함된다.그러고 보니, 독서와 관련된 에피소드 두 개가 생각난다. 하나는, 동네에서 20여 년째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초창기 독서 모임에 참여하던 한 지인이 서울대 나온 자기 이웃에게 권했더니 책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손사래를 치더라는 일화이다. 지금 생각하니 거절하는 핑계였나 싶기도 한데, 그때는 명문대 졸업생이 얼마나 책에 질렸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놀랐다.다른 하나는 작은애 이야기다. 작은애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읽은 책은, 절반은 그림으로 된 ‘구렁덩덩 신선비’와 ‘나무꾼과 선녀’ 딱 두 권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서 폭발적으로 독서량이 늘더니 지금도 직장에서 독서 동아리에 들어 책을 읽고 있다. 학년에 맞는 책 읽어야 한다고 강요받지도 않고, 자기가 선택한 책을 책장이 떨어질 정도로 읽은 것이 즐거운 기억으로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부터 종이책 독서율은 40%이고, 전자책, 오디오북을 포함한 종합 독서율은 47.5%라고 한다. 성인의 절반 이상이 어떤 형태의 책이든 1년에 단 한 권도 안 읽은 셈이다. 독서율 기준이 이렇게 낮은 것을 보면, 독서율이 낮다는 것은 문해력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책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실제로 2018 책의 해 기념으로 진행된 ‘독자 개발 연구’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강압적인 독서로 인한 독서 혐오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각종 기관에서 정해주는 추천 도서로 학습용 독서를 하다 보니 독서가 즐거운 활동이라는 경험이 부족하고, 그래서 성인이 되면 독서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즐거운 독서 체험은 독서율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핀란드가 세계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이유도 어렸을 때부터 즐거운 독서 체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2018년 국제독서콘퍼런스 영상을 보니, 핀란드에서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독서 도우미 개를 이용하여 어린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단다. 유치원과 학교는 도서관과 연계하여 독서를 촉진하며, 도서관은 지하철 역 근처에 있어 이용 편의성도 높다. 이런 제도 속에서 즐거운 독서가 생활화되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책을 스스로 발견해나가게 되고 나이가 들어도 책을 찾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19세 이상의 독서율을 높이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즐거운 독서 경험을 많이 하게 하는 것,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2023-02-26

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마을, 벤치마킹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벤치마킹이란 어느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상대를 기준, 목표로 삼아 자기 기업과의 성과 차이를 비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뛰어난 운영 프로세스를 배우면서 부단히 자기혁신을 추구하는 경영기법이다.필자는 기업에서 강의할 때 ‘혁신활동의 왕(King)이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하고 답은 바로 벤치마킹(Bench marking)이라고 한다. 그만큼 벤치마킹은 혁신의 지름길이다.필자는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가까운 청도 여행을 갔다. 청도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고, 먹거리도 있었다. 청도 읍성에서의 성벽 거닐기, 곤장 맞는 풍경보기, 한재 미나리와 삼겹살 먹기 등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그러나 뜻하지 않게 감동을 받은 것은 청도 신도리 마을의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을 관람하고 느낀 점은 기업에서 전원 참여 혁신활동을 하는 모습과 새마을 운동이 참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세상을 바꾼 43일-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마을 이야기’ 책을 펴면 “1957년 여름, 43일 동안 1천810명이 품을 보태 폭4m, 총 길이 2.5km 농로 확장공사를 맨주먹으로 끝마쳤다. 길하나 뚫었을 뿐인데 동네가 달라 보였다” 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마을을 벤치마킹하여 1970년 대한민국 새마을 운동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새마을 운동과 혁신활동으로 성공한 기업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그 중 2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첫째, 전원참여의 협동정신이다.새마을 운동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1+1=2가 아니라 1+1=2+ a라는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능률이 오르고, 자신감도 생기고, 단결심도 강해져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매헌 박승직 선생은 “잘사는 비결은 모두가 합심하여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움직일 때 비로 이룰 수 있다”라고 한 것처럼 기업은 직원이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움직이도록 면밀히 살펴야 한다.둘째, 살아 숨쉬는 전략이다.새마을 운동으로 한번에 Jump Up한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마을을 발전시켰다.진행은 기반조성단계(1970~73), 사업확산단계(1974~76), 효과심화단계(1977~79), 체제정비단계(1980~89), 자율확대단계(1990~99)의 5단계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진행하였고, 마을 수준에 따라 기초 마을, 자조 마을, 자립 마을, 자영 마을, 복지 마을인 5개 마을로 분류하고 단계별 인증을 해 주었다.기업도 혁신활동을 스텝(Step)활동을 추진하여야 한다. 학교를 다닐 때 1학년을 잘 보내야 2학년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것처럼 건너뛰지 말고 단계별로 제대로 추진하여야 한다.한강의 기적을 이끈 새마을 운동, 한국 경제력 발전에 시초가 된 새마을 운동, 개발도상국 벤치마킹 대상 ‘No1’인 새마을 운동을 기업이 제대로 벤치마킹 하길 기대해 본다.

2023-02-26

일본 다케시마(독도)의 날은 억지 주장

김두한 기자 경북부 일본의 시마네현이 22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의 날 기념식을 했다. 대한민국의 땅을 자기들 땅이라며 기념식을 하는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다.지난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의회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다케시마의 날 행사하고 있다.올해도 시마네현 현민회관에서 자민당의 나카노 히데유키내각부 정무관(차관급)과 국회의원 6명 등 235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했다.이들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는 지난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이 소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편입했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그렇다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의 독도편입이 과연 법적 효력이 있느냐가 논쟁 거리이다.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끼도와의 거리 서북 85리에 달하는 도서를 죽도(竹島)라 칭하고 본 현(시마네현) 소속 오끼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정한다’라는 내용이 전부다.그런데 편입 서류의 일본 소장(所藏)의 유일본인 이 자료는 고시용이 아니라 붉은 주인(朱印)이 뚜렷한 회람용에 불과해 일본의 주장과 실제 고시됐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 일본의 통상적인 편입 고시와 전혀 다르다.또 지난 1905년에 발발한 러일전쟁 당시 해전 상황을 보도한 일본정부 관보에는 해전의 중심지역을 소개하면서 편입했다는 2월22일 이후에도 ‘편입한 다케시마’로 쓴 것이 아니라 ‘리앙고루도암’이라고 적었다.지난 1905년 6월 5일 일본관보 역시 러일전쟁의 주요 전투 지역이었던 독도를 ‘리앙고루도암’이라 했고, 그해 9월 18일 부산주재 일본영사 아리요가 일본정부에 보고한 관보에도 ‘리앙고루도암’이라고 적었다.당시 일본 영사는 소위 시마네현고시 제40호로 독도를 편입한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시마네현 고시 이후 관보에도 계속 ‘리앙고루도암’이라고 적고 있어 시마네현고시가 실제 고시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1905년 1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각의 결정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진지를 독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정황들을 볼 때 일본은 러일전쟁을 앞두고 유리한 진지(독도)를 선점하고자 벌인 사기 행각임이 명백하다.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독도가 시마네 현에 편입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밝히고 전범국가로서 역사앞에 사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kimdh@kbmaeil.com

