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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횡단보도에서

등록일 2024-09-22 18:12 게재일 2024-09-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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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라

걸어가는 양이 십 도쯤 기울어진

박스 리어카 할아버지

횡단보도도 아닌데 버스 택시를 비집고

길을 빠르게 건넌다

바퀴에 무게를 싣고 가벼워진 날갯죽지

속도를 낼수록 몸의 기울기는

도마 위 통통 잘려 나가는 무편처럼 어슷어슷

몸의 관절은 끊어졌다 이어지는 무성영화처럼

석양빛도 슬픈 기울기로 어스름해지는 저녁

하늘을 나는 돌부처의 모가지처럼

건너는 발은 없고 굽은 등이 바퀴로 굴러간다

가끔 박스 폐지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힘겹게 끌고 다니는 노인을 볼 때가 있다. 시인은 그 노인의 존재를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그 노인의 ‘무성영화처럼’ “끊어졌다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면서 “하늘을 나는 돌부처”의 이미지를 포착한다. 노년에까지 삶에 충실한 노인의 모습에서 어떤 숭고함을 느끼고는 “가벼워진 날갯죽지”를 발견한 것, 하여 시인에게 노인은 발 없는 부처로 보였던 것이리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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