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의 자금사정이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으며, 호전됐다는 기업보다 악화됐다는 기업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과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자금 흐름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매출 상위 1천 대 수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금사정 인식 조사(응답 111개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9.6%가 올해 자금 사정이 “작년과 비슷하다”고 답했으며, “악화됐다”(27.0%)는 응답이 “호전됐다”(23.4%)보다 많았다.
자금 사정이 악화된 주된 원인으로는 ‘매출 부진’(40.0%)이 가장 많이 꼽혔고, 이어 제조원가 상승(23.3%), 금융기관 차입비용 증가(11.1%), 인건비·물류비 부담 증가(10.0%) 등의 순이었다.
기업들은 자금사정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리스크로 환율 상승(43.6%)을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 뒤이어 미국발 보호무역 강화 및 관세 인상(24.9%), 미·중 경기 둔화(15.6%), 공급망 불안(9.6%) 등이 지적됐다.
한경협은 “최근 환율 급등과 미국 관세 인상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자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재무 건전성의 핵심 지표인 부채비율에 대해서도 증가했다는 응답(20.7%)이 감소했다는 응답(12.6%)보다 많았다. 다만 과반인 66.7%는 부채비율이 작년과 비슷하다고 답해 큰 변동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자금 수요가 증가했다는 기업은 32.4%로, 감소했다는 응답(18.0%)보다 많았다. 자금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분야는 원자재·부품 매입(35.7%), 설비투자(30.7%), 연구개발(15.3%), 고용(9.9%) 순으로 조사됐다.
현재 기준금리(2.50%)보다 낮은 1.80% 수준이 적정 금리라고 본다는 응답도 눈에 띄었다. 이는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금리 인하를 통한 유동성 완화를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들은 안정적 자금 관리를 위한 정책 과제로 환율 변동성 최소화(29.5%)를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수출·투자 불확실성 완화(17.1%),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원자재 수급 안정화(16.8%), 탄력적 금리 조정(16.2%)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관세 인상과 고환율 흐름이 내수 부진과 겹치며 자금 사정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불확실성 완화와 함께 과감한 세제 지원·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의 숨통을 틔우고, AI 전환 등 미래 투자를 위한 여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