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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죽음들

등록일 2025-12-23 16:27 게재일 2025-12-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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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도

뗏목에서 그물 깁는 할아버지 옆에서 싸리나무 낚싯대로 복어를 낚던 아이가

할아버지가 잠시 조는 사이

잘피에 걸터앉은 해마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은빛 물고기 떼 헤치고 나아가는 물개의 헤엄이 그리는 곡선처럼

날렵하고 아리따운 단발머리 처녀가

짝다리 총각과의 혼인을 반대하는 어미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

 

전주 이씨 일가의 쟁기질 써레질을 도맡아 하던 아재가

메콩강 상류를 누비는 카누처럼 단단하고 순박한 외팔이 아재가

가랑비 오는 날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바닷가 언덕 포구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

안타까운 죽음들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이들의 죽음. 망각에 저항하는 시는 위의 시처럼 이들의 죽음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복어를 낚던 아이가” “해마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물속에 빠진 일, “짝다리 총각과의 혼인”이 ‘어미’ 때문에 좌절하여 “농약을 마신” 처녀의 죽음, 양반집 일을 도맡았던 “외팔이 아재가” “목을 매”단 일 등을 위의 시는 기록한다. 이 죽음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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