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내 유년의 들판
손톱을 깎으면 그대로
나비 떼 되어 날 것 같았던
이제 그 노쇠한 들판 꽃무리 누워
빛바랜 고해성사의 시간
그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불멸의 고유명사
그때 그 나비 넘나들며
꽃향기 움막 한 채 짓기 여념 없는데
내 외로운 생의 일기는 시방
일몰의 페이지에 이르다
들꽃이 한때 들판을 의지함같이
나비여 꽃이여
형편없이 떠돌다
이제는 들판처럼 누워야 할 생이여
“일몰의 페이지에 이”른, ‘빛바랜’ 시간에 다다랐다는 의식을 갖게 되는 나이. 위의 시인은 그 나이에 다다랐다. 그의 시간은 더욱 짙은 서정과 만난다. 그 시간에 다다르면 더욱 유년을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깎은 손톱이 그대로 나비가 되어 날아갔던 아름다운 기억을. 그 나비는 바람 불면 날아가 “형편없이 떠돌다” “들판처럼 누워야 할” 들꽃으로 변화되어 있다. 우리 ‘생’의 운명을 보여주는 들꽃으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