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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등록일 2025-01-05 18:44 게재일 2025-01-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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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경

꿈틀꿈틀은 나의 유일한 저항 수단

아무리 걸어 봐도 먼 내일

햇볕은 눈물겨운 분신의 최적 조건

밟히고 말려지는 건 가문의 오래된 장례법

차마 눈 뜨고도 못 볼 일 많아

눈 감고 어둠 속으로 기어들기도 했다

가끔, 풀잎에 기대어 나비를 꿈꾸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끗 차이

오늘도 비명 한번 없이

쥐똥나무 꽃향기 쪽으로 직진 중이다

뼈 없는 설움이 깊다

‘꿈틀꿈틀’ 몸을 비틀며 땅위를 기어가는 지렁이. 서민 역시 이렇게 기어가다 “밟히고 말려지”며 사라지는 삶을 살지 않는가. 서민 역시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를 꿈꾸지만, “눈 감고 어둠 속으로 기어”들곤 하는 것이다. 서민이란 누군가. 지렁이처럼 “뼈 없는”, 재산도 ‘빽’도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비명 하나 없이” 묵묵히 지금도 “꽃향기 쪽으로 직진”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듯이.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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