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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남자(부분)

등록일 2025-03-23 19:19 게재일 2025-03-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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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

눈썹과 아이라인을 그린다

상사 앞에서는 눈꼬리가 처지지 않게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는

두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중략)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얼굴부터 살핀다

이마와 눈가에 주름 개선제를 바른다

아내의 잔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두 개의 직장을 가진 남자는

잠자기 전 화장을 지우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맨 얼굴로 돌아가는 남자

화장한 얼굴이 자기 얼굴인지

클렌징한 얼굴이 자기 얼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뒤척뒤척

남자도 화장을 한다. 화장은 세상의 시각에 맞추어 자신의 얼굴을 가꾸는 행위. 직장에 가면 상사와 ‘아랫사람’ 앞에서 그들에 걸맞은 표정을 꾸며야 한다.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내의 심기에 표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 중년이 된 남자는 돈벌이에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화장하는 삶을 힘겹게 살아야 한다. 위의 시는 유머러스하지만, 이젠 진짜 자기 얼굴이 헷갈리게 된 현대인의 생활을 씁쓸하게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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