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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추억하며

등록일 2025-11-18 15:57 게재일 2025-11-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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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상점들이 ‘수능 할인’을 내걸고 수능을 끝낸 수험생 고객맞이를 하고 있다.

2026학년도 수능이 끝났다. 지난 12년간 열정으로 쏟아부은 시간이 수능과 함께 마침표를 찍은 날이다. 시험을 끝내고 어둑해진 교문을 나서는 수험생들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기쁨과 후련함을 맘껏 즐겼다. 아이를 맞은 부모들은 선물을 건네기도 하고 아이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며 행복하기를 바랐다.

이제 학교 정문과 거리 곳곳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수능 대박’이라는 현수막 대신 거리의 상점들은 발 빠르게 ‘수험생 할인’ 광고를 내걸었다.

올해는 황금돼지 띠인 고3 수험생의 재학생 응시자 수가 전년 대비 9.1% 늘었고 N수생도 함께 늘어 지난 7년 만에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했다. 당연히 수능 한파는 없었다.

큰 아이가 내년 수능을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 생각하니 올해 수능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까마득히 지나버린 시민기자의 수능도 추억해 본다. 정확히 30년 전이다.

수능은 시민기자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3년도에 학력고사 대신 처음 치러졌다. 미국식 수능인 SAT를 모델로 삼았다. 처음 수능은 8월과 11월 두 번 치러졌다. 새로 바뀐 입시의 첫 타자가 아니라서 좋다고 생각했고 8월 어느 날 시내엔 시험을 끝낸 수험생으로 와글와글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3년 차였던 1995년에 수능을 치렀다. 후배들의 커다란 응원 같은 것은 없었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었기에 예비소집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시장에 가서 수능 날 먹을 점심으로 김밥을 미리 샀다. 그리고 수능일 아침 일찍 도착해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 오늘 칠 시험을 그려보았다. 1995년 11월 수능은 날씨가 추웠다. 지금은 기후변화로 수능 한파가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땐 수능 전날까지 괜찮았던 날씨가 수능을 기점으로 추워졌기 때문이다. 교실에 정확히 몇 명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같은 반 친구 한 명과 같은 교실에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언어영역의 듣기 시험이 있었고 기억엔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온 아나운서의 목소리만이 고요와 긴장감의 교실을 가득 채웠다.

교실에는 고3 수험생뿐 아니라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그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도 앞줄에 앉아 함께 수능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많이 낯설어 보였다. 지금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학생들과 시험을 보는 그 자체가 어린 눈에 조금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점심 후의 3교시 탐구영역은 많이 어려웠다. 쉬운 1번 문제를 틀려서였을까. 시험의 결과는 모의고사 때보다 좋지 않았다. 창가를 뚫고 들어온 오후의 햇살에 살짝 멍해지기도 한 3교시였다. 다시 시험은 못 보았지만 탐구영역 결과가 아쉽기는 했다. 4교시 영어 시험은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 답안지를 2번이나 바꾸었다. 덜컥하는 마음이었는데 감독 선생님께서 시간 충분하니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말에 편한 마음으로 무사히 답안지를 작성했다. 선생님의 ‘괜찮아’라는 말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덕분에 영어는 평소보다 결과가 잘 나와 기분 좋은 기억이 되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능을 치른다는 건 어쩌면 학생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또 앞으로 어떤 점수를 받던 이후의 이야기도 펼쳐질 것이다. 잘 보면 잘 본대로, 못 보면 못 본대로 결과를 잘 받아들여 자신에게 주어진 멋진 이야기를 계속 잘 써 내려가길 바란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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