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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꽃 피는 봄이 오면 찾아오는 불청객?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새싹이 돋고 봄꽃들이 만개하며 자연이 녹색으로 물들어 푸르름과 활력이 넘치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지나가는 것 같다. 너무 짧게 느껴지는 봄이지만 이 동안 너무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이다.알레르기 비염의 증상은 맑은 콧물이 많이 나는 것, 재채기, 비색(코막힘) 등이며 이로 인해 후비루(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 등으로 인한 인후부 염증이 동반되기도 하고 눈과 코 주위가 가렵고 피부염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알레르기 비염은 알레르기 물질(항원)에 반응하여 코와 호흡기 등의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대부분 야외에서 발생하는 꽃가루, 미세먼지나 실내의 집먼지진드기, 동물의 털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발된 알레르기 물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알레르기 검사상에 뚜렷한 유발 원인이 확인된다면 이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양이 털이 뚜렷한 유발 원인으로 확인된다면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면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꽃가루 등에 의한 자극이 심하다면 외출 시에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코 세척을 자주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하지만 뚜렷한 항원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나 오랜 기간 생활 환경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인체 내부 환경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한의학에서는 비염을 인체 상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하여 치료하고 있다. 예전보다 추위를 크게 느끼고 찬바람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날씨가 추워질 때 비염 증상이 더 심해진다면 한성 비염의 상태로 보고 몸을 데워주는 약을 쓰기도 하고 맑은 양상의 콧물, 가래 등이 특별히 심하면서 어지럼증 등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담음증의 양상으로 보고 체내 수액 대사를 개선시켜 불필요한 담음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나 심한 노동 등으로 인해 히스타민 과민성이 증가하여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몸을 보해주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오래 지속된 경우 부비동염이 생기거나 콧물이 심하게 넘어가서 인후염,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서 치료해야 한다.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은 코막힘, 재채기 등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수면 장애가 생겨 피로감도 심해지고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험생의 경우 집중력이 크게 저하되어 학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오랜 기간 비염 증상이 지속되면 우울감도 생긴다.따뜻한 봄날에는 피어나는 꽃들과 새싹들을 바라보며 산책만 해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 든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잘 치료가 되어서 콧물 걱정 없는 따뜻한 봄날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03-15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아직까지도 글은 솔직함이고, 폭죽처럼 진실이 절정을 향해 터뜨려질 때에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시는 더욱 그렇고 에세이나 칼럼 같은 산문도 마찬가지다.하지만 난 이 모든 걸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다는 의지조차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모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시 쓰기가 그랬고, 모든 사물과 대상과 사람에 대한 본질을 꿰뚫을 수 없다면, 나아가 이야기 속 진실을 모른 채 쓰는 글쓰기라면, 그것은 어리석고도 우스운 객기라 생각하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그래서 나는 기록을 멈췄다. 읽기를 멈추고 사유를 멈추고 시 쓰기를 멈췄다. 단 몇 줄짜리 시에 이토록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다니 환멸이 났다. 진실이 빠진 글은 누군가의 생각과 글을 그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글쓰기는 당장의 나의 월세가, 밥이, 옷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대학 졸업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유지했다. 화장품을 팔거나 음식을 나르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했다. 필요하다면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를 쪼개어 바삐 움직였다. 글 쓰는 것 외에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했고 지금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후회되는 점은 그 일을 하기에는 너의 재능이 아깝다는 무례한 말을 받아치지 못하고 오히려 거듭 무기력해졌다는 점이다. 동시에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타인에 대한 눈맞춤도, 정작 나의 마음도 모르면서 써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채 더듬더듬 햇빛이 드는 자리에 앉으려 애쓴, 당시의 혼란과 오기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일을 하다 간혹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 년에 세 네 번, 문예지에서 청탁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나를 시인이라 칭하며 작품을 청탁할 때의 민망함, 잊히지 않았다는 안도감,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 마감일이 다 되어서야 급히 써내려가는 초조함, 그렇게 마주했을 때 내 것 같지 않은 문장들,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지 되짚을 여유와 용기가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며, 불현듯 이 모든 게 쓸모없다고 여겨졌다.좋아하는 책을 모아둔 책장도,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자리 잡은 책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볼 때에도, 안면만 튼 작가들의 신작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쏟아지는 광경에 느끼는 소외감도.하지만 이런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건 아직까지도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나는 어떻게든 쓰고 있으며, 글을 쓰고 다루는 모든 이들이 묵묵히 빛나고 있다고 있는 점에서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나는 현재 그 빛남에 출발조차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고 돌아 내가 책장 앞에서 책을 만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제 미련한 유난스러움을 멈추고 묵묵한 글쓰기를 하겠다는 머쓱한 결론에 도착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속 같은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을 주는 인스턴트식 만족감이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맞지만, 영상이 끝나고 검은 화면에 내가 잠깐 비출 때의 스스로를 못나다고 생각하는 것, 방구석에 앉아 혼자 너무 편하게 생각 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은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분명히 할 말이 있는 사람이고, 그 말을 정확히 세상에 던지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요즘은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생활 유지를 위해 써야만 하는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기업의 홍보성 글이나 광고 카피 등의 업무적인 글쓰기는 광고에 따른 타겟층이 정해져 있기에 사용자에게 기대하는 의도나 목적, 그로 인해 얻어지는 예측성과를 정확하게 설정한다. 문구 또한 소비자가 카피를 읽는 즉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작성한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즉각적인 참여나 구매 등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다행히 일은 꽤나 적성에 맞다. 치밀하고 정확한 글쓰기와 내가 쓰고 싶은 글쓰기 사이에서 공통점과 적절한 균형을 찾아 애쓰고 있고, 모든 글쓰기가 꽤나 내게 도움이 되고 있단 점에서 요즘의 나는 글과 함께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3-03-14

2층 아저씨의 참기름

시각, 청각 장애인인 할머니에게 제공된 국민임대주택에서 엄마가 산다. 할머니 부양하는 동거인이라 입주 자격이 된다. 옥상에 빨랫줄 당기고, 스티로폼박스 화분을 놓아 상추, 고추 심을 수 있는 그 집에서 14년째 사는 중이다.영어유치원 급식 일하러 갔더니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언니 돈 모으라고 안 돌아가고 버티시는 거”라 했단다. 하긴 최소한의 월세와 공과금만 내면 되니 주거비용을 많이 아끼긴 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 들어간 후 엄마는 반려견 순돌이랑 둘이서만 지냈는데, 순돌이는 3년 전 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시어머니 병구완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직 변변히 자리 잡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3층짜리 낡은 연립주택 1층에는 1년에 몇 천 건씩 민원을 넣어 ‘민원왕’으로 티브이에도 나온 악성 민원인 아주머니가 살고, 2층에는 80대 중반 어르신이 산다. 3층에 사는 엄마는 ‘2층 아저씨’와 살갑게 지냈다. 그분은 젊어 재혼 후 자식들에게 버림 받았다. 아내 되신 분이 금방 돌아가셔서 쓸쓸히 혼자 늙었다. 옥상 오르내리며 이불빨래 널 만큼 정정하셨는데 암 수술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몸피가 반으로 홀쭉해졌다.엄마는 영어유치원 급식 반찬 남은 게 있으면 비닐에 싸서 아저씨 갖다 드리고, 할머니 면회 갔다가 병원 1층 죽 가게에서 소고기죽 사서 갖다 드리고, 행정복지센터에서 김 두 상자 받으면 한 상자 드리고, 내가 낚시로 잡은 생선 갖다 주면 그것도 나눠 드리고, 명절 음식 해다 드리고, 내 생일날 일부러 잡채 더 해서 갖다 드리고 했다. 좋았다 나빴다 하다가 또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퇴원을 안 하신다. 며칠 전 집 앞으로 이삿짐 차가 오고, 수십 년 연락 끊고 지낸 딸이 와선 엄마에게 고맙다고… 병원에서 혼자 돌아가셨단다.얼마 전,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살던 80대 여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미처 하지 못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오랜 기간 생활고에 시달렸다. 관리비가 7개월이나 연체된 상황에서 방을 비워줘야 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다.지난 1월엔 생활고를 겪던 70대 어머니와 40대 딸이 함께 극단 선택을 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장사를 할수록 빛만 늘어나고, 월세는 밀려가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임에도 전기요금 등을 성실하게 납부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오히려 찾아내지 못했다. 유서에는 “장사하면서 빚이 늘었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밀린 월세를 대신해달라”고 적혀 있었는데, 더 가슴 아픈 건 “폐를 끼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라는 문장이다.“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그 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김민기, ‘아름다운 사람’)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윤동주는 ‘팔복’의 마지막 문장을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고 썼다. 멀찌감치 관망하는 자의 손쉬운 위로가 아니라 슬퍼하는 자들 속으로 들어가 그 슬픔에 영원히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을 보며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는 사람, 더운 가슴에 바람이 이는 사람, 고운 마음에 아픈 노래 울리는 사람, 그 아름다운 사람을 나는 엄마에게서 본다.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늙은 사람이 더 늙은 사람을 보살피고,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 곁에 있다.2층 아저씨 냉장고를 열어 보니 파 썰어놓은 것, 참기름, 된장 따위가 있어서, 아까워 챙겨오셨단다.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버렸을 텐데 가족처럼 지낸 분이니까 챙겨왔다”고. 엄마는 오랜 이웃을 잃었고, 이웃이 남긴 참기름, 된장, 대파로 저녁을 지을 것이다. 누군가 살려고 가꾼 것들이 다른 이의 삶을 마저 가꾼다. 삶이 없어도 삶이 이어진다.“봄에 옥상에다 뭐 안 심어?”라는 내 물음에 엄마는 “2층 아저씨가 화분이랑 다 해놨으니까 엄마가 상추 고추 심고 호박도 심어야지” 했다.

