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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 안에서 다시 분출한 알봉… 흘러내린 용암으로 둘레길 형성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5-11-17 19:19 게재일 2025-11-1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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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걷기 편하고 아름다운 숲길 알봉둘레길
트레킹하기 좋은 알봉둘레길.

△ 일본인들이 입항했던 왜선창이 예선장으로 

여객선이 기항하는 울릉도의 관문은 3곳이다. 저동항, 도동항, 사동항이다. 기항지에서 대중교통으로 나리분지에 가려면 일주버스를 타고 천부에 하차한 뒤 나리분지를 오가는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천부는 북면의 중심지다. 저동-섬목 간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울릉읍에서 가장 먼 곳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교통이 편리해졌다. 

천부는 1883년 울릉도에 공식 입도가 허락된 뒤 개척민들이 처음으로 들어왔던 포구다. 그 선창이 예선창이다. 공식 입주 허가 이전에도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이 몰래 들어와 살고 있었고 그 시절 천부는 주로 일본인들이 입항하던 포구라 해서 왜선창이라 불렸다. 왜선창이 예선창으로 변이되어 불리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불법으로 울릉도에 입도한 뒤 벌목해서 배를 건조하고 해산물들을 채취해갔다. 개척 시기 울릉도를 탐사했던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검찰일기에도 왜선창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부라는 이름은 후일에 생겼다. 당시에는 조선 본토에서 온 사람들도 울릉도에 거주하며 배를 짓고 어로를 했다.

 

나리마을 출발 초입부터 우산고로쇠·섬단풍나무 숲터널 이뤄
   눈이 많기로 유명한 나리분지 12월부터 4월까지 3~4m씩 폭설
   개척민 살았던 전통가옥 투막집 4채·너와집 1채 문화재로 보존

 

△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 나리분지 

나리분지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다. 동서길이 약 1.5km, 남북길이가 2km 남짓 된다. 나리분지는 1만5000~2만년 전 일어난 화산 폭발 당시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성인봉(984m) 북쪽의 화구원(火口原)이다. 면적 198만㎡. 알봉마을 분지까지 포함하면 330만㎡다. 

나리분지는 화구 안에서 다시 분출한 알봉(611m)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형성된 알봉분지까지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북동쪽의 평지인 나리분지에 나리마을이, 남서쪽의 평지인 알봉분지에 알봉마을이 있다. 지금은 알봉분지에 주민이 살지 않고 나리분지에만 산다.

흘러내린 용암으로 형성된 알봉둘레길.

분지는 외륜산(外輪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화산에서 중앙의 분화구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산을 외륜산이라 하는데 성인봉은 외륜산의 최고봉이자 울릉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개척 초기부터 개척민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땅이 척박해 농사가 잘 안되면 근방에 널려있던 섬말나리를 캐 먹고 굶주림을 면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나리마을이 됐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도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 12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린다. 3-4미터씩 쌓이는 폭설이다. 눈이 쌓이면 마을은 고립무원이다. 더러는 5월까지 눈이 내리는 해도 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다. 섬이지만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산촌, 분화구 속의 마을은 성수기 때면 탐방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늦가을이라 마을이 조용한 편이다. 그래도 점심시간이면 울릉도 특산 나물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 찾아드는 여행객들로 식당들은 북적인다. 기근을 면해주었던 구황식물, 산나물들이 이제는 건강식으로 각광받으며 주민들의 큰 소득원이 됐다. 

화구 안의 산, 이중 화산으로 형성된 까닭에 알봉(538m)은 마치 분화구 안에 하늘이 낳아 놓은 알처럼 둥그렇게 놓여있다. 그래서 이름도 알봉이다. 알봉의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트레일은 5.5km.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걷기에 좋다. 입구는 두 곳이지만 버스 종점에서 성인봉 가는 방향으로 걷는 것이 더욱 편안하다. 나리마을에서 출발해 다시 나리 마을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둘레길 초입부터 길은 온통 숲 터널 길이다. 길은 더없이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단풍도 거의 끝물이라 낙엽으로 뒤덮인 길바닥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다. 흙길에서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감이 부드럽다. 몰두해서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길손에게 숲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바람이수다. 

수묵화 처럼 아름다운 알봉둘레길.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내가 문득 숲 안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첩첩산중, 숲속의 바람에서 바다 냄새가 묻어난다. 동해를 건너온 바람이 바다의 안부를 전해주는 것이다. 울릉도의 바람은 바다의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이다. 이 숲길에는 유독 단풍나무들이 많다.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우산고로쇠와 섬단풍나무들이다. 사람들은 우산고로쇠나무로부터 수액을 얻어먹었고 섬단풍나무는 주로 땔감이나 농기구 재료로 쓰였다.

