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상아 없이 태어나
어린 코끼리는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커다란 귀 너펄거리는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밀렵꾼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아프리카
긴 가뭄 속으로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상아 없이 태어나
……
상아는 코끼리의 존재증명과 같은 의미를 가졌을 터, 상아 없는 코끼리는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와 같은 존재다. 부모로부터 버려져 할머니에 의해 키워지는 아이처럼 저 상아 없이 태어난 어린 코끼리는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이러한 ‘슬픈 진화’는 가뭄을 일으키는 환경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 코끼리는 밀렵꾼들이 호시탐탐 저들을 누리고 있는 벌판을 가야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