2023-02-23

청년 나이, 노인 나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통상 20대를 청년이라고 한다. 노인은 65세가 기준이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늘고 인구 구성비가 변하면서 청년과 노인 연령 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지자체마다 각종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년 상한 기준이 제각각이다. 대상자인 청년들이 심한 혼란을 겪는다. 조선시대 성인 기준은 소위 ‘이팔청춘’16세였다. 청년기본법에는 19~34세를 청년이라고 한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15~29세, 지방공기업 채용시 34세까지를 청년으로 본다.전통시장법에는 39세까지 청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15~39세 까지가 청년인 셈이다. 이렇게 청년 나이가 들쭉날쭉하다보니 청년 정책자금 지원 등 여러 곳에서 혼선이 생긴다.국회에서 청년 연령을 39세로 통일하자는 청년기본법 등 개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정당은 19~45세가 청년 당원이다. 지자체는 더 확대했다.인구 절벽과 마주한 경북 23개 시·군 중 13곳은 40대가 청년이다. 울진과 봉화군은 만 49세까지다. 청년 연령은 점점 확대추세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종전의 청년 개념을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행정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청년 나이 기준을 통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UN이 1956년 65세부터 노인이라고 칭한 이래 세계적으로 65세가 노인 기준이다. 한국은 노인복지법에 ‘65세 이상’ 경로우대 등 조항에 따라 65세 이상을 보통 노인이라 부른다. 대구시가 도시철도 적자 보전 해결책으로 불씨를 당긴 노인 무임승차 논란이 서울 등 대도시로 확산되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대구시는 도시철도 무료 이용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내년부터 2028년까지 해마다 한살씩 높이기로 했다. 대신 버스는 올해 75세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살씩 낮춰 2028년 도시철도와 같이 70세 이상이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이를 계기로 노인 연령 조정문제까지 불이 번졌다.최근 서울 노인들은 평균 72.6세를 노인으로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생활 습관 변화와 의료 환경 발달에 따라 예전 같으면 ‘상노인’이랄 수 있는 70세 노인이 50대의 건강을 자랑하는 것이 현실이다. 평균 수명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인 연령 상향 조정문제는 진작 제기돼 왔던 터다. 연령 조정이 불가피해졌다.하지만 노인 연령 조정은 정년 연장과 국민연금 및 노인 복지제도 개선 등 사회 시스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할 형편이다.유엔은 2015년 인류의 평균 수명 등을 고려해 생애주기를 5단계로 나눈 연령기준을 제시했다.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으로 분류했다. 100세 시대의 기준인 셈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만 65세까지는 청년이다. 곧 눈앞의 현실로 닥칠지도 모른다.청년과 노인 연령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문제를 본격 논의할 때가 됐다. 폭넓은 논의를 통해 새로운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2023-02-23

인구오너스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오너스(onus)는 인구보너스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인구보너스는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생산연령 인구(15∼64세)의 비중이 증가하여 노동력과 소비가 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에 인구오너스는 생산가능 인구가 줄고 부양해야 하는 인구가 늘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늪에 빠져 인구오너스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전문가 견해가 많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출생·사망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명이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라고 한다.2018년 0.98명으로 처음 0대에 진입한 이후 매년 추락하는 추세다. OECD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한 명도 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작년 우리나라 인구의 자연감소는 12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출생아는 25만명으로 가장 적었고 사망자는 37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16년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280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했으나 출생아 수는 반 토막이 난 상태다. 백약이 무효했다는 뜻이다.지방소멸, 인구절벽이란 말을 뛰어넘어 그보다 파괴력이 강한 인구지진이 곧 닥칠 거란 얘기도 들린다.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빗 콜먼 교수는 일찍이 “한국이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합계 출산율 0.6대 진입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저출산의 문제는 정부만이 해결을 할 수 있는 과제다. 과거 정부가 모두 실패한 저출산 대책을 윤석열 정부는 과연 해낼 지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2-23

삼성전자가 직접 대구서 스타트업 키운다

삼성전자가 지난 22일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서 ‘C랩 아웃사이드 대구 캠퍼스’를 개설해 대구지역 스타트업을 직접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 캠퍼스는 삼성전자가 지난 2018년부터 운영해 온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C랩 인사이드)을 대구로 확대한 공간으로 보면 된다. 이곳은 스타트업 업무공간, 다양한 규모 회의실, C랩 파트너 운영사무실, 휴게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C랩 인사이드’는 삼성전자가 임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구현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2년에 도입한 사내벤처 프로그램이다. 삼성전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임직원들의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신사업 영역을 발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경북과 광주에도 C랩 아웃사이드를 개설하는 등 스타트업 육성 생태계 지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간다.삼성전자가 이번에 ‘C랩 아웃사이드 대구’에 선정한 스타트업은 헬스케어·로봇·소재부품·환경 분야의 5개 업체(네오폰스, 클레어오디언스, 티아, 엠에프알, 뷰전)다. 지난해 9월부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의 추천을 받은 후, 전문가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이 스타트업들은 최대 1억 원의 사업지원금과 성장 단계별 맞춤형 컨설팅, 삼성전자 및 계열사와의 협력 기회 연결, CES 등 국내외 IT 전시회 참가, 국내외 판로 개척 등 향후 1년간 서울의 C랩 아웃사이드 스타트업들과 동일한 지원을 받는다.삼성전자와 대구시는 이미 2014년부터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8년간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력해 대구 185개, 경북 148개 스타트업들을 발굴했으며, 그 중 예비유니콘(기업가치 1천억~1조원) 기업 2곳도 육성하는 성과를 냈다. 대구는 삼성그룹의 뿌리와 다름없어, 다른 대기업에 비해 삼성전자의 대구투자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언급했듯이, 삼성전자가 직접 운영하는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이 잘 운영돼 참여 스타트업들 중에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이 꼭 나오길 바란다.

