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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선생의 충의 실천하며 수백 년간 서원을 지킨 느티나무

등록일 2024-09-25 20:01 게재일 2024-09-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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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성주 신정리 회연서원 규율부장 느티나무
수백 년 동안 한자리에서 서원을 지키며 선비들의 몸가짐과 행동을 보았을 회연서원 느티나무.

비구름 안개가 산천을 덮으며 점점 퍼져 간다. 구불구불한 시골 산길은 끝도 보이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면 또 모퉁이가 나오고 하얀 구름안개 꽃은 달리는 자동차까지도 에워서 싼다.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안개 꽃 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길섶에는 풍성한 녹색 물결이 출렁인다. 펼쳐지는 녹색 자연은 가슴을 물들이고 꿈속 같은 어린 시절의 과거로 돌려놓는다. “go back to the past”. 하얀 구름안개 꽃을 헤집고 옛 유생들은 하염없이 이 산길을 걷고 또 걸어 선비 선생님이 계시는 성주 신정리 회연서원으로 걸어갔겠지. 골짜기에 피어오르는 는개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듯한 느낌을 주었겠지. 녹색 산길을 돌고 돌 때마다 배움의 신비감은 더해져만 갔겠지. 회연서원으로 가는 길은 성리학의 깨우침일까, 자연 만물의 생과 사는 이(理)와 기(氣)의 합체와 이별의 조화인가. 마음은 배움으로 향하고 몸은 서원으로 향하는 유생들이 보인다.

한강 정구 선생을 향배하는 회연서원

정문엔 400년된 우람한 느티나무가

높이 20m, 가슴둘레가 5m에 달해

현도루 위에 오르니 서원이 한눈에

유생들이 강당에 앉아 몸을 흔들며

낭랑한 목소리로 글 읽는 모습 선해

현도루(見道樓)
현도루(見道樓)

도중에 흰 두루미가 푸른 볏논에 모양새 나게 앉는 꿈속 같은 아름다운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잎처럼 나풀거리거나 나뭇잎처럼 살랑거림도 없다. 그렇다고 하늘로 던진 돌멩이가 땅으로 뚝 떨어지는 속도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정적이면서 내려오는 동적인 모습은 정중동이랄까, 우주의 중력의 법칙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만의 특급 비밀인지 모를 참으로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행위 예술이었다. 아름다움의 절정은 마지막으로 긴 다리를 살짝 굽히면서 연착륙을 시도 하는 모습이야말로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오로지 잿빛으로 물들인 하늘과 짙은 녹색의 산야는 신비감을 더했다.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우주 만물에는 이(理)가 깃들여 그 본성이 나타나고… 기(氣)와 이(理)를 가지고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 질서를 논하는 성리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을 향배하는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회연서원(檜淵書院) 느티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정구 선생은 이이 퇴계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성리학을 바탕으로 실천적 실용주의를 지키면서 후학을 가르치신 분이다. 회연서원은 학문을 강론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요즘의 지방 학교와 같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지난 역사와 함께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여가를 즐기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정문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노거수야말로 한강 선생의 충의를 실천하며 서원을 지키고 있어 선생의 숨결이 스며있지 않을까 싶다.

현도루(見道樓) 망루 위에 오르니 회연서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생들이 강당에 모여 앉아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글 읽는 모습이 보인다. 서원으로 들어서는 대문 앞에 서 있는 우람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서 유생을 맞이한다. 지금은 400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키 20m, 가슴둘레가 5m이다. 경내 뜰 정원에는 매화나무, 회화나무, 소나무, 배롱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백매원(百梅園)이라 부르고 있다. 꽃 피는 봄이면 모를까 뭐니해도 나이가 제일 많고 몸집도 제일 큰 정문에 서 있는 느티나무가 제일 높은 어른 같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서원 유생들의 등교 시 품성을 점검하는 규율부장 선생님 같다. 아니 한강 정구 선생이 느티나무로 환생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선생은 성리학을 배우고 실천하여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선생의 사상적 유산과 성리학적 가치를 충의로 연결하여 이를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느티나무가 하여 왔지 않나 싶다.

대가천 물을 남으로 돌린 봉비암을 업고 회연서원은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도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이 무흘구곡(武屹九曲)을 노래하면서 깎아지른 듯 봉비암(鳳飛巖) 단예를 조각해 놓았다. 봉비암은 무흘구곡 중 제1곡의 자리이다. 대가천의 아름다운 계곡을 오르내리며 시를 지어 무흘의 절경을 노래한 것이 무흘구곡이다. 9곡의 굽이마다 이름을 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가 이학(理學)으로 상징화함으로써 1곡에서 9곡에 이르는 과정이 단지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한편으로 도학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종의 수양 과정이기도 하다. 조선의 무흘구곡 문화는 산림 문학의 원류란 생각이 든다. 구곡 문화는 유학을 바탕으로 자연, 문학, 예술이 조화롭게 혼합하여 빚어진 조선 유학의 꽃이요, 진수라 할 수 있다. 완전한 구곡 문화의 향유는 구곡원림과 구곡시, 구곡도를 모두 갖춘 것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원림은 물론 산의 숲과 나무, 계곡, 바위, 폭포 등 모든 자연물은 산림 문학의 대상이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시를 짓는다거나 음악으로 표현한 노래 가사도 산림 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드나들면서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목 앞에서 몸가짐을 되돌아보았듯이 유생들 또한 서원을 드나들면서 늘 맞닥뜨리는 규율부장 선생님 느티나무를 보면서 충의를 불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꼿꼿함에서 충을 보았고 수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 의를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물의 상징성에서 늘 깨닫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느티나무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수백 년 동안 한자리에서 서원을 지키면서 선비들의 몸가짐과 행동을 보았을 것이니 회연서원 느티나무 노거수는 조선의 선비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제는 학생을 가르치는 서원은 문화재가 되어버렸다. 현도로 망루에서 보는 경관이 어쩜 이렇게도 아름다운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곱게 가지런히 쌓은 돌담은 서원의 지붕과 어울리고 병풍처럼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봉비암 숲은 하늘과 맞닿은 듯 고요, 적막, 평화로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한강 정구 선생 신도비
한강 정구 선생 신도비

회연서원과 한강 정구 선생, 그리고 성리학

성주 회연서원(檜淵書院)은 1654년에 한강 정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한강 정구의 학문적 업적과 가르침을 후대에 전파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 서원은 한강 정구의 성리학적 사상을 보존하고, 성리학을 연구하는 중요한 장소다.

한강 정구(寒岡 鄭逑) 선생은 1543년에 태어나 1620년에 사망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교육자로 이황과 이이를 잇는 중요한 학자로 평가된다. 성리학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고, 학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진왜란 중 의병 운동을 했으며 도덕적 자기 수양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의 학문은 조선 중기 이후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性理學)은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에 의해 집대성된 유교 철학이다. 조선시대 이황과 이이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理)는 만물의 본질적 원리이고, 기(氣)는 그것을 실현하는 물질적 요소다. 인간과 우주의 원리를 이(理)와 기(氣)로 설명하며, 도덕적 자기 수양을 중시하는 유교 철학이다. 성리학은 도덕적 인간이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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