2023-03-14

소나무 재선충병

우정구 논설위원 소나무는 우리나라 수목 가운데 가장 많은 분포면적을 가지고 있고 개체수도 가장 많다. 대표적인 침엽수다.소나무는 건조하거나 지력이 낮은 곳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하고, 화강암지대의 고산에서도 잘 자란다. 건축재나 가구, 선박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우리 민족에겐 가장 친근한 수목이다. 거대하게 자란 노목(老木)은 장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사철 푸른 빛은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자라는 금강송도 결국 소나무다. 겉 껍질이 붉어 적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라서 소나무 중에서 최상급 목재로 사용된다.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 목재로 쓰였으며 화재로 소실된 국보인 숭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동원됐다.경북 북부지역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에는 수령 200년 이상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어 국가에서 보호림으로 관리한다. 속리산 정이품소나무나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경북 예천의 석송령 등 많은 희귀한 소나무들은 나무 자체의 스토리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소나무만큼 우리민족 문화에 영향을 끼친 나무는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대유행 조짐이라 한다. 작년 대구경북에서는 12만여 그루가 재선충병에 감염됐다고 한다. 산림청은 올해는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소나무가 감염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1988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한 소나무 재선충병은 지금은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번져 재선충 방제가 사실상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한 달 안에 완전 고사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뾰쪽한 대책도 없다. 재선충병 방제에 대한 범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14

‘우수인력’ 탓하며 수도권집중 계속할텐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설에 전주시민들이 떠들썩한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8.22%라는 사상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자,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시에 있는 것이 주요원인으로 꼽히면서 서울이전설이 나왔다. 지방에는 ‘초일류인력’이 없어 연금재정운용을 형편없이 했다는 논리다.지난해의 경우, ‘주식투자 고수’들이 몰려 있는 서울의 유력 투자기관들도 최악의 손실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이 논리는 맞지 않다. 언론 보도를 보면, 날고 긴다는 주식전문가들이 몰려있는 한국투자공사(서울 중구)는 지난해 -14.3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민연금보다는 성적이 다소 양호하지만 사학연금(-7.7%) 실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올 상반기 중에 결정될 국가첨단전략산업(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특화단지 지정을 두고도 ‘지방=초일류인력 부재’라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고용창출을 포함해 수조원대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할 것 없이 20여곳의 지자체가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포항(이차전지)과 구미(반도체)가 지난달 말 마감한 정부공모에 지원서를 제출했다.이차전지 분야에는 충북 오창과 울산, 전북 군산도 지원했다. 4년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포항은 이미 이차전지 원료, 소재, 리사이클링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고,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대기업들도 집적돼 있어 초격차기술 확보에는 어느 곳보다 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경쟁 지자체 중에 수도권이나 다름없는 오창이 포함돼 있어 꺼림칙하다. 오창에는 이차전지 완제품 생산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비엠이 있다.반도체 특화단지 공모를 신청한 구미시도 이미 반도체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생태계가 완성돼 있지만, 수도권에서만 8곳(인천·용인·화성·이천·평택·안성·고양·남양주)이 유치전에 뛰어들어 불안한 상태다. 지난해 2월 제정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당초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었으나,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개정안을 내 놓으면서 지금은 누더기로 변했다. 법제정 당시에는 16조 3항에 “수도권 외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이 분명히 명시됐지만, 지금은 ‘수도권 비수도권 구분없이 관련 기업이 집단적으로 입주해 있거나 입주하려는 지역도 우선순위에 포함한다’는 새 조항이 들어가 있다. 수도권이라도 관련 생산시설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유리하도록 변경된 것이다. ‘국가균형발전 정신’이 법 개정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희미해져 버렸다.아직 게임의 룰인 채점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심사위원(국무총리 주재 첨단전략산업위원회)들이 국가균형발전이냐, 아니면 우수인력 확보와 연계된 첨단산업 집적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게 됐다. 비수도권 지자체는 첨단전략기업이 집중된 수도권과 경쟁해야 하는 한편, 지방끼리도 싸워야 하는 이중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2023-03-14

TK신공항 3월 국회통과 과연 성사될까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의 국회 국토위 교통소위 심사 일정이 오는 21일로 한 주 미뤄졌다. 그저께(13일) 최인호 교통소위위원장(민주당·부산 사하구갑)과 강대식 의원(국민의힘 최고위원·대구 동구을), 대구시 및 정부부처 관계자가 신공항 특별법 소위 상정 일정과 쟁점 조항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면서, 소위개최 일정을 당초 14일에서 한 주 미루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대구시는 빠른 처리를 위해 조기 안건 상정을 강력히 희망했지만, 이날 교통소위가 심사할 쟁점 법안이 워낙 많은데다 소위위원 간 이견이 또 증폭될 경우 피로감만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모양이다.TK 신공항 특별법을 심사할 국토위 교통소위는 21일에 이어 28일에도 개최된다. 신공항 특별법은 지난달 열린 교통소위의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정부부처와 야당의원들이 제동을 걸어 심사가 미뤄졌다. 대구시측은 그동안 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위해 야당이 문제 삼았던 중추공항 명칭을 삭제하고, ‘신공항의 반경 20㎞를 주변 개발 예정지역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반경 10㎞로 범위를 축소하기로 한 바 있다. 최인호 위원장은 “그간 논란이 됐던 TK 신공항 위계·활주로 길이 관련, 기부대양여 부족분 국비 지원 관련 조항은 물론 특별법 전반에 대한 조율 작업이 이뤄졌고, 상당 부분 의견 일치를 봤다”고 설명했다. 그저께 회의에서는 특별법 조항 하나하나를 짚으며 조율작업을 했기 때문에 21일 교통소위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이 교통소위 문턱만 넘으면, 오는 23일로 예정된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는 여야합의 처리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TK신공항 특별법이 상임위를 통과하면 마지막 관문인 국회 본회의 의결절차가 남게 된다. 본회의 통과 시점은 ‘쌍둥이 법’으로 불리는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의 국방위원회 심사 속도와 보조를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본회의는 오는 30일로 예정돼 있어 ‘신공항 특별법 3월 국회통과’라는 어려운 숙제가 전격적으로 풀릴 수도 있다.

2023-03-14

코로나 때보다 안 쓴다… 소비 진작책 필요

고물가와 고금리 등이 가계경제를 강타하면서 “안 입고 안 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소비 위축심리가 크게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이 밝힌 1월중 소매 판매액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8월(109.4)보다 1월중(103,9) 지수가 5.03%나 떨어졌다. 소매 판매액지수는 개인 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천700여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것이어서 경제 주체들의 실질적인 소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이번 조사에서 비교적 소비 감속 폭이 큰 품목은 의복, 신발, 가방 등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저가상품이 많았다. 감소폭도 전체 평균보다 높은 6.5%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음식료품 소매 판매액지수도 9.6%가 급락해 입는 것과 함께 먹는 것에 대한 소비도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특히 소비 판매액 기준지수가 2020년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소비가 코로나19 사태 때보다 더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올 들어 우리경제는 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적자규모도 228억 달러에 달해 지난해 연간 적자액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수출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의 수출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도 1%대로 전망되는 상황이어서 시중의 소비 위축이 내수경기 침체를 더 가속화 시킬지 걱정이다.수출부진 속에 내수마저 급랭할 경우 국민이 받을 경기침체의 고통이 더 커질 수 있어 정부의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 경기 진작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나 물가 상승과 맞물려 대응방법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실물경제가 뒷받침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경기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게끔 정부의 원만한 내수경기 진작책 마련이 절실하다.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고물가·고금리로 서민경제가 어려우니 범경제부처가 내수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방역망 해제 시기에 맞춰 외국인 관광 유치와 쿠폰 발행 등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수경기를 진작할 묘안을 찾아야 할 때다.

