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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하염없는 슬픔

등록일 2024-11-07 18:20 게재일 2024-1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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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장엄하고 느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비극적 선율이

조금씩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후의 길은 이렇게 차갑고 냉정하고 섬세한 구조로

짜여 있는 것일까

미쳐버린 새들은 둥지를 떠나 북쪽 하늘가를 날고 있고

귀를 닫아버린 아이들은 정처 없이 골목을 떠돌아다니는데

우리는 이제 입을 틀어막고, 가슴을 바짝 움켜쥐고, 처참한 애도를

드러내야 하나

장송곡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하얗게 얼어붙은 몸으로

벌거숭이 된 채 서 있다

마음이 아파오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시다. ‘하염없는 슬픔’을 가져다 줄 ‘비극적 선율’이 “조금씩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예언을 전하고 있기에. 우리가 세상 종말 직전에 서 있다는 예언. 그래서 지금 새들은 미친 채 날고 있고 아이들은 귀 닫고 “정처 없이 골목을 떠돌아다”닌다. 곧 죽음이 들이닥치고 ‘장송곡’이 울릴 터, 이 종말 앞에서 “우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하얗게 얼어붙”어 있을 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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