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손재준 옮김)
그렇게 잃어진 것에 대하여
두 번 다시 그렇게는 돌아오지 않은
그 길었던 어린 날의 오후에 대해 뭔가 말을 하기 위하여
많은 생각에 잠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리라 – 왜 그럴까?
(중략)
그 무렵 우리가 겪는 일은 마치
사물이나 동물의 그것과 흡사했다
우리는 인간의 세계처럼 그들의 세계를 살았고
사방이 형상으로 넘쳐흘렀었다
우리는 외로운 목동처럼
아득히 먼 곳을 가슴 무겁게 안은 채
먼 곳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교감하는 듯이 지냈다.
그리고는 긴 새 실오라기처럼 천천히
끊임없는 영상 속으로 끌려 들어갔었다.
지금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어지러운 그 영상 속으로.
……
우리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에 빠져들곤 한다.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슬퍼하면서. 릴케의 위의 시는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인간이 “사물이나 동물”과 흡사할 수 있었던, 나아가 관념이 아니라 ‘형상’으로 가득 찬 세계를 살 수 있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을 기억한다는 것은 “먼 곳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지금으로선 “너무 어지러운 영상 속으로” 천천히 “끌려 들어”가는 일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