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화
(전략)
날이 흐리고
눈이 흩날리는 시간은
케이크 위의 설탕 과자처럼 부서질 것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고
어디에나 이를 수 있겠지만
오늘밤 붙박인 사람들은 작은 손을 모은다
물에 잠긴 수도원을 서성이는 발걸음은
무의미하다
최선을 다한 기도처럼
차가운 창밖을 부지런히
성의껏 달리는
흰 눈송이들
잿빛 세상을 다독이려는 듯이
눈발이 굵어진다
시인들은 눈 오는 풍경을 자기의 비전으로 곧잘 그리곤 한다. 위의 시처럼 말이다. 세상은 잿빛이다. 이 “세상을 다독이려는 듯이” 눈발은 “부지런히/성의껏 달리”며 굵어지고 있다. 하나 이 눈 내리는 풍경은 슬픔을 품고 있다. 저 땅에 떨어지는 눈들은 어느새 녹을 것이며, 하여 “눈이 흩날리는 시간은” “설탕 과자처럼 부서질 것”이기 때문이다. “붙박인 사람들”의 “최선을 다한 기도”가 ‘무의미하’게 되듯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