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레 단눈치오(김효신 옮김)
뜨거운 모래 하릴없는
둥근 손안으로 가벼이 흘러가는데,
마음은 하루가 너무 짧았음을 느꼈네.
금빛 해변 흐리게 하는
습기 찬 가을의 문턱 가까워지자
갑작스러운 불안함이 내 맘을 사로잡네.
손은 시간의 모래 담는 항아리,
박동하는 내 마음은 모래시계라네.
온갖 헛된 축이 커져만 가는 그림자
말 없는 시계 판의 바늘 그림자 같구나.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이탈리아 탐미주의-허무주의 시인 단눈치오. 위의 시는 그의 허무주의가 잘 드러난다. 시간은 손으로 움켜쥔 모래, “시간의 모래 담는 항아리”인 손 아래로 시간은 스르륵 빠져나간다. ‘박동’하는 마음은 모래시계처럼 점점 비워지는데, 하루는 너무 짧아 마음은 불안함에 사로잡힌다. 오직 남는 것은 “헛된 축이 커져만 가는” 시간의 그림자 뿐, 저 아름다운 금빛 해변은 점점 흐려지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