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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집권당 김기현 신임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들

국민의힘이 지난 8일 김기현 대표 선출로 전당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집권당으로선 이준석 전 대표 징계 사태로 지도부 체제가 무너진 후 8개월 만에 정상 궤도에 오른 셈이다. 울산 출신 4선 의원인 김 대표는 앞으로 집권당 사령탑으로서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총선전략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대구·경북은 최대현안인 통합신공항 특별법 국회통과를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한 김 대표가 당선된 게 다행이다. 임기 2년의 김 대표는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전대 과정에서 드러난 계파 갈등과 각종 의혹을 둘러싼 당내 분열을 수습해야 한다. 친윤(윤석열)그룹과 비윤계 간 계파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대표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와 관련, 조만간 단행될 당직 인선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전대 기간 제기됐던 울산 땅 의혹, 대통령실 행정관 선거 개입 의혹도 반드시 풀어야 할 현안이다.차기 총선승리는 김 대표가 올인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당정관계 설정과 공천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번 전대를 통해 최고위원까지 친윤그룹으로 짜여진 만큼 ‘당정 원팀’ 유지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윤 정부의 핵심 정책과 관련된 입법지원이다. 윤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등은 집권당이 전력을 다해 야당을 설득해야 가능하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주요 국정현안을 해결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당으로선 차기 총선 승패가 대통령 지지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경우 야당과의 승부처에 원하는 인물을 공천할 수 있지만, 지지율이 낮으면 측근공천 논란으로 주요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에서도 민심을 잃을 수 있다.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전대 당권레이스에서 친윤·비윤그룹 간의 갈등이 깊어져 분당(分黨)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공천에 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할 이준석 전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 측을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도 김 대표의 숙제다.

2023-03-09

홍준표의 SNS정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얼마 전 이문열 작가의 소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엄석대’가 정치판에서 화제가 됐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기자회견이 발단이다.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당권 경쟁 상황을 두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빗대 비판했다. 곧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 치받으면서 이준석 전 대표와 SNS 공방이 이어졌다. 뜨거운 논쟁이 오갔다.홍 시장은 천하람 후보와도 날선 공방을 벌였다. 홍 시장의 “무명의 정치인이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에, 천 후보는 “대구 온돌방에 앉아 계시니 따뜻하시냐”며 되받아쳤다.전당대회 전날엔 안철수·황교안 후보와 이준석 전 대표가 타깃이 됐다. 홍 시장은 전당대회에서 분탕질을 친 정치인은 앞날이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다.정치권에선 위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당 상황을 꾸짖는 홍 시장 특유의 사이다 화법에 시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 옹호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미·일 동맹을 위한 고육지계라고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홍 시장은 아니라고 판단하면 상대를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사정없이 깎아내리고 면박 준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수 차례 당했다. 준엄하게 꾸짖었다. 선배로서 적절한 훈계라는 평가와 ‘꼰대’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공존한다.홍 시장의 SNS 행보는 차기 대권을 꿈꾸는 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이란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현 정부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홍준표 시장의 SNS정치가 불을 뿜고 있다.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대구시장이 된 후 간헐적으로 올리던 SNS글이 최근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SNS를 통해 시국과 대구시정에 관한 견해를 밝힌다. 시의적절한 평을 쏟아낸다. 짧은 코멘트는 촌철살인의 글로 상대방을 저격한다. 성역도 없다. SNS정치는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어느 정치인도 범접키 어려울 정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홍 시장의 SNS정치는 정치 9단의 훈수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적절한 타이밍에 노련하고 거침없는 촌평을 한다. 숱한 정치평론가들의 평론을 압도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국민들의 관심사를 캐치해 내놓는 촌평에 젊은층은 열광한다. 짧은 글과 촌철살인의 평은 젊은층의 취향에 딱 맞다. 반면 너무 잦은 글 게재에 식상해 하는 이들도 없잖다. 당 원로로서 기강을 잡고, 인생 선배로서 사랑의 매질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칫 개인의 정치 성향 및 신념을 바꾸라는 꼰대질이 되어선 곤란하다.대구시정은 신경쓰지 않고 중앙정치만 바라본다는 비판도 많다.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여 시간도 적고 그외 시간은 대구 시정에만 전념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역의 시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본업에 충실하고 중앙정치에는 훈수 정도에 그치라고 한다. 대구시정을 등한시할 경우 시민들이 한순간에 등 돌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유불급이다.

2023-03-09

철새는 떠나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고니와 청둥오리들이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날이 풀리자 겨우살이를 끝내고 귀로에 오른 모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의 경우 약 석 달에 걸쳐 북한과 중국 단동, 내몽골을 거쳐 러시아의 번식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국내에서 개발된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큰고니는 평균시속 51㎞ 정도로 약 923km를 비행하여 출발한 다음날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하천에 도착했다. 거기서 14일간 머물다가 다시 365km를 날아서 중국 내몽골자치구 퉁랴오 인근 습지에서 도착, 16일간 지낸 다음 다시 이동해서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 습지와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호수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도착했다.9월 29일까지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머물던 큰고니는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해서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바이칼호 인근 습지와 내몽골자치구 퉁랴오에서 머물다 11월10일 주남저수지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난해 월동하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큰고니의 이동경로를 거리로 측정해보니 갈 때는 4천36㎞, 돌아올 때는 4천229㎞, 합해서 8천265㎞를 왕복한 것이었다.고니의 평균 수명이 30년쯤 된다고 하니, 20년 이상 이 들판을 찾아온 녀석들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아직도 회색빛이 남아 있는 어린 고니들 말고는 대부분 먼발치로 지나다니는 나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인간과 야생의 거리가 좁혀지는 건 아니다. 사계절을 함께 사는 참새나 까치 같은 텃새들도 사람을 경계하는데 하물며 철새들이겠는가. 나는 반려동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야생동물들과의 그런 긴장관계를 좁혀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하지만 겨울마다 찾아와 주는 그들이 반가운 마음은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매년 찾아오는 겨울 손님인 고니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를 알게 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그들에 대한 이만한 정보라도 알아야 지나가는 객이 아니라 손님이 되는 게 아닌가. 여름에만 습지가 되는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을 하지만 거기서 보내는 기간도 서너 달에 불과하다니 여기서 겨울을 나는 기간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몇 군데 머무는 기간이 한 해의 절반가량이어서 그야말로 노마드의 생태를 가진 철새들이다. 텃새인 참새나 까치처럼 토박이인 나에게 시베리아 툰드라의 한 자락을 끌고 오는 그들의 등장은 삭막한 겨울을 한결 풍성하고 웅장하게 한다고 할까.나는 평생 이 고장의 붙박이로 살아왔지만, 고니와 청둥오리를 이웃으로 두어서 저 광활한 내몽골 초원과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마음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다. 올 때는 시베리아의 겨울을 끌고 왔지만 갈 때는 한반도 동남쪽의 바다와 들녘의 봄기운을 끌고 가는 셈이다. 그 들녘을 날마다 지나가던 촌부에 대한 기억도 지금쯤은 중국 단둥의 어느 벌판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2023-03-09

한민족 디아스포라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3일 KBS가 공영방송 50주년 기념방송을 하며 되돌아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유난히 나의 기억에 남아있던 것이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었다. 1983년 6·25 특집으로 시작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6월30일부터 시작하여 138일간이나 계속되어 1만189건의 상봉을 이루게 하여 서로 얼싸안고 통곡을 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이 아직도 가슴에 멍하다.‘이산가족’이란 ‘헤어져 만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이란 뜻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남북분단으로 흩어져 만날 수 없거나 소식을 모르는 북쪽 가족이란 의미가 깊다. ‘이산(離散)’이라는 말을 들으니 디아스포라(diaspora)가 언뜻 생각난다. ‘~너머(dia)’와 ‘씨를 흩뿌리다(spero)’라는 고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멀리 흩어지다’를 뜻한다. 원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만의 규범과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하지만,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또는 거주지’를 말한다. 그 원인으로 정치적 탄압에 의한 난민, 무역이나 노동 등에 의한 이민 등이 있으며 옛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으로 이집트 등으로 이주한 유대인이 원류이다.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 재외동포는 약 750만 명이며, 1902년 12월 102명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건너간 것이 한국이민사의 시작이고, 일제 강점기 식민지를 떠난 재일 조선인,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등이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이다. 1963년부터 15년간 독일로 간 약 8천 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정착하며 나라를 알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재외한인들은 정착지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일이 많이 발생하였고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경찰이 한인 거주지역 보호를 외면했던 일이 대표적 예이다.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우리의 풍습과 언어를 전파하고 거주국 내의 권익 신장과 역량을 강화하는 등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이산가족 찾기운동을 벌였던 40여 년 전, 한밤중까지 TV중계를 보면서 수많은 아픈 사연을 듣기도 했었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도 있었고 공연을 통해 교류하기도 했다. 5월에는 인천에서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도 열린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난민, 이민, 실향, 추방 등 수많은 이주민의 희로애락을 다룬 영화들이다.우리에게는 특별한 디아스포라가 있다. 38선의 분단과 6·25전쟁으로 인해 헤어져야 했던 가족과 친척들이 한반도 내에서 철조망 하나로 인해 왕래하지 못하고 먼 해외보다 더 가기 어려운 현실에 민족적 비극을 안고 사는 것이다. 형제들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한다.이제부터 우리는 진정한 남북대화를 통하여 가깝고도 먼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서로 만나 껴안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날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2023-03-09