2023-02-23

지방대학 존폐 위기… 지방소멸 예고편

지방대학의 위기를 두고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지금은 지방권 대학 너나없이 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 꼴이다.지방소재 대학의 정원 미달은 학령인구 감소로 이미 예고가 됐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지금대로 가면 내년이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종로학원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3학년도 전국 시도별 대학 추가모집 상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는 총 180개 대학에서 1만7천439명을 추가 모집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 중 지방권 대학이 112곳이며 지방대학 수는 전년보다 16곳이 더 늘었다.대구와 경북지역 대학의 경우 22개 대학 중 거의 대부분인 19개 대학(포스텍 등 3개 대학 정시모집 없음)이 3천114명을 모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에서 추가모집 인원이 많은 지역을 순위별로 분류해 보니 1위부터 7위까지가 모두 지방이다. 경북은 그 가운데 1위라고 한다.지난 1월 종로학원이 분석한 정시모집 자료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국에서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26개 학과(14개 대학)로 밝혀졌으며 경북권은 여기서도 10곳으로 가장 많았다. 학과 학생 모집은 했으나 지원학생이 없으니 존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지방거점 국립대학도 비슷한 형태로 아픔을 겪고 있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방거점 국립대학의 자퇴생 수가 매년 급증한다. 2016년 3천930명이던 자퇴생 수가 2021년에는 6천366명으로 1.6배 증가했다.“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뜻에는 서울에서 먼 곳부터 망한다는 의미가 있다. 경제와 권력, 사람이 몰리는 중앙 집권화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지방대학이 문 닫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정부가 지방특색에 맞는 지방대학 육성을 위해 지방대학의 재정지원 권한을 지자체로 넘기겠다고 하나 학생들의 서울 지향주의가 꺾이지 않는 한 지방대학 살리기가 쉽지 않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특별한 접근법이 나와야 한다. 지방대학의 존폐위기는 지방소멸의 예고편일 뿐이다.

2023-02-23

인간과 인공지능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능(intelligence)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가 않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라 논리와 견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철학의 영역이었으나 지금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논리력, 이해력, 인과관계 파악 능력, 계획력,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능을 구성한다고 본다. 신경과학이나 뇌과학에서의 지능에 대한 연구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인간의 뇌를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컴퓨터로 가정한 연구가 그것이다.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 않고도 약물, 수술, 유전자조작 등으로 지능향상은 물론 사회적 기능이나 행복감의 증진까지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인간의 지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컴퓨터 시스템을 인공지능(AI)이라 한다. 바야흐로 산업과 일상생활 모든 분야에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오픈AI가 출시한 챗GPT가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픈AI사는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챗GPT가 대화 형식으로 추가적인 질문에 답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정확하지 않은 전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부적절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형 로봇을 챗봇(chatbot)이라 하는데, 지금까지 출시된 다른 AI챗봇에 비해 챗GPT가 주목 받는 이유는 기존의 챗봇과 기능적·기술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챗봇이 대화를 할 때마다 전후 맥락의 파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서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인터넷과 SNS의 상용화로 일대 개벽을 맞은 인간사회가 챗GPT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고도화된 챗봇의 상용화는 무엇보다 인간 지능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지구상의 대다수 인간의 지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따라야 할 시점이다. 삶의 질이랄지 생활의 패턴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반려동물 대신 사람과 흡사한 반려챗봇이 등장하게 된다면 인간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오지 않겠는가.챗GPT에게 챗GPT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양날의 칼’이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에는 분명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예측할 수 없듯이 그것이 인간에게 끼칠 영향의 범위도 미지수이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초인공지능의 출현이나 범죄에 악용될 우려, 인간성의 파괴 등으로 인류를 파멸시킬 흉기가 될 소지도 없지 않은 것이다.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 된다고 해도 우주 삼라만상은 그대로이고,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일부라는 생물학적인 조건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라든지 윤리의식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 같다.

2023-02-23

큰 재난의 작은 신호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최근에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큰일을 당했다.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 나버린 것이다. 사소한 신호를 가볍게 생각했고 또 무관심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시골길을 가는데 엔진 부위에서 툴툴거리는 작은 소음이 들려서 바퀴에 뭐가 끼었는가 하고 부근의 정비소에 가보려다가 다시 조용해지기에 도착하여 엔진 덮개를 열어보고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었다.저녁때 돌아오면서 속력을 좀 냈더니 소음이 심해졌다. 집 부근 카센터도 일찍 문이 내려져 있기에 아파트 주차장까지 끌고 와서 찬찬히 살피고 있는데 지나가던 이웃 분이 차의 소음을 들었는지 엔진이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렉카를 불러 정비공장에 가세요’한다.다음날 견인차를 불러 정비공장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엔진 오일의 고갈로 내부 손상이 심해서 엔진 전체를 교체해야 하며 요즈음은 부품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이 다니지 않았고 차량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나 보다. 얼마 전 계기판에 노란 경고등이 왔을 때 엔진 오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는 주유할 때 엉뚱하게 엔진 세정제를 넣었고, 이후 빨간 불이 왔을 때도 냉각수만 채우고는 무심히 지났던 것 같다.일주일 후 찾으러 갔더니 수리비가 엄청나다. 엔진 오일 30년은 넣을 수 있는 비용이다. 10년이나 타던 나의 애마가 몇 번이나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탓이다. 사소한 초기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대형 사고를 자초한 것인데, 사람으로 말하면 가슴 아플 때 혈관주사라도 맞으면 될 것을 심장 이식수술까지 한 셈이다. 우리의 몸도 그렇다. 작은 통증을 느끼고도 ‘뭐 어때서? 설마….’ 하며 내버려 두면 심각한 중병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사태 불감증으로 처리를 미루는 동안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또 며칠 전 휴대폰의 사진을 노트북에 옮기려는데 한참 깜빡거리다가 그만 화면이 먹통이 되어버렸다. 다시 시도했더니 갑자기 화면이 바뀌며 저장해 두었던 것들이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써놓은 글, 나의 기록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간 데이터를 백업해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메모리를 뒤지다가 기억에도 없는 곳에 옮겨져 있는 자료를 다행히 찾아냈지만 다른 기능은 불능이었다. 몇 달 전부터 낌새가 있어도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는데 나의 귀중한 자료를 다 잃을 뻔했다. 모든 큰 사고에는 경미한 징후가 반드시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본다.지난 이태원 참사도 초기의 사태를 간과하지 않고 잘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우리의 현 정치국면도 ‘나와 무슨 상관이랴….’는 ‘중도(中道)와 무관심’인 듯한 국민의 정치의식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을지 모른다. 세계적 기후 위기도 지금부터 환경 변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대처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종말과 같은 대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을 것이다.작은 관심이 큰 사고를 예방하며, 사소한 해결이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이번 엔진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 다시 가슴에 새겨본다.

