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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치에 한평생 매달린 게 헛되지는 않았네요”

등록일 2025-09-10 20:04 게재일 2025-09-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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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老鋪 기행-태영수산 개복치를 포항의 명물로 만들다 ②
개복치 해체 장면. 

개복치는 수질과 빛 등의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하다. 유통 중 폐사율이 높고, 살아 있는 상태로 출하하기 어렵다. 기온과 수온의 변화에 민감하고, 피부가 얇고 물렁해 쉽게 상한다. 운반과 손질도 까다로워 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 드물다. 

그래서 개복치는 전문적인 해체 기술이 필요하다. 해체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쓸개를 터트리면 안 된다. 쓸개가 터지면 개복치 전체에 쓴맛이 퍼져 판매할 수가 없다. 아가미 이빨에 독이 있어 조심스럽게 도려내야 한다. 날개 지느러미를 먼저 잘라내고 배 쪽을 절개해 내장류를 분리해 제거한 뒤, 피부를 벗기고 몸통을 분할한다. 일반 생선처럼 삼등분(머리-몸통-꼬리)이 아니라 살 부위 중심으로 나눈다. 그런 다음 살을 분리하고 부위별로 분류한다.

1980∼90년대, 포항은 죽도시장과 동빈내항을 중심으로 어시장 체계가 재편되었다. 이 흐름에 맞춰 이영태 대표는 개복치 전문 유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때가 1984년이었다. 부모 세대의 수산물 유통 경험을 기반으로, 개복치 유통 노하우를 포항에서 최초로 정착시킨 것이다. 포장 방식, 수조 온도 유지, 도착 즉시 손질 처리 체계를 개발해 개복치의 상품화를 이끌었다.

 

41년 전 처음 제조 시도한 껍질로 만든 수육
쫄깃한 청포묵처럼 초고추장 곁들여 먹어
유통 노하우 포항서 최초 정착 ‘상품화’로
지역 경조사 상차림에 ‘단골 메뉴’로 등극

 

2012년 버리는 살코기로 만든 장조림 히트
포항시 추천으로 ‘개복치 명인’ 신청 추진 중

 

SNS 등서 입소문 ‘자자’ 택배시스템도 갖춰  
“전통은 지키되 시대 흐름에 맞춰 가야죠”

 

개복치 수육과 장조림 개발

태영수산은 개복치를 좀 더 먹기 편한 대중적인 음식으로 보급하기 위해 개복치 가공식품인 수육과 장조림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현재 개복치 가공식품은 상표등록 보유 및 포항시의 추천으로 ‘대한민국 식품, 개복치 명인’으로 신청을 추진 중인데, 이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박정자 씨는 개복치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려고 보니 개복치를 뚝뚝 잘라 파는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시어머니가 개복치를 팔 때는 뚝뚝 잘라서 2000원, 3000원 이렇게 대강 팔았어요. 그날 팔지 못한 건 버릴 수밖에 없었고요. 장사를 이렇게 해서야 뭐가 되겠냐 싶더군요.” 

박정자 씨는 손님들이 개복치를 간편하게 사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걸쳐 탄생한 것이 개복치 수육으로, 개복치의 겉껍질을 벗겨 삶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41년 전에 태영수산이 처음 시도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개복치 껍질에 각종 재료를 넣고 푹 고아 껍질이 흐물흐물해지면 틀에 넣어 굳힌 음식으로 초고추장에 곁들여 먹는다. 

피쉬 콜라겐으로 피부 미용과 뼈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저칼로리 영양식이기도 하다. 모양은 청포묵과 비슷하고 비린내가 거의 없으며 단백하고 쫄깃한 식감으로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깔끔한 맛이다. 비린내가 없도록 개발한 수육은 포항에서 경조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1990년대에는 대방예식장, 목화예식장, 청솔밭에 납품했으며 나중에는 포항의료원 장례식장, 포항시민장례식장 등에 공급했다. 