‘대화형 챗봇’ 열풍

홍석봉 대구지사장 챗GPT 열풍이 거세다. 대구·경북 지자체들이 앞다퉈 행정업무에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챗GPT는 출시 2개월 만에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이 정도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인스타그램은 2년 반, 틱톡은 9개월이나 걸렸다. 이 대화형 인공지능의 성장 속도가 엄청나다. 챗GPT가 가져올 변화와 충격은 발전 속도만큼이나 상상을 불허한다.챗GPT는 미국의 오픈AI사가 개발한 대화형 챗봇 인공지능(AI)이다. 사용자가 채팅창에 질문이나 요구사항을 적으면 AI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각종 문서 작성과 번역, 코딩 작업 등 광범위한 분야의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컴퓨터나 인터넷 못지않다.경북도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챗GPT 행정 활용 전담부서를 구성했다. AI 전문가를 초청, 강의도 들었다. 경북도는 정책 연구 용역 및 업무 계획, 통계 자료 등 활용방안을 찾고 있다. 정보통신 기업, 대학 등과 협력해 AI 기술을 행정에 접목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기초지자체도 챗GPT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대구 수성구와 남구는 최근 챗GPT 행정 활용을 위한 직원 교육에 나섰다. 달서구는 챗 GPT 관련 정보 공유와 활용 사례 등을 발굴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는 챗GPT를 행정업무 기초자료와 시정 홍보자료 등 생성에 활용키로 했다. 관련 교육도 강화한다.챗GPT를 업무에 활용하면 공무원은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등 활용 영역이 무궁무진하다.하지만 챗GPT가 만능 도우미가 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실시간 학습 불가, 논리력 부족, 기억력 한계, 저작권 침해 위험 등 한계를 지적한다.챗GPT를 과신하다가는 탈이 날 수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08

그걸 못하면 모두 죽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벗꽃피는 순서로 죽는다’고 야단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이 남쪽으로부터 죽어나갈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간단다. 그건 벌써 오래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은 게을렀을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살아온 게 수십 년이 아닌가. 대학을 잘못 운영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게 나라의 규정이었으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학교는 그럭저럭 굴러갈 판이었다. 온 나라가 혁신과 개혁을 외쳐도 대학은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힘들다는 거다. 학생숫자가 눈에 보이게 쪼그라들 판이니 나라가 도와주는 걸로만 버티기에 힘들어졌다는 게 아닌가. 아직도 홀로 일어나 보겠다는 대학은 보이지 않는다.대학은 그전에도 망해 있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 거의 모든 학과가 있다. 같은 종류의 청년들을 모든 대학이 만드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학마다 바라보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같은 무늬로만 존재하는 대학들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같은 전공은 같은 내용을 담는다. 교수가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는 건 핑계일뿐, 같은 껍데기가 같은 영역을 다루지 않겠는가. 모든 대학이 같은 전공학과들을 모두 가진다는 건, 대학마다 특성이 없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우리 대학은 그래서 이미 죽어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하면서 오래도 버틴 셈이다. 이제는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순서대로랄 것도 없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있다.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간 모방하고 추격하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혁신하고 창조하며 달려야 한다. 대학은 더이상 무엇인가 많이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게 아니라 작은 무엇이라도 새것을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암기반복형 인재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인성을 길러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도 강의 중심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거친 물결을 만나기 전에 학생들이 실전과 검증을 경험해야 한다. 성공의 짜릿함도 느껴봐야 하고 실패의 쓰라림도 일깨워야 한다.지방대학은 지역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대학은 지역에서 문제를 탐색하고 지역담론에 참여하여 지역과 더불어 호흡해야 한다. 교수들이 지역에서 연구프로젝트를 발견하고 학생들이 지역에서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 몇 년을 보내며 가르치고 배운다면서 지역과 담을 쌓은 모습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망각한 처사가 아닌가. 대학이 지역사회와 문화에 흠뻑 젖어야 하고 지역은 대학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지역과 대학은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소멸의 위기는 지역과 대학이 함께 풀어야 한다. 대학이 있으면서도 지역의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지역은 함께 부끄러워야 한다. 젊은이들로 넘치면서 젊은이가 없다는 불평이 말이 되는가. 지역이 대학을 품고 대학이 지역으로 나서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지역도 대학과 함께 죽는다.

2023-03-08

삼성전자는 구미에 통 큰 투자할까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7일 취임 후 처음으로 경북 구미사업장을 전격 방문하면서 삼성전자의 구미지역 투자 확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록 삼성전자 측은 이 회장의 이번 방문이 전국 5개 지방사업장 순회 방문의 일환이라 설명하지만 구미 시민은 이 회장의 구미 방문에 특별한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는 등 기대감을 표시했다. 특히 구미시가 정부 공모의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의 구미 방문이 이뤄짐으로써 특화단지 유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김장호 구미시장은 틈새 시간을 이용, 이 회장을 만나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에 삼성의 긍정적 역할과 지원, 삼성의 구미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구미시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구미 금오공대 방문과 그보다 앞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구미전자공고 방문 등 주요 인사들의 잇단 구미 방문이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긍정 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은 글로벌 사업장 8군데 중 국내 유일의 휴대전화 생산기지다. 최고의 제조기술과 프로세스를 개발해 해외 생산법인에게 전수하고 있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메카이자 마더 팩토리다.현재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는 정규직 8천여 명을 포함해 1만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다. 협력사 종사자를 포함하면 그 수가 수만명에 이른다. 삼성전자 수출액이 구미 전체 수출액의 30%를 차지하는 등 삼성전자의 구미경제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이 회장은 이날 구미사업장 방문에 이어 구미전자공고를 찾아가 학교수업을 참관하고 학생들에게는 “젊은 기술인재가 제조업 경쟁력의 원동력”이라며 지방의 기술인재 육성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주요 관계사에는 구미전자공고 출신 임직원 2천여 명이 지금도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미와 삼성의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 회장의 구미사업장 방문이 삼성의 의지와는 별개로 구미시민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의 이번 방문이 구미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03-08

지방정부 최초로 ‘챗GPT 시대’ 여는 경북도

경북도가 그저께(7일) 챗GPT(대화전문 인공지능)를 행정에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메타버스에 이어 챗GPT를 행정업무에 접목시켜 공직사회의 업무패턴을 확 바꿔보겠다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지사는 평소 “앞으로 일상적인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공무원은 창의적인 정책 활동에 집중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만큼 경북도가 앞장서서 수도권 벽을 넘어보겠다”고 밝혀왔다. 경북도는 지난달부터 행정부지사를 총괄 반장으로 하는 TF를 구성해 챗GPT를 통한 업무 효율화 시범사례를 발굴하는 중이다. 지난 6일에는 주요 간부들이 모여 국내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전문가인 유환조 포스텍 교수로부터 ‘다양한 언어로 된 데이터들을 학습시켜 정확한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경북도는 우선 전 직원들이 챗GPT를 익숙하게 다루도록 하기 위해 체험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행정효율성 향상 사례도 발굴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정책연구용역, 업무계획 등을 인공지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경북도의 싱크탱크인 경북연구원은 최근 경북형 챗GPT인 ‘챗GDI’ 서비스 모델을 완성했다. 경북연구원은 챗GPT 서비스가 시작된 지난해 11월부터 챗GDI 개발에 착수했다. 아직은 데이터 부족으로 행정업무에 활용할 수 없지만, 조만간 경북 관련 데이터를 모두 탑재하면 상용화가 가능하다. 정부도 지난 1월부터 공공영역 전 산업분야에 인공지능을 전면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중이다.경북도가 보수적인 공직사회 문화를 깨고 지방정부로서는 최초로 챗GPT를 일상적인 행정업무에 활용하기로 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디지털대전환 시대에 행정기관도 빨리 변신을 해야 앞서갈 수 있다. 선진 국제사회는 이미 인공지능 플랫폼 사용이 생활화돼 있는데 공직사회가 이러한 시대흐름에 뒤처지면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챗GPT 행정활용’ 노하우가 전국 지방정부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3-03-08

사이에 빠진 날

양태순 수필가 신선이 쉬는 별장에 갔다. 도심을 벗어나 점점 좁아지는 도로를 지나 굽이지는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들길을 지나 산자락을 올라 가파르다 느낄 때쯤 이정표가 멈췄다. ‘사람과 산 사이에 선유산장’ 간판이 걸려 있다.입구가 예사롭지 않았다. 간판 아래 제주도의 정낭을 옮겨놓았다. 누구든 들어와도 좋으나 예의를 지키라는 무언의 안내처럼 보였다. 주위에는 나무를 이용한 귀여운 다람쥐인지 도깨비인지 모를 조각이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있다. 주인의 유머스런 감각이 느껴졌다. 산장은 길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건물 지붕이 산 앞에 살짝 엎드린 듯 안긴 듯 헷갈린다. 초록 지붕과 너와 지붕, 길옆에 피어 있는 청하국이 어울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마을을 연상시켰다. 높이 솟은 솟대에 앉은 오리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늘에 전하려는 듯 한껏 고아한 모습이다.이름만 산장이지 실상은 브런치카페에 가깝다. 차를 마시며 풍경을 음미했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었다. 찾아오는 이를 붙잡기 충분했다. 가을이 산을 떠나고 있는데 창밖에서 단맛을 키우는 곶감과 잎을 떨군 나무가 빚어내는 정취는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멍때리기 좋은 장소였다.사람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먼저 시간의 거리와 공간의 거리가 있을 듯하다. 산은 우리의 일상생활 반경에서 좀 멀리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러 가야 한다. 그런 탓인지 산을 찾으려면 계획이 필요하고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행인이 있어야 안심이 되기도 한다.또 사람과 산 사이에 길이 있다. 사람이 산을 만나러 가는 일방통행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사람이 산이 보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산을 오르며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코앞에 펼쳐진 야생화나 나무 열매, 새 소리 정도다. 더듬는 발밑을 보거나 힘이 들어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쉼터에 다다르거나 앞서 걸어간 이들이 와! 감탄사를 쏟을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정상에 선 순간 올라오는 길의 험난했던 과정이 잊혀질 만큼 멋진 풍경을 맞이한다. 산이 우리에게 곁을 내주는 것은 정상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살면서 던지는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마지막으로 상상의 공간이 존재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 같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산 깊은 곳에는 눈 맑은 이에게만 보이는 신성한 바위 혹은 그 산에만 있는 특별한 식물이 있을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산이든 멀리 있는 산이든 가보지 않았을 때는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한다. 봄이면 산비탈에서 화사하게 인사하는 진달래와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의 날갯짓 소리, 여름이면 쑥쑥 자라난 나뭇잎들의 재잘거림과 무성한 숲에 빛살을 뿌리는 태양의 넓은 씀씀이. 철마다 다른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본다. 그리고 그 산을 찾아 묵힌 속을 토해내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가 메아리로 숨어 있음직하다.선유산장의 주인은 무슨 뜻으로 이름을 붙였을까. 산장은 깊은 산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이제 본격적인 산에 오를까 신발끈을 점검하는 지점에 있다. 마당 끝에 서면 아래로 절벽이 있고 계곡이 있어 귀를 기울이면 바람을 타고 물소리가 안겨 온다. 슬그머니 시름을 내려놓으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계절이 그리는 무늬도 한몫했지 싶다.무엇과 무엇 사이에는 서로의 삶이 얽혀 있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는 발 없는 소식에 놀이판이 더해지고, 도시와 시골 사이에는 사람이 오가고 문화가 따라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와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사이와 사이를 이어주는 줄은 일방적이지 않다. 노력 정도에 따라 약해지기도 하고 튼튼해지기도 한다. 갖가지 사연과 시간이 베틀 위의 씨실 날실처럼 차곡차곡 쌓일수록 고와진다. 사이에는 보이는 것에 더해 보이지 않는 삶이 섞여 물살처럼 굽이치며 흘러간다.사이는 정서영역인 동시에 탐독영역이다.