2023-02-23

봄이 오는 길목

정미영 수필가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비가 오다 긋다. 빗물에 젖어 있는 고즈넉한 산책로에서 나래비 서 있는 나무를 만난다. 언 땅 아래에 새봄을 알리는 새싹들이 숨죽이고 있듯이 나무들의 몸피 속에서도 새순들이 나붓이 엎드려 있는 것 같다.입춘이 지나고 나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진다. 봄 마중을 하러 모처럼 집을 나서니 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형산강 가장자리에 있던 새떼들이 눈에 띈다.새들도 봄을 기다리는가. 손님맞이 단장을 하듯 깃털을 손질하고 물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가 세수를 한다. 첨벙거리는 새의 움직임에 바람도 일렁인다. 봄을 재촉하는 내 마음에 조급함이 더욱 짙어진다.강변 의자에 앉아 윤슬을 바라본다. 그 반짝거리는 햇살에 잇닿아 오래된 추억 속의 영화 한 편이 바람에 실려 온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년 작)’이다. 자녀 교육에는 엄격하지만 아이들과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가는 자상한 면모도 갖춘 아버지 맥클레인과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모범생이었던 형 노먼, 형과는 달리 자유분방한 성격의 동생 폴이 주인공이다.어느 날, 거리에서 폴이 사망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지만 가족들은 그를 잊지 못했다. 맥클레인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는 말로 아들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표현했다. 가족은 가장 소중한 관계이지만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존재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아,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감동을 받는다.내 기억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명문장이 있다.‘인생은 예술품이 아니고,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낸 노년의 노먼이 강을 찾아 했던 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간 순간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뜻으로 나는 해석하고 있다.며칠 전, 보람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방 수북에 다녀왔다. ‘작가와 함께 수북수북’ 강연회에 문태준 시인이 초빙되어, 기억과 서정을 주제로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은 아내의 고향인 제주 애월읍에 터를 잡은 지 3년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육지로 왔을 때 만산이 보고 싶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소박한 일상을 전하면서도 기억 저편에 머물고 있던 고향과 가족과 사물에 대해 편안하게 들려주었다.그리고 시 작법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적인 사건이 있어야 하고, 여지를 내어 보이는 것이 시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자분자분 서정을 풀어내는 작가에게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시인의 눈으로 봤을 때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냐는 내 물음에 문태준 시인은 생태적인 삶을 언급했다. 작가의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2022년 작)’에 실린 몇 편의 시를 예로 들며 부연했다.“나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 먹고 남긴꾸지뽕 열매 반쪽을 얻어먹으며 별미를 길게 즐겨요”-‘별미(別味)’ 중에서 발췌“우리는 울고 웃으며 풀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옮겨 감았다”-‘뿌리’ 중에서 발췌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공존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나눔과 교섭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시인에게 나는 깊은 공감을 가졌다.지금, 봄이 오는 길목에서도 강물처럼 시간은 흐르고 있다. 모든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을 만났던 추억을 비롯해 나만의 소중했던 찰나를 기록으로 남긴다면 오래도록 나의 인생은 곰곰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며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으리라.

2023-02-22

노로바이러스와 패류독소, 그리고 방사능 오염

겨울방학이 끝나기 직전, 설 명절을 앞두고 스키장을 찾았다. 스노보드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온 가족이 설산으로 향했다. 평일 야간개장이었지만 스키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그재그로 뒤뚱거리며 슬로프 내려오기를 반복하자 아이는 금세 익숙해져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자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영하 10℃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생애 첫 스노보드 타기에 성공했다.그런데 그날 밤, 잠에서 깬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발열을 동반한 구토와 설사, 복통으로 아이는 밤새 울었다.다음날 아침,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장염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생애 첫 보드타기로 근육통까지 얻게 된 아이는 급격히 까라졌다. 생굴을 먹었냐는 질문과 요즘 노로바이러스가 유행이라 사람 많은 곳에서 옮았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수액과 항생제 처방을 받고, 아이는 설 명절 내내 떡국이 아닌 죽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새해를 맞았다. 물론 엄마도 곧 감염돼 배앓이를 하며 명절을 보냈다.노로바이러스 장염은 겨울철 본격 유행하는 바이러스성 식중독이다.감염된 환자의 구토에서 나온 입자가 공기 중 에어로졸 형태로 대규모 감염을 일으킬 정도로 전염성이 높다. 세균성 식중독과 달리 낮은 온도에서 생존하며, 60℃의 온도에 30분간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 위생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국가에서 빈발해 ‘선진국형 장염’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수산물 중에는, 특히 생굴을 먹었을 때 노로바이러스 감염이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가 열 살짜리 아이에게 생굴을 먹었냐고 물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굴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물컹한 식감으로 어린이용 식재료가 아니다. 그럼에도 의사는 수산물 매개질환의 원인으로 굴을 지목한다.굴 양식업자들이 억울한 것도 이 지점이다. 매년 겨울 유행하는 노로 바이러스 자체를 막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염성이 강해 한번 유행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익혀 먹기를 권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회를 즐기는 식문화로 인해 사람들은 여전히 생굴을 선호한다. 100℃에서 1분만 데쳐도 바이러스는 사라지지만 굴전이나 굴구이 등 작정하고 요리를 하지 않는 이상, 싱싱한 굴은 그냥 날로 먹는다.수산물 매개질환은 이 뿐만 아니다. 날이 따뜻해지는 3월부터는 패류독소가 기다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노로바이러스의 발생 빈도는 급격히 낮아진다. 대신 패류독소라는 새로운 복병이 나타난다. 특히 올해는 예년과 달리 패류독소 발생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돼 해양수산부는 1월부터 대응태세에 나서고 있다.패류독소는 유독성 플랑크톤을 섭취한 패류 내에 축적된 독소로, 3월부터 5월까지 최고치를 나타내다가 평균 기온 25℃ 이상인 여름철에 소멸된다.조개류와 멍게, 미더덕 등이 대표적이다. 패류독소 수산물을 먹을 경우 근육마비와 복통, 설사 등을 일으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마비성 패류독소가 주로 발견된다. 섭취 후 30분 이내에 입술 주위로 마비가 나타나고 두통과 메스꺼움, 구토 등을 동반한다. 심할 경우는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특히 패류독소는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아 발생지역은 패류출하금지해역으로 지정되고 정부의 관리 하에 들어간다.해양수산부는 2월 현재, 작년 조사에서 패류독소가 검출되었던 해역에 대해 주 2회 조사로 독소의 허용기준 초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3월부터는 조사 지역을 129개로 확대해 주 1~2회 조사할 예정이다.허용기준 초과로 검출될 경우 패류출하금지해역으로 지정된다. 검출 패류는 엄격히 출하 금지되고, 어민들이 타 품종 출하를 희망할 경우 조사 후 허용기준 적합 패류만 출하할 수 있다. 봄철 임의로 조개류를 채취해 섭취하는 것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현미 작가 정부는 패류독소 발생 현황과 품종별 조사 결과 등을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안전나라(www.foodsafetykorea.go.kr), 국립수산과학원(www.nifs.go.kr) 누리집을 통해 신속히 알리고 있다.이 외에도 방사능 노출 수산물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이 올해 3월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힌 이상 방사능 오염 수산물에 관한 공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본격적인 방류가 이뤄지면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도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우리나라 등 주변국에서 수차례 시뮬레이션으로 피해 정도 등을 예측했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피해가 명확해질 경우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다.매년 발생하는 피해에 더해 새롭게 나타날 방사능 오염수 유출이라는 복병으로 수산업계의 시름도 깊어질 것이다.어업인들도, 소비자도 함께 윈윈할 수 있도록 정부의 다양한 정책과 지혜가 모아지길 희망해본다.

