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영
나는 어디에서 온 빗방울입니까
나뭇잎 발코니
허공이 조금은 막막하여
주저앉아
울었던 기억이 나는 듯도 합니다만,
어쩌자고 아직도
마르지 않고 태양을 견딘답니까
스스로를 깨뜨릴 수 없는
물방울을 위해
당신께서는 손가락을 빌려 주십시오
닿는 순간 한 채의
눈물 누옥에 갇혀 있던 날개가
폐허를 털고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2024년 제2회 선경작가상을 수상한 한혜영 시인의 작품. 시인은 자신을 마르지 않는 빗방울로 비유한다. “허공이 조금은 막막하여/주저앉아/울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시인. 하지만 ‘자신-빗방울’은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태양을 견”디며 폐허가 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 시인은 갈망한다. ‘당신’의 “손가락을 빌려” 날개를 달고 날아갈 수 있기를. 열망으로 샘솟는 서정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