2023-03-08

임진(壬辰)

육십갑자 중 스물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진(壬辰)이다. 천간(天干)의 임수(壬水)는 지혜를 상징하고 총명하고 속이 깊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은 음력 삼월이라 습기를 머금은 땅으로 초목을 잘 자라게 한다. 동물로는 변화가 다양한 흑룡이다.임진일주(壬辰日柱)는 이무기가 물을 만나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지도자 기질이 있어 스케일도 크며, 성격에도 흔들림이 없다. 겉은 냉정해보여도 마음은 온정이 많고, 독창적 재능이 있다. 신체가 건장하며, 자유 분망하고, 언변도 좋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능력이 있다.임진일주의 임수(壬水)는 깊은 강물이기에 드러내기보다는 비밀스럽게 행동하여 속을 알 수 없는 성격이다. 진토(辰土)는 물에 잠긴 땅이니, 조용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활동적이고 전진하는 성격이다. 진토는 권력 지향적이으로 명예를 중시하여 상, 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에 잘 어울린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꽁하니 감추고 있으니 뒤끝이 있다.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 있어 손해 보거나 방해 받으면 공격적인 기질이 드러난다. 복잡한 감정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사고치는 경우가 생기고 다된 일을 망치기도 한다. 물 만난 용처럼 자신감이 가득하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흠이다.중국 공자의 6세대 자손인 공천이 지은 ‘난언’ 유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나라 사람 공자고가 한때 조(趙)나라에 가 있었다. 그는 조나라 임금인 평원군에 의지하여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던 추문과 계절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공자고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조나라에서 사귄 친구들이 송별을 하러 찾아왔다. 송별식을 마친 뒤에도 추문과 계절은 공자고와 사흘 동안이나 동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은 맞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추문과 계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었다. 그러나 공자고는 단정하게 자기의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헤어져서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자, 공자고의 제자가 “저 두 분들과 선생님은 너무나 친하셨습니다. 저분들이 깊은 정을 보이시는 것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눈물까지 흘리는군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주 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 헤어질 때 그저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이시고 마는군요. 혹시나 그렇게도 가깝고 서로 아끼시던 친구를 가볍게 보시는 것은 아닌지요?”공자고가 “처음에는 나도 저 두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나이들인 줄로 알았으나, 지금 와서 보니 아녀자 같은 사람들이로구나. 사나이는 마땅히 뜻을 사방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지, 사슴이나 돼지들처럼 언제나 뭉쳐서 다녀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제자가 또 다시 “그렇다면 저 두 분이 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고가 “저 두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본래 타고난 성품인 인자함이 잘 남아 있다. 그러나 맺고 끊는 면에서 그들을 판단한다면 아직 좀 모자라는 구나”라고 대답하였다.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한다. 타인이 베푸는 호의를 자기 잣대로 판단한다면 스스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임진일주는 괴강살이 있다. 괴강(魁7F61)이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이다. 우두머리 즉, 대장의 기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확고한 신념이 있어 타인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따라서 상대가 보기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을 수 있고, 약간 삐딱함까지 느낄 수 있다.과거에는 여성이 괴강살이 있으면 좋지 않게 보았다. 기본적으로 능력과 총명함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를 경시하고 스스로 자립하는 성향이 강했다. 괴강살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있기에 무한경쟁사회에서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남녀가 많고, 여자의 경우는 미인이 많고 일처리 능력도 탁월해 현대사회에서 경쟁력 있게 활동할 여지가 많다. 결벽증이 있는 것이 흠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2운성으로 묘(墓)에 해당된다. 묘(墓)는 생명이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기운이다. 감정표출이 적어 겉으로 봐선 표정을 알 수 없고 좋고 싫어하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괴강살이 있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향이 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끈기가 있다.임진년인 1592년 4월 13일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역사다. 천민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다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갑작스레 죽자 정국이 혼란한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시킨 뒤 조선과 명을 정벌한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후계자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두고 내분에 휩싸여 2년 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였다. 마침내 1603년에 에도막부시대가 시작되었다.명나라 황제 만력제(신종)는 조선에 원병을 보내 지원했다. 그 당시 명의 원군에 의한 조선의 피해도 심각했으나, 전쟁에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명나라 황제의 무능과 관료의 부패로 인해 결국 24년 만에 후금에 의해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졌다.조선왕조는 그대로 존속되었다. 혹자는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라고 말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반드시 몰락한다. 인간의 삶에는 반복이 없지만, 역사는 반복한다.

2023-03-08

모두의 집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모두의 집에 봄채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남편은 홍매실, 청매실, 자두, 사과, 샤인머스켓, 블루베리 등의 과일나무를 잔뜩 사서 집안 곳곳에 심었다. 난 올망졸망한 다육이를 30개나 들였다. 화분에 옮겨 심었으나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를 못 이길까 염려되어 방안에 모셔두고 있다. 엔간히 따뜻해지면 댓돌 옆에 가지런히 내놓을 참이다. 마당 뜨락 한켠에 심을 꽃은 무엇으로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꽃잔디, 채송화, 패랭이와 같이 땅에 납작 엎드려 피는 잘디잔 꽃이 이쁜 걸로 구상 중이다. 우물이 있는 경사진 너른 터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쉽게 심고 가꾸기 좋은 종류를 폭풍검색. 처음엔 청보리를 심으려 했다. 다 자란 후의 뒷처리가 힘들다니 패스. 유채꽃은 비교적 수월하고, 3월 초에 씨 뿌리면 5월초부터 노란 꽃을 즐길 수 있단다. 바로 꽃씨를 주문하고 심는 법을 찾아 숙지했다. 심기 1~2주 전 미리 땅을 한 번 갈아엎은 뒤 퇴비를 뿌려 주란다. 지난주 이틀을 잡초 뿌리를 뽑고, 돌을 가려내었다. 제대로 할지 걱정이지만 일단 씨는 뿌려봐야지.작년 6월, 육신사가 있는 달성 하빈의 이 집을 얻었다.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생가였다. 처음 소개받았을 땐, 순천박씨 집성촌인 이곳에 타성받이로 와 사는 것에 주저했다. 높은 기와담장이 있는 주위의 다른 집과는 달리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한데집이라 다소 휑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마루에 걸터앉아 앞의 산을 바라보는 탁 트인 시야가 시원했다. 비 오는 날, 기와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 패는 마당이 예뻤다. 아파트살이가 슬슬 싫증나던 참이기도 하고, 한창 흙장난하며 놀고 싶어할 손주들을 위해서도 좋을 듯 싶었다.며칠 뒤 손자를 데리고 왔다. 무작정 들어온 집이 누구집이냐고 묻길래 네 집이라고 했다. 내 집 아닌데 하더니 그럼 ‘모두의 집’이라고 하면 어때요? 제안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와 동생의 집. 그리하여 이 집은 ‘모두의 집’이 되었고 이름 대로 정말 우리 가족 포함한 모두의 집이 되었다. 서울의 손녀들도 하루를 묵더니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두의 집이니 언제든 올 수 있다며 겨우 달랬다.울도 담도 대문도 없으니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들어와도 되니 모두의 집이기도 했다. 모두의 집이니 누구든지 와서 묵어도 좋다고 지인들에게 광고했다. 육신사의 내력과 동네 자랑도 했다. 내친김에 육신사와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상화기념관을 엮어 ‘대구명문가기행’이라는 프로그램도 짜서 뿌렸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며칠을 묵었다. 또 아름다운 동행이라 이름한 성인학습자동기들도 다녀가고, 기업체모임도 가졌다. 함께 여행지산책을 하는 지인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가쪽 동기간 모임도 밤새워했다. 손주 친구도 초대하여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제 모두의 집에 봄꽃이 환하게 피면 모두가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육신사를 찾는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어도 좋겠다는 야심찬 바램으로 열심히 봄단장을 할 일이다.

