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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현금을 뿌리나

등록일 2026-05-17 15:22 게재일 2026-05-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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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 모란시장을 찾았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을 시식하고, 선거에 나선 후보 같은 행보를 했다. 하루 전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조선소를 방문한 뒤 남목마성시장에 들렀다. 어버이날에는 서울 남대문시장을 방문했다. 셀카 요청이 쇄도하는 등 매우 환영받았다.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자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선거 개입의 수준을 넘어 아예 직접 선거운동을 뛰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따지고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도 2024년 총선 직전 전국을 돌았다. 전국 주요 거점마다 ‘민생토론회’를 24차례나 주재했다. 사실상 선심 공약을 쏟아냈다. 영남에서는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통, 그린벨트 해제, 대구 통합신공항, 충청에서는 광역급행철도(CTX) 노선 확대,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보면, 1967년 7대 총선 때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목포로 내려와 여당 후보를 지원했다”라고 써놨다.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열었다. 각료들이 줄줄이 내려와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국국민이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라는 말 한마디로 탄핵소추까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억울할 만하다.

 

그 정도는 애교다. 50~60년대 관권선거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앞에서 인용한 김대중자서전에는 “여당의 선심 공세는 끝이 없었다. 돈과 선물이 뿌려졌다. 시내 도처에서는 ‘막걸리로 홍수를 이루고 국수로 다리를 놓았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라고 적혀 있있다. ‘고무신선거’, ‘막걸리 선거’라는 말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여당 운동원들이 처마 밑에 ○(친여), △(중립), ×(친야) 표시해놓고 돈 봉투를돌렸다고 회고했다. 필자가 살던 동네도 그랬다. 초등학교에서 후보자의 이름을 쓴 책받침, 연필을 공공연히 나눠주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선거 모사꾼이었던 엄창록을 다룬 영화, ‘킹 메이커’를 보면 여당의 돈 선거를 뒤집는 야당 후보 측의 공작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표를 ×표로, ×표를 ○표로 고쳐놓았다. 심지어 경쟁 후보 이름으로 돈돈 봉투를돌린 뒤 “옆집 것을 잘못 줬다”라며 회수해 반감을 사게 만들었다.

 

돈 선거는 2004년 ‘오세훈 법’으로 없어진 줄 알았다. 한나라당의 오세훈 의원이 주도해 통과시킨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말한다.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와 지구당을 금지하고, 개인 후원 중심의 ‘돈 안 드는 선거’를 만든다고 했다. 그 바람에 오세훈 시장은 금단 현상을 느낀 정치인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그런데 아직도 돈 선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도 사건이 잇달았다.

 

더구나 이제는 합법적으로 돈을 뿌린다. 비난하기 어려운 명분으로 화장했다. 이재명 정부는 유권자들에게 ‘고유가 피해 지원금’(민생 회복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명분이 나무랄 데 없다. 그렇지만 소금을 먹으면 물을 켤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고물가로 고통받는 국민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직무 유기이며, 이는 포퓰리즘이 아닌 절박한 민생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선거철 대규모 재정 투입은 정당한 정책 집행과 선거 개입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문재인 정부의 전례도 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전 국민 긴급재난 지원금’을 풀었다. 많게는 가구당 최대 100만 원이다. 처음에는 하위 70%를 대상으로 삼았으나, 여야 모두 경쟁적으로 전 국민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때는 3·4차 재난 지원금을 풀었다. 2022년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초유의 ‘1월 추경’으로 방역 지원금을 풀었다. 

 

이게 우연일까. 민생 살리기일까. 차떼기로 만든 돈 봉투를돌리던 정치권이 국민 세금으로 표심을 유혹하는 건 아닐까. 야당도 할 말이 없다. 뻔히 속셈을 알면서도, 표를 생각해 더 많이 주라고 요구했다. 재난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심성 현금 살포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가능한 선거철을 피하
고, 특정인의 선심으로 보일 소지도 없애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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