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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걸어오며 반기는 백석 산수유꽃 향연

등록일 2025-03-26 20:23 게재일 2025-03-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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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행 에세이 작가 박시윤의 ‘경주는 흐른다’  <2> 백석마을
화천3리 경로당 앞엔 수령 350년을 자랑하는 신목이 서 있다. 아직 채 봄을 맞지 못한 신목에게 산수유꽃이 찬란한 봄 인사를 건넨다.

□ 흰 돌이 많았다는 경주 백석마을을 아시나요

산수유가 봄보다 먼저 내려앉는 마을이 있다. 이 꽃 저 꽃 벌들이 바삐 쏘다니는 동안 마을엔 모처럼 화색이 돌고 인기척도 함께 든다. 봄이 온 게다. 어디서들 알고 찾아온 것인지 객지 사람들의 발길이 종일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은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 듯하다.

경주역에서 차로 5분 남짓 달리면 백석마을에 이른다. 경주역과 지척인데도 백석마을엔 폐가와 빈집이 많다. 한때는 8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전부 객지로 나가고 밤에 불이 켜지는 집은 겨우 3~5채뿐이라고 한다. 풍경은 오래된 기억 속 한 장면처럼 낯설고도 아늑하다. 낮에는 봄볕 아래 노란 산수유꽃이 흔들리고, 밤이면 불이 켜지는 집이 손에 꼽힐 만큼 적다.

정적이 내려앉은 마을, 하지만 봄이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을은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 겨우내 굳게 닫혔던 빈집마다 문이 열리고, 객지로 나가 살던 이들이 하나둘 돌아온다. 그리고 밭고랑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삽질 소리, 농기계 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묵은 땅이 뒤집히고, 굳은 마음도 풀린다. 저들끼리 핀 산수유 꽃도 사람 구경을 즐긴다. 건천읍 화천 3리 백석길 16, 백석마을에 이른다. 흰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단석산 자락 아래, 신라 장군 김유신이 이곳을 지나다가 냇가에 꽃이 많은 걸 보고 ‘꽃내’라고 부르다가 ‘화천(花川)’으로 불렀다. 약 350년 전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개척 당시 뒷산에 흰 돌이 많다고 해서 ‘백석(白石)’으로도 부른다는 마을 어른의 이야기다.

 

경주역서 차로 5분 거리 ‘건천 화천3리’

350년전 흰돌이 많아 백석마을로 불려

폐가·빈집 늘면서 현재 3∼5채만 거주

마을 초입 수령 300년 신목과 산수유

돌담길·산기슭 등 찬란한 금빛 꽃망울

‘보약 열매’ 산수유, 눈·뇌골통 등 효과

산수유로 자식들 공부 ‘효자 노릇 톡톡’

□ 봄이면 사람보다 산수유꽃이 먼저 드는 마을

모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마을 군데군데가 노랗다. 꽃들은 무더기무더기 피어 저들끼리 즐거웁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겨울 기운이 강해 바람이 시리더니 며칠 새 봄기운이 완연하다. 꽃은 꽃망울 여는 걸 저들끼리 터득했나 보다.

절정이다. 꽃들은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해진다. 바람이 불면 새파란 하늘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은 별처럼 영롱하다. 마을 어귀 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저들 편한 대로 가지를 뻗어 꽃을 피웠다. 주인을 기다리는 나무, 혹은 기다림 그 자체가 나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을 초입에 서 있는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신목 앞에도 산수유는 가지를 뻗었다. 아직 채 봄을 맞지 못했는지 잎사귀 하나 돋우지 않은 신목에게 노란 산수유꽃이 해맑은 아이처럼 찬란한 봄 인사를 건넨다. 한낮의 햇살이 산수유꽃을 투과하며 그림자는 더 길고 짙게 마을로 내려앉는다. 마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어느새 꽃 속에 파묻힌다.

돌담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그 사이로 산수유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사람 손길이 미친 산수유는 표가 난다. 꽃이 많고 색깔도 선명하다. 그러나 저절로 무시로 난 것들은 가지만 무성할 뿐 꽃이 적다.

□ 한때는 자식들 공부시킨 든든한 밑천

봄이 오면 백석마을은 노랗게 물든다. 아니 햇빛을 머금어 찬란한 금빛으로 빛난다. 마른 가지 끝에 작은 꽃망울들이 터지기 시작하면,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환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꽃잎은 마치 비단을 두른 듯하다. 산기슭을 따라 여기서 저기서 산수유꽃들이 마을을 감싼다.

봄은 그렇게 산수유꽃과 함께 마을에 스며든다. 마을을 찾은 이들의 마음에도 한 줄 따뜻한 빛을 남긴다. 꽃잎 하나하나, 오랜 세월을 품은 듯 기품마저 느껴진다. “옛날부터 유명했어. 저 위쪽 산만디(산기슭) 거기서부터 여기, 질까(길가)까지 전부 노랬어.” 열아홉에 시집와 예순하고도 네 해를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최순자(84세) 어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때는 꽃이 고븐 지도(고운지도) 몰랐어. 그냥 다 일로만 보였으니까.”

