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
녹은 쓸쓸함의 색깔
염분 섞인 바람처럼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세상을 또박또박 걷던 내 발자국 소리가
어느 날 삐거덕 기우뚱해진 것도 녹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에 슨 쓸쓸함이
자꾸만 커지는 그 쓸쓸함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건물에 스며드는 비처럼
아무리 굳센 내면으로도 감출 수 없는 나이처럼
녹은 쓸쓸함의 색깔
흐르는 시간의 사랑 제때 받지 못해
창백하게 굳어버린 공기
어떤 색깔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법, 김상미 시인에게는 녹색이 그렇다. 그에게 이 색은 쓸쓸함을 깊이 느끼게 한다. 쓸쓸함의 감정이란 그에게 무엇인가. “모든 것을 갉아먹는” 바람 같은 것, 그래서 몸과 마음을 슬게 하는 것이다. ‘굳센 내면’도 무너뜨리게 만드는 쓸쓸함은 “흐르는 시간의 사랑 제때 받지 못해” 일어난다. 시간이 멈추는 실연으로 인한 쓸쓸함, 하여 “창백하게 굳어버린 공기”를 사는 삶.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