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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웠던 여름이 지루했지만 계절은 고장 난 벽시계가 아니었다. 해뜨기 전 아침엔 제법 쌀쌀해서 뒷동산 아침운동을 할 때 이젠 따뜻한 외투가 친구가 되었다.
아내는 운동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고구마를 쪄서 가방에 넣어준다.
어릴 적 고구마는 우리 간식이 아니라 밥 대신 먹는 주식에 가까웠다. 학교 갔다 오면 커다란 대바구니에 고구마를 삶아서 시렁에 올려놓으면 그걸 꺼내 먹는 일이 집에 와서 하는 첫 번째 일이었다.
요즘엔 고구마를 먹으면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어릴 적에는 속살이 하얗게 밤처럼 타박타박한 걸 좋아했다.
그래서 잘못 집으면 누군가 쪼개 보고 밤고구마가 아닌 걸 알고 다시 붙여놓은 것도 있다. 나 역시 몇 개를 쪼개 보고 밤고구마만 먹고 아닌 것은 다시 붙여 놓는다. 이제는 취향이 달라져서 손으로 만져보고 말랑말랑한 것만 골라 먹는다.
고구마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겨울밤은 왜 그리도 길었는지 저녁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파 군고구마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 댁 굴뚝 옆 장작불 속에서 꺼낸 군고구마가 가장 맛있는 고구마다. 겉 모습은 검게 타 있었지만 속살은 노랗고 하얀 고구마가 달고 맛있다.
화롯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호호 입바람을 불어가며 고구마를 먹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고구마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손자를 위한 마음이었고 가족들의 소통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군고구마를 꺼낼 때마다 “조심해 뜨거워”하시며 두 손에 천을 덧대곤 하셨다. 어린 나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더 기대에 부풀었고 고구마 한입을 베어 물었을 때의 포근한 단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낡은 전기장판 위에서 고구마 하나 나눠 먹으며 보냈던 그 시간은 단순하지만 참 따뜻했다. 이제 내 나이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지 오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릴 적 고구마가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의 소박한 행복이 그리워진 탓이 아니겠나. 이제는 마트에서도 손쉽게 군고구마를 살 수 있고 전자레인지 버튼 하나로도 고구마를 익힐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그 맛은 다시는 똑같이 되살릴 수 없다. 불 냄새와 함께 묻어있던 손때, 나눔, 그리고 기다림의 정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병욱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