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반전 반핵을 앞장서 주창하고 실천한 행동파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종교와 과학’(1935)을 읽노라면 흥미로운 사실에 이르게 된다.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인류가 맨 처음 주목한 대상이 별이라는 것이다. 칠흑처럼 아득한 밤하늘에 홀로 애처롭게 빛나는 별을 바라본 인간이라니!
까마득한 옛날,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갔고, 가야만 했던 고대인(古代人)을 부러워했던 게오르크 루카치(1885∼1971)의 ‘소설의 이론’(1920)에서 별은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그려졌던가! 가혹한 생존 조건에서도 직립보행자의 특권이자 의무로써 하늘을 우러렀던 인류는 그에게 부여된, 거룩하되 고단한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가 약 38만km, 지구와 화성의 근일점이 약 5천500만km, 원일점이 3억8천000만km인 점을 고려한다면, 은하계에 떠 있는 깨알 같은 별까지 거리는 얼마나 멀겠는가?! 그렇지만 인간은 머나먼 하늘을 우러르면서 점성술과 천문학을 발전시키며 과학의 길로 접어든다. 그런 인간이 가장 늦게 들여다본 대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다.
에테르를 이용한 최초의 마취 수술이 시연된 해가 1846년이니, 불과 180년 전이다.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 1928년이며, 플로리와 체인이 페니실린을 약으로 만들어 임상에 투여한 해가 1941년이다. 1943년부터 상용화된 페니실린은 제2차 대전에서 숱한 인명을 구했으니, 불과 80년 전의 일이었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천착한 지기스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1900년 이후 우리는 칼 융(1875∼1961)과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 같은 심리학자들 덕분에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무의식과 잠재의식과 만난다. 태곳적부터 아스라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던 인간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장 늦게 들여다본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몹시 아프고 고단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나의 마음과 육신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을 서두르면, 아는 바 없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깨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언제나 함께하는 영혼과 육신을 알지 못한 채 장구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아득해지곤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아프고 괴로우면 병원에 들러 의사에게 진단받고 처방전 얻어 약국에 들르는 것이 고작이다. 대체 어떤 이유로, 어떤 구조적인 문제로 육신과 마음이 무너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게 더욱 심각한 일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학교만 다닌 나 같은 인간의 완전한 무지와 완벽한 무능함에 화가 치밀어오를 지경이다.
건강기능식품이 설 명절 선물 1위라는 전갈에 화들짝 놀란다. 다들 건강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어디가 어때서 건강기능식품이 필요한지, 알고 있을까! 국민 전부가 ‘건강병 환자’가 되어버린 2024년 우리 현실이 조금은 뜨악하게 다가온다. 창밖에 겨울의 찬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