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99 마리 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마태)’ 예수가 이토록 기뻐한 한 마리 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 홀로 가는 한 마리 양이 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라고 이름 붙여진. 남겨진 99마리는 1마리 양이 무엇 때문에 길을 잃었는지, 왜 홀로 가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다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99 마리는, 무리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면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위험과 불안을 이야기한다. 99마리는 한 마리 양을 반드시 찾아내어 무리 속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친다.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그 양은, 겉 모습은 같았으나, 무리를 떠나기 전의 그 양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길을 잃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참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길을 잃어야 한다, 진리와 참된 세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 앞에서 길을 잃어야 한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무리에서 이탈된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로만 보아서는 양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세렝게티 초원 영양무리에 관한 장면이 아니다. 불가에서의 출가는, ’구도에의 길에 나서는 시작‘을 의미한다. 처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선 싯다르타가 구도행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출가는 단지 가출에 불과했을 것이다.
무리에서 이탈한 한 마리 양이 무리를 떠난 이유를 알아야 한다. 1 마리는 99 마리가 머무는 ’그 무리‘ 를 염려했으며, 99마리가 묵묵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그 길‘ 을 의심했다. 99마리가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달콤한 잠이 든 그 순간에도 1 마리는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너고, 열사의 사막을 지나, 험준한 설산을 넘었다. 99마리와 1마리가 만났을 때, 99마리는, ’드디어 어린 양을 찾았다‘라고 기뻐 외쳤으나, 1마리는, ‘너희들이 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찾아 왔다’ 라고 조용히 말했다.
길 잃은 양은 집단의 안일함을 거부한 의식의 개별자이다. 방황 속에서 진리의 음성을 듣고자 길을 떠났고, 진리를 묻기 위해 길을 잃었다. 구도란 길 잃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길을 잃어야 비로소 진실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광야를 달리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수타니파타)’ 그렇다. 진리의 세계로 가는 길은 고독하고 멀다. 그 길은 동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처도 예수도, ‘홀로 가라’ ‘방랑자가 되라(도마)’고 했다.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은, 무소의 뿔처럼 고독하며, 길 잃은 양처럼 절박하다. 예수는 진리의 샘을 찾아 나선 한 마리 양을 찬양했다, 존재가 자기 자신을 묻기 시작하는 순간, 99마리의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우리네 삶 속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길을 잃어보자. 고요히 정좌하여 평온하게 호흡하면서 내가 속한 이 집이, 가는 길이 온전한지를 들여다보자. 당신도 언젠가는 부처와 예수처럼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되어 온전하게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