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본격 시작될 터다. 이러한 때 대가야 왕들의 무덤인 지산동고분군을 탐방하며 한 틈 쉬어가는 것도 여름나기의 한 방법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동반한다면 뜻 깊은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지산동 고분군에 가면 대가야를 비롯해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시한 대가야박물관과, 악성 우륵의 위업을 기리고 우리 국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관한 우륵박물관 등 520년 대가야의 찬란한 문화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어, 더없이 좋다. 어린이들의 현장학습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고령군 대가야읍 왕릉로 55에 위치해 있다. 대가야 시기에 축조된 대형 고분군이다. 119년 전인 1906년 발굴에 들어갔으며 현재까지 총 704기의 고분이 식별되었다. 행정구역 명칭이 ‘지산동(洞)’이 아닌 ‘지산리(里)’임에도 ‘지산동 고분군’이라 불리는 것은 지정 당시 행정구역인 ‘고령군 고령면 지산동’을 따랐기 때문이다.
가야의 금관으로 잘 알려진 리움미술관 소장 금관(대한민국의 국보)도 이곳에서 출토됐다. 이 금관은 도굴로 세상에 나온 것을 이병철 회장이 구매, 미술관에 내놨다. 처음에는 이 금관이 도굴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히 어느 고분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중에 45호분에 있었던 것임이 확인됐다.
1963년에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된 지산동 고분군은 2023년 9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경상남도·경상북도·전북특별자치도 등에 소재한 여러 가야계 고대 국가의 고분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고분은 그 규모에 따라 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으로 구별한다. 비교적 규모가 큰 고분은 능선 상부에 위치했고, 중형분은 능선 중간과 아래, 작은 무덤들은 능선 아래와 위 구분 없이 흩어져 있다. 4∼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학계는 대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재의 고령군이 예전엔 대가야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한국에서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도 이곳에 있다. 최고 권력자의 머리를 장식하던 금동관도 이곳에서 출토됐다.
고분군 가운데로 도로가 관통하며 고분군은 무덤을 백제나 신라처럼 산중턱 혹은 평평한 곳에 만들지 않고 산 정상 능선 부근을 따라 축조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이 하늘과 맞닿은 신성한 장소로 보고 조금이나마 더 하늘과 근접하고 싶었던 당시 가야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지산동 고분군이 자리 잡은 능선 쪽은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탁 트였기 때문에 올라가면 고령군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다. 산도 너무 높지 않고 계단도 잘 갖추어 주민들에게는 좋은 등산로이자 공원이며 산책로다.
산책로 또한 완만하게 잘 조성돼 있어 주산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고분들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오며 그렇게 조금씩 가다보면 주산 정상이 눈앞이다.
고분군 지척에 자리한 왕릉전시관과 대가야박물관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여길 들어가면 고분에서 나온 대가야의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 고분 내부를 실물에 가깝게 재현한 공간도 있다. 아이들에겐 역사 학습의 현장이기도 하다.
고령군은 내세워 자랑할 만한 역사 현장이자 관광자원이기도 한 지산동 고분군으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해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여름 뜨거운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오면 환하게 조명을 밝히고 펼쳐지는 대가야 고분군 야간 산책(夜行)과 학생들을 위한 역사 탐구 프로그램,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연중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모든 세대가 어울려 함께 할 수 있는 지산동 고분군 관련 여행 프로그램을 꾸준히 마련할 계획”이라는 고령군 관광담당자는 “세계가 주목하는 고대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또한 여름나기의 한 방법”이라며 고령 지산동 고분군으로의 방문을 추천했다.
유난히 더위가 일찍 기승을 부린 2025년이다. 복잡한 도심에서의 답답한 일상을 잠시 잊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짧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해 보는 것도 폭염 탈출의 한 방법이다.
/전병휴기자 kr583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