2023-03-08

이 꽃은 먹을 수 있나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이 꽃은 뭐예요? 이건 먹을 수 있어요? 이건 어디에 좋아요?’산과 들에 허드러지게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한의사이지 식물학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건조되어 있는 한약재를 구분하고 각 약재의 효능은 잘 알지만, 산에 피는 작은 꽃의 이름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봄에 피는 꽃들 중에서 누구나 이름을 아는 몇몇은 오래전부터 훌륭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개나리는 진달래와 함께 봄을 알리는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나리 꽃과 비슷하지만 나리 꽃은 ‘아니다’는 의미로 ‘개’를 붙여 개나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개나리는 암술이 긴 꽃과 짧은 꽃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둘 사이에 수분이 이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도시에서는 꽃이 크고 이쁜 암술이 긴 꽃만 주로 심기 때문에 개나리 열매를 잘 볼 수가 없다. 개나리 열매는 ‘연교’라고 하며, 한의학에서는 여드름을 포함한 피부 염증 치료의 핵심적인 약재로 쓰인다.매화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매실 액기스나 매실주를 안 먹어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매화의 열매인 매실은 한약재로는 ‘오매’라고 부르며 신맛이 아주 강하다. 중국 삼국지에서 조조가 길을 잃어 해매다가 갈증으로 탈진하는 군사들을 보고 저 산을 넘으면 매실나무가 많다고 하였다. 군사들이 그 말을 듣고 매실의 신맛을 떠올리자 입에서 침이 돌아 갈증을 이겨내고 산을 넘었다는 ‘매림지갈-매화 숲이 갈증을 멈춘다’의 고사가 있다. 실제로는 장내유산균을 안정화 시켜 설사를 멈추고 술로 인한 주독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봄이 되면 이천, 구례, 의성 일대에서는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산수유는 우리나라 자생종 식물이라고 한다. 신라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 같았는데, 이 비밀을 안 모자장인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이후 바람이 불 때마다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배어내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고 한다. 산수유는 씨앗을 제거한 과육을 한약재로 쓴다. 산수유는 성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고, 허리와 무릎을 튼튼하게 해주고, 염증은 없는데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련이 활짝 피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러나 목련 꽃이 떨어지면 왠만한 쓰레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저분하다.꽃이 피기 전 꽃봉우리는 ‘신이’라는 약재로 쓰인다. 코 점막의 혈관을 수축시키고 항알러지 작용을 해서 봄철에 알레르기 비염 등으로 콧물과 재채기가 많은 증상에 아주 효과가 좋다.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꽃도 많고 약초도 많다. 다만, 병증에 맞게 적절한 양을 옳은 방법으로 먹어야 약이 된다. 모든 약은 약효와 부작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터넷의 어설픈 상식이나 소문으로 먹다가는 건강을 망치는 일이 생기기 쉽다.

2023-03-08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프로게이머를 불러다 면박을 주는 일들.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이면 실제로도 사람을 죽이고 싶으냐고 묻고, 게임 머니를 얼마나 가지고 있냐 묻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고 묻고. 물론 그때엔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시기였긴 하다. 하지만 무례한 질문들을 던져댄 패널들의 모습이란, 무지가 얼마나 사람을 무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런 질문들은 흡사 도박 중독자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지금은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의 흥행과 맞물려 한국 게이머들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이제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싶냐는 등의 무례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문화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면서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됐다.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하지만 정말 그럴까? 게임 시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종종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얼마 전 문제가 됐었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조작 문제나, 과도한 과금 유도, 사행성 논란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이나 NFT를 융합하여 게임을 통한 수익 모델을 홍보하는 경우들을 보라. 이런 게임 시장의 세부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이 게임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문화의 융성이나 즐거움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부 게임이라 하기엔 대다수의 한국 개발 게임들이 비슷한 루트를 걷고 있기에 우리가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다.게임은 문화인 동시에 산업이다. 더불어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것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익 모델을 구성하고 이를 중요시하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돈이 벌려야 다음 게임도 만들고 할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것이다. 왜 게임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가. 게임으로 돈을 벌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흔히 캐시 카우로 불리는 일부 게임을 통해 게임사는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물론 모든 게임사가 그렇다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분명 적지 않은 회사들이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회사들은 게임을 단지 돈으로 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익명 게시판에 달린 수많은 게임회사 직원들이 게임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라. 그들은 게이머들을 단지 호구로만 바라볼 뿐, 자신들이 이끌어가는 문화의 향유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의 게임 회사들이 이런 관점으로 유저들을 바라본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대만 해도 동아시아 게임 산업을 이끌어간다고 평가받던 한국 게임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가. 이제 한국 게임은 더 이상 동아시아 게임 업계의 강자가 아니며, 단지 뽑기를 비롯한 사행성 게임과 과도한 과금 유도에 주력할 뿐인 도박성 게임만이 판치는 국가란 인상이 강하다. 그 10년 사이, 중국과 일본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꾸고 스타일을 만들어갔던 것과 대조된다.그와 같은 국가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게임 회사가 유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국 게임 회사는 좀처럼 유저들이 왜 게임을 하는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단지 유저들이 비교 우위를 통한 우월감을 원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근 10년 사이에 변화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이라기 보단, 게임 회사가 자신들의 상품의 목적과 판매 방식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저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으니까. 그건 단지 비교 우위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사적, 시각적, 청각적 재미나 손맛이라 불리는 컨트롤의 재미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게임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유저들이 원하는 건 그처럼 다양한 재미지, 단순히 내가 남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아니다.그래서 한국 게이머들은 점점 한국 게임을 떠난다. 재미의 요소는 보강하지 않으면서 돈을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한국 게임 회사들에 지쳐서. 유저를 단지 돈주머니로 바라보는 게임회사들에 정이 떨어져서. 이게 단순히 게임의 문제뿐인 것은 아니다. 문화를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볼 때는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국 게임 업계의 몰락은 이런 태도의 부재가 어떻게 시장을 망가뜨리는가에 대한 선례가 될 것이다.

2023-03-07

우연과 필연 사이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 책장을 덮은 후에도 꼼짝할 수 없는 작품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뭔가를 손에 쥐었다는 감각인데 그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 본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나를 읽고 쓰는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필립 로스의 소설을 처음 읽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대던 스무 살이었고 도서관의 책장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나는 젊은 날을 휘발시키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우울, 무기력,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발붙이고 서 있다는 죄책감과 세상을 향한 묘한 분노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날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 필립 로스의 ‘울분’이었던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울분’의 주인공인 마커스는 신중하고 책임감 있으며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마커스에게 말한다. “너는 창창한 미래를 앞에 둔 청년이야. 네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에 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것은 어쩌면 자식을 둔 흔한 부모의 염려일지도 모르고 시대적인 필연성이었는지도 모른다.아버지는 마커스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집착을 멈추지 않았다. 마커스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선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버지?” 마커스의 발악에 아버지는 대답한다.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마커스는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고 어떤 규정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의 목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전쟁에 끌려가지 않고 법대에 진학해 법률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신중했고 조심했다. 어떤 부분은 미성숙하기도 했고 또 어느 부분은 놀라우리만치 자기중심적이기도 했다.그런 마커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단 하나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채플 수업에서의 대리 출석이 발각되었을 때, 반성문과 매주 수업을 듣는 것으로 대신하자는 학생과장의 말을 수용할 수 없던 것 역시 일순간의 치기가 아니다. 삶의 이면에 고요히 잠복하던 어떤 울분이 그의 마지막 선택을 추동하게끔 했던 것이다. 마커스는 퇴학당하고 징병되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 결과 마커스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이러기만 했다면 또 저러기만 했다면, 모두 함께 모여 오랫동안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그렇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의 룸메이트나 애인이 아니었다면, 채플 수업이 아니었다면, 마커스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과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비극으로 향하지 않는 길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는 것, 감정을 억누른 채 어떤 것도 분출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커스는 주먹으로 학생과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좆까, 씨발.”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만약 마커스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 학생과장의 뜻대로 하여 무탈하게 대학을 졸업했다면 그는 윤택한 삶의 법률가가 되었을 수 있다. 여러 선택의 끝에는 무수한 마커스의 미래가 있고 그것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어떤 삶을 살든 그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마주한 아버지가 외쳤듯이. “내가 옳았잖냐, 마커스. 내 눈에는 그게 오는 게 보였단 말이다.”위대한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전혀 다른 결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아주 사소하게 벌어지는 우연적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운명으로 향하게 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그러했듯이.미국의 작가가 써 내려간 이야기는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던 스무 살의 청년에게 닿게 된다. 청년은 작품을 읽으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매우 평범한 어느 날의 사건이 삶의 어느 곳에 잠복해 있다가 어떠한 결과를 이끌게 될지는 끝내 두고 볼 일이다.

2023-03-07

‘퇴근후 카톡금지법’

우정구 논설위원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연결차단권’은 2016년 6월 ‘퇴근후 카톡금지법’이란 이름으로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노동자의 사생활 보장을 위해 노동시간 이외 시간에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지시를 내리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이다.실제로 법제화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이후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퇴근 후나 주말, 심야에 디지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토록 하는 조치나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최근 정부가 근로자에게 근무시간 외 시간에 회사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인 이른바 연결차단권 보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다. 유럽 등에서 시작한 이 법이 드디어 국내에도 상륙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프랑스는 연결차단권에 관한 법률을 최초로 입법해 2017년부터 시행해왔다. 노동자의 휴식 보장과 사생활 보호가 목적이다. 디지털시대라는 시대적 환경에 맞춘 입법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시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국내에서 이 법이 처음 논의될 무렵,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 법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제도의 정착에 대해선 6명이 부정적 의견을 표시했다. 이유는 카톡상 직장과 가정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을 들었다.정부가 관련 법안을 준비하자 벌금까지 부과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 일이 바쁘면 주말이라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여론이다. 법이 능사일까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07

주 52시간제의 유연화… 기대와 우려

정부가 근로가능 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으로 늘리되 늘어난 근로시간만큼 장기휴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한다고 밝혔다.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은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 근로를 노사합의를 거쳐 월, 분기, 반기, 연단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이 많을 때는 한 주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휴가를 몰아서 쓸 수 있게 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개편안의 핵심이다.기업은 인력 운용을 쉽게 할 수 있고, 근로자는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것이 법안 취지다.주 52시간제는 근로자의 과로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업종에 관계없이 획일적 규제로 근로자의 실질임금 하락과 중소기업 경영난 등의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벤처기업이나 수출기업, 기업연구소, 중소기업 등에선 “정부가 더 일할 기회를 막는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왔다. 4차산업 혁명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다.선진국과 비교해서도 우리 제도는 유연성을 잃고 있다. 일본은 연장근로시간을 월 100시간, 연 720시간 안에서 허용하고 독일은 6개월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정부의 이번 조치로 기업의 업무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 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근로시간제도 개선이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행여 근로자의 과로를 조장하는 일은 없는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노동계에선 과로사회로 회귀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정부가 연장근로 단위기간이 길어지면서 장시간 근로가 집중될 수 있음을 우려, 4주 평균 64시간 근로준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영세사업장에서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이 얼마나 지켜질지도 사실상 의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근로시간 개편안이 사회적 공감을 얻어 성공리에 안착하길 바란다.