 

 

해체된 개복지를 먹기 좋게 쓸고 있다.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 끝에 개복치 상품화에 성공 

새길을 여는 일은 수고스럽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개복치 수육을 상품화하는 과정도 그랬다. ‘그냥 대충 잘라서 팔걸’ 하고 여러 번 후회하기도 했다. 문어처럼 삶아서 팔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해체 작업을 거쳐 먹을 수 있는 부위와 먹을 수 없는 부위를 선별해 각각 조리법에 맞게 요리해야 하므로 시작부터 까다롭기 그지없다.

예전에는 개복치를 잘라서 팔면 손님들이 집에서 조개껍데기나 감자껍질 벗기는 숟가락으로 가죽처럼 질긴 개복치 껍질에 붙은 속살을 직접 벗겨냈다. 이렇게 벗겨낸 속살을 삶거나 쪄서 채반이나 짚 위, 대나무 발 위에 얹어 식힌 다음, 하얗게 덩어리가 되면 닭가슴살처럼 뜯어 먹었다.

그 모습이 불편해 보인 이 대표 부부는 손님들이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연구해 조리법을 바꾸었다. 부부는 요리사가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이었지만 맛을 내기 위해 요리사처럼 고민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비린내를 없애려고 식초, 마늘, 생강, 소금, 간장, 된장 등을 넣어보고, 식감을 위해 불 조절, 삶는 시간 조절을 되풀이하는 몇 년 동안 버려진 개복치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노력 끝에 태영수산만의 개복치 수육이 탄생했다. 

수육이 맛있다고 소문나자,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독립해 상점을 차렸는데, 그 수가 일곱이나 되었다. 경쟁자가 많아지니 수육 판매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새로운 걸 개발하게 되었다. 그렇게 개복치 장조림을 2012년에 개발했다. 개복치 속살에 물, 식초, 설탕, 간장을 넣고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태국 고추, 마늘 등을 넣어 조린 요리다. 요리 비법은 사흘 동안 달이고 식히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간장에 조려서 보관이 쉬우며, 짭짤한 맛과 쫄깃쫄깃한 식감으로 입맛이 없을 때 밥반찬으로 기가 막힌다. 

개복치 장조림을 개발하는 데에도 사연이 많았다. 개복치 껍질로 수육을 만들어 팔다 보니, 버려지는 살코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죽도시장에서 살코기 한 통을 쓰레기로 버리는데 1만 원이 들었다. 쓰레기 버리는 값이 100만 원이나 드니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당시 박정자 씨의 친정은 청송에서 사과 과수원을 했다. 사과나무 아래에 개복치 살코기를 갖다 묻으면 비료가 될 것 같아 흙구덩이를 파서 묻고 난 뒤에 등겨를 덮었는데, 며칠 뒤 친정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들 나무 밑에 뭐 했냐?” 

고기 냄새를 맡고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사과나무 밑을 들쑤셔서 과수원이 엉망이 된 것이다. 이렇게 골치 아픈 살코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장조림으로 만들어 판매하게 되었는데 시장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현재 중국, 홍콩,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 수출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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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개복지를 부위별로 나누고 있다. 

 “포항 가면 개복치, 개복치는 태영수산”

개복치의 도톰한 살은 젓갈과 장조림, 뼈와 내장은 국거리, 껍질은 수육, 이 밖에도 회, 두루치기, 대창구이 등으로 상품화되었다. 개복치를 꾸준히 연구하면서 조리법을 바꾸다 보니 손님들의 반응도 달라지면서 고객층도 확대되었다. 이 대표는 가공식품 개발과 함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급격하게 바뀌는 식문화와 유통 질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택배로 개복치를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어 놓았다.

“이제는 매장에서만 파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노포라고 해서 전통만 고집해서야 되겠습니까. 전통을 지키되 시대 흐름에 맞춰 가야죠.”

그런 노력 덕분에 태영수산도 개복치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고 SNS와 유튜브에 화제가 되면서 입소문이 났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왔다는 젊은 층과 외지 손님도 많이 늘었다. 강릉, 광주, 심지어 제주에서도 개복치 상품을 찾는다. 이 대표는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왔어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포항 가면 개복치, 개복치는 태영수산”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표는 “개복치에 한평생 매달린 게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글= 정미영 수필가·사진= 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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