2023-02-22

샤일록이 된 은행

홍석봉 대구지사장 샤일록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다. 욕심 많고 인정 없는 인간의 대명사로 꼽힌다. 은행이 샤일록 평가를 받을 정도로 탐욕을 부리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국민들은 고통에 허덕이는데,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면서도 고금리 돈장사를 계속했다. 금융당국과 국민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금융권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앞다퉈 대출금리를 내렸다. 신규 채용도 늘린단다. 돈장사로 잇속만 챙기다가 국민 시선이 싸늘해지자 내놓은 금융권의 고육책이다.5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대구은행도 비슷한 상황이다. DGB대구은행은 지난해 전년보다 17.5% 증가한 5천1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당기순이익(3천925억원)은 18.9% 늘었다. 금리 장사 덕분이다. 대구은행은 은행별 예대금리차 순위도 국민, 하나, 신한은행보다 높다. 지방은행 중에 부산은행 보다 높다. 이자를 그만큼 많이 받아챙겼다는 얘기다.반면 은행들은 점포수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비대면 거래가 늘었다는 이유다. 지방은행의 영업점도 크게 줄었다. 지방은행 중 점포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이 대구은행이다. 대구은행의 점포수는 지난 3년간 42개가 줄었다.은행 점포 감소는 금융 서비스 사각지대 확대로 이어진다. 접근성 제한 등 고령층 고객의 소외를 불러온다. 지역 경제 및 창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점포 축소를 자제하라고 경고했다.금리 추가 인하 등 국면전환에 나섰지만 이미 국민들의 눈밖에 났다. 샤일록이 된 은행의 모습에 국민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대구은행도 먼 산의 불이 아니다. 지역을 더욱 돌아봐야 할 것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2-22

‘노란봉투법’에 대구·경북 경제계도 비상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그저께(21일)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하자, 현대차나 민노총파업에 특히 취약한 대구·경북 경제계도 비상이 걸렸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날 해당법안에 대해 정부와 경제단체들이 극렬반대하고 국민의힘도 저지했지만, 표결을 밀어붙였다. 이 법안은 일단 법안심사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로 넘어갔지만, 야당은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장이 법안 처리를 미루면 60일 후 본회의에 직회부할 방침이다. 법안심사가 법사위 회부 60일 이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에 직접 상정할 수 있다.노란봉투법은 폭력·파괴행위가 아니면 불법적 쟁의행위도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고, 하청 업체 직원이 원청인 대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대구·경북지역에 집중된 자동차부품업체 노조의 경우 현대자동차를 직접 상대해서 단체교섭을 할 수 있고, 교섭 결렬 시 파업도 벌일 수 있다.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2·3차 협력사까지 하청업체가 5천개가 넘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 만약 일정 기간을 두고 연쇄파업이라도 벌이면 1년 내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법안이 폭력·파괴로 인한 경우라도 노조의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라면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 것도 문제다. 불법파업에 대한 사용자측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야당은 이 법이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을 막자는 취지라고 하지만, 경제계는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연쇄파업이 일상화되고, 어디까지가 불법적 파업인지도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는 ‘황건적 보호법’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후폭풍에 대한 경제계의 공통적인 걱정은 우리나라가 ‘파업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파업천국이 되면 결국 기업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오게 돼 있다.

2023-02-22

지진 가장 많이 나는 경북, 내진율은 전국 하위

튀르키예 대지진 이후 지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경북은 지진 빈도나 규모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히나 지진을 방어할 내진율은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고 있다.경북도에 따르면 도내 건축물, 교량, 터널, 가스시설 등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은 지난해 12월 기준 54.7%로 전국 평균 66.2%보다 훨씬 낮다. 특히 내진 대상 4천144곳 가운데 1천879곳은 보강이 바로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경북의 내진율이 전국 평균보다 낮다는 것은 지진발생 등 유사시 피해가 타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북도는 내진율이 다른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원인에 대해 대상 노후시설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고 지방재정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특별한 대책 마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경북도내 민간건축물의 내진율도 10.9%로 전국 평균 15.3%보다 크게 낮다.우리나라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규모 5.0이상 지진의 발생 빈도가 그 이전보다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2016년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지진은 국내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강력했다. 다음해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지진은 피해액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경북은 1978년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2.0이상 지진 2천101회 가운데 31.6%인 664건이 발생한 곳이다. 특히 경북에서 일어난 지진의 76%가 동해안에서 일어나 동해안지역을 중심으로 각별한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경북도는 2016년 지진대응 5개년 종합대책을 발표해 당시 35%인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을 2021년까지 70%로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민간건축물도 인센티브를 활용,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내진 기능이 갖춰져 있음을 알리는 지진 안전성 표시제 등도 실시키로 했으나 현재는 흐지부지하다. 지진은 인간이 대응하기도 어렵지만 미리 준비하는 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재난이다. 지금부터라도 경북도의 신속한 대응이 있길 바란다.