2023-03-14

데이터로 바라본 사회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우리 사회의 대다수 데이터들은 주로 중앙집중형 또는 탈집중형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앙집중형 데이터 관리 구조의 요지는 권한을 부여받은 핵심 소수 또는 허브(hub)가 대다수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를 전담하는 것이다. 관리의 대상이 적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고 관리 자체도 용이해 생산 최적화된 방식의 구조라고 볼 수 있다.따져 보면 우리 사회도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에서 중앙집중형 구조를 띠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대다수의 조직 활동만 보더라도 여러 명이 동등한 의사결정을 갖는 것보다 한 명이 최종 의사결정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덜 소모적이다.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이라고 하는 그 흔한 점심 메뉴 고르는 것조차 개개인이 의사결정을 갖는 것보다 담당자 한 명이 결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생산성이 최우선시되는 산업시대에서 중앙집중형 방식은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집중형 구조로 구성되어 왔던 것이다.그러나 중앙집중형 구조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종속성이라는 아주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허브는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큰 권한을 부여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오직 허브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는 곧 허브와 허브에 연결된 이용자 간에 큰 불평등을 야기한다. 또한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구성원들은 지나치게 허브를 의지하게 된다. 허브로의 종속은 허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주권과 정체성의 상실을 뜻한다. 생각해보면 이는 애석하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데이터는 분산형 구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분산형 구조는 별도의 허브를 두지 않고 모든 객체가 다 연결되어 데이터에 서로 접근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분산형 구조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적용하려면 모두를 관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널리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이 분산형 구조 내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주게 되면서, 분산형 구조는 실제로 활용 가능한 것이 되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자 정부를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들은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 구조로의 변환은 단순히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거버넌스 문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분산형 구조의 핵심은 단순한 연결성의 확장이 아니라 정보의 개방성과 평등이다. 분산형 구조 하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될 때, 소위 말하는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기회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생각해본다. 데이터가 그러하였듯이,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 더 연결되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한다면 개인에게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기회가 지금보다는 더 보장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2023-03-14

의미 있는 삶의 방향, 종오소호(從吾所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지마다 망울이 맺히고 조금씩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화창해진 날씨에 차츰 개화의 몸짓을 보이며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느닷없이 휘몰아친 비바람과 추위에 서둘러 핀 꽃들이 화들짝 놀라지는 않았을까 싶다. 궁핍의 대지를 보듬으며 돋아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들을 시샘하는 추위가 일진광풍처럼 부산을 떨어도, 이미 봄빛의 움직임은 비단 안개를 두른 듯 아장아장 생동의 걸음마가 한창이다. 그렇게 다시 또 봄날이 시작되고 산과 들은 부풀어가고 있다.해마다 봄이면 그 자리에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메마른 땅 속에서 자양분을 찾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꽃들은 서로 비슷하게 핀다(年年歲歲花相似)지만, 기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꽃과 잎새를 드리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자리나 잎차례를 벌이는 것은 화초나 수목에게 있어선 생장의 본질이고 절정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매년 같은 꽃이 피는 것에 비해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다(歲歲年年人不同)는 대구(對句)로 인생의 무상함을 읊었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인연 따라 시류 따라 사람은 변화하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듯이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특장을 꽃피우게 하고 삶의 기반을 더욱 튼실히 일궈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렇듯이 화초가 꽃을 피우는 현상이나 사람이 변화, 혁신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과 궁극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보다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거개가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바대로 움직이고 일을 해야 편하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결코 그만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을 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바를 쫓아간다(從吾所好)’고 공자는 2천500여 년 전에 설파했던 것일까?그러고 보니 15년 전 필자의 첫 개인전 도록의 첫 장에 수록된 작품이 예서로 쓴 종오소호였다. 아마도 당시의 야무진(?) 마음에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바를 꾸준히 느끼고 즐기면서 몰입과 천착하리라는 다짐에서 쓰고 배치했던 것 같은데, 과연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 바를 쫓고 누리며 의미를 다져왔는지는 미지수이다. 다기(多岐)한 삶을 살면서 어찌 좋아하는 것만 쫓고 추구할 수 있으랴만, 생각과 마음이 이르고 몸이 흔쾌히 따르는 일과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긴요하고 가치로운 시도이다.

2023-03-14

‘더 글로리’와 학교폭력의 계급화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3월 10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2부가 공개되었다. 주로 로맨스물의 주연을 맡아 왔던 송혜교의 파격적 이미지 변신과 개성 넘치는 악역·조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한번 시청을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에는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성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복수를 테마로 삼는 이야기를 복수극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복수극은 멜빌의 소설 ‘백경(모비 딕)’일 것이다. 작중에서 에이허브 선장은 과거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결말에서 그의 배는 모비 딕에 의해 박살나고 복수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복수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그런데 요즘의 복수극은 마치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개운한 복수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더 글로리’ 1부가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조력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인 복수극이 펼쳐지며 악역들이 하나씩 몰락해 간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문동은의 복수가 성공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복수가 얼마나 통쾌하게 이뤄질 것인지를 기대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즉, ‘더 글로리’의 시청자들에게 복수의 실패는 곧 ‘고구마’같은 답답함인 것이다. 왜 그럴까?이 문제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무엇)인지와 관련이 깊다. ‘백경’의 복수 대상인 흰 고래는 자연에 속한 존재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이 통하는 대상이 아니므로 선장의 복수심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반면 ‘더 글로리’에서 복수의 이유가 되는 학교폭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발생한다. 작중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은 문동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즉, 박연진이나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처럼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모두 갖춘 상류층들에게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은 문동은이나 윤소희(이소이 분)처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괴롭혀도 괜찮다고 믿는다. 설령 들키더라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현실에서도 학교폭력은 힘센 아이가 아니라 계급적 우위에 있는 아이가 저지르는 일이 되었다.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학폭 썰(사연)’들을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옷차림이나 꾸밈새가 남루한 아이들이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아이들은 교실에서부터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상위 계급에 굴종하는 법을 학습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 사회의 근본 구조를 좀 더 날것의 방식으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집착하는 가치가 ‘능력주의’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학교폭력을 단지 개개인의 일탈로 볼 것이 아니라, 부의 편중과 교육의 계급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2023-03-13

정확한 방향 설정과 과감한 실행만이

김규인 수필가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들어서는 정권마다 정책을 펴고 돈을 퍼부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부어도 출생률은 점점 더 줄어들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한다. 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출생률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이러한 추세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낮은 출생률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각국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었다. 프랑스는 GDP 5%에 이르는 가족수당과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볼리비아는 12개월, 에스토니아는 85주의 100% 유급 휴가를 준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0세의 아이를 둔 가정에는 매달 70만 원의 현금을, 1세가 되면 35만 원을 준다. 프랑스는 획기적인 정책의 성공으로 감소하던 출산율을 되돌린 성공적인 사례이다.저출산 문제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정책의 과다로 더욱 치솟은 아파트 가격, 여성의 경력 단절과 보육 시설의 부족, 사교육비의 지속적인 증가와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회로 진출하지 못한 청년은 움츠러들고 취업 후에도 높은 집값에 절망한다.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청년이 결혼하여 살아갈 주거문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출산과 육아를 위한 환경의 미비, 아이를 돌보는 여성의 경력 단절, 낳은 아이를 가르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이 득실거리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월급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는 아파트값, 상대적인 빈곤만을 느끼게 하는 사교육비, 마음 편하게 낼 수 없는 육아 휴직, 이에 따라 가까스로 얻은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 언제나 비정규직을 헤매는 청춘들은 혼자 살기도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누구나 원하는 평범한 일상은 꿈으로만 머문다.아파트 분양 원가를 낮추어 거품으로 가득한 아파트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 임대 주택을 늘리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여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장기적으로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 산업체가 일하기 좋은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는 유인책을 마련하고 산업체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여야 한다. 정부의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정책을 쏟아내어서는 안 된다. 저출산 관련 문제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흩어진 저출산 관련 정책을 모아 모든 부서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극복한 프랑스는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된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국가적으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주저앉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방향의 설정과 과감한 실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프랑스가 해결한 문제를 우리가 못 할 것은 없지 않은가. 가정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2023-03-13

