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영일만 바닷가에 세워진 포항종합제철(포스코)과 포항철강산업단지는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우리나라 산업화의 산실이다. 특히 포항철강산단은 정부의 공업 입국 정책에 따라 포항제철의 태동과 함께 연관 산업을 유치하고 철강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국내 최초의 지방공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국가 경제 도약의 발판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우리 선배들과 동료들의 피땀으로 일군 포항의 철강 산업은 반세기 수많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국가 산업화를 견인한 자부심과 혼이 깃들어 있다. 포항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은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전후방 산업의 소재로, 오늘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한민국 제조업의 토대가 됐다.
그러한 포항의 철강 산업이 지금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산 저가공세, 산업용 전기료 인상, 미국의 고율 관세 등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 내 철강업체 상당수가 가동을 멈췄고, 공장 문을 닫은 기업도 늘고 있다. 대기업조차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중소업체들은 중대한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한 고용 감소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 경제는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졌다. 산업 일터와 골목상권 등 생계 현장에서는 ‘IMF 때보다도 더욱 힘들다’며 전례 없는 위기로 인해 지역 전체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의 위기는 개별 기업이나 특정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다. 따라서 지역의 산업계와 포항시, 유관 기관단체들은 뜻을 모아 정부 차원의 종합 지원을 담은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즉각 지정해줄 것을 지속 호소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부의 보조금과 재정지원, 전기료 인하, 탄소 감축 설비투자 지원,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연구개발 지원 등 실효성 있고 폭넓은 지원책 마련도 촉구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국회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얼마나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철강 산업의 기반 자체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냉혹한 현실의 경고음이 울리는 사이, 여당은 ‘노란봉투법’ 통과를 외치고, 야당은 이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시간을 끌고자 한다. 법안 하나를 두고 정쟁을 반복하는 동안, 산업을 되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정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입법과 정책 대응이다.
우선 철강품목 고율관세(50%) 유지에 따른 대미수출 철강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여야가 모처럼 공동 발의한‘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제정이 급박한 상황이다. 동시에 산업용 전기료 인하, 금융·세제 지원, 기업 구조조정의 고용 연계 책임 강화 등 실질적인 방안 또한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기업 역시 책임 있는 경영으로 위기에 처한 지역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철강 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포항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가 무너지는 신호탄이며,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정부와 국회는 현실을 엄중히 직시하고 벼랑 끝에 선 철강 산업을 지킬 책임을 다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다시 한 번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철강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 세계적인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특단의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전익현 포항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