2023-03-07

‘이데올로기전의 도구’가 된 도심거리

심충택 논설위원 정치권의 진지전(陣地戰)이 갈수록 가관이다. 국회와 언론을 넘어 이제는 도심거리도 이데올로기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최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도심 주요교차로와 가로수, 전봇대를 가리지 않고 걸려있는 정치현수막 때문에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대단하다.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내용이 주류여서, 원치 않아도 봐야하는 시민들로선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검사들을 향해 “깡패”라고 한 말들도 길거리 현수막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초등학교 근처 현수막에 적힌 적대감이 가득한 문구 때문에 학부모들의 민원도 쇄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정당이나 정치인이 외연을 확장하고 표를 얻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마치 선거철처럼, 현수막이 도심을 뒤덮은 것은 작년 연말, 정당이나 정치인의 현수막은 별도의 신고·허가 없이 최장 보름 동안 아무 데나 설치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이 슬쩍 개정됐기 때문이다. 정당현수막은 15일이라는 기간만 지키면 신고 의무, 위치나 내용에 대한 제한이 없다. 국회가 도심 길거리를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다. 일반 시민의 경우 합법적으로 현수막을 걸려면 자치구 지침에 따라 약 한달 전에 접수하고, 당첨이 되면 일정 금액을 지불한 후 ‘지정게시대’에 약 10일정도 설치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총선을 의식해 또 다른 ‘자기특혜’를 만든 것이다.현수막 공해를 차단하기 위해 인천시는 정당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조례 개정을 통해 현수막 게재 기간과 전화번호를 크게 명시하도록 하고, 자치구의 현수막 게시시설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서울시와 창원시는 정부에 시행령 개정을 정식 건의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과시성 현수막은 도시 미관만 해칠 뿐이니 바로 철거하겠다”고 말했다가, 민주당 대구시당으로부터 “대구시가 홍준표 시장의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장소 제한 없이 난립하는 현수막은 안전사고 발생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대구 달서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상처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인천 송도에서도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여성이 현수막 끈에 목이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수막 줄은 어두운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현수막을 이용한 이데올로기전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지금까지는 공직선거법이 선거일 6개월(180일) 전부터 현수막이나 인쇄물을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오는 7월 31일까지 법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8월부터는 해당 법 조항은 효력을 잃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선거 현수막’을 내걸 수 있다. 예비후보가 범람하는 총선일이 다가오면 아마 전국이 현수막으로 도배될 것이고, 시민들은 이에 비례해 정치환멸을 느낄 것이다.

2023-03-07

오늘 여당의 전당대회는 ‘통합의 기회’돼야

오늘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국민의힘 3·8전당대회가 역대급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누가 당권을 잡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집계된 득표수는 오늘 전대에서 최종 발표된다. 이번 전대 선거인단은 전당대회 대의원, 책임당원, 일반당원을 합해 모두 83만7천여명이다. 지난해 정권교체를 거치며 당원 규모가 역대 최대가 됐다. 이번 전당대회에는 윤 대통령도 ‘1호당원’ 자격으로 참석해 국민의힘과 정부가 ‘원팀’을 이뤄나가자는 화합의 메시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이날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과 청년 최고위원 선거의 경우 당선자가 결정되지만, 당 대표 선거는 4명의 후보 중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가 9일 일대일 토론 후 10일 모바일 투표, 11일 ARS 투표를 통해 최종 당선자를 결정한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서 본경선 2위를 하더라도 반전을 노릴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당권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려온 김기현 후보는 결선투표 없이 전당대회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안철수·황교안·천하람 후보는 결선투표까지 가서 극적인 뒤집기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경선 과정이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혼탁해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당대표 후보들은 마지막 투표일까지도 ‘대통령실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날선 공방을 벌였다. 안철수·황교안·천하람 후보는 어제도 “대통령실 행정관의 선거개입은 공직선거법을 어긴 중대한 범법 행위”라며 김기현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안 후보는 법적조치를 하겠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국민의힘은 이번 전대 후 집권당으로서의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전대 이후 불공정시비로 당이 더 혼란에 빠지면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아마 이러한 걱정 때문에 전당대회에 참여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오늘 전당대회를 통합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걸어왔던 지난 1년을 당 차원에서 성찰하고, 대선 이후 등 돌린 민심을 철저하게 챙기는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

2023-03-07

봄 마중 춤사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날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다. 황량하던 무채색의 대지엔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이 봄의 길목을 단장하고, 양지 바른 둔덕엔 가녀린 새싹들이 음표마냥 돋아나며 때 이른봄을 알리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 감추며 멀어져가는 겨울의 뒷자락으로 피어나는 아지랑이의 아른거림 속에 인동(忍冬)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내온 만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생동의 봄 채비를 하는 듯하다.약동하는 봄날은 색깔과 움직임으로부터 온다. 봄의 초입에 피어나는 복수초나 산수유는 노란 몸짓을 일찌감치 내세우는가 하면, 앙상하던 가지에 희거나 붉은 매화꽃이 등(燈)처럼 달리기도 한다. 또한 가볍게 불어오는 남풍 결에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꿈틀거리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듯 개구리가 깨어나 땅 위로 나온다는 경칩을 즈음해 온갖 생물들은 스프링(Spring)같이 조금씩 톡톡 튀는 생장의 기운을 받기도 한다.‘줄기차게/뿜어대는 해의 입김/굿거리장단에//파아란 춤사위판/땅김의 너름새로//수액을/두레박질하는/간지러운 마파람’ -拙시조 ‘춘신(春信)’ 중(1995)자연만이 봄을 맞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생동과 리듬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지난 2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는 봄 마중 같이 설레고 활달한 춤자리가 의미있게 열렸다. 경북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전통연희컴퍼니 예심과 포항향토무형유산원이 전통춤의 명인 스승과 제자, 문하생이 3대를 잇는 춤사위로 활기찬 봄을 알리는 ‘2023 춤, 세대를 잇다’의 정기 발표회가 신명나고 멋스럽게 펼쳐진 것이다. 수준 높은 전통춤으로 지역 간의 문화교류와 전통문화의 계승을 알리고, 당대 최고의 세 명무가 직접 무대에서 ‘태평무’ ‘손소고춤’ ‘버꾸춤’ 등의 춤판을 벌이는, 그야말로 시대를 넘나들며 세대를 아우르는 장단과 추임으로 깊은 울림과 몸짓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귀하고 보기 드문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가녀린 듯 거침없이 가락을 타는 나비의 분방한 나풀거림 같고, 뻗었다가 휘감듯 접으며 휘영청 두드림 결에 유유히 날갯짓하는 학의 비상 같은 춤사위는, 과연 율려(律呂)의 응축과 침잠, 분출과 절제의 미학 같은 그윽하고 유장한 몸짓 언어로 다가왔다. 어쩌면 격정의 소용돌이 같고 바람 속의 회오리 같이 날렵하고 교태있는 몸동작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경탄하는 내내 심금이 울려지고 액운은 얼씬조차 못했으리라.생명의 춤판이 벌어지는 봄날은 모두 부지런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운과 움직임이 있어야 새싹이 돋고 물이 오르듯이, 아름다운 움직임은 춤의 본질이자 궁극적인 예술이다. 가무(歌舞)의 민족은 흥이 일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덩실덩실 팔 다리가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른봄 마중하듯이 신바람 나게 펼쳐진 전통춤의 무대는, 변화무쌍한 율동성이 생명인 ‘춤’이 역동성을 강조해서 쓴 붓글씨 서체의 생동감과 어우러져 한결 묘미를 더했다. 대지 위에서 솟구치는 생명의 잔치를 추임새 삼아 저마다의 삶을 춤추듯이 살아보면 어떨까?

2023-03-07

챗GPT, 어디까지 할 수 있니?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챗GPT 이야기 말이다. 작년 11월 말에 오픈AI라는 회사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이다. 어지간한 보고서쯤은 뚝딱 써낸다. 이런 질문을 챗GPT에 던져보았다. 한국의 한반도 통일전략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600자 정도로 단계에 대한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1. 상호 연락과 문화 교류 강화, 2. 경제적 통합, 3. 제도 및 법률 통합, 4. 정치 및 안보 통합, 5. 문화, 사회, 교육 통합. 고등학교 학생의 과제 보고서로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이뿐 아니다. 챗GPT에게 코딩을 시키기도 한다. 나아가 코딩의 오류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교육 기관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이나 규정화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주 내용인 교육과정은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특정 주에서는 챗GPT 사용을 전면금지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챗GPT를 활용한 과제에 0점을 부여한 학교도 나왔다. 전자계산기가 나왔다고 해서 수학교육이 없어지지 않았고, 컴퓨터가 나왔다고 단순업무가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검색 포털이 나왔다고 컨설턴트 직업이 없어지지도 않았다.그러나 우리가 통찰하고 인정해야 할 것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컴퓨터 없는 세상, 인터넷 없는 세상, 휴대폰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앞에 인공지능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제 인공지능 없는 세상은 없다. 우리가 모두 컴퓨터를 만들고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아도, 각자의 수준에 맞게 인터넷을 잘 활용하고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런 일들을 참 잘하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와 서비스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챗GPT,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정보를 모으고 조합하고 정리하는 세상 친절한 개인비서다. 문제는 이 비서에게 무슨 일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그 비서의 능력이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에서 ‘반복적인 것 잘하기’는 좀 덜어내고, ‘새로운 생각 다듬어가기’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은 개념 이해에 집중하고 반복되는 일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맡기면 좋겠다.챗GPT, 만능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편견도 있고 오류도 있으며, 상황을 반영할 만큼 구체적이지도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영원히 인간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리의 길이 있다. 챗GPT는 모른다. 통일의 단계는 언급했지만, 언제 어떤 단계의 일을 어떤 수준으로 해야 할 것인지, 여러 단계의 일을 어느 정도로 동시에 추진해야 할지, 정부가 바뀔 때는 어떤 조정이 필요한지. 챗GPT는 못한다.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디테일이 필요하다. 우리 각자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문가이며, 의도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챗GPT 두려워하지 말고, 재미있게 유익하게 사용해 보자. 좋은 질문을 하자, 그러면 우리도 오늘 비서로 요술램프의 지니를 가질 수 있다.

