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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은 것

등록일 2025-04-13 20:03 게재일 2025-04-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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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

가을비 그친 아침이다

뒷산 언덕길이 시작되는

트랙 펜스 아래

자그마한 짐승 한 마리 죽어있다

간밤의 비로

온몸에 젖은 흙투성이를 묻히고

꿈꾸듯 모로 누워

네 발을 가슴께로 모은 채

모처럼 깊은 잠을 자고 있구나

뾰족한 턱과 길고 날카로운 발톱

뭉툭한 꼬리를 가진

네 이름을 알 수 없어

나는 미안하다

우리는 도로에서 죽은 짐승을 보곤 한다. 이 짐승에게도 삶이 있고 고통이 있었을 터, 시인은 그 주검을 그저 지나치지 않는다. 무명의 짐승이라도 그 영혼을 위로해주고 인간으로서의 미안함을 표명한다. 도로 위 짐승의 죽음은 문명에 의한 것이기에. 하나 죽음은 또한 “온몸에 젖은 흙투성이를 묻히”며 살아야 하는 고단함의 끝을 의미하기에, “모처럼 깊은 잠을 자고 있구나”라고 시인은 죽은 짐승을 위로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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