경산 갓바위, 그 후덕하고 영험함

팔공산 관봉에는 머리에 보개(寶蓋)를 쓴 불상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산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들 사이로 크고 웅장한 몸체가 앉아있는데, 얼굴은 무뚝뚝하지만 손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그린다.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로 만든 보개를 이고 있어 마치 갓을 쓴 것만 같다. 과거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부서져 내린 보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석가여래좌상은 흔히 ‘팔공산 갓바위’라 불린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투박한 생김새에 비해 여느 불상보다 마음만은 후덕하다. 절실하게 빌면 한 가지의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고 전해져 옛날부터 사람들이 곧 잘 찾아오곤 했다.농사가 중심이었던 농경사회에서는 비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 왔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1960년대 이후에는 수능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지금도 부처님 오시는 날이나 입시철이 되면 산 아래까지 사람들로 북적여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너무 쉽게 소원을 이뤄주시면 신도들이 버릇 없어진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니 얼마나 영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사여래불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9세기쯤 몸체가 만들어지고 고려쯤에 팔각형의 보개를 따로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 미륵불인지 약사여래불인지 아미타불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9세기는 약사여래불이 유행하고 많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합을 지니지 않았으니 약사여래불로 보기는 힘들다.또 1821년 ‘선본사사적기(禪本寺事蹟記)’에서는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조성했다고 하며, 1960년까지만 해도 ‘갓바위 미륵님’·‘영험한 미륵님’으로 불렸다고 한다.하지만 항마촉지인과 불리던 이름만으로는 미륵불이라고 확정하기도 힘들다. 학자들은 통일신라 때 아미타불로 만들어졌다가 고려 때 미륵불로 불리다가 현재는 약사여래불로 개칭된 것이라 설명한다. 어떤 불상이 되었든 과거에도 현재에도 후덕한 불상이란 이미지는 확실한 것 같다.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팔공산 갓바위는 불에 구워져도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으로도 알려져 있다.지금은 뽀얀 화강암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인근 주민들에게 새까맣게 타버린 불상의 기억이 남아있다. 이것은 경산의 진취적·역사적 성격이 가미된 독특한 기우제에서 비롯된다.팔공산 갓바위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고 일주일이 지나도 효험이 없으면 불단에다 생돼지 피를 바르고, 인근의 솔가지·장작 등을 불상 주변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5m나 되는 석가여래좌상을 검게 태우는 큰불은 머리 위의 보개, 팔각의 판석을 부스러트렸다. 사람들은 용신이 부처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비를 내린다고 굳게 믿어왔었다. 비를 내리게 하려고 불상에 불을 놓는 이러한 호전적인 성격은 경산의 역사와 설화에서도 그 면면을 찾아볼 수 있다.경산에는 특히 용 설화가 많이 남아있다.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이 계모의 구박을 받아 집을 떠나게 되고 금강산이 아닌 경산의 용성면 배남산에 터를 잡는다. 이곳에서 10명의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9명을 승천시키고 1명은 죽는다. 딸은 동해 용궁으로 돌아가고, 아홉용은 봄에 승천하고 가을에 하강하여 지역의 물을 다스린다.’ 김종국 박사는 당시 경산지역의 역사와 설화를 비교 연구하면서,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은 경산에 파견나온 김유신 군수로, 계모의 구박은 백성의 요구로, 경산의 용성면은 신라의 최전방으로, 10명 중 9명은 살고 1명은 죽은 것은 전쟁 중에 전부 살 수는 없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본래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서도 용은 부처를 수호하는 존재였으며, 중국에 전파되면서는 중국 전통 용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수용되었다.물이 많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믿어왔던 전통적인 용 신앙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더욱 영험함을 획득하게 되고 농사와 관련된 비를 다스리는 신으로서 추앙받게 된다. 팔공산 갓바위 기우제는 하늘과 부처와 용신 모두에게 기원하는 경산의 독특한 제라 볼 수 있다.현재 큰불을 놓던 지역만의 기우제는 사라져 팔공산 갓바위 불상이 검게 물들 일은 없다. 그러나 전국에서 찾아온 이들로 북적이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금도 여념이 없는 불상은 산 정상에서 무뚝뚝함을 가장한 채 앉아있다.이만하면 여느 불상 중에서도 으뜸가는 영험함과 후덕함을 지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는 지금도 사람들의 소원으로 넘쳐난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3-13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작가의 눈

원고지에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형상화한 해당 단행본의 표지. 우리에게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 앞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눈은 인간이 향하는 앞의 길만을 보도록 제약한다. 우리 인간은 어딘가 거리를 걷고 있으면서 동시에 걷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없는 숙명적 제약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가 속해 있는 시대나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애초에 역사나 통계처럼, 내가 속해 흘러가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가늠하거나,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불투명한 군집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발달해왔던 것은 ‘자기’를 벗어난 외부 세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물론,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내 속처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가늠하고 짐작할 방법들은 존재한다. 인간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거나, 누군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이 담긴 각자의 말과 글을 듣고 읽다 보면 우리는 ‘자기’를 벗어나 어떤 타인들의 집합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각각을 둘러싸고 있는 외로움도 조금은 해소된다. 과거의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통해 받았던 인상들을 글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비록 SNS시대에 작가의 그런 역할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자기를 둘러싼 사회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작가’의 자리는 다소 변형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를 벗어난 타인의 집합으로서의 사회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작가 박태원이 탄생시킨 ‘구보씨’는 고작해야 대학노트를 끼고 식민지 시대 경성을 활보하는 작가의 페르소나였지만, 그것이 이후 최인훈, 주인석 등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작가’라는 존재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은, 구보씨가 전하는 별것 아닌 세상이 모두 외로운 섬처럼 놓인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응당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그 섬들로 편지를 발신해야 한다. 그것이 별것 아닌 메시지라고 하더라도.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해볼 작가는 바로 빙허 현진건이다. 대구 계산동에서 태어난 빙허는 그 당시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일본에 유학했다가 돌아와 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비록 ‘운수 좋은 날’의 작가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식민지 초기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눈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관찰했던 작가였다. 그가 처음 썼던 ‘희생화’라는 짧은 단편은 비록 당시 문단의 중진이었던 황석우에게 혹평을 받긴 했지만, 근대적인 연애에 눈뜬 누님을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적 습속을 예리하게 잡아낸 작품이었다. 이어 계속 발표했던 ‘술 권하는 사회’나 ‘타락자’ 등과 같은 작품도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당시의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단편이라는 완결된 형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눈을 보여주는 한국 최초의 사례였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현진건이 보여주는 사회의 ‘단편’들은 우리에게는 100년이 지난 옛 사회의 모습이지만, 또 그것이 그렇게 지금의 사회에서 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만히 읽고 있다 보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모순,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뜸과 허위의식 등이 새겨지듯 들어온다. 가끔 스마트폰 속 ‘사회’로부터 ‘자기’가 조금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땐 사회에 대한 작가의 눈이 담긴 소설을 권한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3-13

초저출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세계 최악의 출산율 0.78명, 이것은 청년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증한다. 취업·결혼·출산·육아는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16년간(2005∼2021) 280조를 투입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돌팔이 의사가 중환자의 병을 진단·치료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은 당사자의 생각이 중요하다. 취업난과 무주택 상황에서 결혼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결혼을 해도 출산과 양육에는 엄청난 돈·시간·희생이 요구된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어렵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돈 몇 푼 주고 아이 낳으라’고 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청년세대의 가치관도 변했다. MZ세대는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결혼과 출산은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가족주의·가부장주의와는 달리 개인주의·양성평등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자녀가 노후를 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내생(來生)보다 현생(現生)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이제 우리사회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그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 있는 중·장기정책으로 삶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이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확신이 설 때 비로소 그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이를 위해 정부는 ‘매우 어렵고 힘든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들의 취업·주거·육아·교육 등 생애 전반에 대한 정부의 법적·제도적 책임이 크게 강화되어야 한다. 국가소멸위기의 극복은 ‘허울뿐인 위원회’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명무실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정부의 공식 부처로 승격하는 동시에 행·재정적 권한을 부여하고 범정부적 협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지만 인구집중에 따른 과잉경쟁과 주거불안으로 고통은 가중된다. 전국 최저의 출산율 0.59명은 서울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말해준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발언권을 강화시킴으로써 점점 더 집중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허울뿐인 위원회’로서는 국가균형발전도 어렵고 저출산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다.양성평등문화의 정착도 시급하다. 출산과 육아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이며, 현대여성들은 ‘독박 육아, 독박 가사’를 단호히 거부한다. 양성평등의식이 절실함은 물론,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일·가정 양립을 성공시킨 영국·프랑스·스웨덴의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성세대의 낡은 의식이나 정치권의 권력 논리를 버리고 청년세대,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2023-03-13

아프리카돼지열병 조기 차단에 최선을

최근 경북 영덕과 울진 등지 야생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경북도가 사전차단 방역 활동에 나섰다. 올 들어 경기도 김포와 강원도 양양 등지 양돈농가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당국이 농장 봉쇄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어 경북도도 긴장감을 갖고 사전 차단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도는 양돈 전 농가에 ASF 위험 주의보를 현재 발령 중이다.경북도는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된 장소에서 10km 이내 양돈농가에 대해 이동제한 및 정밀검사를 하고, 나머지 농가에 대해서도 방역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도내 양돈 밀집 사육단지가 있는 안동, 경산, 고령, 성주 등에 대해서는 맞춤형 방역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경북도내는 지난해 이래 야생멧돼지에서 100건이 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된 바 있어 바이러스가 양돈농가로의 전염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특히 3∼4월은 야생멧돼지들의 출산기여서 먹거리를 찾는 야생멧돼지의 민가 출현이 우려된다.알다시피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바이러스성 출혈 돼지전염병으로 주로 감염된 돼지의 분비물 등에 의해 직접 전파된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릴만큼 100% 가까운 치사율을 보인다. 치료 방법도 현재는 없다. 따라서 한번 발생하면 양돈농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의 한 농장에서 ASF가 발생해 경기도, 강원 등으로 번져 전국적으로 1만3천마리 이상의 돼지를 살처분하기도 했다. 양돈농가 피해뿐 아니라 시중의 돼지값이 폭등하는 일도 벌어진다.현재 타도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는 상황이어서 경북에서 검출된 야생멧돼지로 인한 바이러스 전염이 상당히 우려되는 분위기다. 양돈농가 종사자들은 발생지 방문을 금지하고 입산을 자제하는 등 방역수칙 준수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방역당국도 돼지열병 바이러스 전염 우려를 홍보하고, 전염병 차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ASF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현재로선 조기 차단이 가장 효과적 대응이다.