2023-02-22

학교폭력, 나라의 문제

장규열 한동대 교수 배우려고 학교에 간다. 다양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습득하고 경험하여 바람직한 인성으로 자라기 위해 학교교육을 받는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는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부모와 교사, 친구와 이웃이 성장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배우고 자라는 길에서 주변으로부터 받는 신호와 목소리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긍정적인 부추김과 부정적인 두려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들게 된다. 한때 부모나 교사가 무서워 억지로 구겨넣듯 배웠던 과목들이 있다. 느꼈던 공포는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무엇을 배웠는지는 생각도 하기 싫지 않은가. 학교폭력은 어른들만 저지르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가 두려움의 대상이라면, 일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불안과 분노, 스트레스와 우울증세, 무력감과 실패감에 휩싸이고 학교성적이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피해학생의 일상이 무너지게 된다. 길게는 사회성의 저하, 정신과민증, 대인기피증, 인격장애현상 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Bullycide)에 이르기도 한다. 일상이 망가질뿐 아니라 일생을 망치게도 된다. 최근 OTT 인기드라마에 등장한 한 연예인에게 오래전에 학교폭력을 당했노라는 고발이 있었다. 가해자는 심심해서 장난삼아 생각없이 벌인 일이 피해자에게는 평생을 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터이다. 피해는 학교현장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번져 24시간 발생하므로 가해자로부터 피할 방법이 없다. 학교폭력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두려움이 그늘진 마당에 교육이 일어날 방법이 없다.폭력은 벌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학교폭력은 더욱이 사후수습보다 사전예방이 먼저다. 미국학생들은 학폭과 관련하여 세 가지 다짐을 한다. 학교폭력이란 해서도 안 되고, 하는 걸 목격했을 때 간과해도 안 되며, 당했을 때에 가만히 있어도 안 된다. 이와 함께 연중 꾸준히 학교폭력의 위험과 폐해에 관해서 경계하고 가르친다. 학폭에 대하여 무관용원칙(Zero tolerance principle)을 가지고 강력하게 대처하는 미국이 다소 심하다 싶지만, 자칫 총기사고와 연결되는 그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겠다. 벌어진 학교폭력에 대응하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교육지원청 주도로 구성되지만, 구성과 심의방법 및 처분결정내용 등은 보다 전문적으로 정교하게 기획할 필요가 보인다. 학폭위의 논의과정이 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 처벌에 방점을 두는 현황을 재고하여 피해자와 가족들이 장기적으로 겪을 어려움과 상흔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일에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과 학대, 놀림과 따돌림은 현대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폭력이 교육의 현장에서 똬리를 트는 일에는 전쟁이라도 선포해야 한다. 한 아이에게 참다운 교육이 진행되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학교폭력을 학교만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전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야 한다. 다음세대를 바르게 키우는 일보다 중요한 숙제가 어디 있을까.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2-22

할매카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주 손자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10명의 원생에 축하하러 온 학부모와 조부모가 족히 50명은 더 돼보였다. 우리만 해도 아들 내외, 우리 부부, 외조부모까지 여섯이나 됐으니….작년 이맘때쯤이었다. 통원버스가 집 부근으로 오지 않는 유치원에 다닐 손자의 등하원을 고민하는 아들내외에게 선뜻 내가 맡겠다고 했다. 은퇴해 다소 한가하니 이참에 손자랑 시간을 보내도 좋을 듯싶었다. 매일 아침 등원과 오후 2시경의 하원을 도맡았다. 집이 가까운 데 있어 평소 자주 보던 사이지만 최소 1년간 매일 보게 됐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으랴 설렐 정도였다. 제일 먼저 차에 카시트를 얹고, 간식바구니를 마련해서 과자를 채웠다. 지인이 선물해 준 차량용 트레이와 쓰레기통도 장착했다. 승용차로 10분 내외의 거리였다. 그 짧은 시간에도 다정다감한 손자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나와 같은 할머니들이 두 분 더 계셨다. 특히 하원할 때 아주 잠시, 약 10분 정도 만나는 분들이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다 정이 들었다. 맘카페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초등학교나 유치원의 엄마들이 지역 육아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점차 규모가 커진 인터넷 커뮤니티가 됐다는 정보를 귀동냥했던 터였다. 우리도 맘카페같이 할매카페 하나 만들까요? 농담 삼아 한 이야기에 모두 동의했다. 매일이다시피 만나 어느 정도 친목이 생겼기에 쉬웠다. 우린 할맘 (할mom)은 아니었다. 할맘은 부모를 대신해 전적으로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라는데, 우린 그렇게까진 아니었다. 그저 맞벌이하는 자녀의 조력자로 손주를 돌봐주러 잠시 시간 내는 그저 할매 노릇인 거였다. 그렇다고 절대 소홀할 일은 아니어서 부득이한 경우엔 할배들이 대신했다. 일 년간 아이들 친외가의 조부모를 모두 뵌 것 같다.할매카페는 맘카페와 같이 인터넷으로 뭔가를 도모할 일은 결코 없기에 우린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즐겼다. 그래도 맘카페 흉내는 냈다. 아침에 아이들 등원시킨 후 근처 브런치 맛집을 찾아 브런치를 즐기는 것으로 첫 시작을 했다. 수다의 재료는 무궁무진해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오전 10시에 들어간 카페에 오후 2시까지 있기가 죄스러울 정도였다.내가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쉰 적이 있었다. 문자로 문안도 하시더니 일주일 후 다시 뵙자 병치레하여 힘들었을 테니 따뜻한 칼국수를 사주시겠단다. 칼국수 맛집을 수배했다. 칼국수 대신 병 끝에 먹으면 좋다는 찹쌀수제비로 몸을 데우고 커피를 마시며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누니 오랜 친구에 진배없었다. 나잇대가 비슷하고 동시대의 경험치가 있어서인지 공감하고 감동하고 때로는 파안대소하는 얘기가 끝이 없었다.손주들 졸업이 다가오자 우리의 만남도 끝날 것이 아쉬웠다. 애들은 졸업하지만 우리끼리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날까요? 물론 다같이 찬성. 할매카페의 다음 모임은 3월 둘째 화요일이다.

