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호기
주사기 바늘이 눈 흰자위를 찔렀을 때
흰 꽃받침 아래 작고 붉은 꽃이 피었다.
다음 날 한 친구의 급작스런 부고를
전해 들었다. 자살이었다.
오래전 옛 친구의 예기치 않은 전화.
목소리가 예전 그대로여서 늙음을
잠시 잊고 청년으로 돌아간 듯 수다 떨었다.
그렇건만 뒤늦게 전해들었다.
그 친구 폐암 진단받고
주변 정리하다 전화했단 얘기.
꽃가지 꺾어 선물로 주고받을 때
그 사람 눈에 오래오래 살아남아 있길 바라거늘,
꽃 꺾어 화병에 꽂는 건 생존을 잇는 게 아니라
자연스런 가장 완벽한 소멸을 목격코자 하는 것.
죽음은···. 시는···. 시간에서 시간을 떼어내는 일.
….
누구나 친구의 죽음을 자주 전해 듣는 때가 올 테다. 자신이 먼저 죽지 않는다면. 이때가 오면 죽음이란 “시간에서 시간을 떼어내는 일”이라는 인상적인 구절을 비로소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시인은 죽음과 시를 연결한다. 시도 시간에서 시간을 떼어내니까. 그에게는 오래 살아남길 바라며 화병에 꽂은 꽃-시-은 생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가장 완벽한 소멸”을 보여주는 죽음의 ‘화관’인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