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희
미끄러운 세상을 지나
헐벗은 비탈을 지나
부끄러운 마음을 지나
동지를 지나
허전해진 동면의 밤을 지나
돌아가는 곳
따뜻한 아랫목
할머니의 온기를 따라
가족들이 웅크리고 발을 넣던 곳
고구마를 구우며
깊게 묻어둔 감자를 들어내며
화로의 숯들이 발갛게 익던 곳으로
어릴 때, 추운 겨울날 거리를 걸을 때 오직 생각했던 것은 어서 귀가해 ‘따뜻한 아랫목’ 이불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인생 자체가 겨울이 된 현재, 나를 품어주는 아랫목은 없다. 시인도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닐까. 미끄럽고 헐벗은 세상과 부끄럽고 허전한 마음을 지나 귀가할 수 있는, “가족들이 웅크리고 발을 넣던 곳”이 예전엔 있었지만, 이제 그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위의 시가 슬픔을 주는 건 이 때문이겠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