2023-03-07

수출하는 해양암반수

홍석봉 대구지사장 먹는 물의 진화가 놀랍다. 생수에서 해양심층수를 거쳐 해양암반수까지 나왔다. 해양암반수는 개발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이런 해양암반수가 해외에 수출된다.경북도는 최근 울진 환동해산업연구원에서 연구원과 아리바이오가 공동 개발한 동해안 해양암반수(염지하수)의 인도네시아 수출 선적식을 가졌다. 해양암반수는 2013년부터 동해안(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바닷가 땅속 1천50m 깊이에서 취수해 개발한 음용수다. 그동안 국내에서만 유통되다가 첫 해외수출이 이뤄졌다.이번에 초도 수출하는 물량은 500㎖ 4만 병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판매가는 병당 5천 원 내외로 전체 2억 원 정도 규모다. 1인당 GDP가 4천300달러에 불과한 나라에서 1병에 5천 원을 주고 사먹겠다고 하니 놀랍다.해양암반수는 물속에 녹아있는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함량이 2천mg/ℓ 이상인 암반대수층 안의 지하수다. 제조업, 바이오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염지하수는 일반 물과 달리 귀한 지하수다. 업체 측은 몇 년 동안 동해안을 샅샅이 뒤져 최적의 장소인 울진의 죽변 바닷가를 찾았다. 우리나라에 염지하수 취수 지역은 여러 곳 있지만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제주와 울진뿐이다. 전문가들은 미네랄 함량이나 원수의 안전성 측면에서 울진의 염지하수를 더 높이 평가한다. 아토피 치료제로도 사용된다. 미네랄을 포함했지만 환경영향을 많이 받는 해양심층수와 달리 해양암반수는 암반에서 용해된 미네랄을 포함한 100% 무공해 청정수라는 차이가 있다.해양암반수는 뷰티, 식품 등 연관 산업으로 확대될 여지가 많다. 에비앙 못잖은 명품 생수의 탄생을 기대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06

‘에너지 그린버튼’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연구본부장 어느덧 따뜻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다. 예년에 비해 반가운 마음이 더 큰 것은 그만큼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고 힘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아마 급등한 난방비도 우리를 무척 힘들게 하는데 크게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다가올 봄은 잠시이고 우리를 무더운 폭염과 열대야로 시달리게 할 긴 여름이 이내 올 것이다. 지난 겨울 난방비만큼 엄청나게 커진 냉방비로 인한 큰 고통이 또 예견된다. 앞으로 더 악화할 기후변화 문제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 체제 강화로 인해 이런 에너지발 경제적 고통은 일상화될 것이다.2011년 이후 연평균 최종 에너지 소비량은 대구광역시가 1.12% 감소하였으나, 전국은 0.79% 증가하였다. 특·광역시 중에서는 울산시가 1.62%로 가장 높고, 인천시, 광주시, 대전시 순으로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최근 10년 동안 1인당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연평균증가율은 대구광역시가 ·0.74%로 전국의 0.56%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타 도시에 비해 산업 분야의 에너지소비 비중이 낮은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결국 대구광역시는 산업을 제외한 수송과 가정·상업 분야의 에너지소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 분야가 냉·난방비 상승의 직격탄을 받는 취약한 분야이다.2020년 기준 대구광역시 최종 에너지 원별 소비량 비중은 석유제품 36.0%, 전력 31.2%, 천연 및 도시가스 23.4%, 석탄 4.0%, 신재생에너지 3.1%, 열에너지 2.2% 순이다.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필요한 신재생에너지의 소비량 비중은 너무 낮고, 대외 의존적이고 에너지 경제적으로 취약한 석유제품, 전력 그리고 천연·도시가스의 비중은 여전히 너무 높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2011년 이후 대구광역시 최종 에너지 원별 소비량의 연평균증가율이 천연 및 도시가스는 증가하지만, 전력, 석유제품은 감소 추세인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지난 겨울 난방비 폭탄이라 표현되는 큰 충격은 역설적으로 매우 다양한 에너지소비 관련 정책의 도입을 촉진하게 됐다. 특히 대구광역시 최종 에너지 소비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상업부문에서의 에너지수요관리 대책이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와 직결된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는 건축물 에너지 효율인증 등급 최상위와 최하위 등급의 에너지 소비량 차이가 무려 최대 7배 이상 나는 것에서도 그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건축물 주거 유형과 준공 연도별 단위면적당 난방에너지 사용량 통계에서 단독주택이고 건축물이 노후될수록 난방에너지사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에서도 에너지 효율화의 필요성이 드러난다.건물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소비자가 전기·가스·수도 등 자신의 에너지 사용량을 손쉽게 온라인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와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효과가 이미 검증된 쌍방향 정보공유 앱인 ‘에너지 그린버튼’의 도입이 시급하다.

2023-03-06

대통령도 나선 봄철 산불, 항구 대책 세워라

건조한 날씨 속에 전국에서 산불이 잇따르자 윤석열 대통령이 산불 예방 관리에 총력을 다해 줄 것을 긴급 지시했다.지난 주말인 4일 오후 대구의 대표적 산인 앞산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5일 낮에는 경산시 남천면 야산에서 산불이 나는 등 주말동안 대구경북서만 8곳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났다. 산림청에 의하면 최근 8일동안 전국에서 매일 10건 이상 산불이 발생했다. 올 들어서 벌써 200건 가깝다고 한다.산림청은 지난 2일부터 산불경보 주의단계를 발령하는 등 특별경계를 펴고 있지만 산불 발생은 줄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북도는 6일 봄철 산불대응회의를 개최, 전행정력을 모으기로 했다. 235명의 산불예방 지역책임관을 배치관리키로 했고, 기동단속반의 활동도 강화키로 했다. 그러나 봄철마다 되풀이되는 산불이 행정력을 집중한다고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과거에도 산불 예방을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산불 방지에 대한 획기적 수단이 개발되는 등 항구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산불 발생은 이상기후 변화로 매년 증가한다. 1990년대 104일이던 산불 연중 발생일이 최근 5년간(2017∼2021년) 170일로 늘었다. 최악 겨울 가뭄이 있던 작년은 전국에서 740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피해면적이 2만4천여ha, 재산피해가 1조3천억원이다.산불은 인명, 재산뿐 아니라 생태계까지 파괴하는 심각한 재해다. 불에 탄 나무를 베어내고 산림을 복원하고 동식물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데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작년 3월 울진에서 발생한 역대급 산불의 현장은 지금도 황폐한 모습 그대로다. 100여 이재민은 아직도 컨테이너 생활을 한다. 이곳 산림을 복구하는 데만 3천400억원 이상 들 거란 추산도 있다.이제 해마다 반복되는 산불에 대응하는 방식이 과거와 같아서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헬기에 의존하는 진화방식을 더 첨단화하고 인력의 전문화, 산림 수목의 내화수림화, 국민의 산림 보호의식 강화 등 종합적이고 항구적 대책 마련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2023-03-06

‘세종대왕이 선택한 태교여행’을 아시나요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와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경북도가 관광상품 개발에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북도는 지난 5일 공모절차를 통해 도내 각 시·군이 신청한 19개 관광사업에 대해 심사한 결과, 이중 대표관광 상품 4개, 야간관광 상품 4개를 선정해 지원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5년여 전부터 관광상품 공모사업을 매년 시행해 왔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도비지원과 함께 전문가 컨설팅, 현장평가를 통한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선정된 대표관광 상품은 해당 지역의 관광브랜드 역할을 하며, 지역경제나 지자체간 관광교류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올해에는 드라마 촬영세트장을 활용한 문경시의 ‘직판타지 로드벤처’와 고분군·가야금을 활용한 고령군의 ‘왕의 길, 현의 노래’, 세종대왕자태실을 연계한 성주군의 ‘세종대왕이 선택한 태교여행’, 호국평화를 테마로 한 칠곡군의 ‘매일매일 칠곡소풍’ 이 선정됐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경북도의 야간관광 상품은 젊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에는 역사유적과 설화를 활용한 경주시의 ‘신라달빛기행’, 월영교 야경과 원이엄마 스토리를 접목한 안동시의 ‘달빛투어 달그락(樂)’, 금당실 고택마을을 활용한 예천군의 ‘금당야행’, 청정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울릉군의 ‘나리 빛나는 밤에 만나요’가 선정됐다.경북도는 국내 타 도시와 비교해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신라, 유교, 가야 문화권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백두대간·낙동정맥의 산림힐링자원, 동해 바다의 풍부한 해양레저자원이 있다. 특히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자랑할 만한 관광자원이다. 경북도가 이러한 관광자원에 최근 현대인의 핵심가치로 자리잡고 있는 ‘힐링과 웰니스’를 스토리텔링화해서 새로운 관광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앞으로도 건강과 가족중심의 관광활동, MZ세대의 이벤트 여행 증가추세에 맞춰 경북만의 차별화된 관광상품을 개발해 관광객 유치와 관련 일자리 마련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다.