2023-02-22

이번 주에 등산 가실래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본격적인 등산의 계절이 오고 있다. 산림청 조사 결과 2021년 등산·걷기 (트래킹) 활동 인구는 전체 성인 남녀의 77%인 3천169만명으로, 2018년도 조사결과(71%) 보다 6% 증가하였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등산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등산은 심폐 기능과 근골격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대사성 증후군의 지표인 체중, 체지방, 허리둘레, 휴식시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혈전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반면에 위험요소도 상당히 많다. 특히, 심장마비가 온 경우 후조치를 빨리 할 수 없어 사망률이 높다. 무리한 등산은 관절에 부담을 준다. 탈수와 탈진, 열사병이나 저체온증, 추락 사고, 곤충이나 뱀 물림 사고 등 위험요소가 많다. 즐겁고자 간 산행에서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입는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심장의 문제는 예방이 최선이므로 산행 시 심박 체크를 하는 것이 좋다. 최대 심박수는 운동 시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최고 심장 박동수를 의미한다. 1분에 (220-나이) x 0.75로 계산하면 된다. 50세라면 1분당 심박수를 120∼130회 정도로 유지하면서 산을 오르는 게 좋다. 스마트워치 등을 이용하면 심박수를 쉽게 체크할 수 있다. 안정시 심박수가 1분당 100회 이상이거나, 왼쪽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면 심장질환의 유무를 확인한 뒤 등산을 해야 한다.무릎 관절은 187개의 관절 중에서 가장 크고 강한 인대와 근육이 붙어 있어 몸무게를 거뜬히 지탱하지만, 손상을 입으면 심각한 경우가 많다. 건강한 무릎의 연골은 걷는 동작에서 생기는 압박으로 더욱 튼튼해진다. 그러나 관절염이 생겨 연골이 상한 경우는 걷거나 뛰면 연골 손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쪼그려 앉기, 오래 서 있기 등 무릎에 나쁜 생활습관을 고치고, 칼슘과 비타민D가 풍부한 음식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관절 건강에 도움이 되는 증손활혈탕 같은 한약으로 관절 내 혈액순환 상태를 좋게해야 한다. 누워서 다리 들기, 물속에서 걷기, 실내자전거 타기, 계단오르기, 수영 같은 운동을 통해 허벅지의 앞, 뒤쪽 근육과 종아리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산을 잘 오르는 것만큼 잘 하산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을 내려올 때는 체중의 3∼5배 되는 하중이 무릎에 실린다. 하산 때는 근육의 긴장이 풀어져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을 삐기 쉽고, 다리의 힘이 풀려 무릎이 꺾이면서 십자인대가 손상되거나 허리를 다칠 수도 있다. 하산할 때는 올라갈 때보다 더 천천히 걷고 보폭을 줄이고 자주 쉬어야 한다. 스틱과 무릎 보호대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발목을 삔 경우 당일에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냉찜질을 자주 해줘야 한다. 부상이 심해서 반깁스를 한 경우라도 가까운 한의원에 가서 부항과 침 치료를 받아야 회복도 빠르고 후유증도 줄일 수 있다.산이 아름다워지는 3월이다. 평소 근력운동을 잘해서 몸을 준비하고, 일기예보를 체크해서 필요한 장비를 잘 챙기고, 경쟁하듯 빨리 등산하기 보다는 느긋하게 자연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산이 주는 풍성한 생명의 에너지를 잘 받으시기를 바란다.

2023-02-22

대구 중구 집행부와 의회, 끝없는 갈등

김재욱 대구본부 대구 중구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이 3개월이 지났지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발단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의회가 집행부에게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관광 예산 77억 원 중 52억 원을 삭감했다. 이에 집행부가 예산결산위원회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고발로 번졌다. 지난해 12월 27일 집행부 간부가 폭언을 했다는 이유로 중구의회 소속 구의원 세명이 대구시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어 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공직윤리와 사회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이후 집행부 관계자가 사과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갈등은 2월 임시회까지 이어졌다. 노조까지 가세해 더욱 시끄러워졌다. 더불어 의원들 간에도 패가 갈려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문제는 집행부와 의회의 다툼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구의 이미지 타격도 만만치 않다. 전국 기초의회 중 중구의회만큼 시끄러운 곳은 없다.현재 중구의회는 7명의 구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김오성 의장을 포함한 4명의 의원과 여성의원 3명이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이같은 대립 결과는 임시회에서 바로 나타났다. 주민들을 위해 발의한 의원들의 조례가 통과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편 나누기’, ‘불공정’이라며 서로 감정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의원들의 반응도 양단으로 갈린다.한쪽은 “아예 대화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좋은 대화 이후 하루가 지나면 바뀌었다”고 했고, 또 다른 쪽은 SNS 등을 통해 연일 상대편이 잘못했으며 본인들은 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또 심한 스트레스로 약을 섭취하는 이도 있고, 연일 한숨만 내쉬는 이도 있었다.현재 중구의회 의원들은 서로 상대방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 주장만 있다. 한쪽은 어설프게 손을 내밀었다가 지쳐가는 중이고, 또다른 한쪽은 버티면 이기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새다.중구 주민 A씨는 “구민의 참뜻을 실현하는 게 중구의회의 슬로건으로 알고 있는데, 마치 초등학생들의 감정 싸움을 보는 것 같고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며 “주민들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화해할 마음이 없는 의회가 어떻게 지역 현안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구민의 대의기관이 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이 상황까지 온 마당에 누가 나서서 중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오직 해결방법은 그들 스스로 알 것이다. /kimjw@kbmaeil.com

2023-02-21

기억의 알맹이를 여러 개 갖고 있다는 것

올해 나는 한번도 도전해 보지 못했던 취미를 시작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하며 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새해부터 새로운 일을 잔뜩 벌려 놓고 보니 사실 과거의 익숙한 것이 훨씬 나아 보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예전에 했던 익숙한 일과 취미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다보니 시작선 앞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움츠리는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결국 올해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책 한권을 마주했다.김영하의 ‘작별 인사’ 작품 속 주인공 철이는 안드로이드 휴먼이다. 철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IT 회사의 연구원이며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인류의 유산을 남기고자 한다. 철저히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있는지 의문도 없이 살아가다 어느 날 사건에 휘말려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모든 것이 생소한 날 것 그대로의 수용소에서 철이는 금방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혹독한 현실 속에서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재정립하며 혼란스러운 과정을 겪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을 성장이라 깨닫는다.철이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을 만나 우정의 관계를 맺으며 소속감을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추억이란 개념을 처음 입력하게 된다.동시에 철이는 의식과 존재란 무엇이며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파고들며 자신이 속한 세계를 다시금 바라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속에서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행운이므로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통과 수반된 사건은 기억되기 쉽다. 예기치 못한 순간과 갑작스런 변수는 분명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기억이라는 깊은 자국을 남긴다. 물론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 또한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지만, 내겐 행복의 기쁨이 기억에서 차지하는 크기보다 조금 더 고통의 기억이 깊게 새겨진다.고통과 함께 동반되는 좌절과 우울감은 분명 괴롭지만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것들 중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의 의식은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는 경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기억에 깊이 남은 고통의 경험은 결국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 되게 하고, 다시금 장애물 앞에 도달했을 때의 유연성과 여유를 가지게끔 한다. 고통을 이겨내 의연하게 생을 살아가는 기억의 알맹이를 여럿 갖고 있는 것이 내겐 중요하고 그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 오랜 기간 써내려 갈 숙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영화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전에 없는 고난을 처음 마주했을 때, 자신이 처한 공간을 청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마녀배달부 키키’ 속에서 주인공 키키는 어린 나이에 아무 능력도 없는 채로 집을 떠나 마녀수행을 가는 장면에서 위기가 시작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주인공은 어느 날 이유 없이 인간 세상과 다른 낯선 세계로 빨려 들어 가버리고 만다. 불현듯 낯선 세계에 진입한 것도 당황스럽지만 갑작스레 부모님이 돼지로 변하여 홀로 위기 속에 남겨진다.그러한 위기 속에서 그들은 역경을 이겨내는 첫 단추로 청소를 택한다. 고통의 세계에 진입하자마자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건의 위기와 절정을 지나 결론에 도달하여 씩씩하게 이야기를 완성한다.삶의 고통 뒤에 따르는 가치는 대부분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 때문에 고통을 자세히 보고 사유하며 깊이 헤아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고통과 가치는 아주 긴밀하게 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사실은 지금 나를 둘러싼 수많은 스트레스에 적절히 나를 던질 필요가 있다는 안도를 마주하게 된다. 고통을 향신료처럼 요리하여 고독을 즐기는 방법은 늘 생소하고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2023-02-21

