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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보폭

등록일 2025-05-25 18:06 게재일 2025-05-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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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그녀의 눈을 들여다본 적 있다

밤의 우주를 걸어 다니는 눈빛이었다

 

선천적인 맹인은

소리나 냄새 촉감으로 꿈을 꾼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엘리베이터나 혹은 거리에서

일 초도 그녀에게 얼굴이 될 수 없는 사람

 

그녀가 아파트 공원 트랙을 돌고 있다

나를 스쳐 갈 때 몸을 비끼는 옷깃 소리, 뒤꿈치를 들던 숨소리, 먼 곳을 바라보는 발자국 소리들이 흘러내렸다 살짝 바람이 불어 젖내 흐르는 사월의 냄새가 머릿결에서 미끄러져 트랙을 따라 감겼다 풀리곤 했다

 

또렷한 지팡이 소리를 내며 그녀가 멀어진다

그녀의 걸음은 언제나

모퉁이를 돌아가는 구름의 보폭인 듯

금빛 치어 떼를 몰고 오는 달빛인 듯

옮겨 다녔다

…..

물리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이는 정신적으로 우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위의 시의 ‘선천적인 맹인’처럼. 그녀는 “우주를 걸어 다니는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정신적 눈빛은 어디서 발원할까. 일반인보다 더 발달된 “소리나 냄새 촉감”의 감각에 따른 꿈을 통해서. 이 감각들이 검은 우주 속에 별빛을 심어놓고, 꿈의 물결을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꿈꾸는 존재, 하여 구름처럼, 달빛처럼 걸음을 옮겨 다닌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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