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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지스트’라는 말을 찬찬히 발음할 때 드러나는 건

등록일 2024-10-30 18:51 게재일 2024-10-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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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렬

기아와 폭식을 반복하는 달의 이클립스

겨울 아침을 배회하는 바바리맨의 덜렁거리는 실존

설치류 떼에 물려 이 그지 같은 세상을 하직한 초식공룡 화석

Exit으로 오타 한 후의 가벼운 절망

침침한 은하계를 지그재그로 건너 나의 꿈속에서

현관에 버려진, 빨간 아기로 현현하는 일그러진 혜성

‘exist’라는 말을 천천히 발음하면서, 시인은 우선 월식을 떠올린다. ‘이클립스-식’은 빛의 소멸을 뜻하는 바, ‘exist’는 가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달처럼 소멸의 반목을 가리킨다. 하여, 초식공룡이 소멸했듯이 인간도 소멸할 터, ‘exist’를 ‘exit’로 잘못 쓴 건, 절망으로부터 “은하계를 지그재그로 건너”는 ‘혜성’처럼 탈출하고픈 원망이 투영되어 있다. 하나 그 혜성은 버려진 아기처럼, 일그러진 꿈일 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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