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을 국정감사장에 불러놓고 호통을 치며 망신을 주는 고질병이 올해도 되풀이될 전망이다.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200여 명에 달한다.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159명을 이미 넘어섰다. 여당 지도부가 “야당 때처럼 기업인들을 국감증인으로 마구잡이 채택하는 것을 자제하자”고 했다는데 빈말 된 것이다.
당장 13일 열리는 국토부 국감에는 현대건설·대우건설·HDC현대산업개발·GS건설·DL그룹·롯데건설·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이앤씨 등 국내 10대 건설사 회장이나 사장 대부분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 명분은 건설사고 관련 질의를 위해서라지만, 호통치며 망신을 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오는 28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의장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행사 개막 당일 정무위 국감장에 나와야 한다. 계열사 부당 지원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이유다. 최 회장은 이날 CEO 서밋 공식행사인 ‘퓨처테크포럼 AI’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 회장은 최근 CEO 서밋에 ‘글로벌 빅샷(거물)’을 초청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참석이 거의 확정적이며, 샘 올트먼 오픈AI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팀 쿡 애플 CEO의 참석 가능성도 높다. 젠슨 황 CEO 방한 때는 최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별도 회동을 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국감장에 기업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는 있지만, 분초를 아끼며 경주 APEC 성공개최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최 회장을 꼭 CEO 서밋 개막 당일 출석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 국감장을 보면 기업인들을 증인석에 장시간 앉혀놓고 훈시를 하거나 망신을 주는 행태가 반복돼 왔다. 아마 올해도 이러한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이는 국감 취지에도 맞지 않고 국익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는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을 국감장에 부르는 행위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