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령
살아 있는 동안 말할 줄 알았던 자
묵언
한 발짝 한 발짝
길을 잃고 길을 가는
벚꽃 터지는 정적
실바람처럼 가랑이를 빠져나가는
마곡사 계곡 길
종잡을 수 없는
청명(淸明),
떠날 때 잠깐 주인이었던 이유
여행 가방에서 살짝 삐쳐 나온 셔츠 끝에서
나풀댄다
간명한 표현으로 인생의 깊은 의미를 길어올렸던 김종삼 시인. 장무령 시인은 그로부터 ‘묵언’으로 “살아 있는 동안 말할 줄 알았던 자”를 읽는다. 시에 따르면, 이 묵언의 말은, “마곡사 계곡 길”에서 시인이 만났던 “길을 잃고 길을 가는” 정적과 같다. “종잡을 수 없”지만 ‘청명’한 바람 같은 말. 이 청명한 말이 가방 위로 삐쳐 나온 셔츠를 나풀대게 할 때, 삶은 잠깐이나마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