산수유는 매화가 필 무렵 함께 피었다. 빠르면 2월 중순께 눈을 덮어쓰고도 샛노란 꽃을 피워냈다. 며칠 만에 일찍 저버리는 매화에 비해 산수유는 봄 동안 지천을 꽃등(燈)으로 밝혔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새파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단풍이 물드는 10월엔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갔다. 새빨간 보석같이 빛났다. 이 또한 꽃 못지않게 장관을 이뤘다. 11월엔 터질 듯 통통하게 물이 올라 반짝거렸다. 그리고 서리가 내리면 쪼글쪼글 마르기 시작했다.

“생 거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 며칠 골긴다(시들게 한다). 아니면 첨부터 서리를 마차가(맞게 해서) 몰캉한 걸 따던가.” 육질이 홍시처럼 몰캉해지면 씨앗 빼는 게 훨씬 수월하다. 생육에서 씨앗을 뺄 수 없어 터득해 낸 지혜다. “그걸 이빨로 하나하나 깠어. 열매 하나하나 낱낱이 입에 물고 이빨로 깨물어 씨앗을 발라내는데, 애들 학교 갔다 오면 전부 매달렸어. 산수유 농사를 많이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일거리를 대주기도 했어.”

최순자 어른과 함께 서 있던 일흔넷 공진국 어른이 말을 잇는다. “한 깡통에 이백 원인가 쳐줬어. 한 깡통이 한 되, 그러니까 껍데기로만 한 근 600g이 나오는데 200원 쳐줬어요. 많이 까는 사람은 하루 꼬빡 6근씩 까냈어요.” 이빨로 까면 이빨이 닳았다. 그래서 산수유 철이 되면 미리 손톱을 길렀다. 손톱도 닳았다. 그래도 돈 생각하면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학교 등록금이 한 삼천 원 했을 때니까, 한 보름 까면 삼천 원, 등록금은 나오는기라. 그러이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까는기라. 훗날 까는 기계가 나왔는데 품질이 입으로, 손으로 까는 것만 못해요.” 돈이 됐다. 삼 남매, 사 남매, 많은 집은 오 남매, 육 남매 전부 산수유를 해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떠난 자식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점점 조용해졌다. 빈집이 늘고, 폐가가 생겼다. 하지만 산수유나무들은 여전히 피고 산수유를 붉혔다.

마을에서 단석산 기슭으로 쭉 올라가면 산수유 군락이 펼쳐진다.
마을에서 단석산 기슭으로 쭉 올라가면 산수유 군락이 펼쳐진다.

□ 귀한 한약재, 산수유

산수유는 예부터 귀한 약재로 쓰였다. 한방에서는 산수유를 ‘구기자, 오미자와 함께 세 가지 보약 열매’라 칭했다. 신맛이 강하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효능이 있어, 술을 담그거나 끓여 차로 마셨다. 이 마을에서도 가을이면 산수유 열매를 말려 두고, 겨울을 나기 위한 차를 만들곤 했다.

‘본초강목’에는 오래 먹으면 몸에 힘이 붙고 눈이 밝아지며, 뇌골통과 이명(耳鳴)을 치료하고, 오래 산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유기산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 성분이 있어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것과 동시에 속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수유 열매는 백석마을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열매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삶의 일부였고,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이어지는 유산이기도 했다.

최순자(84·왼쪽), 공진국(74) 어르신이 젊은 시절 산수유 농사가 한창일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최순자(84·왼쪽), 공진국(74) 어르신이 젊은 시절 산수유 농사가 한창일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 도처로 팔려나간 백석마을 산수유

KTX 경주역 위쪽부터 백석마을까지 전부 노란 산수유 군락이었다. 논두렁 돌무더기에도 집 마당, 뒤란에도 그랬다. 그때에 비해 나무는 턱없이 줄었다. “경지정리 한다고 뽑아내기도 했지만, 관광단지 조성한다고 관상목으로도 엄청 사 갔어요. 대구나 서울 경기도 전국 조경업자들이 나무 사러 엄청 왔어요. 이른 봄에 꽃 하나 없고 황량하니 볼 게 없는데 산수유는 일찍 노랗게 꽃이 피고 보기 좋거든. 어디 노랗기만 하나. 여름에 조롱조롱 열린 열매가 보기 좋고, 가을 되면 빨가이 이쁘거든. 그러이 호텔 뜰이고 관광지마다 한 나무씩, 두 나무씩 가져가 심은기라.”

꽃 향이 온 마을로 번진다. 밭과 마당, 때로는 빈집이나 폐가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오래된 집들이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폭삭 주저앉았다. 인적이 끊긴 마을에 꽃이 피자 낯선 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답고 갸륵한 풍경을 이야기하며 최순자 어른도 공진국 어른도 꽃처럼 환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 걸었던 신목 앞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나는 오래전부터 백석마을 기억하는 일부인 양 정겨웁다. 아마도 봄을 알리는 산수유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알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건가보다.

백석마을은 봄이 가장 먼저 걸어오는 길목인지도 모르겠다. 노란 산수유 꽃 속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봄기운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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