2023-03-13

예산없고 방지턱 많아 외면받는 ‘저상버스’

새해들어 노선버스를 대체 또는 폐차할 경우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경북도내 버스업체 상당수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저상버스 의무도입 대상은 시외버스를 제외한 시내버스, 농어촌버스, 마을버스가 모두 포함된다. 저상버스는 누구나 쉽게 탈 수 있도록 바닥을 낮추고 출입구에 경사판을 설치한 버스다. 노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에게 유용하다. 일부 저상버스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따로 마련해 뒀다. 지난 2021년 국토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경북도내 저상버스는 모두 230대로 도입률이 43.7%에 그치고 있다. 상주·문경·영주시를 비롯한 15개 시·군은 단 1대의 저상버스도 운행하지 않고 있다. 저상버스를 운영 중인 지자체는 포항(94대)과 경산(36대), 구미시(30대), 김천(27대) 등 주로 인구가 많은 시 지역뿐이다. 노선버스업체들이 저상버스 도입을 외면하는 것은 지자체 예산지원이 빠듯한데다, 도로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경북도가 올해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국비를 포함해 35억8천800만원이다. 39대에 지원되는 금액이다. 시가지(시내와 읍단위)를 제외한 경북도내 대부분 시·군 지역의 경우 노면 굴곡이 심한데다, 방지턱이 많은 것도 바닥이 낮은 저상버스 도입을 외면하게 하는 요인이다. 농촌도로는 특성상 과속차량이 많아 방지턱을 설치한 곳이 많은데, 민원 때문에 이를 정비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운행되는 시·군지역 저상버스들도 노면이 고른 도로에서만 다니고 있다.경북도도 마찬가지지만 전국 농촌지역은 대부분 승객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다. 그만큼 저상버스 도입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경북도가 저상버스 도입률 확충을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겠지만, 15개 시·군에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예산확보와 도로환경 개선을 통해 교통약자들의 이동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2023-03-13

가창면의 선택은

홍석봉 대구지사장 가창면은 면적이 111.33㎢로 달성군의 읍, 면 중 가장 넓다. 동쪽은 경북 경산시, 서쪽은 달성군 화원·논공·옥포읍, 남쪽은 청도군 각북면 및 이서면과, 북쪽은 수성구 파동과 접해 있다.지도상으로는 달성군의 다른 읍, 면과 붙어 있지만 중간에 비슬산(1천84m)과 최정산(915m) 등 큰 산이 가로막아 달성군 내에서 섬처럼 돼 있다.하지만 가창면은 달성군내에서 대구시청, 동대구역 등 대구 중심과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는 등 교통 환경이 최고다.가창면은 신천을 끼고 수성구 파동과 붙어 있다. 7천600명의 주민들은 수성구가 생활권이다. 전화도 국 번호가 같고 우편도 수성우체국 관할이다. 학군도 대구 중·동·북·수성구와 함께 1학군에 편성돼 있다. 1957년 달성군에서 대구시로 편입돼 동 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3년 달성군으로 환원돼 현재에 이른다.가창면의 수성구 편입은 선거 때 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 편입 공방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주민 의견수렴 과정과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했다.가창면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수성구 편입 추진 의사를 밝히며 가장 핫한 곳이 됐다. 불합리한 행정구역 조정의 일환이다. 대구시와 달성군이 합의만 하면 된다. 행안부 승인과 대구시의회 의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창면 주민들의 의견이다. 찬성 의견이 높지만 반대도 적잖다. 정부의 농촌지역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부동산 투기규제가 가장 심한 수성구에 편입, 토지거래 제한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행정구역 조정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조속히 결정 짓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13

다섯 명의 죽음, 피하기만 할 건가

김진국 고문 “앞이 깜깜했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2009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아 수사받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렇게 기록해놨다.그는 곧바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희 집(권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의혹 제기 차원을 넘어 실제 수사가 시작된 만큼 이제 사실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그 뒤에 특수활동비 횡령 혐의 수사도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죽어, 자기 부하와 진보 진영을 살리려 했다.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실인정으로 위기를 넘겼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지 한 달째였다.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총재에게 노태우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을 수사한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김총재는 몹시 당황했다. 그렇지만 그는 사실을 시인하기로 결심했다. 공식회견을 통해 20억 원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결국 그는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길은 전혀 다르다. 그의 혐의에 연루된 사람 다섯 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지난 9일에도 이 대표가 경기도 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전형수씨(64)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 대표) 본인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는데 항상 뒤로 물러나 있어 그렇다”라며 “그분도 책임질 건 책임져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모두 떠안았지만, 이 대표는 혼자 빠져나간다.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 시장일 때부터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의 혐의는 이 대표의 지시를 이행한 게 전부다. 그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 시절 네이버 관계자들로부터 성남FC 후원금 40억 원을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으로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에 관여했고, 경기도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 시절에는 이 대표 바로 옆집을 위장 합숙소로 임차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그가 받는 혐의는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 주변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이 대표는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위직이라 몰랐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동규 씨는 자신에게 모두 떠넘긴다는 배신감에 이 대표와 결별을 선언했다. 적어도 극단 선택을 한측근들은 이 대표의 혐의를 없는 사실이라고 방어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부하 직원의 잘못까지 떠안지는 못하더라도 본인의 혐의를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도리다.이 문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불거졌다. 지난달 말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도 체포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더 많았다. 기권 9표와 무효 11표도 찬성에 가까운 의사 표시라고 봐야 한다.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169명이고, 무소속 의원 7명도 모두 민주당 색이다. 이 대표의 결백을 민주당 의원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방법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전형수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게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라”라고 말했다고한다. 또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정치지도자는 법적으로 유죄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다. O.J. 심슨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대통령이 되려던 사람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3-12

여야의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정당은 민주 정치의 다원주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이념이나 색깔이 다른 정당은 찾아 볼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정당은 비슷한 정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여서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한다. 정당은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여 정강정책을 만들고 정권 쟁취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여기에서 당내 민주주의 혹은 정당민주주의는 당원들의 집단지혜를 모으는 핵심적이고 주요한 수단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보장 없이는 정당의 정책 개발의 역동성은 보장할 수 없다.지난 대선 이후 우리나라 여야는 모두 당 운영에서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가 추락된 구도 하에서 정상적인 정책정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내 민주적 의사 결정 구도도 갖추지 못하고 어찌 정당간의 협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지난주 새 당대표를 선출한 집권 여당의 사정부터 알아보자.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징계 사태 이후 당 운영 방식은 점차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윤핵관이나 윤심이 지배했던 비대위 하의 집권여당은 여러 행태의 파행을 겪었다. 이번 당 대표 선출과정은 윤심의 경쟁에 지나지 않았다.비윤 진영의 유력한 경쟁자 유승민은 당헌 개정으로 선거 초반 출마를 포기했다. 당내 여론 1위였던 나경원도 윤심의 직격탄을 맞아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 3월 8일 당대표 경선 결과는 윤심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김기현 당 대표가 당선되고 당 최고 위원도 완전 친윤 일색으로 선출됐다.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의혹 사건까지 불거져 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상명하복의 관계가 성립된다면 국정은 그 부메랑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내의 비주류인 이준석과 안철수가 배제된 구도에서 정당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을 것이다.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역시 당내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당의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진보와 개방을 표방하던 민주당은 대선 패배와 이재명 체제 출범 이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이재명 당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와 방탄 국회가 민주당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 대책회의는 이재명의 체포 동의안을 ‘일치단결하여 막자’고 했으나 그 결과는 의원 상당수가 이탈해 당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민주당 의원 169명 중 138명만이 부결에 동의하고 최소 31표에서 최고 38표까지 동의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친명 당권파들은 조직적인 반대 세력 색출, 수박 찾기, 이낙연 영구 제명론 등 듣기에도 민망한 대책을 제기했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그 대응책은 당내의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당론을 모아야 한다. 민주당은 여전히 당내의 민주주의의 실종이라는 비극에 빠져들고 있다.이처럼 윤심 지배의 여당과 친명 지배의 야당은 공통적으로 정당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의사에 의존한 독점적인 정당 운영은 현대 민주주의 정당제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모두가 과거 권위주의 통치 시절의 퇴행적인 당 운영일 뿐이다. 위로부터 명령하달 식 정당 운영 방식은 당원들의 의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할 수 없다.여야 모두 100만 당원 시대를 맞고 있는데 당 운영은 과거의 보스 중심의 운영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가 단상을 점령하고 물리적으로 대결하던 정당 대결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이러한 당 운영방식은 팬덤정치를 강화시키고 내부의 갈증만 증폭시킬 뿐이다. 이러다가 내년 총선 전야 여야는 공히 분당의 위기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이런 퇴행적 당 운영 방식 하에서는 정당간의 협치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의 힘에서 ‘국민’이 도외시 되고, 민주당에서 ‘민주’가 배제되면 이 나라의 정당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여야 공히 정당 민주의의 본질인 당내 민주주의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정당 개혁 없는 정치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야 공히 당내의 비주류 의견도 반드시 민주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보스 중심으로 재편된 당의 당내의 곪아 터지는 갈등은 분당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대 대중 정당의 구조 내에서 온건부터 과격에 이르는 다양한 당내 스펙트럼은 공존돼야 한다. 당의 의사 결정 방식은 탑 다운이 아닌 바텀 업 방식이 되어야 당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다. 우리 정당도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를 탈피하려면 먼저 정당의 민주적 운영 방식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도 독일처럼 정당의 재단이나 펀드를 마련해 재정적인 자립 정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공천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정책 개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출발과 종착점은 정당 민주주의의 안착이다.

