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이탈·정치불안·관세 인플레 겹쳐···FRB 완화기조 속 안전자산 수요 급증
뉴욕 금값이 사상 최초로 온스(약28.35g)당 4000달러(약567만원)를 돌파했다. 미 행정부의 재정불안과 탈(脫)달러 움직임,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자금이 안전자산인 금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재부각되고, 미 연방준비제도(FRB)의 완화적 기조가 이어지며 ‘1970년대형 인플레이션’ 재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값 50% 급등···ETF 자금도 20% 증가
7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12월물 선물가격은 장중 한때 온스당 4014.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대비 50% 이상 급등한 수치다.
월드골드카운슬(WGC)에 따르면 올해(9월 말 기준) 금 ETF 순매수 규모는 618.8t으로 전년 대비 19.2% 늘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21.5% 증가하며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금 시장은 주식이나 채권 대비 규모가 작아 소규모 자금 유입에도 가격 변동성이 크다. 골드만삭스는 “서방 주요국의 금 ETF 보유량은 민간의 미국채 보유분의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며 “채권 자금 일부만 이동해도 가격 상승이 촉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6일 2026년 말 금가격 전망치를 기존 4300달러에서 49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FRB 완화기조·관세 인플레, 실질금리 축소 전망
금값 상승의 또 다른 배경은 실질금리 하락이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값으로, 마이너스 구간일수록 금값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미국의 실질금리는 플러스권이나, 그 폭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FRB는 지난 9월 금리인하를 재개했다. 고용지표 둔화에 따른 경기하방 리스크를 의식한 조치다. 시장은 10월 이후 추가 인하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명목금리 하락·물가상승의 조합은 실질금리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금의 상대 매력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FRB 내부서도 ‘관세 효과’ 놓고 엇갈린 시각
다만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FRB 내부에서도 견해차가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명한 스티브 미란 이사는 “물가 영향은 제한적”이라 평가한 반면, 파월 의장은 “단기적 일회성 요인”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시카고연준 오스탄 굴스비 총재는 “최근 물가 흐름이 2021~22년처럼 장기화할 경우 FRB는 곤란한 국면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상승과 경기둔화가 병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를 경고한 것이다.
△트럼프發 FRB 압박···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정치적 불확실성도 금값 상승세를 부채질한다. 파월 의장은 내년 5월 임기가 만료되며, 후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기부양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이유로 지속적으로 FRB에 금리인하 압박을 가해왔다. 차기 의장이 ‘매파’보다는 ‘비둘기파’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미국 정부는 예산 부결로 일부 행정기관이 7일째 폐쇄 중이다. 연방정부 기능 마비는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고, 위험회피 성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1970년대 초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물가상승이 잠시 진정됐다가, 제2차 오일쇼크로 재차 급등했다. 당시 백악관과 FRB의 밀월관계가 인플레 대응을 늦췄다는 평가다.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이 되살아나며, 시장은 ‘제2의 1970년대’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정치·재정·통화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불확실성 속에서 금은 다시 한 번 ‘최후의 피난처’로 자리 잡고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