2023-03-06

지금이 필수 의료 붕괴 막을 적기다

이시라 사회부 ‘의료’가 곧 ‘국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우수 의료진, 최첨단 장비, 선진화된 진료시스템까지 k-의료의 우수성은 해외에서도 인정한다. 개도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의료 선진국에서도 국내 의료진의 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이제 의료는 한국의 성장을 이끌 신산업 성장동력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그러나 과연 k-의료는 그 실상까지 자랑스러운 수준에 도달해 있을까. 부끄럽게도 그 대답은 ‘NO’다. 자만했던 k-의료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국내에서 실력으로 손꼽히는 ‘빅5 병원’에서 근무 중 쓰러진 간호사가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한 사건은 큰 충격을 줬다. 놀라운 것은 당시 그 큰 병원에 수술을 집도할 뇌혈관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최근에는 소아과 전공의 부족 문제도 이슈다. 전국적으로 소아과 의사 수가 부족해 아침부터 ‘오픈 런’을 하는 등 소아과 대란이 심화하고 있다. 저출생 여파로 소아의료 수요가 감소하고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전공 기피와 수도권 쏠림이 심해진 게 원인이다.올해 상반기 대학병원 전공의 모집 결과 50곳 중 38곳에서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0명이었다. 수도권 일부 대학병원마저도 주말 소아청소년과의 응급 진료를 중단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의료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사실 한국의 필수 의료에 허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 모두가 위기다. 지방은 물론 서울의 주요 상급종합병원도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이들 진료과의 전공의 모집에 실패하는 등 필수 의료체계 전반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정부는 이들 사건 발생 이후 지난 1월 ‘필수 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수가 체계 개선 없이 당장 상황만 모면하려는 실효성 낮은 정책”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의료위기는 지금이 대한민국 의료 개혁의 적기임을 뜻한다. 만일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필수 의료 기반이 약해져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치료 적기를 놓친 환자가 다른 지역으로 진료를 받으려고 달려가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이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사건이 터질 적마다 나오는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확실한 제도 구축과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 정부가 이번만큼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서 대한민국의 필수 의료를 명성에 걸맞은 수준으로 반드시 혁신해주기를 소망한다. /sira115@kbmaeil.com

2023-03-06

1587년 어느 대구 부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낳으면 그냥 자랄 것 같은 아니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 것이 곧 자식이다. 남보다 뛰어났으면 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크게 문제없이 자라주면 좋겠는데,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아이의 문제 행동을 맞닥뜨리게 되면 더욱 당황스럽고 속상하기만 한 게 부모의 마음이다. 몇 년 전까지 한참 유행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이렇게 어렵기만 한 육아를 도와주고자 만들어진 육아 코치 프로그램이었다. 생각보다 도움을 원하는 부모가 많았기에 사회적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근래 인기리에 방영 중인 ‘금쪽같은 내 새끼’도 비슷한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TV프로가 인기가 높다는 것은 소중한 내 자식이 행복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이기에 내가 달라져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그러나 이것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권문해(權文海·1534~1591)는 1587년(선조20) 8월 28일의 일기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당시 그는 대구부사에 재직 중이었는데, 마침 경남 안음에서 열린 감시도회(監試都會)의 시험관으로 출장 갔다가 서둘러 돌아온 길이었다. 동생이 부종(浮腫)을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동생뿐만 아니라 어린 여식까지 아픈 상태였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때 대구부(大邱府)에 도착하였다. 달아(達兒)가 머리 위에 종기가 나서 약을 발랐다. 딱지가 앉은 뒤에는 종기가 아래로 내려와 목에 부기가 생겨 목과 얼굴이 분간되지 않았다. 치료가 어려운 지경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침으로 종기를 터트려 피를 낸 뒤에야 부기가 조금 가라앉았으니 다시 살길이 보이는 듯했다.”-권문해의 ‘초간일기’ 1587년(선조20, 정해년) 8월 28일 일기 중에서권문해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식이 없어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30년을 함께 살았던 첫 번째 부인 현풍곽씨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아내의 죽음에 자식 없는 서글픔까지 겹쳐 한참 동안을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 권문해는 이러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 ‘죽은 아내 숙인 곽씨에 대한 만사(挽亡室淑人郭氏)’를 지었고, 1582년 10월 20일의 일기에 이 글이 온전하게 기록되어 있다. 약 2년 후 함양박씨와 혼인했는데, 권문해의 나이는 51세였다. 일기에 보이는 달아는 두 번째 부인 함양박씨와 혼인한 직후 얻은 딸로 추측되며, 이 당시 겨우 2~3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딸아이였다. 작은 머리에 난 종기가 목으로 내려와 목과 얼굴이 분간되지 않은 모습을 지켜보던 권문해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치료가 어려운 게 눈에도 확연히 보이지만, 종기를 터뜨려 부기가 다소 가라앉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 부모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이날부터 달아의 병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권문해는 아이의 종기가 가라앉아 살 수 있다 생각하고 안심했던 것 같다. 일기에서 달아가 다시 등장한 것은 10월 7일로 20일쯤 지났을 때였다. 저녁부터 기운이 고르지 않더니 밤에는 통증이 그치지 않는다고 적었다. 짧고 간략한 기록이지만, 그 속에 울며 보채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나오는 느낌이다. 다음 날의 일기에서는 공무로 바깥에 나온 일과 함께 달아의 증세를 중간중간 섞어 적었다. 감기 정도의 가볍고 우연한 병증이라 생각했는데, 이날 저녁까지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달아의 병이 수그러지지 않아 아침 일찍 복귀했다고만 기록했다. 다음 날은 아예 출근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의 증세가 여전한 것을 보며 혹시 관아 북쪽 담장 내에 토우(土偶)를 만들어 묻은 것이 동티난 게 아닐까 의심하고 또 걱정했다. 천연두인지 모르겠다면서도 확실하지 않다고 적고 있으니, 이것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달아가 아픈 것은 결국 천연두때문이었다. 10월 11일, “병든 아이에게 역신(疫神)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해 얼굴 위에는 마치 좁쌀을 흩뿌려 놓은 듯하였고, 온몸에는 마치 물을 뿌려 놓은 듯하였다”고 기록했다. 더 이상의 일기는 없었지만, 이날 달아는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날 권문해는 달아를 병장기를 보관하는 곳에 옮겨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는데 그 이유를 다시 다음 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역병으로 갑자기 죽었던 사람이 혹 깨어나는 경우도 있기에 종을 시켜 계속해서 열어보도록 하였으나 가망 없는 일이다”라고. 죽은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부정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달아가 아프기 시작한 7일부터 권문해는 온통 달아 생각뿐이었다. 어린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권문해는 이후 며칠간 출근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588년 10월 12일의 일기에서 “이날은 달아가 역병으로 죽은 날이다. 종일 출근하지 않았다. 온 집안이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채소만 먹고 고기는 먹지 않았다”라고 기록하며 달아를 그리워했다. 이것은 158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이 성장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소통과 공감이 쉽지 않아진다. 이 때문에 숱한 갈등에 부딪치며 부모도 자식도 속상한 날을 보낼 때가 많다. 건강하게만 자라주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는 것들이 사실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이다.

2023-03-06

아름답고 처연하게, 두껍고 무겁게 소멸하는 이야기

영화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유령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요소들을 태연하게 펼쳐 놓는다. 특히 침대보를 뒤집어 쓴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은 노골적이다. 눈구멍 뚫린 침대보를 뒤집어 쓴 유령이 그가 살던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교통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C는 유령이 되어 그가 살던 집에 남은 사랑하는 M의 곁에 머문다. 그리고 M의 슬퍼하는 모습과 극복의 과정을 목격한다.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는 죽은 자의 몫으로 그린다. 살아남은 자의 시선이 아니라 철저히 죽은 자의 시선, 곧 유령의 시선을 따른다. 직선적인 세계관을 살다가 순환하고 종횡무진하는 세계로 들어온 유령의 시선으로 시간은 흐르거나 역전되고, 늘어지거나 축약된다. 표현할 수 없고, 전달할 수 없는 두 개의 세계가 집이라는 공간을 떠돈다.우스꽝스럽게 시작한 유령의 모습은 이내 처연하게 다가온다. 눈구멍 두 개만 뚫린 침대보를 뒤집어 쓴 유령의 변화없는 표정 속에서 무겁게 내려앉는 상실의 얼굴이 읽힌다. 홀로 남은 집, 집은 거대한 쓸쓸함이 되어 슬픔과 함께 뭉쳐져 집안을 떠다닌다. 그 시간 속에서 집은 또 다른 주인을 맞이하고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유령 C와 남는다. 귀엽고 소탈하게 등장한 유령은 이제 세상 그 어느 곳, 누구 보다도 외롭고 쓸쓸한 존재가 되어 집에 남는다. M이 상처 받고 괴로워 하는 모습과 점차 일상을 회복하고 마침내 극복하고 새 삶을 찾아 떠나간 이후에도 유령은 그 집에 머문다.모든 시선은 유령의 시선과 또 다른 유령과도 같은 관객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알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표현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이 오간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남겨진 자(혹은 그 무엇의 존재)가 되어 관객도 함께 빈집에 머문다. C가 그렇듯 우리는 그저 가늠되지 않는 시간을 지켜볼 뿐이다.가늠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공허와 상실, 쓸쓸함과 외로움과 애틋함, 아름다우면서도 텅 빈 감정들이 뒤섞인다. 유령 C가 머무는 집과 함께 무언지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로 가득 채워진 집의 어느 곳에서 추억을 더듬는다. 이제 ‘유령 이야기’는 C가 머물며 추억하고 목격한 ‘집’의 시간, ‘집의 이야기’가 된다.그래서 화면은 일상의 공간, 일상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작은 집 어딘가에 카메라를 놓고서 복도를 비추거나 빈벽을 비추거나, 텅 빈 공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 정물처럼 남은 유령 C가 놓이기도 한다. 빈집이 헐리고 거대한 건축물이 세워질 때 유령은 다시 시간을 거슬러 그곳에 처음 정착했던 이들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C와 M이 함께 살던 때까지 목격자로 관객과 함께 묵묵히 시간을 보낸다. 먼지가 쌓이듯 기억의 공간은 두껍고 무겁게,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메운다.언제까지건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존재(유령)가 사라지는 순간은 허무하다. 건너편 집의 또 다른 유령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에서 존재의 이유를 가지던 유령도 “안 올건가봐요”라고 체념하는 순간 무너져 내린다.영화는 짧지만 흐름은 느리고 길게 흘러간다. C와 M의 시간, 유령의 시간, 유령이 머물던 집의 시간, 그 집이 들어서기 이전의 시간이 한편의 시처럼 함께 흐른다. 기형도 시인의 시 ‘빈집’의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에서 시작해 사랑과 연민, 쓸쓸함과 공허함, 기억까지 소멸시켜 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끝까지 움켜쥐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까지 놓아 버리게 만든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유령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아름답고 처연한 무언가가 내려앉으며 영화가 끝난다. 그 무게만큼 여운이 오래 남는다. /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03-06

