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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복을 주시는 박필근 할머니

등록일 2025-08-12 17:59 게재일 2025-08-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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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복 많이 받으세이~ 젊을 때 마이 노소~ 나도 젊을 때는 날아 댕겼니더.”

오랜만에 뵌 박필근 할머니는 여전히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을 나눠주셨다. 짧은 만남 동안에도 계속해서 “복 받으라”라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미 박필근 할머니로부터 너무도 많은 복을 받아왔다는 것을.

할머니는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늘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복된 말씀을 건네시는 분. 내가 알고 있는 박필근 할머니는 그런 분이다.

8월 초, 숨 막히는 더위 속에 할머니를 다시 찾은 이유는,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츠 타임즈(The Straits Times) 에서 202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과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일본군 전시 성노예 피해자분들을 기획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다른 생존자분을 인터뷰한 웬디 테오 특파원은 “오늘 할머니 컨디션은 어떠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부분 생존자분이 백 세에 가까운 고령이시고, 더위도 심해 나 역시 오늘 할머니의 상태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할머니는 긴 평상 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마치 세월을 낚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디서 왔노?”라고 반가워하시며, “서울서 나 보러 왔단 말이가”라며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동행한 기자님도 할머니의 환대에 감동해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우리는 함께 칼국수도 먹고, 마트에 들러 장도 보며 소소하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기자님은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 아픈 기억을 굳이 꺼내지 않으려는 그 배려에 나도 고마움을 느꼈다. 대신, 일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 소용없이 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시며 “나는 일본에 사과도 받고 싶고, 배상도 받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던 그 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가 이젠 “다 소용없다”라고, “이제 곧 죽는다”라고 되풀이하시는 모습에 우리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오는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다. 올해 포항여성회에서는 환호공원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 건립 10주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 포항에서는 많은 시민들께서 마음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며, 참으로 뜻깊은 순간을 함께했다. 하지만 지금, 서울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바리케이드에 갇혀 보호받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하염없이 기다리시던 수많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 박필근 할머니를 포함해 생존해 계신 피해자는 단 여섯 분만이 남아 계신다.

다가오는 8월 14일, 다시금 혐오와 조롱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우리 모두 따뜻한 관심과 존중으로 할머니들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분들이 살아 계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연대와 기억을 다 할 수 있기를.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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