△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등 꽃들의 잔치판 

알봉 마을 조금 못 미쳐 울타리가 처진 빈터 하나가 있다. 옛날 집터라도 되는 걸까 싶어 다가가니 울릉국화와 섬백리향의 서식처다. 지금은 꽃들이 거의 지고 없지만 초가을 꽃 시절이면 꽃들의 잔치판이다. 특히 섬백리향은 그 향기가 백리까지 갈 정도로 향이 강하다 해서 백리향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늘을 싫어해서 나무들이 자라지 않는 곳에 작은 군락을 이루는데 대체로 울릉국화와 이웃해 살아간다. 섬백리향은 낮에는 향이 약하고 밤에만 유독 강한 향을 내뿜는다. 무엇일까? 곤충도 없는 한 밤중에 굳이 향을 풍기는 이유는. 누구를 유혹하자는 것일까. 혹시 이 꽃들의 매개자는 곤충이 아니라 달빛일까?

알봉 마을 부근 숲 가운데는 큰 밭이 하나 있다. 밭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나물을 심고 있다. 경작하지 않고 버려진 밭에 울릉군이 관상용 나물 단지를 조성하는 중이다. 부지깽이 모종을 심는다. 두 분은 나리마을 분이 아니고 저동에서 품을 팔러 오셨다. 

알봉마을에 보존되어 있는 투막집. 

알봉 마을에도 본래 20여 가구가 살았었다. 옥수수, 감자,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다. 지금은 모두가 떠나 폐촌이 된 마을. 그들이 살던 투막집 두채가 보존되어 있다. 투막집은 울릉도 전통가옥의 하나인데 둥근 통나무를 우물 틀(井) 모양으로 쌓아올려서 벽을 삼은 집이다. 

강원도 산간지대에서는 ‘귀틀집’, 평안남도에서는 ‘방틀집’ 또는 ‘목채집’, 평안북도에서는 ‘틀목집’이라고 부른다. 투막집 벽은 고래솔·마고마·솔송나무·너도밤나무·칭칭목·마가목·회솔목 등으로 만들었다.

집 주위는 추위를 피하기위해 띠로 엮은 우데기를 둘러쌌다. 지붕 처마 안쪽에 여러 개의 기둥을 돌아가며 세운 다음 띠로 엮은 자리를 둘러친 것이 우데기다. 방의 투막 벽은 내벽, 우데기는 외벽에 해당한다. 초입의 투막집은 문화재로 지정됐다. 중요민속문화재 257호였다가 2017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됐다. 

문화재란 것이 처음부터 문화재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삶을 담았던 일상의 건축물에 세월의 더께가 쌓여 문화재가 된 것이다. 투막을 지어 띠로 지붕을 덮고 살던 가난한 집이 이제는 문화재가 됐다. 4칸짜리 1자 형태의 이 투막집은 1945년 지어진 것인데 울릉도 개척 초기 개척민 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보존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울릉도에도 몇 채 남지 않은 원형의 집이다. 현재 나리분지, 알봉 분지 내의 전통가옥은 투막 집 4채와 너와집 1채인데 모두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나물밭에서 나물캐는 주민 모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산봉우리 위로 먹구름이 몰려든다. 어느새 산봉우리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산마루를 감싸고도는 신령한 구름들. 산을 내놓기도 하고 삼키기도 하는 구름들. 신비로움이란 저처럼 안개나 구름에 쌓인 산자락 같은 것에 불과하다. 안개와 구름 걷히면 평범한 야산일 뿐.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신비를 추구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허망한 줄 몰라서가 아니다. 신비가 없다면 더이상 삶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봉 마을 터에 남은 두채의 투막집을 둘러보고 다시 길을 걷는다. 투막집에서 1km 정도를 가면 갈림길이다. 앞길은 그대로 나리마을로 가는 둘레길이고 왼편 산길은 깃대봉을 올랐다가 평리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두 길 다 탐나는 길이다. 나리마을을 이미 둘러봤다면 그대로 깃대봉으로 올라도 후회 없다. 

두 길을 온전히 다 걷고 싶다면 그대로 나리마을까지 갔다가 다시 반 바퀴 돌아서 깃대봉을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길은 몇 번을 다시 걸어도 좋은 길이다. 나그네는 후자를 택하기로 한다.

/강제윤(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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