2023-03-12

건강과 운동에 유익한 호흡법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우리 몸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흡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 호흡방식도 사람의 몸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운동할 때 호흡은 에너지 공급과 근육 재생, 지방분해 및 피로회복 등에 효율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적절한 호흡법이 병행돼야 운동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일반적으로 호흡법에는 흉식과 복식이 있다. 성인의 경우 대부분이 복식보다는 흉식호흡을 하는 편이다. 흉식호흡은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고, 쇄골부위는 움푹 들어가면서 어깨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복식호흡은 숨 쉴 때마다 배가 외형상 부풀다가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고, 폐 밑에 횡격막을 아래로 밀어내 상복부만 부풀어 오르는 호흡법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고 여러 연구에서 좋다고 알려진 호흡법은 복식호흡이다. 복식호흡의 장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게 해 몸 곳곳에 산소가 잘 가게하고, 신체를 이완시켜 고혈압 감소, 체지방 감소, 스트레스 완화, 면역력 강화 등에 효과적이다.그런데 최근 10년간의 연구를 관찰할 경우 운동을 할 때에는 복압호흡(IAP)이 더 효과적이다는 결과가 많다. 복식호흡과 복압호흡의 차이는 호흡을 내뱉을 때 배를 부풀리는가 마는가에 있다. 복식호흡은 횡격막을 사용하여 호흡을 지속하는 방법으로 코어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한편 복압호흡은 복강의 압력을 높여 코어 근육과 주변 근육을 강하게 조여 척추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용이한 호흡법이다 할 수 있다.게다가 복압호흡은 복식호흡에 비해 몸의 전반적인 강도와 안정성을 높여주는 호흡법이기에 피로회복과 고강도의 운동에서 몸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소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장점이다. 그러므로 복압호흡은 허리가 아프거나 매일 반복적인 훈련으로 피로가 쌓인 운동선수들에게 큰 효과를 보는 호흡법이다.물론 복식호흡도 흉식호흡에 비해 좋은 호흡법이다. 운동 시 복식호흡을 권장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으면 흉식호흡으로 가벼운 호흡만을 하기에, 우선 복식호흡으로 횡격막을 최대한 활용해 호흡하고 복부를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스포츠의과학자들은 복식호흡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복압호흡을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복식호흡 운동 후 복압호흡을 권장한다.이같이 운동할 때 제대로 폐의 전체 용적을 사용하고 몸자세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적절한 호흡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운동의 형태와 강도에 따라 호흡방식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근력 운동 중에는 닫힌 입과 코에 공기를 밀어 넣는 강제 호흡과 힘을 내는 순간 숨을 참는 것 모두를 피해야 한다. 근육이 수축할 때 숨을 내쉬고 이완할 때 숨을 들이쉰다. 예를 들어 아령이나 바벨 운동 중에는 들어 올릴 때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숨을 내뱉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들이마셔야 한다. 이러한 패턴은 호흡과 움직임의 리듬을 만들어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하고, 원활한 혈액순환을 도와 몸 곳곳에 효율적으로 영양과 산소를 전달하여 손상된 근육세포 회복이 빨라져 근육 재생에도 도움을 준다.달리기와 같은 유산소운동의 경우 최대 산소 섭취가 필요하므로 중강도 운동에서 두 걸음 동안 숨을 들이쉬고 두 걸음 동안 숨을 내쉬는 방법이 권장된다. 이 같은 호흡 패턴은 깊고 고른 호흡이 가능하며, 옆구리통증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빠른 동작으로 힘을 내는 투기종목에서도 호흡을 내쉬는 것이 효과적이다. 힘을 내기 위해 근육이 긴장하고 수축할 때 숨을 내쉬면 부상 방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미세먼지의 잦은 발생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창궐 및 장기화 등으로 인한 폐 기능 저하가 문제시되고 있다. 코로 숨 쉬는 들숨근 강화 운동은 심장과 폐의 능력 및 지구력의 증가와 기능적인 일상생활 활동으로 삶의 질 향상에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요즘과 같이 날씨가 쌀쌀할 때는 코로 숨 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차가운 공기는 기관지를 수축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입으로 숨을 쉬면 더 많은 세균이 목으로 들어가고 점막이 건조해진다. 잠자는 동안 입을 벌리고 호흡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 코골이의 위험이 증가하고 산소 공급이 불규칙해지며 타액이 치아를 씻을 수 없어 충치의 위험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특히나 지속적인 고강도 운동 중에는 산소요구량을 충당하기 위해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독일체육대학교(DSHS) 스포츠의학연구소는 코로 흡입하는 산소량이 적을수록 운동능력도 떨어지므로 평소에 코로 숨 쉬는 호흡훈련을 권장한다.사람마다 호흡법은 제각각이다. 무의식적으로 아무렇게나 호흡하는 게 아니라, 운동의 형태와 강도에 따라 적절한 호흡법으로 호흡을 해야 건강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운동 효과도 더 좋다.

2023-03-12

문화가 함께 숨 쉴때 진정한 발전 도시

조현일 경산시장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도시적인 개발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 대부분이 문화행사와 축제, 유적과 스토리텔링으로 지역문화 알리기에 나서고 문화회관을 건설하거나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경산은 고대국가 압독국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1천700여 기의 달하는 무덤과 2만8천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금동관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 등이 출토되는 등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에도 경산은 현대에 와서 대구광역시에 귀속된 문화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경상북도에 속하였던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며 경산지역의 일부 지역이 편입되고 대구시의 발전에 가려 경산이라는 지역명이 빛을 잃었다. 불교의 4대 기도 도량의 중의 하나인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분명히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갓바위로 681-55)에 위하고 있어도 국민 대부분이 팔공산을 대구시의 명소로 기억하고 있다.한때 유명했던 대구 사과도 정확히는 경산 사과였다. 경산지역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이 10만여 명에 이르지만, 이들이 문화 욕구를 해결한 곳은 대구시였다.경산시민회관 대강당을 이용하는 문화행사가 열렸지만, 오페라나 뮤지컬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영남대가 개관한 천마아트센터도 젊은 층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지역문화를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지역문화 행사나 축제도 관광객 유치에도 실패해 ‘경산’이라는 도시는 대구와 경북을 벗어나서는 ‘대구광역시 인근 도시’라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하지만, 이제 경산은 문화가 살아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도시로 발전을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다.먼저 문화적인 욕구를 해결할 문화예술회관의 건립이다. 전액 민자로 상방근린공원 내에 2026년(예정)까지 조성될 문화예술회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총넓이 9천400여㎡의 건축물로 가변무대인 978석의 대공연장과 소공연장,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어떤 무대든 소화할 수 있어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게 된다.또 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압독국을 조명할 수 있는 임당유적전시관은 체험과 볼거리를 넘어 지역 알림이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 임당유적전시관은 2025년 준공돼 압독국의 문화유산 자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전시·관리하며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압독국은 고대국가임에도 지배계급이 금동관과 은제 허리띠, 말갖춤 등을 사용한 유력 국가였으며 출토된 유물과 인골, 동물 뼈와 생선 뼈 등을 통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임당유적에서 발굴돼 보존된 250여 개의 인골자료는 임당유적전시관의 가장 특화된 분야로 고분의 주인공과 순장자를 상상이 아닌 DNA 분석으로 성별을 구별하고 매장 당시의 나이를 추정해 복원한 인물을 통해 얼굴 생김새와 피부, 모발상태, 치아 상태, 질병의 유무도 밝힌 성과가 전시될 것이다.지역의 축제도 분석하고 때가 되면 행해지는 문화행사와 지역축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경쟁력 있는 축제로 거듭나고자 용역을 추진하고 축제 콘텐츠 개발과 성공전략을 수립해 지역문화 알림이 역할을 담당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식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문화행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경산시 문화관광 재단도 설립할 것이다.경산자인단오제의 경우 개·폐회식은 전통의 의미를 살리려고 계정 숲 일원에서 거행하겠지만 하나인 볼거리인 호장군행렬은 경산 시가지에서 시연해 시민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할 생각이다. 특히 지역(하양) 출신으로 한국의 첫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박남옥(1923~2017) 감독이 혹독한 시대 속에서도 보여준 여성의 주체성을 살린 시대정신과 21세기를 주도한 영상 등을 조명하고 지역 콘텐츠와 스토리 발굴로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로컬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이처럼 지역이 가진 문화유산을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경산이 진정한 발전한 도시임을 보여 줄 것이다.

