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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자

등록일 2024-12-25 19:49 게재일 2024-12-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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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나이 들면 무엇보다도 외롭고 쓸쓸함이 가장 무섭다고들 했다. 고독력도 힘이라지만 그건 정신력이 강한 자의 얘기일 뿐 평범한 사람에겐 외로움이 가장 힘들 거라고 했다. 반드시 정기적인 만남으로 누구라도 만나 인간관계를 두텁게 해야 즐거운 노후가 될 것이라는 충고들이 많았다. 난 절대로 외로운 노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작은 모임을 만들고자 애썼고 마음 통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손주들 영어학원에서 매일 만나 정든 ‘할매’들과 매월 둘째 화요일-그래서 모임 이름도 ‘이화회’다-마다 만난 지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점심 먹고 차 한 잔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수다는 늘 즐겁고 유쾌하다.

‘도보문화산책’은 처음 경주산책에서 시작했다. 몇 년 넘자, 공간은 경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문화적 범위와 관심사도 미술, 카페 등으로 확장되었다.

전공이 다양한 5명의 구성원들로 대화의 주제는 크고 넓고 수준은 높다. 내방가사를 중심에 두고 만나는 모임도 몇 있다. 안동의 ‘내방가사전승보존회’는 출입한 지 벌써 30년이 가깝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지만 한결같이 예절바른 어르신들의 손은 잡을 때마다 애틋하고 정답다. 역시 내방가사를 인연으로 만나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며 제자 관계로 얽힌 세 명의 ‘흰머리소녀’도 햇수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검은 머리의 40~50대에 만나 모두 흰머리의 60대를 훌쩍 넘었다. ‘내방가사 세자매’는 내방가사가 주된 관심사였고 서예에서 가사에서 논문까지 오직 내방가사에 대한 얘기지만 그 사이 자매애까지 생겼다. ‘선덕여왕경모회’는 경주의 내로라하는 여성 리더들이 선덕여왕을 중심으로 모인 제법 큰 여성단체인데, 격월의 정기모임은 품격이 높다. 매월 셋째 주 일요일, 사촌언니를 따라 ‘108기도순례’에 참가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 노후 준비 아닌가.

벌써 한해가 저문다. 이 나이쯤 되면 그날이 그날이고, 그 달이 그달 같고, 그해가 그해 같다. 별 큰 일 없이 그저 그런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이 고맙고, 나날이 맞는 새 날이 행복할 따름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저 그런 날에다 방점을 찍고 싶고, 별난 이벤트로 새롭고 특별한 날을 만들기를 즐기는 나였다. 그러니 이즈음을 그냥 슴슴하게 지내는 건, 가고 오는 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침 모임마다 송년회를 하자는 뜻을 비치니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 달 중순부터 슬슬 송년모임을 하나씩 치렀다. 평소와는 좀 멋진 식당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이벤트도 하면서 작은 선물이라도 교환했다.

지난 주 있었던 ‘선덕여왕경모회’송년모임에서였다. 한 회원이 고맙게도 나무트레이를 만드는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셨다. 작은 종이를 나누어주면서 각자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읽으라 했다. 모두들 자신을 사랑한다고, 덕분에 행복했다며 자신을 격려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적고 읽었다. ‘여전히 나답게 살자.’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나다움이 뭐지? 자신감? 격려? 긍정?’ 이제 생각해 보니 이는 내가 나에게 던진 커다란 화두 같다. 내년엔 이 숙제 같은 화두 ‘나다운 나’에 집중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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