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숙
봄날 저수지 주변으로 소네트가 흐른다
나무는 맹목적으로 자라고
한때 내 사랑도 그러하였다
(중략)
지키지 못한 약속들 때문에 물빛이 어두워지고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해서
나무는 안간힘으로 그림자를 뻗는다
봄날 저수지에서는
당신에게
한 줄 기별을 넣어도 될까
손가락 사이로 돋는 푸른 새순을
못 본 척
눈 감는다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은 사랑의 맹목성. 사랑에 목적이나 목표는 없다. 다만 사랑할 뿐. 하나 두 사람의 사랑은 떨어지는 꽃잎처럼 스러지곤 한다.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해서. 그때 사랑은 “안간힘으로 그림자를 뻗”을 터, 사랑을 잃은 시의 화자가 “봄날 저수지에서” “당신에게/한 줄 기별을 넣”고 싶다는 생각이 그 그림자일 테다. 그때 사랑의 ‘푸른 새순’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