2023-03-12

파락호 숨은 뜻은

고택의 문턱이 낮아 선뜻 들어서는 걸음이 가볍다. 어디론가 가려는 듯 어머니와 아들 형상의 모자석이 길손을 맞는다. 그뿐인가. 하늘의 구름이 내려와 앉은 천운석, 마당에 떡하니 앉아 복을 부르는 복두꺼비,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바위, 학봉선생구택(鶴峯先生舊宅)에는 형상들이 주인이다.참봉 김용환 선생은 희대의 기인이었다. 안동의 양반 부호들에게 은밀하게 자금을 받고 강제로 모금도 하였다. 대대로 내려오던 땅 13만 평을 팔아 보태고 300년을 내려오던 학봉종가를 팔았다. 그러면 문중에서 다시 사들이고 팔기를 3번이나 반복했다. 이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 일제는 요시찰 인물로 지정하고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런 참봉이 별시(別市)가 열리면 어김없이 노름판에 나타났다. 노름판에는 전국의 한량과 노름꾼들이 모여들었다. 새벽녘까지 판돈이 부풀면 참봉은 엉뚱한 행동을 벌였다. 화가 난 듯 첫닭이 운 뒤의 갑오(9끗)만도 못하다며 판돈을 몽땅 머흐럽게 생긴 상대에게 침 한 번 뱉고 줘 버렸다. 또 새벽 몽둥이야! 라고 소리치면 누군가 달려들어 몽둥이를 휘두르며 판돈을 빼앗아 가 버렸다.참봉은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일부러 노름판에서 낯선 한량이나 투전판에서 거금을 날렸다는 소문을 냈다. 명분을 만든 셈이다. 여름에도 참봉의 사랑방에는 화롯불이 꺼지지 않았다. 독립군에게 지원한 자금을 적바림한 종이 쪼가리,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히 태워 없앴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천하의 노름꾼, 파락호(破落戶)라 불렀다. 김 참봉은 스스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되었다. 세간의 불명예스러웠던 온갖 소문들을 뒤로한 그는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독립을 위해 피를 나눈 동지가 아들에게는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을 때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의로운 일은 숨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수치스러움을 감당하고 독립을 위해서는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퍼주었던 참봉, 나라 사랑하는 일에 한 사람의 선 굵은 행동으로 우리는 백 년이 지나 그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한다.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朱木)이 고택 곳곳에 있다. 별다른 주목(注目)을 받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관심을 받은 나무가 주목이다. 선생도 살아서는 노름꾼, 한량, 파락호로 기억되다 지금에서야 사철 푸른 성품이 알려졌다. 선생은 살아 백 년도 못 살았지만, 그 정신은 죽어 만 년이 갈 것 같다.내 아버지도 별시가 열리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돈을 따기 위해 눈동자가 번뜩이는 날이었다. 노름꾼들이 깔아 놓은 멍석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났다. 종지 안에 윷을 넣고 아버지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는 종지를 흔들며 멍석 가운데로 던졌다. 아버지는 놀이로 가산은 탕진했고, 꾼들에게는 만만한 허릅숭이였다. 이순혜 수필가 오일장, 대폿집 모퉁이에 노름판이 생겼다. 화투 몇 장을 손가락에 끼우고 콧김을 불어 기를 모았다. 그러나 돈 놓고 돈 먹는 눈치 싸움에 배포를 부려보지 못하고 화투장을 일찍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다 털리면 개평 몇 푼 얻어 독주를 마셨다. 아버지가 말하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김 참봉이 교차한다. 아버지는 내일을 속절없이 기다렸지만 김 참봉은 내일을 열기 위해 돈과 명예를 다 던졌다. 아버지는 입으로 세상을 탓했지만 김 참봉은 몸으로 세상을 바꾸었다.종택을 한 바퀴 돌아 사랑채 마루에 앉는다. 마루 구석에 빛바래고 먼지 쌓인 방명록이 펼쳐져 있다.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누군가 “사랑채 제비처럼 처마 밑에라도 깃들고 싶다.”라는 글을 남겼다. 나 또한 잠시 눈을 감고 파락호, 그 숨은 뜻에 깃들어본다. 바람 소리에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본다. 먼 봉우리 위에 구름 몇 점 하얗게 내려다보신다. 나는 여기서 살아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버지와 참봉을 기억한다. 이제 죽어 천년 간다는 나무 아래 참봉이 품었던 때를 넘어 더 이어지길 바란다.

2023-03-12

붓다와 니체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발표하게 하고, 운이 좋다면 토론까지 시키는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기 일쑤다. 살인적인 입시 공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어린 시절부터 엄마들이 강제한 지긋지긋한 독서, 널려있는 숱한 놀거리. 그것이 학생들에게 책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리라.이번 학기에 나는 세 권의 책을 학생들과 읽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2030 축의 전환’, ‘대중의 반역’이 순서에 따른 독서 목록이다. 신입생들이 마주하는 급변한 환경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책을 고른다. 니체 하면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그가 남긴 저작 가운데 한 권이라도 통독한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고전의 범주에 들어선 책의 운명이 필시 모두 그러할 것이지만.약관 25세에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28세인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출간한다. 고전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비극의 쇠퇴 원인 그리고 비극의 부활을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에서 통찰한 명저다. 니체가 제기하는 철학적-정치적-사회학적 논지는 이분법에 기초하는데, 그 출발을 알린 서책이 ‘비극의 탄생’이다. 하지만 10년 만에 니체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교수직을 사임한다.소액의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던 니체는 편두통과 가슴 통증, 극도의 근시, 마침내는 정신질환까지 견뎌야 하는 고난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용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일갈은 나약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21세기 20년대에 아주 유효하다. 니체는 이 세상을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으로 보았다.생로병사 외에도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의 인생 팔고(八苦)를 주장한 붓다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불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붓다가 내세운 ‘팔정도(八正道)’는 의미심장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 위대한 수행자나 깨달음을 찾아 나선 ‘납자(衲子)’들에게는 맞춤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붓다와 니체는 모두 세상을 고통의 도가니로 보았다.대상을 보는 같은 눈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붓다는 끈기 있는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인간을 옥죄고 있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삿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호수의 물처럼 평정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고 깊다. 붓다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방일(放逸)하지 말고 정진하라!’니체는 고통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짓치고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나약하고 섬약한 영혼과 육신으로 일신의 안락과 장수만을 추구하는 삶은 무가치와 무의미로 귀결된다고 역설한다. 힘들고 괴로운 세계와 정면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이 초인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장수와 행복을 아침저녁으로 탐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들을 보면 니체는 뭐라고 할 것인가?!

2023-03-12

자살률 1위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지만 자살률로만 보면 아직은 우리는 후진국 수준이다.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26명에 이른다.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해 1만3천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10∼30대 등 젊은 층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도 충격이다.세계적으로 자살자가 많은 나라로 꼽히는 국가 가운데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면서도 자살률이 높은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다.전문가들은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빈곤 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보건복지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살률을 2027년까지 30%이상 낮추기로 하고 자살위험 요소감소 대책 등을 발표했다. 특히 자살위험 요인감소 대책으로 산화형 착화제인 번개탄 생산 금지안을 두고는 논란도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번개탄을 금지한다고 자살이 예방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등의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살 원인에 대한 대처보다 수단에 초점을 맞춘 편협한 발상이란 비판이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가 자택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사회의 자살률이 또한번 주목받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낯처럼 돼 버린 자살에 대한 예방대책이 시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2

뜨거운 감자 된 ‘달성 가창의 수성구 편입론’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9일 전격적으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론’을 제기하자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장 가창면 일대 부동산의 가격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서 호가(呼價)가 껑충 뛰는 현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홍 시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는 7월 군위군 편입을 계기로 대구시의 불합리한 행정구역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차원에서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했으며, 현실화를 위해서는 행정안전부 승인과 시의회 의결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홍 시장이 달성군 가창면을 불합리한 행정구역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형적으로 가창면과 달성군 주 소재지가 비슬산(1천84m)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창면민들의 생활권은 수성구인데 행정기관은 달성군이라서 주민들이 다양한 불편을 겪고 있다. 홍 시장은 “최근 대구시가 추진하는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과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제2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달성군이 거론되고 있다”며 가창면이 수성구에 편입되더라도 달성군의 군세(郡勢)가 약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최재훈 달성군수와 김대권 수성구청장, 해당 지역 지방의원들은 모두 홍 시장의 갑작스런 행정구역 개편 발언에 놀라는 분위기다. 최 군수와 김 구청장은 일단 “대상지역실태조사를 통해 주민 여론을 객관적으로 수렴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수성구의 경우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가창면민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효과를 기대하면서도 가창면의 역사성과 각종 규제 강화, 농업 분야 지원 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달성군 가창면은 면적이 111.33㎢로 달성군 9개 읍·면 중 가장 넓으며, 인구는 7천600여 명이다. 과거 총선에서도 여러 차례 편입 논의가 있었지만, 주민 의견수렴 과정과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공론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홍 시장이 공식적으로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추진 의사를 밝힌 만큼, 이번 기회에 객관적인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023-03-12

공공기관 2차 이전, 철저한 준비로 대응해야

지역균형발전과 지역성장거점 조성의 기반으로 자리잡을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이 올해 안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전국 지자체들의 유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경북도는 지난 주 김천혁신도시 1차 이전기관 12곳과 연계한 30여 개 공공기관을 2차 이전기관 유치 대상으로 삼고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경북도는 유치 전략 방향으로 △수도권의 임대청사 기관을 혁신도시 내 공실과 산업기반을 연계한 과학·산업 임대기관 △1차 이전한 기관의 기능과 지역전략산업을 연계한 공공기관을 유치 대상으로 삼았다.예컨대 한국도로공사와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도로·교통의 앵커 공공기관이 있는 김천혁신도시의 특성을 고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10여 개 기관을 타깃으로 했다. 또 경주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포항의 이차전지단지 등과 조합이 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 등을 유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문재인 정부 시절 차일피일 미뤄왔던 수도권 공공기관 추가 이전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올해 내로 구체화 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는 입지대상 기관과 입지 원칙 등 기본계획을 수립해 6월 중 발표하고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이전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수도 300개 안팎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2차 공공기관 이전은 1차 공공기관 이전과 연계를 통해 국토균형발전의 시너지를 더 높인다는 계획이어서 지역마다 관심이 대단히 높다. 공공기관을 유치해야 할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역산업과 연게된 공공기관이나 경제파급 효과가 큰 알짜기관을 유치해야 지역 발전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는 구도다.경북도가 유치 대상 기관 선정에 미리 나선 것도 이런 지역 간 경쟁을 의식한 움직임이다. 문제는 지역마다 내세울 논리가 얼마나 정부를 잘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논리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지자체의 노력에 성패가 달렸다.