튀르키예는 ‘사람’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방인에게 친절하다. 2005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갔다. 10월의 선선한 바람과 온화한 가을볕이 좋았다.아야 소피아 성당,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그랜드 바자르, 예레바탄 지하 궁전, 갈라타 타워 등 이름난 관광지들을 다녔다.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이틀째 날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고 늦은 저녁 호스텔에 오니 감기 기운이 돌았다. 당시 유럽을 강타한 조류독감 진원지가 튀르키예였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약을 먹어야하는데, 짐 부피를 줄인다며 온갖 비상약을 다 뜯어 넣어온 게 문제였다. 뭐가 감기약인지 몰라 소화제, 설사약, 멀미약, 진통제, 감기약 등이 섞인 알약 열 알을 한입에 털어 넣고 잤다. 멀쩡했다.다음날은 멀리 신시가지까지 걸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위에 놓인 갈라타 다리에 수많은 낚시꾼들이 고등어와 정어리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잡은 고기는 곧장 케밥 장수가 사 가서는 그릴에 구운 뒤 빵에 끼워 ‘고등어 케밥’으로 팔았다.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사치여서 노릇노릇한 냄새에 침이 고이는 걸 겨우 참아 지나쳤다.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저물녘이 됐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숙소로 돌아가는 방향을 잃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차비도 없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중년 남성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데이비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외모는 튀르키예 사람인데, 아마 영어 이름을 말한 것 같다. 퇴근 후 귀가 중이던 그는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함께 걸어줬다. 그의 친절한 동행 덕분에 갈라타 다리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다리만 건너면 숙소가 있는 구시가지였다. 다리 중간까지 같이 온 데이비스는 배고프지 않느냐며 고등어 케밥 두 개를 사서는 전부 다 내게 건넸다. 양손에 케밥을 들고선 다리 끝까지 혼자 걸었다. 걷다가 돌아보니 데이비스가 다리 가운데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만난 천사의 마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21세기 세계질서는 이념이 아닌 문명 대립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충돌하는 튀르키예를 들었다.튀르키예는 과거 오스만 튀르크 시대부터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지정학적 긴장이 팽팽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중세 오스만 제국을 배경 삼아 오늘날 튀르키예의 정체성 문제를 매혹적인 추리서사에 담아냈는데, 소설 속 연쇄살인범은 오스만 제국이 서양에 예속될 걸 두려워했지만,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융성하며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동서양 문명의 충돌은 여전한데, 2000년대 들어 EU 가입을 추진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유럽을 지향하는 한편 문화적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민들이 분열됐다. 특히 쿠르드족과의 갈등은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정학적, 문명적 갈등은 지금 아무 의미가 없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무려 4만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끔찍한 자연재해 앞에서는 기독교도 이슬람도, 서양도 동양도 없다. 그저 사람, 지극히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지금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18년 전 캄캄한 이국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린 내 처지처럼,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천사 데이비스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웠던 이스탄불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에 성금을 기부했다. 고등어 케밥 두 개 값의 스무 배쯤 되는 돈이다. 데이비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엔 턱없이 적다.역사적으로 그리스는 튀르키예와 앙숙이다. 튀르키예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적대심은 우리의 반일감정 이상이다.이번 지진 피해에 그리스는 가장 먼저 물자와 구조인력을 보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이웃 국가다. 튀르키예 국민과 그리스 국민을 나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한 대목을 옮긴다. “네 앞에 인간이 있다. 튀르키예인이면 어떻고 그리스인이면 어떠하냐. 중요한 것은 하나밖에 없다. 다 인간이란 것이다. 입이 있고 가슴이 있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인간이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튀르키예의 정체성은 유럽도 이슬람도 아니다. 튀르키예는 ‘사람’이다.

2023-02-21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해 2월 24일 새벽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단행했다.20만명 가까운 병력을 동원한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곧 쓰러질 것 같았으나 국제사회의 예상을 뒤엎고 전쟁 1년을 버티어 냈다. 서방국가들의 군사지원 힘도 컸지만 국가를 사수하려는 국민들의 단합된 애국심의 결과기도 하다.1년 동안 양국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양국의 사상자 수가 이미 수십만명에 이르렀고, 민간인 사상자도 2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한다. 키이우경제연구소는 작년 말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의 재건비용으로 1조달러(약 1천220조원)를 예상했고, 우크라이나 국내 총생산(GDP)은 전년보다 30%가 줄었다고 발표했다.특히 이번 전쟁은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난민 피해를 일으켰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3분의 1인 1천30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고 그 중 800만명은 해외로 떠났다고 발표했다.6·25 전쟁을 경험한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이 얼마나 큰 지를 잘 안다. 전쟁이 지나간 뒤에 생긴 비극적 상황을 전쟁이 끝난 수십 년 뒤에도 상처로 안고 지낸 기억도 있다.전쟁 발발 1년에 즈음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했다. 5억달러 규모 군사 지원도 약속했다. 양국 간의 연대감을 과시한 방문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전쟁의 종식을 바라는 지구촌의 기대는 당분간 멀어진 듯한 느낌이다.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되돌아보면서 지구촌은 전쟁의 위험과 고통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