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죽는 법을 자꾸 잊는다
무덤 속에서도 자꾸 살아난다
사는 일이 큰 이득이란 듯,
살고
살아나면
살아버린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
산문이 있었다
그걸 쓰느라 죽을 시간이 없었다!
위의 시의 ‘죽음’은 물론 상징적 죽음이다. 기성의 나를 죽이고 다른 내가 되는 과정이 고통을 동반한 성장이다. 시에 따르면, 스무 살 때 이런 시적인 죽음이 많이 일어난다. 하나 이 죽음은 ‘마흔 살’이 되면 ‘웬만해선’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나이엔 “죽는 법을 자꾸 잊”거나 죽어도 무덤에서 소생하기에. “서른과 마흔” 사이는 ‘산문’을 써나가야 하는, ‘살아버려야’ 하는 시기, 이땐 “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