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포항 내연산 보경사 아미송·탱자나무·선인송 노거수
‘숲과 문화반’ 단체와 함께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문턱을 즈려밟고 포항 내연산 보경사를 둘러보고 계곡을 타고 선일대에 올랐다. 계곡 여기저기에 기암괴석을 빚어놓은 계곡물의 예술적 감각에 더하여 장인정신에 놀랐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물이 수천 년을 한결같이 모난 돌과 바위를 갈고 다듬어 몽돌과 기암괴석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조각 예술품을 전시해 놓았다. 눈길이 자석처럼 빨려들었다. 그 듬직한 무게감과 믿음직스러움에 감동했다. 겨울 찬바람이 계곡 입구를 막아섰다. 미인송이 우리를 눈짓하여 샛길로 피해 오라고 했다. 계곡물을 마을로 끌어들인 수로는 얼음이 꽁꽁 얼어 옷소매를 여미게 했다. 하지만 향긋한 솔향에 취해 추위를 잊고 감추어놓은 심곡의 속살을 무례하게 훔쳐보았다. 딴 세상이다. 청아한 물소리가 들린다. 얼음 녹는 소리다. 따스한 햇볕 스며드는 소리다. 생명을 잉태하는 숨소리다. 봄을 부르는 희망의 찬가를 들으면서 꾸준함의 발길은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선인이 산다는 선일대에 올랐다.
선일대 바위 위에 뿌리 내린 일송
정선 실경화 그대로 늘 푸름 자랑
보경사 5층석탑 품은 300살 노송
아미타불 환생인 듯 편안함 선사
기념물 11호 탱자나무도 귀한 몸
선일대(仙逸臺) 바위에 뿌리를 내린 일송(一松), 태초에 흙 한 줌에 희망을 걸고 뿌리를 내리니 하늘도 감동하여 비바람에 흙을 실어 보냈나 보다. 바위를 감싸고 있는 그 힘차고 깊은 뿌리가 감동적이다. 선일대 난간에 환한 미소 띤 황혼의 얼굴들, 산을 배경으로 한 촛대 바위 절벽 위 선일대 소나무 노거수, 삼척갑자동방삭(三尺甲子東方朔)이어라. 삼천 년을 하루 같이 살아가는 선일대 소나무, 기암괴석의 절벽에 숨어 살아가는 소나무, 늘 푸름을 잃지 않고 우리를 맞이한다. 그 늠름한 장수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끝자락에도 이곳을 탐하고 올해 또다시 이곳을 탐하여 오르니, 평소 뻣뻣한 허리는 유연해지고 접혔던 몸통은 펴졌다. 놀랍다. 선일대 노송이 마시는 공기를 마시고 바람과 계곡물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기분마저 최상이니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적셨다. 선일대 바위 소나무를 선인송(仙人松)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지어주고 경외감을 표했다.
내연산은 포항 송라에 있는 낙동정맥을 올라타고 있는 명산이다. 동해를 바라보면서 그 산자락은 유유히 월포리 해변에 발을 담그고 있는 형국이다. 그 깊은 계곡의 초입에 신라 시대 창건한 명찰 보경사를 품고 있다. 특히 관음폭포는 주변 암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독특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 산수 실경화에 그려 놓은 절벽의 노송은 지금도 늘 푸름을 자랑하며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 그 살아가는 위치 또한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가 하면, 흙 한 줌도 물 한 방울도 담기 어려운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무한한 울림을 주었다. 누가 심고 가꾸고 보호한다고 해서 이런 소나무를 탄생시킬 수는 없다. 그 스스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경외감을 표했다.
보경사 경내에는 국보급 보물도 있고 문화재도 여러 점 있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대웅전 앞뜰에 5층 석탑과 함께 있는 소나무 노거수이다. 나이 300살로 추정되며 키 7m,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 둘레는 3.65m나 되었다. 그 자태의 늠름한 모습의 아름다움을 그 어떤 글로써도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굵고 거친 살결은 오랜 풍상을 견뎌낸 흔적이며, 마치 굽이치는 파도를 닮은 뒤틀린 가지들은 수많은 계절을 지나오며 자연이 빚어낸 걸작이다. 부처님의 자비를 품은 소나무다. 고결한 뿌리 깊이 내려 세월을 품었고, 우람한 줄기 휘돌아 자비를 말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지혜를 머금은 듯, 굽이굽이 감싸안은 모습은 곧 연민의 손길이라. 구도자의 길을 비추는 푸른 기운, 속세의 번뇌를 거두어 안식의 그늘을 내리시니, 그 아래 서니 바람조차 불경을 읊고, 가지마다 자애로운 미소가 깃들어 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자비의 소나무 그 모습의 아름다움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닮았으니, 기도하는 중생 평안과 해탈을 얻는다. 수관은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달의 모습이요. 우람한 몸통은 하늘로 승천하는 용틀임의 모습이다.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이면 분명히 아미타불의 환생이라. 시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존재, 수많은 불자의 염원이 깃든 성스러운 염원의 공간이다. ‘숲과 문화반’을 지도하는 박용구 경북대 명예교수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소나무 또한 깨달음의 아미타불을 줄여 아미송(阿彌松)이라 고유의 이름을 지어 칭송하였다.
또한 경내에는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자연유산 탱자나무 노거수가 있다. 나이 400살, 키 6m, 몸 둘레 1m, 지상 약 160cm에서 가지가 갈라져 원형으로 자라고 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두 그루였는데, 한 그루의 안부를 사찰에 여쭈어보았더니 태풍으로 삶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예로부터 탱자나무는 사찰에 악귀를 막아낸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탱자나무 또한 그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장수하는 탱자나무는 그리 흔치 않은 관계로 귀히 여기고 있다. 작은 부처가 나무 아래에서 나무의 장생과 건강을 지켜주고 있었다.
고대 철학자들은 숲과 나무를 보며 인생을 성찰하고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 불교의 처처불심(處處佛心)과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처럼,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찾고 스스로 돌아보는 삶, 즉 숲과 나무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철인과 같다. 나무는 오랜 기간 천천히 성장하며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는 우리에게 조급하게 결과를 바라기보다 꾸준히 노력하고 뿌리를 내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나무처럼 우리의 삶에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는 단단하게 땅에 박고 살아간다. 이는 삶에서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는 내연산 보경사를 둘러보고 계곡을 탐하면서, 절벽 바위 위나 틈새에서 살아가는 소나무와 경내의 아미송(阿彌松), 그리고 장수한 탱자나무를 통해 인생철학을 배웠다.
숲과 나무에 관한 고대 철학과 종교
숲과 나무는 우리 삶의 거울이자 깨달음의 원천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소요학파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이성과 논리로 삶을 탐구했다. 숲속을 거닐면서 사유하고 토론을 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산책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식물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배우고 중용의 철학을 중시하여 지나침과 부족함을 피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했다. 스토아학파 제논은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감정을 초월하고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강조했다.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뿐, 뿌리를 깊게 내리며 인내한다. 인간도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는 삶을 주장했다.
그리고 불교에서 처처불심(處處佛心)이라고 하여 모든 사물과 자연 속에서 부처의 마음과 깨달음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강한 나무는 바람에 꺾이고, 유연한 풀은 바람을 따라 휘어지지만, 다시 일어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연함과 무집착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도교에서는 무위자연이라고 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 했다. “나무는 성장할 때 억지로 가지를 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라난다. 자연스러움이 곧 도(道)”라고 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