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이사할 적에는 새 바람 새 빛을 바랐나보다.
그래서 나는 실망한다, 십칠년 만에 이사한 동네가
옛날에 떠났던 바로 그 동네여서.
그래도 반가워서 이 언덕 저 골목 서성이는데
놀랍구나, 모든 게 이렇게 새롭다니
아기들이 새롭다, 연립주택 낡은 문을 밀고 나오는.
젊은 엄마들이 새롭다, 뒤따라 나오는 헐렁한 옷 속의.
그루터기가 새롭다, 가지 잘린 플라타너스의.
간판이 새롭다, 새로 단장한 머리방의.
새롭지 않은 것은 오직, 오래되고 낡은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걷는 내 걸음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신경림 시인의 시. ‘지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격언을 뒤집어 놓은 시다. 시인은 ‘새 바람’을 바라며 “옛날에 떠났던 바로 그 동네”로 이사했으나, 격언과 마찬가지의 풍경이어서 실망했다고. 하나 곧 아기들과 엄마들, 그루터기와 머리방 간판이, 즉 ‘모든 게’ 새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 더 깨달은 게 있다. “새롭지 않은 것”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찾아 걷는 내 걸음뿐”이라는 것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