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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등록일 2025-04-14 19:37 게재일 2025-04-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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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내 유년의 들판

손톱을 깎으면 그대로

나비 떼 되어 날 것 같았던

이제 그 노쇠한 들판 꽃무리 누워

빛바랜 고해성사의 시간

그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불멸의 고유명사

그때 그 나비 넘나들며

꽃향기 움막 한 채 짓기 여념 없는데

내 외로운 생의 일기는 시방

일몰의 페이지에 이르다

들꽃이 한때 들판을 의지함같이

나비여 꽃이여

형편없이 떠돌다

이제는 들판처럼 누워야 할 생이여

“일몰의 페이지에 이”른, ‘빛바랜’ 시간에 다다랐다는 의식을 갖게 되는 나이. 위의 시인은 그 나이에 다다랐다. 그의 시간은 더욱 짙은 서정과 만난다. 그 시간에 다다르면 더욱 유년을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깎은 손톱이 그대로 나비가 되어 날아갔던 아름다운 기억을. 그 나비는 바람 불면 날아가 “형편없이 떠돌다” “들판처럼 누워야 할” 들꽃으로 변화되어 있다. 우리 ‘생’의 운명을 보여주는 들꽃으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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