‘피지컬 100’이 남긴 것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최고의 피지컬(physical·신체 능력)을 갖춘 몸을 찾는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의 슬로건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했다. 슬로건에 걸맞게 보디빌더, 격투기 선수, 올림픽 메달리스트, 경찰, 전직 군인, 산악구조대원, 댄서 등 소위 ‘몸을 쓰는’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이 모였고, 완력, 지구력, 순발력 등의 신체 능력을 테스트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모든 과제는 성별에 상관없이 동등한 조건으로 진행됐으며, 남성과 여성이 직접적으로 맞대결하는 과제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한국 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의 눈길마저 사로잡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기계적 공정성’일 것이다.참가자들의 신체 능력을 겨루는 ‘스포츠 버라이어티’는 그 역사가 제법 오래됐다. 미국에서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몸싸움을 벌이는 ‘롤러 더비’나 각종 장애물을 ‘닌자’처럼 통과해야 하는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같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열전! 달리는 일요일’이나 ‘출발 드림팀’ 등이 있었다. 스포츠 버라이어티의 미덕은 참가자들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거나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뛰어난 운동 능력과 잘 단련된 육체를 전시하는 것이다. ‘피지컬 100’ 역시 이러한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그런데 ‘피지컬 100’이 기존 스포츠 버라이어티와 차별화되는 점은 참가자들을 성별에 따라 나누지 않고, 남녀 간의 맞대결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남녀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코스를 빨리 돌파하는 경쟁이었지 맞대결을 펼치는 방식은 아니었다. 첫 번째 과제였던 ‘일대일 데스매치’에서는 남녀 간의 맞대결이 두 차례나 벌어졌고, 여성 보디빌더 춘리는 남성 못지않은 완력과 투지를 보여주며 큰 성원을 이끌어냈다. 경기 도중 상대 남성이 무릎으로 춘리의 가슴 부위를 강하게 누른 것에 대해 다른 여성 참가자들의 항의가 있기는 했지만, 이는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한 항의였지 ‘신체적 특성이 다른 남녀를 맞대결시켜도 좋은가?’라는 문제제기는 아니었다.이 장면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실제적 지위가 상승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 여성들은 제도적 어드밴티지(advantage·유리함) 없이 남성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도 될 만큼 자신감에 차 있다. 피지컬 100을 보라”라고. 하지만 그런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출신 남성 운동선수가 여자친구를 흉기로 폭행해 구속됐다. 이 사건은 여성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물리적·사회문화적 약자임을 잘 보여준다.2단계 과제 ‘모래 나르기’에서 장은실 참가자와 팀원들이 잘 보여주었듯, 반드시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야만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피지컬 100’이 보여준 남녀 간의 맞대결, 그리고 ‘최고의 피지컬을 갖춘 단 하나의 몸을 찾는다’라는 슬로건은 어디까지나 방송의 재미를 위한 ‘설정’에 불과하다.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은 생물학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최고의 몸’ 또한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3-03-06

따뜻한 눈빛이 그리운 시간이다

김규인 수필가 1만 년 전에 빙하기가 완전히 종식된 후 폭력은 자연 선택적 변이가 완료된 상태로 인간의 유전자에 남아 우리에게 전한다. 문명사회인 오늘도 아들의 학교폭력으로 공직을 내놓은 변호사와 자신의 폭력으로 중도하차한 가수의 이야기가 연일 기사로 뜬다.인류가 삶을 시작할 때, 야생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돌도끼와 돌칼을 만들어 싸우며 자신들을 지켰다. 이동하며 사냥해 먹을 것을 구하던 유목민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정착한 이후에도 폭력을 사용했다. 옆의 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넓히고 이런 가운데 폭력은 어김없이 쓰였고 문명화된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계속된다. 인류의 역사는 폭력으로 물든 역사다.학교폭력 피해자는 신체적인 손상과 정신적인 압박감을 받는다. 이러한 영향으로 정상적인 학업 생활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불안해 매사에 의욕을 잃고 심한 경우에 자살로 이어지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일어나면 학교와 교육청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하지만,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의 긴 뿌리를 생각하면 인간이 있는 한 폭력이 계속될 것 같다.사냥해야 살아갈 수 있는 원시 유목 사회에서 생존의 도구인 폭력이었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쩌면 먹이를 사냥해야만 살아남는 야생의 본능이 아직 인간에게는 남아있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약한 상대를 찾고 뒤를 쫓아 사냥 기회를 엿보는 야생 사회 말이다.학교폭력을 걱정하는 사이에 아줌마라는 말에 격분해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발생한다.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 앞에 뚜렷한 대책 없이 바라보아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자전거를 타고 대구 신천을 달리는 일이 잦다. 유모차에 반려견을 태우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자식처럼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뒷바라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종족끼리 이보다 더 열악한 대접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왜 이런 지경까지 됐는지.돈을 사냥하기 위해 부모와 형제를 죽이고 우정을 나누어야 할 친구를 폭행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왜 이리 자주 발생하는지. 폭력으로 무너진 인간의 존엄성을 언제쯤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든 폭력 앞에 언제쯤 사람들은 당당할 수 있을까.폭력의 피해는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늘어나는 사회를 보면서 다시 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이제는 가정과 학교와 언론과 사회가 모든 분야서 교육의 주체가 돼야 한다.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교육해야 한다. 그나마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린 나이일수록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상담해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2023-03-06

봉화군에 베트남 왕족이 살았다

박현국 봉화군수 봉화군이 베트남 마을 조성이라는 이색 사업을 펼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삼성 핸드폰 베트남 공장 설립,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우리와 매우 친근한 국가이다.봉화군 봉성면 창평리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베트남 선조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국 속의 베트남으로 통한다.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장기 집권 왕조였던 리 왕조의 후손 이용상이 고려에 귀화해 한국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고, 그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후손들이 봉화 일원에서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이후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이 임진왜란에 참전해 장렬하게 전사하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과 유허비를 건립했다.이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베트남 리 왕조 관련 유적이며 이 마을에는 아직도 그 직계 종손 및 후손들이 살고 있어 베트남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리 왕조는 베트남 최초의 독립왕조로서 베트남의 정신적 지주인 호치민 주석이 생전에 리 왕조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표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이다.봉화군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의 발자취를 발전시켜 국내 유일의 리 왕조 유적지의 관광명소화를 통해 한국-베트남 간의 우호를 증진하고 다문화인들의 교류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현재 추진하고 있는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은 오는 2027년까지 총사업비 294억 원을 들여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일원 부지 3만8350㎡에 베트남 전통 마을, 문화공연장, 연수·숙박 시설 등을 조성하는 것이다.베트남마을이 조성되면 연간 10만 명의 관광객 유치는 물론 연평균 37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482명의 직·간접적 취업유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최근 베트남 국가주석 면담과 베트남 뜨선시와 우호 강화 협약 체결로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고 있다.지난해 12월 화산 이씨 종친 회장단과 함께 베트남 대사관을 방문해 국빈 방한한 응우옌 쑤언 푹 주석을 만나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설명과 함께 국가 정책사업화 추진을 제의했다.특히 베트남 주석과의 만남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보다도 앞서 진행될 만큼 베트남 측에서도 적극적이었으며 사업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베트남에서도 각 부처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답했다.또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와 우호협력 강화 협약서를 체결해 봉화군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대해 양 도시의 협력과 협조를 약속했다.최근에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전문가 워크숍을 열어 베트남 전문가들과 함께 베트남 리 왕조 후손 유적지인 충효당과 재실, 창평저수지 등 베트남마을 조성 사업대상지를 둘러봤다.전문가들은 대구경북 신공항시대와 맞물려 추진되는 베트남마을 사업에서 한-베 문화교류 기능을 강화하면 양국 간 우호 증진과 국내 베트남 다문화인들의 교류공간으로 활용성이 높다며 사업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앞으로 워크숍에서 논의된 사항과 기존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한-베 양국 간의 든든한 가교가 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용역을 실시해 봉화 베트남 마을이 성공적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다.올해에는 베트남과의 지속적인 문화교류를 더욱 추진하고 베트남마을 조성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협력을 이어가려고 한다.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관심과 지원을 통해 베트남마을이 조성된다면 베트남의 역사가 살아 있는 봉화군에 새로운 국제적 관광명소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더불어 양 국가의 발전과 우의를 더 깊이 다지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국내 유일 베트남과의 경제·문화 교류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국민도 양국의 역사적 뿌리를 공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해 나갈 것이다.사업의 성숙기에 터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사업을 재개해 사업의 속도를 내려 하는 만큼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20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