2023-03-12

일류기업으로 가는 길

김종찬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철강 전문 분석기관 ‘월드 스틸 다이내믹스’(WSD)가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포스코를 13년 연속 1위로 선정하였다. 35개 글로벌 철강사를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여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데, 포스코는 친환경 기술혁신, 고부가가치 제품, 인적 역량 등 7개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평균 8.5점으로 종합 1위에 선정됐다.한 기업이 13년 동안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 철강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한다. 평가받은 경쟁력의 결과는 2022년 9월 한반도에 상륙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냉천이 범람하여 포항제철소 압연지역 대부분이 수해를 입었을 때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정비부서의 이상 조치 능력, 조업 부서의 내재화된 프로세스 지식, 그리고 그룹사를 포함한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수해를 조기 복구한 위기관리 능력은 그 어떤 위기도 포스코를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그렇다면 포스코를 포함한 일류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먼저 ‘창의적인 기술력’을 들 수 있겠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에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문구를 창업 초기부터 게시하고 있다. 70년대 1차 석유 파동 때 석유자원이 20년 정도 지나면 고갈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산업 혁명 전 6억 명의 인구에서 현재 80억이 넘었지만 석유자원 고갈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70년대는 탐사도 시추도 초보적 기술이었고, 대륙붕 연안에서만 석유 생산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심해에서도 캐내고 셰일가스는 바위 틈 사이에 있던 가스와 석유를 녹여서 캐어내니 유한한 자원이 창의적 기술에 의해 무한해지고 기술은 자원이 된다.다음으로 ‘임계점’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달리기만 한다고 뜨는 것이 아니다. 활주로를 벗어나기 전 시속 300km에 이르러야 이륙할 수 있다.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마흔아홉 번의 숟가락의 밥이 들어가서 마지막 한 숟가락에 배가 부르는 것처럼 임계점을 넘어야 비로소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입장의 순서가 오기 직전에 자리를 뜨고, 대어가 미끼를 물기 직전에 낚싯대를 걷어 버리고, 땅의 제 임자가 나타나기 직전에 급매물로 처분해 버리니 더 큰 성과와 이익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실패에서 얻어야 한다.다음은 현장 관리를 위한 ‘생각의 중요성’이다. 부분적인 것만 보면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 작은 것에서부터 전체의 성능이 복원되고 유지돼야 한다. 현장의 소음이나 진동에 익숙해지면 불합리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익숙함이 쌓이면 당연시되고 누구도 의문점을 가지지 않게 되어, 불합리란 싹이 트고 자라 설비는 결함에 의해 고장으로 이어진다. 제품은 고객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사라지며 기업도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산은 기도로 옮길 수 없고 반드시 삽과 곡괭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03-12

박사님, 박사님

유영희 작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행사’의 주인공 고아인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에 굽히지 않고 불굴의 도전으로 대표가 되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머슴으로 살기 싫다며 직원이 주주인 독립 대행사를 차렸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특히 자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고 싶은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몇 년 전, 자원 활동으로 참여하던 H 생협에 박사 학위가 있는 남자 실무자가 들어왔는데 모두 그를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보다 못해, 나도 박사인데 왜 내게는 ‘박사님’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약간 난처해하면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그 관행은 계속되었다.그런데 문제는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렇게 항의한 것은, 다른 실무자들과 구별되게 그에게만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당해서 한 말일 뿐, 나를 박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그 실무자는 그의 연구 분야와 연관 있는 업무를 하고, 나는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자원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던 중 며칠 전, SNS에서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두어 달 전, S여대 교수가 내게 능력에 비해 성취가 적다며 몇 가지 제안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은 ‘가면 증후군’을 다룬 것인데, 가면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처음 붙였다고 한다.가면 증후군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여자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신의 재능과 성취를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자기는 형편없는데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재능 있고 어느 정도 성취도 한 사람들이 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가 실패하면 ‘거봐, 남들이 알고 있는 나는 가짜거든. 나는 실패할 만해.’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가면 증후군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르네 젤위거도 밤에 일어나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준 거지? 내가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밸러리 영은 먼저 ‘가면 증후군’이 내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인식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내게 ‘박사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다는 의심하는 것이나 낙제 한번 없이 학위를 받은 것, 유명한 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것 모두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면 증후군’의 작동 방식이다.더불어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힘도 필요하다. 내게 능력이 있는지 자신을 의심할 시간에, 그동안 내가 성취한 일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서 균형 감각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보자. 그러니,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자들이여, 자신의 재능과 성취에 대한 의심은 이제 그만 거두자.

2023-03-12

지역대학 대변신, 지자체의 역할이 커졌다

2025년부터 도입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대구와 경북 등 전국 7개 시도가 선정됐다. 라이즈 사업이란 지역이 주도적으로 지역대학을 육성하고, 지역인재가 지역혁신을 이끌어가는 지역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지역대학 지원사업이다.교육부가 신산업 인프라 등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파생하는 비수도권 대학의 소멸위기를 돌파하려는 전략으로, 2025년부터 교육부가 쥐고 있는 지역대학 재정 예산의 50%를 지자체에 넘기는 사업이다. 그 규모가 2조원이다. 장차는 각 부처가 대학의 목적성으로 지원하는 예산도 단계적으로 라이즈에서 흡수할 예정이라 한다.또 교육부는 대학의 구조개혁을 과감히 이행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5년간 1천억원을 지원해 국가 경쟁력의 밑바탕이 될 글로컬 대학으로 육성한다. 지역대학의 건전한 육성은 국가균형발전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면에서 라이즈 사업이 성공리에 진행돼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지자체에 재정지원 권한을 넘기는 획기적 조치로 지역대학은 이제 큰 변화의 기로에 섰다. 정부의 의도대로 지자체가 지역대학의 재정지원을 주도함으로써 지방대학으로 학생이 다시 몰리고 지역 생태계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라이즈 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앞으로 2년간 교육부와 협의해 위기에 빠진 지역대학의 회생에 나서게 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라이즈센터를 별도로 운영해 지역특성에 맞는 특화된 전략으로 성과를 내야 할 입장이다. 경험이 없는 업무라 지자체의 역량 강화가 먼저 시급하다.동시에 생사기로에 선 지역대학의 뼈 깎는 자기 변신 노력이 수반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교육부는 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개방적 거버넌스 구축과 학문 간 융화, 학과구조 개편, 교원인사 혁신 등이 대학이 넘어야 할 과제라 지적하고 있다.이제 지역에서도 국제적 명성의 대학이 나오고 지역의 대학이 국가 경쟁력을 선도하는 모습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라이즈 사업 주체들의 분발을 당부한다.

2023-03-09

망월지 두꺼비

우정구 논설위원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양서류다. 몸길이는 10∼12㎝ 정도 된다. 피부는 두껍고 등에는 불규칙한 돌기가 많이 나 있다.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긴 등 생긴 모습이 얄궂다.낮에는 돌이나 풀 밑에 숨어있다가 저녁이 되면 지렁이와 파리, 모기 따위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적을 만나면 몸을 부풀려 등위에 돋아 있는 독샘에서 하얀 독액을 내보낸다. 아시아와 유렵 등지에 많이 서식한다.우리나라는 두꺼비를 주인공으로 만든 우화나 민담, 민요 등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다. 삼국사기 신라본에는 애장왕 10년 6월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는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민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꺼비는 대체로 슬기롭고 의리있는 동물로 형상화된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이며 신비한 능력의 동물로 묘사된다.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망월지는 1920년 자연적으로 조성된 전국 최대 두꺼비 산란지로 유명하다. 2007년 수십마리 두꺼비가 이곳에서 로드킬 당하면서 산란지로 알려졌고, 201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하면서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이곳에는 매년 2월부터 3월 사이 두꺼비가 산란을 위한 이동을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망월지를 향해 이동하는 두꺼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한 두꺼비는 망월지에서 마리당 1만개의 알을 낳은 뒤 산으로 되돌아 간다.2∼3개월 뒤 망월지에서 부화된 두꺼비 새끼들은 서식지인 산으로 이동을 시작하는 데 그 수가 수백만마리에 이른다. 자연상태 그대로 노출된 그들의 이동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이 준 장관이다. 올해도 봄 소식과 함께 찾아온 망월동 두꺼비 대이동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