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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등록일 2025-03-03 18:32 게재일 2025-03-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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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규

생전의 당신께

손발톱 한번 잘라 줄 새 없이

아침볕 서리 녹듯 가셨는데

구월 불 회오리 쏟고 있는 봉분에는

덤벼들기라도 할 것처럼

억새들만 장검 날을 세우고 있더이다

게을러터진 나를 꾸짖듯 말입니다

등에 진 예초기는

심동맥 찢어지겠다 싶게

발광하며 진저리 치구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름 아닌

나를 깎는 일이었습니다

시인은 부모님 묘를 찾아와 벌초하는 중인 듯하다. 초가을이 되어 어느새 자란 억새들이 ‘불 회오리’와 같이 거센 기세로 마치 시인의 게으름을 비난하듯 날카롭게 검처럼 솟아있다. 진저리치는 예초기는 시인의 죄스런 마음-찢어지는 심동맥-을 대신 드러낸다. 그는 언제 “생전 당신께/손발톱 한번 잘라” 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깨닫는다. 부모님 묘의 벌초란 반성의 예초기로 자신을 깎는 일이라는 것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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