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심화로 전통적인 재난 개념이 송두리째 재편되고 있다.
장기적인 가뭄이나 계절성 장맛비 같은 익숙한 현상 대신 불과 수일 만에 전국적 타격을 주는 ‘돌발가뭄(flash drought)’, 불기둥처럼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 그리고 이른 시기의 녹조경보 등 전대미문의 극한상황들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안동댐, 임하댐, 영천댐, 운문댐 등 주요 수자원에 ‘돌발가뭄’이라는 용어가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교수는 비영리 기후연구단체 ‘넥스트’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돌발가뭄은 기존 예·경보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경고했다.
극한 재난의 양상은 비단 가뭄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3년 예천, 문경, 영주 등에서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23명이 숨졌고, 청양에는 단 이틀간 540mm의 폭우가 쏟아지며 천년 빈도의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 강남은 2022년 ‘물 폭탄’으로 불릴 만큼의 폭우에 침수됐다.
산불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3월 경북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일명 ‘불 폭탄’과 함께 불기둥 비화(화염 토네이도)까지 동반해 1조1306억 원 규모의 피해와 함께 2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캐나다, 미국, 호주, 유럽 등 세계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 종말처럼 타오르는 산불’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기온도 점점 오르고 있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국내 평균기온은 평년 대비 1.7도 상승했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4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낙동강 오염도 결국 기후변화와 일맥 상통한다.
지난해 대구에서 부산까지 녹조 경보가 발령되며 낙동강 전 구간에서 중금속과 독성 미생물 마이크로시스틴으로 인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1300만 명의 생명줄인 식수원이 위협받고 있다. 또 하나의 ‘기후 재난’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존 일기예보 방식으로는 이러한 기후 재난들을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렵다”며 “산과 들에 7만 개의 소규모 저수지를 분산 설치해 400억t 규모의 홍수 유실수를 보존하고, 사계절 안정적인 수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환경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위협하는 요소”라며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정책, 경제, 교육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상 고온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반복되는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형 담론이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체감되는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재난의 정의조차 새롭게 써야 하는 지금,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시민단체 ‘기후정의안동’의 박선영 대표는 “더 이상 탄소중립을 말로만 외쳐서는 안 된다”며 “지역 기반의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교통 인프라 확충에 대한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