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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해야지요” 영덕 주민들 재건의지 다져

김보규 기자
등록일 2025-04-20 18:14 게재일 2025-04-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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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타버린 송이 산자락 밑으로
사과나무 심으며 희망 부여잡아 
상인들 “한번 더 찾아주는 것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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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지품면. 검게 탄 산 밑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산은 다 탔지만 우리는 다시 시작합니다. 나무도 언젠간 다시 쑥쑥 자라겠지요”

지난달말 경북 영덕군을 휩쓴 대형 산불은 단순한 재난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영덕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 재기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분주했다.

20일 오전 송이 주산지로 유명한 지품면은 검게 탄 산자락만이 눈에 확 띠었다. 자생 버섯 특성상 복구는 요원하다. 70대 김 모 씨는 “산은 내 삶이자 직장이었는데, 송이 다 타버리고는 전부 잃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나무도, 송이도 다시 나겠지”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불길은 과수원도 덮쳤다. 겉보기엔 멀쩡한 나무지만, 가지를 만져보면 속까지 바짝 말랐다. 한 80대 주민은 “밭을 다 잃고 새로 500평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열매를 맺으려면 3년은 걸린다”며 “그때까지는 제발 아무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담담히 말했다.

복숭아를 재배하는 박 모(76) 씨도 “지금쯤이면 꽃이 활짝 피어야 하는데, 가지 끝이 말라가요. 열매가 맺힐 기운이 없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 농사는 지어봐야죠. 어쨌든 힘을 내야겠지요”라고 했다. 

피해가 컸던 해안가 마을 축산면 경정리는 탄 목재 더미와 무너진 지붕, 사라진 500년 된 당산나무 등 예년 같으면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4월의 풍경은 사라지고 적막만이 감돌았다.

이곳 주민 박 모(68) 씨는 “불난 날부터 장사는 꿈도 못 꿨다”며 “가게들 전부가 문을 닫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도 그저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 대피소나 친척 집에 머무르지만, 날마다 마을로 나와 잔해를 치운다. 주민 이 모(64) 씨는 “매일 복구 작업을 한다.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봉사자들이 도와주니 힘이 난다”고 전했다. 군 장병과 자원봉사자들도 대거 일손을 도우면서 어지럽던 마을은 서서히 정리되고 있었다.

남쪽 강구항은 매년 대게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이지만, 지금은 썰렁한 모습이었다. 대게 모형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거리, 가게 안에서 상인들은 혹시라도 올지 모를 손님을 위해 먼지를 털고 의자와 가구를 닦고 있었다.

대게 식당을 운영하는 정 모(65) 씨는 “주말에도 손님이 없어요. 산불 이후로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죠”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성금도 고맙지만, 한 번 더 찾아와주는 게 더 큰 힘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영덕은 괜찮습니다’라는 SNS 캠페인을 벌이며 손님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외지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 관광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 달 전, 영덕은 불바다였다. 산은 타고, 밭은 그을렸고, 주민들의 마음은 숯덩이 처럼 새카많게 탔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면서 마을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만은 누구보다 강했다.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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