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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더 길어졌고, 밥은 더 빨리 동났다”⋯경기 침체 속 무료급식소로 몰리는 어르신들

황인무 기자
등록일 2025-12-17 16:58 게재일 2025-12-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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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겨울 풍경이 된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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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구 서구 홍익경로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내려앉은 대구의 골목과 공원에 따뜻한 밥 한 끼를 기다리는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후원 감소가 맞물린 가운데 무료급식소는 노년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지막 안전망이 되고 있다.

17일 오전 대구 서구 홍익경로무료급식소. 매주 수·금요일 문을 여는 이곳은 대구시와 서구의 보조금, 회원 회비,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최근 경기 침체의 여파로 회비와 후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운영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식 시간을 앞둔 오전 10시쯤 주방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봉사자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30여 분 후 쌀쌀한 날씨에도 급식소 앞에는 이미 긴 줄이 생겼다. 공식 배식 시간은 오전 11시 20분이지만, 급식소 측은 추위를 피하라며 20분 앞당겨 문을 열었다.

공간이 좁은 탓에 봉사자들은 식판을 직접 자리까지 옮겨주며 어르신들의 이동을 도왔다. 빈자리가 생길 때 마다 대기 중이던 어르신을 안내하는 손길도 쉼 없이 이어졌다.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라는 봉사자들의 말에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준비된 식사는 150인분. 그러나 평소보다 30여 명 많은 180여 명이 몰리면서 배식 시작 26분 만에 음식이 모두 소진됐다. 뒤늦게 도착한 어르신들을 돌려보내야 했던 순간 급식소 안에는 안타까움이 감돌았다.

급식소 관계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든 덥든 어르신들은 (우리가) 출근하기 전부터 줄을 서고, 이를 말려도 소용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면서 “회원 회비는 절반 가까이 줄었고 기부금도 감소해 봉사 인력도 늘 부족하다”며 더 많은 봉사참여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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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구 서구 홍익경로무료급식소 앞에서 어르신들이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무료급식소는 단순히 식사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쉼터다. 대부분 60세 이상인 이들은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김모 씨(85·서구)는 “혼자 밥 먹기 싫어 아플 때 빼곤 매주 온다”며 “이제 안 오면 서로 걱정할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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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마련된 ‘사랑해밥차’ 무료 급식소 앞에 배식을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독자 제공

이런 풍경은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루 전인 지난 16일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운영된 ‘사랑해밥차’ 무료급식소 앞에도 시민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2004년부터 21년째 무료 급식을 이어온 사랑해밥차는 예년 하루 평균 700~800명이 찾았지만, 올해는 1000명 안팎으로 늘었다.

한 사회복지 전문가는 “무료급식소 이용자 증가는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노인 빈곤의 구조적 심화를 보여주는 신호”라며 “기초연금과 공적 지원만으로는 식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늘고 있어 민간 후원에 의존한 급식소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자체의 재정지원 확대와 지역사회 차원의 지속가능한 돌봄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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