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들 상실감에 ‘망연자실’<br/> 스트레스·정신적 피로감 호소<br/>“비 온다 했는데” 하늘보며 한탄
“산불이 덮치기 전 긴급대피문자에도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불덩어리가 비 오듯 쏟아졌어요. 정신없이 내달려 대피소로 왔는데 집은 이미 다 불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난 24일 강한 바람에 날려온 산불에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권(55)모 씨는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 텐트에서 대피하던 상황을 이렇게 얘기했다.
권 씨가 살던 남선면에 산불이 덮친 것은 25일 밤이다. 지난 22일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24일 안동시 길안면으로 확산하더니 급기야 25일 오후 강한 바람을 만나면서 남선면까지 넘어왔다.
권 씨는 당시 산불이 크게 나 의성군 점곡면과 길안면 등으로 번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남선면까지 올 줄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긴급대피문자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상황은 급격하게 돌아갔다. 어느 순간 산불로 인한 연기가 온 마을을 덮더니 급기야 강한 바람에 마을로 불덩어리들이 날아들었다. 권 씨의 집 마당에서 불덩어리가 날아왔다.
그때서야 권 씨는 차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당시 안동시내로 향하는 도로 옆으로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피소에 도착했다. 나중에 같은 마을 사람에게 들어 안 사실이지만 권 씨의 집은 이미 모든 것이 불에 타 없어졌다.
권 씨는 “이번 산불로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집도 불타고 과수원의 나무도 대부분 불에 탔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외지에 있는 친인척에게 기대는 것도 못할 짓이고 답답한 마음 하소연 할 곳도 없다”고 힘없는 목소리롤 말했다.
같은 날 일직면에서 안동체육관으로 온 김(68)모씨 부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동안 힘든 농사일로 자식들 키우고 하다 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낡기는 했지만 집 한 채가 전부였는데 그 집이 이번 산불로 다 타버렸다.
김 씨는 “불길이 소용돌이 치듯 날아 다녔다. 그러다보니 우리집은 다 탔는데 조금 떨어진 옆집은 멀쩡했다. 무슨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집을 잃었다는 생각에 앞으로 우리 노부부 어디가서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동체육관에서 이재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펼치고 있는 안동시보건소 관계자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재민들도 많고, 화재 당시 상황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분들도 많다”며 “너무 큰 피해에 심신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호소하거나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5mm 안팎의 비 예보에 잠시 산불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던 분들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비소식에 없자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안동체육관 대피소 밖에서 마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던 권(71) 모씨는 “뉴스에서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 빗방울 하나 보지 못했다. 얼마나 올지... 안온 것 보다는 나을 것이기에 밖에서 하늘만 보고 있다”며 “산불이 꺼져야 일상으로 돌아갈텐데 온다는 비는 소식도 없고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